127화
* * *
<슈퍼 버프 커피>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는 평범했다.
주문 받기, 설거지, 청소 등……. 이미 많이 해 본 일이었으니까.
손님이 많아 바쁘긴 했지만, 꼬박꼬박 휴식 시간을 챙겨 줘서 체력에는 여유가 있었다.
아르바이트, 아니, 잠입 첫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알아차렸다.
오서호의 말대로, <슈퍼 버프 커피>에서 일하는 일반 직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대부분 각성자조차도 아니었다. 그냥 일반 바리스타 월급보다 많이 챙겨 주는 직장을 만나 기뻐하는 노동자였을 뿐.
이 카페의 특이한 점이라면 바로 이것이다.
카페의 모든 음료는 바리스타의 손을 거쳐 제조된 뒤, 안쪽의 제조실로 보내진다.
그때 그 방이다.
이상한 옷차림의 남자와 수상한 황금빛 유리병을 본 곳.
그런데 저 방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었다. 매니저도 특별한 경우에만 상부의 허락을 받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저기는 뭘 하는 곳이에요?”
나는 지나가는 말인 척 여상한 말투로 매니저에게 물었다.
“아. 우리 카페가 버프 커피를 파는 곳이잖아. 저기서 버프를 부여한 뒤 손님께 드려.”
“아하.”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해. 그 허접한 <카페 리을>에 비하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니까.”
“…….”
가짜 주제에 누구더러 허접하다는 거야.
순간 진심으로 욱했다.
지금은 잠입 중이다. 평정심을 되찾아야 한다. 무념무상. 나는 돌멩이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가짜 주제에 누구더러 허접하다는 거야!
<카페 리을>이 어디가 어때서!
적어도 나는 커피에 수상한 물질을 타지는 않았다고.
“……니은 씨?”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나 보다. 매니저가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안 된다. 이런 일로 의심을 살 수는 없다. 나는 우주의 먼지다. 평정심을 되찾아야…… 평정심은 무슨!
[스킬 ‘스마일’을 실행합니다.]
나는 그냥 스마일 스킬을 썼다.
생긋.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입술은 완벽한 영업용 미소를 그렸다.
“잠깐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요.”
“그렇구나.”
다행히 매니저는 나를 의심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시스템 알림이 계속 이어졌다.
[진정한 영업용 미소를 실현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영업용 미소를 잊지 않는 당신. 자영업자의 귀감입니다.]
[스마일(C)의 레벨이 2로 올랐습니다.]
[※ 이후 스마일(C) 실행 시 효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스마일(C)
상세: (Lv.2) 웃으면 복이 와요.]
이잉?!
레벨 업을 시켜준 건 기쁘지만, 터무니없는 효과가 붙어 있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라. 즉 스킬을 사용하면 운이 올라간다는 뜻이겠지?
운이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운. 운이라, 으음…….
역시 복권 당첨?
아니, 아니다. 그보다는……. 황금 뽑기 티켓을 돌리면 좋은 아이템이 나오지 않을까. 예를 들어 새 그라인더나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커피 잔 세트 같은 거.
아차. 매우 흥미롭지만 이럴 때가 아니었다.
“크흠. 아무튼 니은 씨, 제조실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누가 들어도 저곳이 수상하다고 여길 만큼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사람 눈을 피해 저 방을 확인할 수 있으면 퀘스트는 1차 클리어겠지.
간단하군, 후후. 두 S급 헌터가 다른 구역에서 얼타고 있는 동안 내가 정보를 캐내어 주지.
할 수 있다, 권리을. 아니, 권니은.
그러나…….
간단하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심포닉 메탈 밴드 ‘새니티 핀치’의 1기 팬클럽 회원번호 한 자리 수의 이 매니저 때문이다.
매니저는 나를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니은 씨, 새니티 핀치 작년 영국 투어 블루레이는 봤어?”
“그, 글쎄요. 아직…….”
“새니티 핀치 베이스가 라이브 무대에서…….”
“아, 하하…….”
나는 기타랑 베이스도 헷갈리는 사람인데, 이 콘셉트 조만간에 들키는 거 아닐까. 오서호는 왜 하필 내게 이런 콘셉트를 준 거지?
안 되겠다. 역시 혼자 힘으로 문제의 제조실에 접근하는 건 한계가 있다. 최이찬과 접선해 보자.
[나]
헬프미 ㅜㅜ
최이참 거긴 어떰???
한참 기다렸지만 카톡의 ‘1’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이찬도 집중 마크 당하는 중인가?
그래도 창고면 매장보다는 사람이 적겠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자.
“저 창고에서 원두를 좀 갖고 올게요.”
“우리 에이스를 먼 걸음 하게 할 순 없지. 원두 여기 있어.”
오늘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에이스는 무슨 에이스란 걸까.
“그랬……군요. 정말 잘 챙겨 주시네요, 하하.”
이래서는 창고까지 가서 최이찬을 만나기란 어려울 듯싶었다.
그렇다면 매장 내에 있는 기유현이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마침 홀 반대편에 주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그 주변에 유독 사람이 많이 몰려서 찾기 쉬웠다.
“매장이 혼잡하네요. 저 손님들 줄 정리를 돕고 올게요.”
“니은 씨, 이제 휴식 시간이야. 지금 하는 거만 끝내고 쉬어.”
“그래도…….”
“일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휴식은 필수적인 요소야. 니은 씨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
“…….”
정말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친절하고 인간적이다. 그야말로 훌륭한 관리자의 모습. 내가 이곳에 잠입한 스파이가 아니었다면 매니저의 배려가 정말 감사했을 거 같다.
이렇게 매니저의 완벽한 집중 마크 덕분에, 나는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실 내 정체 알고 있는 거 아냐? 그래서 일부러 방해하는 건가? 이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퀘스트 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성공)]
이렇게 뜨는 것으로 보아 내 정체를 모르는 게 맞을 텐데.
결국 제조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맞이한 퇴근 시간.
급기야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니은 씨가 왔으니 환영회 한번 해야지? 퇴근하고 저녁 타임 직원들끼리 야식 먹으려고 하는데, 니은 씨도 같이 갈 거지?”
“아, 음……. 네, 좋아요.”
다른 때라면 퇴근 후 회식이라니 절대 싫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근무 시간에는 허탕 쳤지만 회식에서 반전을 노리자.
그런 속셈으로 참석한 건 좋은데…….
…….
“매니저님, 우리 2차 가요!”
“…….”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데 3차 가죠! 니은 씨도 같이!”
“아, 하하…….”
요즘 세상에 회식을 3차까지 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네 시간 아르바이트인데 회식이 네 시간이 넘었다.
나는 술 대신 주문한 콜라를 마시며 슬쩍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 회식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잖아?!’
한 점 그늘이라곤 없는 웃음이 주위에 가득했다.
그때, 옆자리의 직원이 말을 걸었다.
“니은 씨는 카페에서 일한 적 있다고 했죠?”
“네, 맞아요.”
“여기는 본사 지원이 되게 넉넉해서 좋아요.”
“……!”
본사가 화제에 올랐다. 지금이 정보를 얻을 타이밍이다.
“본사가 <성혜기업>이라는 곳이죠? 거기는 어떤 곳이에요?”
“그런 것보다, 내가 한 살 위인데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말도 편하게 하고!”
“니은 씨, 나도 그냥 언니라고 해.”
그대로 화제가 바뀌어 버렸다.
장장 네 시간이 넘는 회식을 통해 나는 직원들의 신상, 취미, SNS 계정, 다음 주 오프 계획, 자주 이용하는 쇼핑몰, 연애 이력 등을 알게 되었다. 다만 정작 내가 원하는 <성혜기업>이나 교단에 대한 정보만큼은 한 톨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힘들다…….’
고작 하루 만에 인싸들의 틈에서 지쳐 버렸다. 정말 출근하기 싫다.
그렇게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온 첫날.
“아스, 나…… 출근하기 싫어…….”
이런 하소연을 하며 테이블에 한참 엎드려 있다가, 아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스는 자그마한 플라스틱 부품을 자른 뒤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몸체에 끼웠다. 표정은 진지했고 손동작은 섬세했다.
“아스, 이건 뭐야? 프라모델?”
“흐흠,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냥?”
“아이들이 이런 걸 좋아하더라고.”
애써 무관심을 가장했지만 표정에서 기뻐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뭔지 몰라도 내가 없는 동안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래, 아스 너라도 행복하니 다행이야.
하아……. 출근하기 싫다.
* * *
이렇게 <슈퍼 버프 커피>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닷새째.
그동안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참고로 기유현과 최이찬도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유현은 너무 많은 손님들에게 휩싸여 있었고, 최이찬은 반대로 너무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메인 퀘스트: 커피 스파이 대작전
미션 파서블!
수상한 카페에 잠입하기로 한 당신!
그러나 방해 요소가 한가득입니다. 과연 당신은 정체를 들키지 않고 커피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성공)
커피의 비밀을 발견하기: (미완료)
남은 시간: 2일
보상: 경험치(500exp), 랜덤 레시피, 에테르-위키 업데이트]
나는 퀘스트 창을 눈으로 훑었다.
줄어든 남은 시간 항목이 신경 쓰였다. 이대로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불안에 휩싸인 것도 잠시.
뜬금없이 기회가 왔다.
“니은 씨, 잠깐 휴게실로 와.”
“네, 무슨 일이세요?”
“<성혜기업> 지역위원장 사파이어 님이 방문하실 예정이야. 마침 잘됐으니 같이 인사드리자.”
“……!”
갑자기 분위기 사이비?
이름부터 수상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나는 애써 침착을 가장하고 매니저에게 물었다.
“어떤 분이신데요?”
“본사의 높으신 분이야. 그분의 인정을 받으면…….”
“받으면요?”
“금일봉이 나와!”
아하.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였군.
오래지 않아 휴게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나는 곧장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전에 이곳에서 본 이상한 옷의 그 남자였다.
“어서 오세요, 사파이어 님.”
매니저가 깍듯하게 남자를 맞이했다.
사파이어 님이라는 웃기는 호칭으로 불린 남자는 그때처럼 하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남자의 옷은, 어째…….
……꽤 허접했다.
뻣뻣한 천으로 만든 가운 형태였는데, 박음질이 허술해 군데군데 솔기가 뜯어졌다. 가슴 부분의 마크는 손바느질로 수를 놓은 건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초보자가 만들다 만 옷 같았다.
허접한 가운을 걸치고 표정만은 근엄하게 한 사파이어 님이 나를 보았다.
오서호의 환영술은 완벽하다. <카페 리을>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그런데도 드디어 이 카페의 배후 세력을 맞이했다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흠.”
손으로 턱을 짚은 채 잠시 나를 본 사파이어 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고생이 많아요. 아주 일을 열심히 한다지? 이렇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조직이 발전하는 법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휴, 괜히 쫄았네. 정체를 의심받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가요. 오늘 밤 직원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습니다. 재미있을 텐데 참가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모임……이요?”
“성혜의 축복이라고, 허허.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냥 우주의 별이 인류에게 내려 주신 지혜를 탐구하는 작은 모임입니다.”
“……!”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