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머리끝이 쭈뼛 곤두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름부터 대놓고 수상하다고 광고하는 식이었다. 저곳에 분명 정보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덥석 참석하겠다고 해도 괜찮을까? 너무 반기는 티가 나면 오히려 수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잠시 망설이는데 사파이어 님이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근무를 마치고 참석하면 피곤하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야식도 나오고 시급도 쳐 드립니다. 친구분과 함께도 괜찮으니 편하게 오세요.”
“…….”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네, 그럼 참석할게요.”
“호호,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 닷새째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밤. 나는 겨우 기유현과 만나 문제의 종교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당연히 최이찬도 함께 가자고 불렀지만, 그는 창고에서 확인할 일이 있다고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다.
으음. 그래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최이찬에게 다시 카톡을 보냈지만 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기유현과 함께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니은 씨, 유헌 씨, 이쪽이야.”
매니저가 우리에게 길을 안내했다.
드디어 이곳의 배후에 접근할 실마리를 찾았다.
퀘스트의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뿐.
이 성혜 어쩌고 모임이 정확히 얼마만 한 주기로 열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이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짐작이 갔다. 이번 기회에 꼭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니은 씨, 왼팔이랑 왼 다리가 같이 나가고 있어요.”
“…….”
옆에서 기유현이 속삭였다. 아차. 나도 모르게 너무 긴장한 모양이다.
카페 바로 옆의 빌딩에 <성혜기업>의 사무실이 있었다. 모임은 그 빌딩의 회의실에서 열렸다.
앞에는 단상과 빔 프로젝터가 있었고, 모두가 둘러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이 놓인 방이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평범하다. 전부 해서 서른 명 남짓 될까. 며칠 전 회식에서 만난 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가 마지막 입장이었다.
비어 있는 끄트머리 좌석에 착석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전등이 꺼지고 빔 프로젝터에 불이 들어왔다.
<성혜기업>의 홍보 영상이 흘러나왔다.
제작계 길드로 시작하여 사업을 확장해 어쩌고저쩌고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나,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감흥 없을 뿐이었다.
다시 회의실에 불이 켜지고, 박수와 함께 조금 전에 만난 사파이어 님이 단상에 등장했다.
“이번 한 주 동안 신도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별이 내리는 진리를 세계에 널리 퍼뜨리기 위한 여정이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별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은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별은 태초부터 우리 인간을 지켜보셨습니다. 무한나선의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 지금도 계시를 내려 주십니다.”
온화하고 고저 없는 말투. 다른 말로 하면 졸린 말투로 사파이어 님은 연설을 이어 나갔다.
집중해서 들어 보려 했지만, 알맹이 없는 말의 반복이었다. 어디서 들어 본 말을 적당히 짜깁기한 것 같았다.
“다이아 님이 여러분을 치하하셨습니다. 곧 다이아 님이 방문하실 겁니다.”
짝짝짝.
느린 박수와 함께 사람들이 환호했다.
다이아 님? 그게 누군데?
하지만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 사파이어보다 다이아가 센 느낌이니까 더 높은 사람이려니 짐작할 뿐이었다.
단상을 내려오기 전 마지막으로 사파이어 님이 말했다.
“호호, 여러분 시장하시지요.”
달칵.
회의실의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사람은…….
“엥……?”
“배달 왔습니다!”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이곳에 배달을 여러 번 와 봤는지, 배달원은 능숙하게 테이블 안쪽부터 음식을 세팅했다. 금방 각자의 앞에 랩으로 싸인 군만두와 탕수육이 놓였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다. 슬쩍 옆을 보니 기유현 역시 예상 못한 듯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미리 인벤토리에서 꺼내 두었던 실버 티스푼을 음식에 찔러 넣어 보았다. 아무런 반응은 없다.
젓가락 포장지에 적힌 이름을 보니 이 근처의 평범한 배달 전문 식당이었다. 배달 앱 순위가 높은 걸 보니 맛있는 곳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시켜 먹어 보자…….
주위의 분위기에 맞추어 눈치껏 젓가락을 깔짝거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인간들…… 허접한데?’
회사 소개 영상은 예산을 아낀 티가 났고, 사파이어 님의 연설은 적당히 짜깁기한 듯 내용이 없고 지루했다.
회의실 안에는 일반 직원들 외 플래티나라고 불리는 간부들도 있었다. 이들 역시 직접 만들었는지 바느질이 어설픈 가운을 걸치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렸다.
마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그늘에서 암약하는 두려운 사이비 종교의 집회라기에는, 이 모임은 너무 어설프다.
그보다는 그냥 친목회? 저녁 회식?
자기들끼리 부르는 플래티나니 사파이어니 하는 호칭도 그냥 우습게 들릴 뿐이다.
외부인인 기유현과 내가 있기 때문에 순수한 모임인 척할 뿐일까?
처음에는 신도를 회유하기 위해 너그럽게 굴다가 감금, 협박 등을 일삼는 것은 사이비에서 일반적인 일이다.
이들도 나중에 진짜 모습을 드러내려나.
‘으음…….’
조금만 더 있으면 알 수 있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를 마쳤을 때쯤 다시 사파이어 님이 단상에 올라갔다.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저희 <별의 지혜 교단>의 교주이신, 다이아 님이십니다.”
……교주라고?
회귀 전의 정보대로라면, 교주가 이른바 최종 흑막이다.
은은하게 중국집 음식 냄새가 남아 속이 부대끼는 이런 장소에 갑자기 최종 흑막이 등장? 잔챙이는 건너뛰고 바로 최종 흑막을 잡는 스피드 전개?
아무리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세상이라지만 너무 빠르지 않나?
나는 긴장을 삼키며 단상을 보았다.
회의실의 전등이 꺼지더니 단상 위에만 은은하게 불이 켜졌다. 곧 사파이어 님과 마찬가지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단상에 나타났다.
저 사람이 교주인가.
“……!”
잠시 놀란 표정으로 단상을 바라보던 기유현이 슥 몸을 일으켰다. 나는 입모양만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나가죠.’
기유현이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키고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곧 다이아 님이 연설을 시작했다. 방금 사파이어 님이 한 연설에서 단어만 몇 개 바꾼 수준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다이아 님에게 환호하는 틈을 타서 몸을 일으켰다.
“니은 씨, 어디 가?”
‘으, 으악!’
놀라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는데 다행히 입을 틀어막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매니저였다. 이 어둡고 소란한 곳에서 매니저는 놀랍도록 예리하게 내 움직임을 알아챘다. 무서운 사람이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려고요.”
“화장실은 나가서 왼쪽에 있어.”
나는 나가서 오른쪽 방향을 향했다.
먼저 나온 기유현이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직원이 회의실에 있는지 다른 인기척은 없었지만, 최대한 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다른 사람입니다.”
“네?”
“방금 들어온 교주라는 자, 제가 기억하는 교단의 교주와 달라요.”
“새 교주를 뽑은 건 아닐까요?”
“그렇다기에는…….”
기유현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나와 같은 감상을 내놓았다.
“모든 부분이 어설프군요.”
“그러게요.”
<별의 지혜 교단>에 대해서 아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 보자.
한때 <각성자 센터>를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어떤 무서운 것을 소환해 기유현의 각성에 관여했다.
이후 명맥이 끊기고 모습을 감췄지만, 회귀 전의 과거에서는 마신을 부활시키려 한 미친 종교 집단.
도무지 그런 무서운 종교라기에는…….
<별의 지혜 교단>을 사칭하는 취미 사이비 동아리 같았다.
모든 부분이 어설프기만 한 데다, 자기 자신에게 도취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기들이 <별의 지혜 교단>이라고 으스대며 어필하고 싶어 했다.
나는 에테르-위키의 교단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어 보았다.
[약 10년 전 명맥이 끊어졌으나 다시 부활.]
여기서 말하는 부활이 진짜 교단의 부활이 아니라 사칭을 의미하는 거였나.
기유현 역시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확실히 알겠어요. 저자들은 이름을 사칭한 가짜입니다. 제가 아는 교단과 너무 달라요.”
하지만 저들이 진짜 <별의 지혜 교단>이 아니라고 해도 의문은 아직 남아 있었다.
번화가 각지에 개업한 <슈퍼 버프 커피>에 이 본사 빌딩까지.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을 거다. 저 사이비 종교 지망생들이 이만한 사업을 컨트롤할 깜냥이 될까. 도무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진짜 배후는 따로 있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기유현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 흑막이라고 여겼던 자들이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걸 꾸민 진짜 실세는 어디 있을까?
의문이 더욱 깊어졌지만, 느긋하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들이 가짜란 걸 알게 된 이상 이곳에 더 이상 볼일은 없다. 커피의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어쨌건, 지금이 카페 안을 조사할 기회로군요.”
“……가죠.”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고 <슈퍼 버프 커피>를 향했다.
* * *
여기, 한 명의 가엾은 여성이 있다.
“흑흑흑, 내 신세 왜 이러냐는…….”
주노을은 그간의 비극을 회상했다.
먼저, 주노을의 <대한 헌터 협회> 협회장 연임이 결정되었다. 새해가 되면서 실시한 제비뽑기에서 또 걸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삼재인가? 어떻게 이렇게 운이 나쁘지? 사제 직군 헌터한테 제령이라도 해 달라고 할까?
당첨 제비를 손에 쥐고 한탄했으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두 번째 비극은 헌터 채널에서 차단된 일이다.
물론 내가 맞고 그놈들이 틀렸기 때문에 싸움을 건 데에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하지만 늘 습관적으로 접속하던 커뮤를 한 달이나 하지 못하게 되자 심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적극적으로 영입하려 한 S급 헌터 최이찬을 코앞에서 놓치기도 했다.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여지 한 톨도 없는 깔끔한 거절. 조건을 딜해 볼 틈조차 없었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알겠다는…….”
그렇게 아무런 미련도 없는 척 쿨하게 돌아섰지만 주노을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녀가 맞이한 가장 큰 비극은 이것이다.
‘당분간 단축영업합니다.
- 카페 리을’
바로 <카페 리을>의 단축 영업 소식.
절묘하게 주노을이 하루의 이런저런 업무를 마치는 시각에 문을 닫기 때문에 며칠째 <카페 리을>에 가지 못했다.
그 때문에 주노을은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커피를 마실 수도 슬라임을 구경할 수도 커뮤를 할 수도 없다니 남는 시간엔 대체 뭘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은 덕질을 안 하고 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하아, 심심하다는…….”
그녀의 신세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원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비극의 시작에는 그 짭카페 <슈퍼 버프 커피>가 있었다.
최이찬의 영입 실패나 <대한 헌터 협회> 협회장 연임 건은 전혀 관계없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심심했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무슨 비리가 있는 게 틀림없다는.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예리한 이 몸의 감이 그렇게 말한다는……!”
주노을은 <로열 길드> 길드장실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좋아, 그 짭카페에 가자. 가서 불법주차든 소방법 위반이든 뭐든 문제점을 찾아내서 전부 신고해 버리자.
음흉한 계획을 가슴에 품고 떠나려는 찰나였다.
벌컥, 문이 열리고 부하가 들어왔다.
“길드장님, 어디 가세요? <백은 길드> 길드장님한테서 잠깐 뵐 수 있냐고 연락이 왔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