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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130/192)

130화

창고 안에 정신을 잃은 사람이 여럿이고, 저 은빛 가지가 돋아났다는 것이다.

그때, 새로운 퀘스트 알림이 떴다.

[메인 퀘스트: 황금주의 비밀을 찾아서

큰일입니다!

커피의 비밀을 발견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황금주를 섭취해 버렸습니다.

이계의 나무, 거짓된 세계의 세피로트 가지가 움텄습니다.

천 개의 가지가 움트는 순간 악의에 물든 저주의 왕이 소환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사람들을 구해 소환을 막읍시다.

거짓된 세계의 세피로트 가지: 990/1000명

제한 시간: 24:00:00

실패 시: 악의에 물든 저주의 왕 소환

보상: 경험치(500exp), 명성(50), 인기(100)]

“……!”

잠깐, 설마, 그러면…….

커피 속에 황금주가 들었고, 그 황금주를 마시면 몸에서 나무가 자란단 건가?

째각째각. 퀘스트 창의 제한 시간이 곧장 줄어들기 시작했다.

1000개가 게임 오버인데 이미 990개가 움튼 상태다.

그리고 제한 시간은 고작 24시간.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일단 창고로 가 보죠.”

“네.”

나무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벌컥, 제조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니은 씨……?”

매니저였다.

“계속 안 와서 찾았는데, 왜 여기에 있지? 저 병은?”

아차, 들켰다.

우리를 보는 매니저의 얼굴에 경계심이 드러났다.

“호호호, 내 그럴 줄 알았지.”

매니저의 뒤로 사파이어 님과 플래티나 군단이 나타났다.

전부 해서 열 명쯤 되는 인원이 우리를 빙 둘러쌌고, 사파이어 님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어쩐지 수상하더라니. 프리미엄 성수를 노린 산업 스파이였군요. 호호호.”

프리미엄 성수? 아니, 방금 시스템 창에 ‘황금주’라는 이름이 떴는데? 시스템 창을 읽었으면 이름을 잘못 알 리가 없는데…….

아. 사파이어 님…… 각성자가 아니구나. 저 수상한 액체의 진짜 이름조차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저 허접한 목욕 가운 군단은 뭐야?”

최이찬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뭣, 허접……! 우리 위대한 <별의 지혜 교단>을 우습게 여기다니!”

나는 참지 못하고 태클을 걸었다.

“당신들 가짜죠?”

“뭐라고? 우리는 정진정명 <별의 지혜 교단>의 이름을 잇는 자들이다.”

“하아…….”

기유현이 미간에 손을 짚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한심한 놈들을 조사하기 위해 소모한 시간에 회한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모자 마트에서 산 거 아닌가?”

“뭐, 뭐뭐, 뭣! 마트 표 모자라도 우리는 위대한 별이 내리는 지혜를 탐구하는……!”

스스로도 옷이 허접하다는 자각은 있었구나.

“당신들에게 저 황금주를 넘긴 사람은 누구지? 자금은 어디서 났고?”

기유현이 낮게 가라앉은 어조로 물었다.

“황금주가 아니라 프리미엄 성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에이잇! 잡아라!”

사파이어 님이 삼류 악당처럼 외쳤다.

긴박한 순간을 연출하려는 듯 자칭 교단 사람들이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양 옆이 S급 헌터다. 그리고 이제 내 물리력도 결코 약하지 않다. 여차하면 크투가를 소환하면 되니까.

바로 그때였다.

“우리 교단을 우습게 본 죄…… 으아악!”

열린 창문 틈으로 은빛 나뭇가지가 뻗었다.

나뭇가지는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움직여 사파이어님과 플래티나 어쩌고 군단을 칭칭 휘감았다.

“으허어억!”

“내, 내려 줘!”

그들은 나뭇가지에 열매처럼 매달려 비명을 질렀고, 곧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게 되었다. 스르륵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몸에 나뭇가지가 돋으면서 반쯤 식물로 변했기 때문이다.

“윽…….”

남은 사람은 매니저 한 명뿐. 충격에 빠진 매니저가 몸을 비틀거렸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저게 퀘스트에서 말하는 ‘거짓된 세계의 세피로트 가지’라는 건가.

나 괴물 나무토막에 트라우마 있는데, 하필 또 식물 몬스터야?

저렇게 나뭇가지로 변한 사람이 990명이나…… 헉, 잠깐, 안 돼!

“리을아!”

다시 나뭇가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곧장 몸을 던졌다.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은 매니저를 붙잡고 옆으로 굴렀다.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는 바닥만 긁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매니저도 나뭇가지에 잡아먹힐 뻔했다.

“헉, 허억, 헉…….”

사정없이 몸을 던진 탓에 바닥에 부딪친 등이 아팠다. 앓는 소리를 내자 매니저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니은 씨, 흑, 나를 구하려고…….”

하지만 나는 오직 매니저를 구하기 위해서만 몸을 내던진 것은 아니었다.

띠링.

곧장 시스템 창이 퀘스트 정보를 업데이트했다.

[메인 퀘스트: 황금주의 비밀을 찾아서

큰일입니다!

커피의 비밀을 발견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황금주를 섭취해 버렸습니다.

이계의 나무, 거짓된 세계의 세피로트 가지가 움텄습니다.

천 개의 가지가 움트는 순간 악의에 물든 저주의 왕이 소환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사람들을 구해 소환을 막읍시다.

거짓된 세계의 세피로트 가지 : 999/1000명

제한 시간 : 23:38:40

실패 시 : 악의에 물든 저주의 왕 소환

보상 : 경험치(500exp), 명성(50), 인기(100)]

휴, 아슬아슬했다.

나뭇가지에 붙잡혀 나무가 된 사람이 정확히 아홉 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매니저를 구하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퀘스트를 시작도 못 하고 게임 오버될 뻔했다.

본격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러 움직이기 전에, 매니저에게 사정을 듣기로 했다.

내가 자신을 구해 주었기 때문인지 매니저는 순순히 아는 사실을 전부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별의 지혜 교단>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황금주의 출처나 이 카페의 자금 흐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냥 월급이 괜찮아서 취직했고, 아까의 성혜 어쩌고 하는 모임도 금일봉이 나오는 회식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저 나뭇가지에 대해 아는 건 없어요?”

최이찬이 창밖의 은빛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런 괴물 나뭇가지에 대해서는 들은 게 없는데……. 아! 마, 맞다! 간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뭐죠?”

“버프 커피를 많이 마시면 세계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요. 그래서 버프 커피를 많이 판매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

그렇다면 저 은빛 나뭇가지가 세계수라는 말인가?

나는 확신했다. 아니다. 저건 세계수가 아니다.

진짜 세계수는 우리 가게에 있고, 커피 열매가 열린다. 저런 기분 나쁜 괴물 나뭇가지가 세계수일 리가 없다.

거짓된 세계의 세피로트 가지라니, 이름부터 꺼림칙하잖아.

이야기는 끝났다. 기유현이 비딱하게 매니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에 대해 더 조사해야겠지만, 보다시피 당장 그럴 시간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는 건 전부 사실대로 말했어요!”

“일단 절차라서요. 그래서 당신을 잠들게 할 겁니다. 안전한 곳으로 워프시킬 테니 안심하시고요.”

“잠깐만요! 니은 씨, 당신의 정체는 뭐죠?”

나는 바로 매니저를 재우려는 기유현을 제지했다. 그리고 한 걸음 매니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 리을아, 위험해.”

“……괜찮아.”

마지막으로 매니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매니저 님, 기억해 두세요.”

“네?

“버프 커피는 제가 원조거든요! 이런 허접한 카페가 아니라!”

풀썩. 매니저가 잠들었다.

12장. 카페 주인이 너무 바빠

“……영혼이 유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창고에는 은빛 나뭇가지가 돋아난 채 잠든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각각의 사람이 하나의 나무가 된 것 같았다.

하반신은 거의 나뭇가지와 일체화된 상태라 분리가 불가능했다. 가지를 자르고 불도 붙여 보았지만 금방 다시 돋아났다.

고통은 느끼지 않는 듯 편안한 표정이지만, 아무리 몸을 흔들고 두드려도 깨어나지 않았다.

“영혼이 유실되었다고요?”

“네. 이 나뭇가지는 영혼을 먹고 자랍니다. 그 황금주를 일정 이상 섭취한 자에게 나뭇가지가 이끌리는 것 같군요.”

“지금은 얌전하네요?”

하나라도 더 가지가 늘어나면 곧장 퀘스트가 실패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나뭇가지는 교단 일당을 삼킨 것을 끝으로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미 <슈퍼 버프 커피>는 많이 팔렸다. 어딘가에서 상황을 모르고 커피를 마신 사람이 새로운 나뭇가지가 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런 의문을 표했지만 기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충분히 포식을 했으니까요. 한동안은…… 하루 정도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요.”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24시간인 이유가 이것인가 보다. 저 괴물 나뭇가지가 다시 움직이기까지의 시간.

“그러면 먼저, 이 나무를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깨어나겠군요.”

“퀘스트 창에는 어떻게 나와 있나요?”

“아. 그거 말인데요.”

시스템 창을 다시 훑어보는 그때, 불쑥 최이찬이 입을 열었다.

“잠깐. 영혼이 유실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지? 그 말을 믿을 수 있나?”

기유현에 대한 불신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기유현이 곧장 대답했다.

“누구랑 달리 저는 적재적소에 스킬을 쓸 줄 알아서요.”

“비밀이 많은 사람은 뒤가 구린 법이고.”

“흐음…….”

기유현의 시선이 잠시 나를 향했다.

“진실을 밝혀야 할 사람에게만 제대로 밝히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런 건 말장난이지.”

아이고.

기유현에게 각을 세우는 최이찬이나, 거기 일일이 맞받아치는 기유현이나.

나는 살짝 한숨을 쉬고 최이찬을 보았다.

그의 감정까지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이 말싸움할 때가 아니라는 걸 떠올려 주면 좋겠다.

“이찬아, 싸우려면 그냥 가.”

“리을아.”

“999명이나 괴물 나뭇가지한테 당했으면 다른 곳도 지금쯤 난리일 거야. 네 힘이 필요하겠지.”

“……미안해. 안 그럴게.”

최이찬이 축 어깨를 늘어뜨렸다. 정말 미안하기는 한 모양이다.

에고고. 저러는 걸 보면 화도 못 내겠다.

“우선 퀘스트부터 해치우자. 피해자 대부분이 각성자일 텐데, 만약 이런 때 균열이라도 터지면 큰일이야.”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음에 약간 여유를 갖고 있었다.

상황은 물론 심각하다. 하나 이제껏 경험한 패턴대로라면, 시스템이 준 보상이 다음 퀘스트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으니까. 이번에도 분명 힌트가 있을 거다.

우선 방금 얻은 레시피와 정보를 확인하자.

확인은 했는데……. 어?

[레시피: ???

재료: ???

만드는 법: ???]

레시피는 온통 물음표였고.

[■■■■■■■■■■■■

■■■■■■■■■■……]

에테르-위키의 새 항목은 처음부터 끝까지 까만 네모뿐이었다.

이렇게 온통 까맣게 칠하면 잉크 아깝지 않아?

퀘스트 창에는 제한 시간 내에 사람들을 구하라고 되어 있는데, 이래서는 힌트를 얻을 길이 요원하다.

그때, 다시 시스템 알림이 떴다.

[에테르-위키의 무료 체험 기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뭐? 이거 유료였나? 그런 이야기 지금 처음 듣는데요?

깜짝 놀라 나는 다시 에테르-위키에 접속했다.

[자격을 확인 중입니다. ……완료.]

[적격자: 권리을 확인되었습니다.]

[에테르-위키]

[적격자님이 가꾸어 나가는 차원의 백과사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보 수집률: 0.06%]

[최근 갱신 항목: ■■■■■…….]

습관적으로 ‘건너뛰기’를 선택하려던 것을 참고 주르르 뜨는 메시지를 읽어 보았지만, 어디에도 유료라는 단어는 없었다.

무슨 무료 1개월로 낚아서 은근슬쩍 자동결제를 유도하는 서비스도 아니고!

내 의심이 퍽 억울했는지, 긴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졌다.

[돈을 받는 건 아니에요. (´▾ `;;) ]

[에테르-위키의 열람 항목 갱신에는 인과율이 소모됩니다.]

[그러나 현재 부여된 인과율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너무 힌트를 제공하고 싶지만 ╥﹏╥

적격자님이 스스로 관련 정보를 접해 인과율을 얻어야 힌트를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짭세계수에 대해 정보를 얻으라는 거네.

처음에는 힌트도 뭣도 없이 어떻게 999개의 나뭇가지를 해결하라는 건지 당황했지만, 나는 곧 침착해졌다.

그동안 허투루 카페 주인을 한 게 아니다. 괴상한 식물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를 한 명 알지 않았던가.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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