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얼핏 들어서는 별것 아닌 능력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10초는 아주 잠깐. 10초 뒤의 미래를 안다고 하더라도 당첨될 복권을 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카드 게임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이 카드냐 저 카드냐 고민될 때 10초 뒤의 미래를 알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니. 모든 겜블러가 부러워할 법하지 않나.
카드를 배분할 때 운이 작용하는 포커 같은 게임이라면 그래도 질 가능성이 있겠지만, 카드를 계속 뒤집는 것이 전부인 짝 맞히기에서는 최강이다.
‘자기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골랐구만…….’
그 방법을 써 볼 수밖에 없나.
“이제 제 차례네요?”
나는 진달래의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어머, 아직 포기하지 않았군요. 그럼 당신이 섞으실래요?”
“음, 아니요. 전 카드 잘 못 섞어서. 그냥 언니가 섞어 주세요.”
‘10초 뒤의 미래를 읽어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라. 그렇다면 카드를 누가 섞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요, 그럼.”
차라라락.
진달래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섞은 뒤 배열했다.
“리을아, 파이팅!”
일찌감치 패배한 최이찬이 소심하게 응원을 건넸고, 기유현은 어떻게든 영양제는 회수할 테니 안심하라며 귓속말했다.
그리고 그들을 등 뒤에 둔 나는.
……그냥 환하게 웃었다.
카드 배열을 마친 진달래가 고개를 들다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죠? 이 어떤 진상이 나타나도 헤쳐 나갈 수 있을 듯한, 자영업자의 귀감인 미소는?!”
“아하하…….”
입꼬리가 저려 올 정도로 반복해서 웃으니 이윽고 알림이 떴다.
[사용자의 운이 최고치에 달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레벨 업한 스마일 스킬의 레벨2 효과, ‘웃으면 복이 와요.’의 힘이었다.
황금 뽑기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는 데 쓸 줄 알았는데, 이런 일에 처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전 게임에서 이긴 진달래가 선(先)을 맡았다. 여유롭게 색과 숫자가 같은 카드 두 장을 집어낸다.
다음은 나. 운 max의 효과는 굉장했다. 아무렇게나 두 장을 뽑았는데 정답이었다.
“우와아!”
등 뒤에서 최이찬이 환호했다.
“어머, 운이 좋은데요.”
“제가 운이 좀 좋긴 하죠, 아하하…….”
이후는 처음의 반복이었다. 100%의 확률로 진달래와 내가 번갈아 가며 카드를 집었다. 가끔 바닥에 깔린 카드를 새로 섞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카드 뒤집기를 반복하다가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조커 두 장을 포함한 트럼프 카드는 총 54장, 짝이 27개다. 서로 100% 정답만 맞힌다고 가정하면 무조건 선이, 즉 진달래가 이긴다.
그럼 처음부터 못 이기는 게임이란 건데, 이거 사기 게임 아닌가요?
겜블러라더니 제법 치사하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게임은 착착 진행되었고, 테이블 위에 카드가 단 여섯 장 남았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진달래의 턴. 여유로운 손짓으로 카드를 뒤집는다.
“……어머.”
카드는 조커와 스페이드 A. 틀렸다.
왜 마지막에 저런 실수를 했지?
그런 의문도 잠시. 남은 카드를 전부 맞히고 내가 승리했다.
“이겼다……!”
“제가 졌군요.”
카드를 내려놓는 순간, 다시 알림창이 떴다.
[업적: ‘불패의 겜블러를 꺾은 자’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업적: 불패의 겜블러를 꺾은 자
불패의 겜블러에게 생애 첫 패배를 선사했습니다.
패배의 쓴맛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보상: 트럼프 카드 세트]
[아이템: 트럼프 카드 세트(★☆☆☆☆)
레크리에이션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잘 섞입니다.]
생애 첫 패배?
뜬금없이 보상으로 트럼프 카드를 주는 건 그렇다 쳐도, 생애 첫 패배라니 어쩐지 어마어마한 일을 한 기분이다.
“약속은 약속. 물건을 돌려드리겠어요.”
정작 진달래는 생에 처음 맞이한다는 패배에도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미련 없는 태도로 인벤토리를 열더니 병에 든 영양제를 꺼내 내게 건넸다. 상태 창에도 분명하게 ‘만드라고라던전생강 전용 영양제’라고 적혀 있다.
“됐다. 이것만 있으면 돼요!”
나는 얼른 영양제를 받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때,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기유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까 한 말은 뭡니까. 황금주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시다고.”
맞아. 내기를 시작하기 전, 진달래가 그런 말을 했었지.
진달래는 웃음기를 걷어 낸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마도서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금단의 지식과 강력한 마법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했다.
또 갑자기 세계관의 스케일이 커진다. 나는 세계관 설명이 길면 헷갈려하는 사람이니까, 새로운 개념은 한 번에 하나씩만 나오면 좋겠다.
“정확한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어요. 그저 마도서라고 불릴 뿐.”
기유현은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살짝 한숨을 쉬었고, 최이찬은 나랑 똑같이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마도서를 손에만 넣으면 엄청난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죠. 그 때문에 암흑세계에서 마도서를 손에 넣기 위해 많은 사람이 싸웠지만, 실제로 얻은 사람은 없어요.”
스륵.
진달래가 오른쪽 눈을 가린 안대를 풀었다.
“……!”
칼에 베인 흉터가 눈꺼풀 위를 가로질렀다.
“나는 마도서를 얻으려다 오른쪽 눈을 잃었어요.”
진달래의 왼쪽 눈이 나를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보지 말아요. 눈을 잃고 대신 귀중한 스킬을 얻었으니까.”
다시 안대를 한 뒤 그녀가 설명을 이었다.
“황금주는 그 마도서에서 유래한 레시피예요. 현 교단의 교주는 우연히 마도서의 파편을 읽고 황금주의 레시피를 알아냈죠.”
교주란 즉 그 시시껄렁한 집회에 나타났던 다이아 님이다.
그는 원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사기로 푼돈벌이나 하던 사기꾼이라고 했다. 황금주의 레시피를 알아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감당 못 할 힘에 손을 댄 자예요. 그자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조차 정확히 모를 거예요.”
그러나 진달래는 그 황금주를 이용해 <슈퍼 버프 커피>를 만든 배후는 모른다고 말했다.
원조 버프 커피의 진짜 원수는 아직 미지수인가.
나는 꼭 우리 카페의 원수를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 마도서란 건 지금 어디 있는데요?”
최이찬의 질문에 진달래가 생각에 잠겼다.
“글쎄요……. 음, 한 6년쯤 됐나? 그때 이후로 소문조차 들리지 않네요. 어쩌면 누군가가 이미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죠.”
설명의 끝,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그 의문을 그대로 입에 올렸다.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어요?”
“후후, 느와르 영화를 보면, 꼭 이런 가게의 주인이 뭐든지 알고 있잖아요? 말하자면 저는 그런 역할이죠.”
농담 섞인 말과 함께 그녀가 품에서 새 명함을 꺼냈다.
“전당포 하나만 운영해서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투잡으로 정보상도 겸하고 있답니다.”
“…….”
“다음에 궁금한 정보가 있으면 찾아오세요. 합당한 물건을 맡기시면 정보를 드리죠.”
명함에는 ‘정보상 진달래’라고 적혀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영양제는 손에 넣었다. 이제 가게로 돌아갈 차례였다.
그 전에, 나는 양옆의 두 사람에게 말했다.
“유현 씨, 그리고 이찬이도. 잠시만 문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
“…….”
기유현과 최이찬이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서로 굉장히 마음에 안 들며 그걸 감출 생각도 없는 표정이었다. 둘이서만 놔두면 엄청나게 어색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이참에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좋고.
나는 거듭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다시 전당포 안으로 들어갔다.
“저, 진달래 씨.”
“왜 그러시죠, 손님? 놓고 간 물건이라도?”
“그건 아니고……. 아까 게임을 할 때, 왜 틀린 카드를 뽑았어요? 정답을 알았잖아요.”
분명히 봤다.
그녀는 처음에 맞는 카드를 집으려 했다. 그러나 잠시 멈칫하더니 옆의 카드를 집어 들었다. 처음 카드를 집었다면 게임에 이길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손님은 내 능력에 대해 아시는 모양이군요.”
나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하지만 내 스킬은 반드시 게임에서 이기는 능력이 아니랍니다. 10초 뒤의 미래를 읽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죠.”
“…….”
“패배가 최선의 선택. 즉, 손님을 돕는 것이 제 최선의 미래였다는 뜻이랍니다.”
진달래가 왼쪽 눈을 접으며 웃었다.
* * *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심야의 골목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전당포 주인 진달래는 생각했다.
‘휴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진달래의 숨겨진 또 하나의 스킬은 ‘운명의 겜블러’. 내기에서 승리하면 상대의 운명을 엿볼 수 있는 스킬로, 그녀의 장사 밑천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게임으로 손님과 내기를 해 운명을 엿보았다.
그렇게 엿본 운명을 통해 정보를 얻어 정보상 행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방금 나타난 세 명의 일행은 놀라웠다.
양옆의 남성들이 지닌 운명도 강력해, 진달래의 힘으로 전부 읽을 수는 없었다. 내기에서 승리했는데도 읽어 낸 것은 작은 파편뿐.
그런데 셋 중 가장 약해 보이는 여자 쪽은…… 두려웠다.
뭐지? 대체 어떤 인과를 짊어졌길래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한 명의 인간에게서 이런 존재감이 느껴지는 거지?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전, 승리를 위해 정답 카드를 뒤집으려는 순간,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랫동안 암흑세계를 전전한 진달래로서도 처음 맛보는 두려움이었다.
결국 호기심보다 강한 공포가 손을 잡아챘다. 차마 알맞은 카드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암흑세계를 떠돌면서도 그녀를 이날 이때까지 살아있게 한 ‘최선의 판단’은 착실하게 기능했다.
명줄을 길게 부지하기 위해서는 감당 못 할 일에 고개를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저 손님의 운명을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아니, 읽어선 안 된다.
그렇게 판단한 그녀는 패배를 택했다.
불패의 기록 따위에 연연할 계제가 아니었다. 혹시 모를 화를 피하기 위해 평소라면 말하지 않을 정보도 공짜로 헌납했다.
진달래는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훔쳤다. 아직까지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했다.
‘앞으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손님은 이미 돌아갔다. 답이 없는 탄식만 빈 공간에 흘러나왔다.
* * *
“왜오오옹!”
“뀨우우! 뀨우!”
영양제를 손에 넣은 우리는 <카페 리을>을 향했다. 이공간에 심어 둔 생강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캬갸갸옭(왜 이제 오는 거냐)!”
“뀨! 뀨우우! 뀨우!”
시간이 늦어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동물들이 기운차게 나를 반겼다.
“왜웅, 왜우웅(시내에 큰일이 난 것 같구나).”
‘어떻게 알았어?’
“왜오옭(내가 뉴스도 안 보는 고양이인 줄 아느냐)!”
- 시내 각지에서 나무로 변한 사람 출몰…… 던전관리청 대응 중…… 일부 대피명령…….
문틈으로 안쪽 방 텔레비전에서 나는 뉴스 소리가 들렸다. 미음이와 라임이는 저 뉴스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그래. 저 일 때문에 퀘스트를 해결해야 해.’
“뀨!”
“왜옹!”
기유현과 최이찬이 기운차게 왜옹거리는 미음이를 바라보았다. 꼭 말을 하는 것처럼 우니까 눈길이 간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동안 지적할 타이밍을 놓쳐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그런데 언제까지 텔레파시로 대화할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유현이랑 최이찬인데 이제 그냥 말해도 되는 거 아닌가?
고양이가 말 좀 한다고 놀랄 사람들도 아니고. 감이 좋은 사람이니 이미 미음이가 말을 알아듣는단 걸 눈치챈 듯도 한데.
“왜우웅(그건, 갑자기 말하면 부끄러워서)…….”
‘아, 그래.’
그랬구나…….
아차. 의외로 수줍음을 타는 이 고양이와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었다.
생강을 살리기 위해 곧장 이공간 안으로 들어가려다, 나는 아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