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 *
따르르르르릉!
나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침대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불은 따뜻하고 베개는 푹신하다. 아직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어차피 카페를 여는 것도 아니니까 조금 더 아침잠을 만끽해야겠다.
던전에서 귀환한 뒤 나는 일주일을 내리 쉬었다. 사건 수습 때문에 정신도 없었고, 피곤하기도 했고, 아무튼 좀 쉬고 싶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던전을 탈출했다고 바로 상황이 정리된 건 아니었다. <슈퍼 버프 커피> 사건의 여파가 워낙 컸기 때문에 뒷수습에도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아니,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졸리다. 일단 더 자고 나서 생각하자.
“으하암…….”
따끈따끈한 이불을 덮으니 잠이 솔솔 왔다. 무거운 눈꺼풀을 닫고 스르륵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데…….
“우냐아아! 인간, 밥을 내놔라!”
“뀨우우웃!”
미음이와 라임이가 침대 위로 올라와 풀쩍풀쩍 뛰었다. 양쪽에서 서라운드로 들리는 울음소리는 수면 환경에 매우 좋지 않았다.
아, 방문 잠그고 잘걸.
“하암……. 내가 밥그릇에 밥 담아 놨잖아. 그거 먹어.”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어젯밤에 미리 이 동물들 밥을 챙겨 놨었는데…….
“캬갸갸옭!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는 거냐!”
벌써 다 해치웠구나.
“뀨우! 뀨우!”
“으악, 라임아, 내 배 위에서 뛰지 마. 무거워!”
윽, 이 난리에 잠이 다 깨 버렸다.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 쓰고 귀를 막았지만 한번 깨어난 정신은 또렷하기만 하다.
나는 마지못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휴일인데 결국 아침 일찍 눈을 뜨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스, 잘 잤어?”
“……응.”
1층으로 내려가니 아스가 벌써 일어나서 말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쉬는 날이니까 늦잠을 자도 될 텐데…… 참 부지런한 애다.
잠깐. 아스가 있는데 왜 밥 달라고 나를 깨운 거지? 이 동물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그냥 내 늦잠을 방해하고 싶었던 거 아냐?
나는 동물들의 밥그릇에 밥을 담으면서 억울한 마음을 담아 투덜거렸다.
“카페 주인이 너무 바쁜 세상 이상하지 않아?”
“모르는 모양인데 원래 자영업은 바쁘다, 왜옹!”
“그 얘기가 아니잖니…….”
눈이 떠진 김에 나도 지금 아침을 먹을까.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냉장고 안을 확인하려는 찰나였다.
똑똑똑.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대체 누구지? 가게 앞에 커다랗게 ‘오늘은 쉽니다.’라고 붙여 놨으니 손님은 아닐 텐데.
이건 여담인데, 괴물 나뭇가지 사건의 발단이 짭 커피였던 여파로 최근 헌터계가 양분되었다고 한다.
순혈파와 잡종파, 진실된 버프 커피파와 거짓된 버프 커피파, 신실한 자와 배신자 등……. 이 양 세력을 가리키는 표현은 제각각이지만 골자는 똑같다. 바로 <카페 리을>만 이용한 사람과 <슈퍼 버프 커피>도 이용한 사람.
말이 세력이지 거의 전자가 후자를 핍박하는 구도였는데, 전자의 대표가 주노을 씨라나 어쩐다나.
아무튼, 이 양 세력이 이견 없이 합의한 하나의 명제가 있다. 바로 짭 커피 사건으로 내가 고생이 많았으니 휴가가 끝날 때까지 귀찮게 하지 않을 것. 그 덕분에 카페를 쉬는 동안 영업 관련 문의가 일절 없어 아주 편안했다.
‘그런 귀중한 휴일의 마지막 날, 늦잠을 방해받았지만…….’
똑똑똑.
아차. 너무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나는 문을 살짝만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오늘은 쉬는데…… 무슨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헌터TV에서 나왔습니다. 사장님께 꼭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실례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아. 취재였나.
“지난 사건에 대해서는 기자회견 때 전부 답변 드렸어요. 그 외에 인터뷰는 거절하고 있어요.”
사건의 여파가 컸던 탓에 불행히도, ‘카페 주인의 역할은 여기까지랍니다. 여러분, 뒷수습 잘 부탁드려요!’ 하고 떠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최소한의 경위 조사에는 협조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건 브리핑 기자회견까지 꼽사리 끼게 되었다. 사실은 은근슬쩍 빠지려고 했는데…….
“리을 씨가 사건 해결의 일등 공신이신데 어떻게 리을 씨를 빼놓고 할 수 있겠어요! 또 그렇게 양보만 하시고!”
김지나가 이렇게 말하며 붙잡는 통에 거절하지 못했다. 약간 오해를 산 것 같다. 미리 질문지를 전달받고 그 안에서 문답이 오가는 것뿐인데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래서 힘숨찐이 유행인 건가? 나도 힘숨찐, 아니, 힘없찐할걸, 흑…….
이 과정을 모두 겪고 나니 나는 진이 빠졌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준비된 사회성이 전부 소진되어 영업을 종료합니다.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나 취재 요청은 전부 거절하고 일주일의 휴가에 들어갔다. 오늘은 그 휴가의 마지막 날. 슬슬 이런 요청이 오지 않을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소식이 좀 늦은 분들인가.
“죄송합니다. 살펴 가세요.”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으려 하는데, 기자가 턱, 문고리를 붙잡았다.
“아닙니다, 사장님. 저희가 여쭤보려는 건 지난 세피로트 가지 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럼요?”
무심코 그렇게 되물었다가 나는 흠칫 놀랐다. 기자의 눈이 특종을 위한 열망과 호기심을 머금고 활활 불탔다.
“랭킹 1위 헌터 무원이 이곳에서 자주 목격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는데요. 사장님은 무원을 어떻게 알게 되셨죠?”
“네?”
“특히 사장님과 아주 친밀한! 사이라는 긴급 제보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13장. 이웃의 랭킹 1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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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킹, 길드 추노 금지. 현피는 던전에서
*system :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잡담] 마법사로 직업 바꾸는 방법 아는사람?? (52)
추천 : 112 / 비추 : 0
작성자 : 힝행홍
탱커 별로인거같음; 맨날 방패들고 쳐맞아야됨 ㅜㅜ
마법사 되는법 구함
ㅇㅇ : 안됨
ddd*** : ???먼소리심
골렘사줘 : 이게 겜인줄 아나;
red*** : 클래스는 영원하다 모름? ㅋㅋㅋㅋㅋㅋㅋㅋ 못바꿔 재각성 아니면 새로 태어나야됨
└ㅇㅇ : 회빙환 ㄱㄱ?
└힝행홍 : ㅜㅜㅜㅜ
라임사랑단 : 갑자기 뭔 마법사타령임? ㅋㅋㅋㅋㅋㅋㅋㅋ
└힝행홍 : 마법사 쩔더라고ㅜㅜ 방패랑 무기 안들어도 되고 ㅈㄴ쎔 한방에 다발라버림 이럴줄 알았으면 나도 마법사했지
설탕할짝 : 엥??? 대체 뭔소리임;;; 마법사 별로 안좋음;
└힝행홍 : 진짜 쩔더라니까????? 주문도 안외우고 그냥 보스를 딱 노려보는데 그냥 게임끝임 방패들고 뺑이안쳐도됨 ㅈㄴ귀족클라스던데
└설탕할짝 : 내가 마법사직군이라서 하는 얘긴데 안그렇거든?;ㅋㅋㅋ 마법쓰려면 지팡이 필수임ㅡㅡ 지팡이가 ㄹㅇ비싼데 마법진 그리다 힘 잘못 주면 부서짐 나무젓가락으로 만들었나;; 주문도 ㅈㄴ외워야되고 맨날 포션달고삼 안좋아ㅋㅋㅋ
└힝행홍 : 지팡이랑 주문없이 마법갈기는거 다 봤는데???? 무슨 빛으로 된 그물이 파바박 하더니 한방킬이었는데?? 개멋졌음ㅋㅋㅋㅋ 나 속이는거 아님????
└설탕할짝 : 님 왜 자꾸 우겨여,, 마법사 효율 나빠서 티어 안좋은거 다 아는데
마켓13호 : 힝행홍 어디서 이상한 헌터물 웹소 읽은거 아니냐 ㅋㅋㅋㅋㅋ S급 마법사가 다발라버림 이런거
└뿌에엥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힝행홍 : ? 머래 변절자가 하는 소리는 안들리거든여; 헌터채널 변절자 블락기능좀
└마켓13호 : ㅠㅠㅠㅠ카페ㄹ 사장님 죄송합니다,, 잠시 눈이 멀었습니다,,목숨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충성충성ㅠㅠ7
└뿌에엥 : _( _._.)_ ㅋㅍㄹ 사장님 죄송합니다,, ㅠㅠ7
└피자치즈 : 죄송합니다,, ㅠㅠ7
└라임사랑단 : 엥 얘 피즈치자아님??? 닉넴 왜이렇게됨
└피자치즈 : 캐삭빵에서 져서 닉바꿈 ㅜ
└라임사랑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홍젤리할짝 : 근데 카페리을 재오픈 언제하는지 아시는분? ㅠㅠ 계속 쉰다고 되어있던데
└ㅇㅇ : 사건끝난지 며칠이나 됐다고ㅋㅋ 좀 참으셈
└분홍젤리할짝 : 아니 만약 더러운 헌터계에 환멸을 느끼고 카페 안한다고 하시면 어떡함,,ㅜㅜ
└라임사랑단 : 솔직히 환멸날만하긴 하지ㅋㅋㅋㅋㅋㅋㅋ 짭커피 생겼을때 좀난리였음?ㅋㅋㅋ
└마켓13호 : 사장님 죄송합니다 ㅜㅜ
└뿌에엥 : 사장님 죄송합니다ㅜㅜ222
└피자치즈 : 사장님 죄송합니다ㅜㅜ333
플라이트 : 잠만 행홍아 님 그 괴물 나뭇가지 던전 갔댔지? 그 마법사 거기서 본거임?
└힝행홍 : 헐 갑자기 왜 내 신상 캐려고 하심? 맞는데 왜여ㅡㅡ
└플라이트 : 그거 마법사가 아니라 무원 아닌가?
└힝행홍 : 무원이 여기서 왜나옴????
└플라이트 : 니가 앞에 그렇게 썼네 ㅋㅋㅋ 지팡이랑 주문 없이 빛의 그물로 몬스터 한방에 잡았다면서. 그거 무원 고유 스킬 같은데?
힝행홍 : 에이 말도 안됨ㅋㅋㅋㅋㅋ 에바작작좀ㅋㅋㅋ 그 사람 몇번 봤는데 무슨 무원이야 무원이 거기 왜있어ㅋㅋㅋ
└red*** : 근데 설명만 봐서는 무원이 아닐리가 없는데,, 한국에서 무원 말고 그런 스킬 쓰는 헌터 없음
└ㅎㅎ : ㅁㅈㅁㅈ 원래 조용히 있다가 큰일터지면 한번씩 나타났으니까,, 저번 경주균열도 그랬었고,, 이번에도 몰래 왔다간건가
└mil*** : 힘숨찐정신 쩌네ㅋㅋㅋㅋ
ㅇㅇ : 힝행홍이 무원 봤다고???? 와대박 어디서본거임??
└힝행홍 : 카페리을
└ rtr*** : ?????리얼임??
└힝행홍 : 근데 진짜 무원은 아닌거같은데;; 개에바임ㅡㅡ 암튼 내가본사람은 ㅋㅍㄹ단골임 사장님이랑 잘아는거같던데
ㅁㅁ : 혹시 이 사람이야? [링크]
└힝행홍 : 헐 아무리 궁금해도 그렇지 왜 일반 헌터들 사진을 막 올리심ㅡㅡ?
└ㅁㅁ : 그냥 던전관리청 홈페이지에서 링크 따온건데; 이번일 표창장 수여식임
└힝행홍 : 사진 오른쪽구석에 까만머리남자
└라임사랑단 : 뭐?????????? 저사람이라고?????
└ㅇㅇ : 어 나도 ㅋㅍㄹ에서 본적있는듯? 사장님이랑 친해보이던데 자주왔음ㅇㅇ
red*** : 그럼 무원은 청라 길드장 하면서 가끔 큰 균열 터지면 혼자 해치우고 ㅋㅍㄹ에도 매일 얼굴도장 찍은건가,, 랭킹1위 찍으면 몸 세개 되나
└설탕할짝 : ㅋㅍㄹ 사장님이랑은 무슨사이징,,
헌터TV최세라 : 안녕하세요 힝행홍 헌터님. 헌터TV 최세라 기자입니다. 최근 세피로트 가지 던전에서 만나신 헌터에 대해 여쭐 수 있을까요? 소정의 정보료도 드리니 꼭 연락주세요! [email protected]
[관리자] : 권리권자의 요청으로 게시글 비공개 처리되었습니다.
요청 사유 : 허위 사실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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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기자들을 겨우 돌려보낸 뒤,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기유현의 정체가 기자들에게 새어 나간 것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그가 평소에 어쩌고 다니는지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은근히 티를 내고 다닌 데다가 괴물 나뭇가지 던전에서는 스킬도 팍팍 썼으니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눈치챌 수 있을 테다.
‘최이찬도 기유현의 정체를 아는 눈치였지…….’
왜 계속 정체를 숨기는지도 이젠 잘 모르겠고.
마지막에 기자들 앞에서 내가 히어로라고 밝히고 끝나는 히어로 영화 인기 좋잖아. 요즘은 그렇게 자기 PR을 하는 캐릭터가 잘 나가는 시대라고. 그러니 그냥 자기가 무원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나?
내가 기자회견에서 총장님 옆에 서서 ‘던전관리청 파이팅! 카페 리을 파이팅!’을 외치며 사진을 찍히는 수난을 겪는 동안 자기만 슬쩍 빠지고 말야.
“원한이 서린 것 같구나, 왜오옹!”
“뀨우!”
“……기분 탓이야.”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왜 무원의 정체를 우리 카페에 와서 찾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