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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146/192)

146화





정보가 샜다면 지존이나 그때 던전에서 만난 헌터들 쪽일 것 같았는데 왜 여기서 그를 찾지? 게다가 아주 친밀한 사이라는 건 또 뭐고? 그야 친하긴 한데…… 무슨 일이지?


“으음…….”


당사자 없이 혼자 생각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당장 기유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잠시 신호음이 들리더니 전화가 끊기고, 문자가 왔다.




[사용자가 현재 던전 안에 있어 전화가 연결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지난 사건이 끝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던전이람. 지긋지긋한 던전!


던전이란 글자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역시 던전은 건강에 나쁘다. 아직 심신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아침은 대충 먹고 침대에서 뒹굴뒹굴해야겠다.


냉장고 안을 보며 제일 덜 귀찮을 아침 메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데, 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기자들이었다.


“사장님! 랭킹 1위 무원이 이곳 단골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권리을 헌터님! 무원의 정체는 어떻게 알게 되셨죠?! 그와의 관계는?”


“무원과 아주 친밀한 사이시라면서요, 사장님! 말씀 좀 해 주세요!”


“……취재 사절합니다.”


탕!


문을 걸어 닫고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말 바람 잘 날이 없네…….’


마음껏 빈둥거리는 것도 정말 쉽지 않구나.


뭐, 됐다. 그동안 밀린 잠도 실컷 자고, 보고 싶던 드라마도 정주행했고, 게임도 엔딩을 봤다. 며칠 동안 실컷 놀았으니 카페를 열 때도 되었다.


“슬슬 ‘그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이기도 하고…….”


“왜옼?! 왜 그렇게 흑막처럼 말하는 거냐?”


“후후후후…….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했어.”


“왜오오옼?! 서, 설마 나를 버리려는 거냐!”


옆에서 미음이가 이상한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모르는구나, 미음아. 멋진 흑막 캐릭터는 동물을 버리지 않는단다. 아니, 그보다 흑막이건 엑스트라 악역이건 동물을 버리면 안 되지.


아무튼.


내일 카페를 열고,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좀 알아봐야겠다.




* * *




다음 날.


나는 가게 문에서 ‘오늘은 쉽니다.’ 포스터를 떼어 냈다. 그리고 영업 중 푯말을 세우자 미리 와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장님, 오늘부터 영업 재개하시는 거 맞죠?”


“저기, 커피 주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다렸다는…….”


“제발! 비록 헌터계가 더럽다고 해도 떠나지 마시고 오래오래 영업해 주세요!”


짭 카페도 망한 데다가 며칠 만이니까 손님이 몰릴 거라곤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나는 황급히 그들을 진정시켰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 할일이 있어서요.”


그리고 나는 문에 새로운 포스터를 붙였다.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카페 리을 생강 페스티벌’




“크흠, 오늘은 한정 메뉴만 판매합니다. 그럼, 당첨 번호표 가지신 분들 이쪽으로 줄 서 주세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을 맞춰 섰다. 번호표가 없는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전부 돌려보낸 뒤, 나는 선언했다.


“그럼 영업 시작할게요.”


와아아! 환호성이 뒤따랐다.


커다란 사건도 있었겠다, 며칠 쉬다가 오랜만에 카페를 여는 거니까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카페 리을 생강 페스티벌’. 미리 추첨으로 번호표를 배부했고, 페스티벌 기간 동안은 한정 세트 메뉴만 판매하기로 했다.


불만이 있으면 돌아가라고 하지, 뭐. 모처럼 카페를 여는 거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다.


한정 세트 메뉴의 이름은 ‘언리미티드 생강 세트’다. 이름에서 짐작 가능하겠지만, 모든 메뉴에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이 들어간다.


“후후후…….”


평소에 쓰던 메뉴판을 치우고 한정 세트 메뉴판을 꺼내면서 나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 이벤트를 기획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쨌거나 짭 카페 사건은 해결되었고, 도시는 평화를 되찾았다. 여러 가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을 키워 사람들을 구한 일 자체는 뿌듯했다. 버프 커피는 내가 원조이자 유일하다는 것도 인정받았고!


그런 뿌듯함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한 채 돌아와서 이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나를 맞이한 것은…….


밭을 가득 채운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이었다.


이것들 잠깐 사이에 멋대로 번식해서 수를 왕창 늘렸다.


‘슈슉… 슉, 슈슉… 슉…….’


늘 살벌하던 이빨당근의 울음소리가 기죽은 것처럼 들린 건 기분 탓일까.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이공간이 온통 생강밭이 되게 생겼다. 하루빨리 저 수많은 생강을 해치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 먹을 수는 없으니 파는 수밖에.


겨울이니까 진저에일보다는 따뜻한 음료가 좋겠지.


그렇게 에테르-위키와 시스템을 탈탈 털어서 생강이 들어가는 레시피를 여럿 얻었다.


각각 데운 우유에 생강청을 넣고 우유 거품을 올린 진저밀크, 생강가루를 넣은 진저브레드 맨 쿠키, 생강과 짭 레몬을 넣은 생강레몬차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언리미티드 생강 세트’의 효과는 바로 이렇다.




[아이템: 진저밀크(★★★★☆)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1:00:00)


효과: 정신계 상태 이상을 무효화하며, 10분간 모든 정신 공격을 방어합니다.]




[아이템: 진저브레드 맨 쿠키(★★★☆☆)


노릇노릇 바삭바삭.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을 넣어 향긋합니다.


사람 모양이지만 움직이진 않으니 안심하세요.]




[아이템: 생강레몬차(★★★★☆)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1:00:00)


효과: 감기 예방에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메뉴를 전부 먹으면 이런 콤보 보너스가 뜬다.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콤보 보너스가 발생합니다.


콤보: 언리미티드 생강 파티(진저밀크, 진저브레드 맨 쿠키, 생강레몬차)


효과: 눈이 번쩍 뜨이는 맛! 잠을 깨워 줍니다.]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맛의 밸런스가 뛰어난 메뉴들이었다.


무엇보다 생강도 왕창 들어가고!


이 메뉴들을 준비하기 위해 아스와 함께 늦게까지 산더미 같은 생강을 해치웠다. 껍질을 벗기고, 썰고, 끓이고, 거르고, 다시 끓이고……. 일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도 생강은 많이 있다. 생강 음료를 팔고, 또 팔아야 한다.


오늘 지인들 중 몇몇도 추첨 경쟁을 뚫고 방문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오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추첨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들과는 다른 날 다시 자리를 갖기로 했다.


제일 먼저 와 준 손님은 주노을이었다.


사실 주노을에게는 카페 영업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놀러 와도 좋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과는 별개로, 손님으로서 카페를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순혈파의 수장으로서 그릇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그런 말을 남긴 주노을은 당당히 추첨 경쟁을 뚫고 무려 1번으로 도착했다.


“하아아, 너무 맛있다는……. 행복하다는…….”


라임이를 구경하며 언리미티드 생강 세트를 먹는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늘 맛있게 먹어 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최이찬.


“크으, 하…… 아, 아뜨뜨뜨!”


“이찬아, 그거 뜨거운……데. 이미 늦었구나.”


호쾌하게 생강레몬차를 원샷하려던 최이찬이 깜짝 놀라 잔을 내려놓고 호호 불었다. 그리고 다시 조심조심 맛을 본다.


“음, 입 안이 저릿저릿하지만 맛있어!”


던전에 빨려 들어간 그날.


최이찬이 손에 넣은 단검이 무척 희귀한 아티팩트라 관계자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정확히 무슨 아티팩트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작 손에 넣은 본인도…….


“어?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잘하니까 생기던데?”


……라고 밖에 말을 안 했다.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가 대외비라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독! S급 헌터 최이찬 “아티팩트? 어쩌다 보니까 그냥 생겨”] 같은 기사가 나왔을 테니까.


이왕 최이찬을 만난 김에 나는 계속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이찬아, 그날 있잖아.”


“엉?”


“네가 무슨 검은색 상자를 부쉈잖아. 그거 어떻게 된 거야?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 상자가 위험하단 걸 안 거야?”


“어? 그게, 오컬트 만화를 보면 꼭 그런 상자가 저주받은 물건이잖아. 귀신 들린 물건 이런 거.”


“그래, 귀신 들린 물건…… 뭐?”


전혀 설명이 안 되었다.


“거기서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 그래서 저거구나, 했지.”


“…….”


냄새로 수상한 물건을 찾다니 네가 무슨 마약 탐지견이냐. 초월적인 감으로 알아차렸다, 뭐 이런 뜻인가.


어쨌건 그때 최이찬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더 위험했겠지.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최이찬의 접시에 진저브레드 맨 쿠키를 몇 개 더 올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온 손님은 김지나다. 그녀는 여전히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래도 모처럼이니 잠깐 틈을 내어 들렀다고 했다.


“하아, 맛있어요……! 부드러운 우유 맛과 어우러지는 생강의 얼얼한 맛! 거기다 이 효과, 눈이 번쩍 뜨이는군요. 이거라면 잠이 깨겠어요!”


그렇게 말한 김지나는 정신이 또렷해졌다며 가방에서 두꺼운 보고서를 꺼냈다. 말이 보고서지 어지간한 책보다 묵직한 서류의 덩어리였다. 보고서를 읽으면서 음료를 마시는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김지나도 참 가만 보면 대단한 사람이다. 어떻게 매번 저런 무거운 서류를 들고 다니면서 읽는 거지? 속으로 존경심이 들었다.


보고서 읽기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카운터로 돌아가려는데, 김지나가 다시 말을 걸었다.


“맞다, 리을 씨, 우리 집 노답이 리을 씨한테 엄청나게 민폐를 끼쳤다고 들었어요.”


“우리 집 노답이요……?”


“그, 왜, 있죠. 목소리만 크고 시끄러운 우리 엄마 아들…….”


“아, 지존 헌터요?”


“네,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이번 사건에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지존은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니 사과할 필요 없다고 말하다가,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 던전 거짓된 세계의 신전에서 지존은 확실히 기유현의 정체를 눈치챘다. 기자들이 찾아온 이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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