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저, 지나 씨, 지존 헌터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그 인간이야 오늘도 똑같이……. 아, 그러고 보니 사건이 끝난 이후로 좀 이상해졌어요.”
“이상해졌다고요?”
지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는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더라고요. 뭐라더라……. ‘세상은 무서운 곳이었다, 어디에 힘숨찐이 있을지 모르니 얌전히 살아야겠다.’랬던가. 뭔가를 막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어디서 또 이상한 판타지 소설이라도 읽은 모양이에요. 뭐, 별일 아닐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음. 기유현을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 지존 쪽에서 정보를 흘린 건 아니겠지. 그럼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샌 걸까……. 무척 신경 쓰이지만, 일단 카페 영업을 하고 나서 생각할까.
어쨌건 ‘카페 리을 생강 페스티벌’은 무척 성공적이었다.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이 괴물 나뭇가지를 해치운 것으로 아주 유명해졌기 때문일까. 메뉴를 하나로 통일했는데도 잘 팔렸다.
“이게 그 괴물 나뭇가지를 해치운 전설의 생강!”
“크으, 화끈화끈한 맛이야. 이렇게 맛있는데 건강에도 좋대.”
만족도 막대가 끝까지 차올랐다. 생강의 알싸하고 매운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했는데, 다들 좋아해서 다행이다.
이렇게 한참 동안 많은 언리미티드 생강 세트를 팔아 치우자 띠링, 하고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업적: ‘생강 축제는 끝나지 않아’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업적: 생강 축제는 끝나지 않아
엄청나게 많은 생강 메뉴를 판매했습니다.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이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보상: 멋진 사진 액자]
[업적 효과로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이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앞으로 생강의 생장 속도가 느려집니다.]
[아이템: 멋진 사진 액자(대형) (★☆☆☆☆)
종류: 장식품
특별한 효과는 없지만 멋집니다.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 아이템입니다.
사진을 넣어서 벽에 걸면 아주 눈에 띕니다.]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의 생장 속도가 느려진다니 정말 다행이다. 이제 이렇게 끔찍하게 많은 생강을 처리하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까.
보상으로 받은 사진 액자도 마침 딱 필요한 물건이었다. 디자인도 예쁘고 크기도 적당해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액자를 잘 챙겨 둔 뒤 아스에게 말했다.
“아스, 좀 쉬어. 나머지는 내가 정리할게. 여기 간식도 먹고.”
“……알았어.”
테이크아웃 손님에게 생강 세트를 포장해 주고 나자 약간 짬이 났다. 나는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슬쩍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하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기자들은 무리하게 취재를 강요하거나 카페 영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순혈파 헌터들이 카페 영업을 방해했다간 가만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곧 기다리던 사람이 기자들 무리를 제치고 이쪽을 향했다.
단 한 명, 무원에 대해서는 언급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취재를 허락받은 기자, 김태운이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내가 환하게 웃으며 김태운 기자를 맞이하자 기자 무리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저 기자만 들여보내 주는 거지?”
“포기해. 몰라? 저 기자, <헌터스코프>의 버닝좌잖아.”
“버닝좌면 다야? 유명 기자만 들어갈 수 있는 거냐고!”
“아니, 순혈파 기자라고.”
수군수군……. 웅성거림이 커진다. 이제 기자들은 선망과 질시가 섞인 눈빛으로 김태운 기자를 바라보았다.
잘들 논다…….
순혈파 어쩌고가 아니라 용건이 있었던 것뿐이다. 레몬에이드로 정화된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기도 하고.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김태운 기자는 언리미티드 생강 세트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진지한 표정으로 김태운이 가게 안과 음료 사진을 찍었다. 구석에 늘어져 있던 동물들이 카메라를 의식하며 포즈를 바꿨다. 슬쩍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구경했는데, 커다랗게 하품을 하는 미음이의 모습이 찍혔다. 비밀로 해야겠다.
다음으로는 시식이었다. 김태운이 진저밀크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커피는 안 들어가 있군요?”
“네, 맞아요.”
한 번 더 진저밀크의 맛을 본 그가 빠르게 감상을 쏟아 냈다.
“풍부한 우유 거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첫맛, 하지만 한 모금 더 마시면 고소한 우유에 절묘하게 숨겨진 알싸한 생강 향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부드러움과 강렬함, 말하자면 반전 매력! 과감한 맛의 액시던트를 시도하셨군요!”
“아니요, 그건 그냥 생강을 해치우려면 많이 넣어야 해서…….”
“흠흠,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써서 풍부한 맛을 냈다……. 알겠습니다.”
내 대답을 전혀 다른 뜻으로 메모한 뒤 그는 생강레몬차와 쿠키를 맛보았다.
“오오, 입 안에서 생강이 춤추는 느낌! 아, 이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바로 기사를 써야겠습니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편다. 그리고 그는 무서운 기세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슬쩍 들여다본 기사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푸드] 겨울 한파 이기는 핫(HOT)메뉴, <카페 리을> 언리미티드 생강 페스티벌… 신 메뉴 3종 속속 리뷰
|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의 매력에 빠져 보세요.
(사진)
세계 유일의 ‘진짜’ 버프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 리을>이 겨울 시즌을 맞이하여 한정 세트 메뉴를 판매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카페 리을>의 한정 메뉴는 모두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 아래 숨겨진 진한 생강 맛이 일품인 진저밀크는 겨울철 시그니처 음료로 손색이 없다.
(중략)
<카페 리을>은 지난해 던전 게이트 앞에 개업한 카페로, 다양한 버프 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한편 <카페 리을>은 지난 ‘거짓된 세계의 세피로트 가지’ 사건에서 피해자 구제에 앞장선 권리을 헌터가 운영하는 곳이다.
카페 리을
서울시 중구 던전게이트 3가 16로
헌터SCOPE 김태운 기자 [email protected]
“저, 마지막 부분은 빼면 안 되나요……?”
“마지막이 제일 핵심입니다.”
단호하게 말한 김태운이 기사를 송고한 뒤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리고 여기, 말씀하신 물건 가져왔습니다.”
“아, 감사해요.”
나는 당장 서류 봉투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큰 사이즈로 인화한 사진이 두 장 들어 있었다.
“왜오옹(그게 뭐냐)!”
“뀨우, 뀨우!”
종이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우리 집 동물들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하지만 이건 찢으면 안 된다. 나는 미음이의 앞발에 닿지 않게 높이 들고 사진을 확인했다.
이건 마왕 숭배교 <황혼>의 일동들과 아스의 사진이었다. 다들 환한 표정이었고 손에는 상패를 들고 있었다.
음, 잘 나왔네.
이번 사건의 여파로, 마왕 숭배교 <황혼>은 사이비니 오컬트 과몰입 종교니 하는 오해를 벗고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크흑, 이런 날이 오다니 다 마왕님 덕분입니다…….”
수염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번 사건에서의 기여는 물론이고, 마왕 숭배교 <황혼>이 그동안 묵묵히 봉사 활동을 해 온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황혼>에 입교하고 싶다는 신청도 쇄도했다.
하지만 교주는 새로운 신도를 받아 규모를 늘리는 대신,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세를 늘리는 것보단 소규모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활동에 열중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았는데, 이건 그날의 사진이다. 마침 김태운 기자가 그날 취재차 표창장 수여식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크게 인화해 주었다.
사진은 아까 보상으로 받은 액자에 넣으면 딱 맞는 크기였다. 사진 액자를 걸 만한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아스가 당황해서 말을 걸었다.
“그…… 그런 거 뭐 하러 걸려고 그래!”
“왜, 좋잖아. 좋은 일 하고 상 받은 건데. 아스 너 사진도 잘 나왔고.”
“으…….”
아스는 부끄러워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액자를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걸었다. 남은 한 장의 사진은 다음에 교단 쪽에 전달하기 위해 따로 챙겨 두었다.
“사진 뽑아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잘 나왔어요.”
“아닙니다. 저는…….”
“네?”
“사장님 덕분에 새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 정도는 은혜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김태운은 여전히 진실된 저널리스트의 눈을 하고 있었다.
“하하…….”
굉장히 부담스럽지만, 어쨌거나 요즘 여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니 그건 응원한다.
이렇게 김태운이 돌아가고, 나머지 손님들의 주문도 끝나 슬슬 영업을 마무리할 시각이 되었다.
나는 대폭 줄어든 생강을 보고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예정된 ‘카페 리을 생강 페스티벌’ 기간은 일주일. 이 페이스라면 일주일 동안 생강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후후…….”
“왜 그렇게 흑막 같은 표정으로 웃고 계시죠?”
“으앗,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대체 언제 온 거지. 어느 사이엔가 카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오서호가 몸을 일으켰다. 배우 겸 환영술사이자, 기유현의 (자칭)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