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오늘 영업 끝났어요. 이제 문 닫을 거니까 돌아가세요.”
“영화 촬영 마치자마자 온 건데, 너무하시군요.”
“설마 내가 그런 변장을 하고 <슈퍼 버프 커피>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영화를 찍으러 갔단 말이에요?”
원망을 담아 쳐다봤지만 오서호는 눈 하나도 깜짝 안 했다.
“하하하, 정말 잘 어울렸는데 왜 그러세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 그가 가방 안에서 영화 포스터를 여러 장 꺼내 내밀었다.
“이 오서호가 오랜만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느와르 액션 영화 ‘비열한 헌터2’가 조만간에 개봉하거든요. 나중에 프리미엄 시사회 표를 보내 드릴 테니 꼭 보러 오세요, 하하하.”
포스터에는 오서호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커다랗게 찍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거 필요 없다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포스터를 받았다. 이유야 당연히 이것밖에 없다.
“왜옹, 왜오옹(프리미엄 시사회)…….”
우리 집 고양이가 잔뜩 기대하는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영화관에 못 들어가는 거 아닌가? 혹 내가 오서호의 시사회 초대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미음이는 못 갈 텐데……. 이 사실을 어떻게 미음이한테 상처받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나는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오서호 헌터, 혹시 고양이 털 알레르기 있으세요?”
“아니요. 저는 알레르기 그런 거 없는 체질입니다.”
“왜오오옹…….”
미음이가 기뻐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쪽으로 다가올 생각은 하지 않고 멀리서 슬쩍 오서호를 훔쳐볼 뿐이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고양이다.
“혹시 고양이를 싫어한다거나, 고양이 공포증이 있다거나……. 그런 거는요?”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구석으로 가 묵직한 우리 집 고양이를 번쩍 들었다. 미음이는 잠시 당황해서 버둥거렸지만 곧 얌전히 내게 실려 왔다.
“한번 안아 보실래요?”
“우, 우냐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오서호의 시선이 미음이를 향하는 수 초간, 아스와 라임이까지도 행동을 멈추고 오서호와 미음이 사이를 바라보았다.
“…….”
“…….”
이윽고 오서호의 손끝이 미음이의 뒤통수에 살짝 닿았다. 미음이는 기절하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좋죠. 이 고양이 이름이 뭔가요?”
“미음이에요. 권미음.”
오서호가 번쩍 미음이를 껴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그래. 미음아, 안녕. 털도 매끈매끈하고 귀엽게 생겼네요.”
“……우냐아아.”
오서호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인 듯, 한참 동안 미음이를 껴안고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던 미음이는 천천히 긴장을 풀고 그의 품 안에서 골골골 소리를 냈다.
거 참 이런 일도 해 줘야 하고, 동물 키우기란 정말 힘들구나.
너 이거 다 내 덕분인 거 알지? 나한테 고마워해야 된다, 응?
그런데 실컷 미음이를 쓰다듬어 주고 바닥에 내려놓은 오서호는 이렇게 덧붙였다.
“역시 고양이도 귀엽군요. 저는 굳이 나누자면 고양이파보다는 강아지파입니다만.”
“왜오옭?!”
아, 그 말은 안 하면 좋았을 텐데…….
잠깐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미음이가 구석에 틀어박히고, 아스와 라임이가 미음이를 위로해 주러 다가갔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말 한 마디로 평화로운 우리 카페에 파란을 불러일으키다니, 오서호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 집 동물의 속도 모른 채 생긋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 <슈퍼 버프 커피> 일당들 말입니다만.”
아차. 오서호가 오늘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이야기해 주기로 했는데 미음이 때문에 옆길로 새 버렸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뭐, 예상대로라고 할까요.”
오서호는 내가 커피 대신 내어 놓은 찬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며칠 전, 그 <슈퍼 버프 커피> 건물 자리에서 시신이 한 구 발견되었습니다.”
“……!”
“시신의 상태가 안 좋아서 신원 파악에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교단에서 통칭 다이아 님이라고 불리던 자입니다.”
다이아 님의 정체는 사기 전과만 여러 건인 사기꾼이었다. 그러나 누가 다이아 님을 어떻게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요?”
나는 나뭇가지에 붙잡혔던 사파이어 님 일당을 떠올리고 물었다.
“모두 무사합니다. 그대로 체포되었고요. 짐작 가능하시겠지만…… 세피로트 가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렇군요…….”
하긴 그들은 그냥 보기에도 자투리 엑스트라 악역 같은 일당들이었으니까, 예상대로의 결말이었다.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사망한 교주와 <씨앤엘>의 이세인 대표가 함께 있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이 있어요.”
“역시 그쪽이 사건을 일으킨 걸까요.”
“당국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쪽은 지금 좀…….”
나는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네, 조사를 받을 만한 상황은 아니죠. 일단 압수 수색은 진행 중입니다.”
“…….”
잠시 나는 최세드릭 남매를 떠올렸다. 그날 던전에서는 무사히 나왔지만 그들 남매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괜찮을까.
“여기까지가 제가 알아낸 정보입니다. 궁금하실 것 같아서.”
“고마워요.”
설명을 마친 오서호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나 봅니다.”
얼굴에 티가 난 건가. 나는 짧은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저어, 유현 씨…… 그러니까 무원의 정체가 기자들한테 흘러 들어간 것 같아서요.”
“아, 그거 말이군요.”
오서호가 손끝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두들겼다. 짚이는 곳이 있는 반응이었다.
“이걸 한번 보시죠.”
불쑥. 오서호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받아 들고 보니 화면에는 오서호의 화보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미남 배우로 유명한 만큼 잘생기긴 했는데……. 으음. 붉은 꽃잎이 흩뿌려진 하얀 천 위에서 그윽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사진은 정말이지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이런 사진을 보여 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나는 좀 더 담백하게 생긴 쪽이 취향이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이걸 왜요……?”
“아차, 실수. 잠금을 푸는 걸 깜빡했군요. 잠시만요.”
“자기 사진을 잠금 화면으로 해 놓는군요…….”
“자신을 사랑하는, 뭐 그런 캠페인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나는 오서호와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다시 받아 든 핸드폰에는 헌터 채널의 어느 글이 떠 있었다. 힝행홍 씨가 쓴 것이었는데, 으음…….
본의 아니게, 악의 없이, 무원의 정체와 그가 우리 카페 단골이라는 사실까지 그대로 술술 불었다.
힝행홍 씨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되어 버렸다는 점이 뭐랄까…… 놀라웠다. 뒷골이 당기는 느낌이기도 하고.
현재까지 나한테야 그저 기자들이 웅성거릴 뿐 별다른 피해는 없긴 한데,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오늘은 카페 영업 때문에 정신없어서 연락할 생각을 못 했네. 나는 불쑥 물었다.
“유현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세요?”
“미안해요. 그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렵군요.”
“네?”
혹시 기유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 사람은 제 전화 안 받아서요. 어쩌다 받아도 곧장 끊어 버려서.”
“아…….”
“…….”
나는 오서호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를 그렇게 동정하는 눈으로 보지 마시죠.”
“그…… 힘내세요. 파이팅.”
“…….”
오서호는 분위기를 전환하려 가벼운 말투로 덧붙였다.
“뭐, 무원에 대해서라면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기자들 따위야, <청라 길드> 쪽이든 <던전관리청> 쪽이든 막으려면 손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아직 그대로 놔두었다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겼든가, 혹은 무슨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오서호는 컵에 남은 찬물을 전부 마신 뒤 몸을 일으켰다. 왜 그냥 물인데도 일일이 음료 CF 같은 포즈로 마시는지 모르겠다. 그의 그런 행동을 반길 존재는 여기서 미음이뿐인데, 미음이는 구석에서 강아지 울음소리를 연습 중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인사를 하고 떠날 채비를 하는 오서호를 다시 불렀다.
“저, 오서호 헌터.”
“왜 그러시죠?”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오서호 헌터는 유현 씨 친구…….”
“베프입니다. 베스트 프렌드! 중요하니까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게 중요한 건가? 아무튼 나는 그의 말대로 고쳐 말했다.
“……네, 베프라고 하셨죠.”
기유현의 말에 따르면, 회귀 전 오서호는 기유현과 함께 대던전 《어비스》를 향했고 사망했다. 그 때문에 기유현이 오서호를 눈에 밟혀 한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회귀를 거쳐 그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된 지금. 오서호는 왜 기유현을 가깝게 여기는 걸까. 그냥 반죽이 좋은 베스트 프렌드 지망생이라서?
그렇다기에는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내가 하려는 질문을 짐작한 듯 그가 입술을 끌어당겨 웃었다. 음료 CF에서 볼 수 있던 상큼한 미소와는 달리 어색하고 서투른 웃음이었다.
나는 그 웃음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서글픔을 발견한다.
이윽고 나는 혀끝에서 계속 맴돌던 물음을 뱉어 냈다.
“오서호 헌터, 유현 씨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원하신다면.”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나는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카페 리을> 생강 페스티벌 셋째 날.
순조롭게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을 해치워 나가던 와중.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영업을 마무리했다. 모처럼 큰아버지, 권지운을 만나 가족 외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진짜 같이 안 가도 괜찮아?”
“괜찮다니깐. 대체 몇 번째 물어보는 거야.”
“그치만 아스도 가족이니까 같이 가야지. 권지운도 너 같이 오라고 했어.”
“됐어. 늦겠다. 얼른 갈 준비나 해.”
어제부터 몇 번이나 반복된 대화였다. 나는 가족 외식에 아스도 데려가고 싶어 했고, 아스는 거절했다.
대신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아스는 가게에서 쌍둥이들과 놀기로 했다. 그 사이 쌍둥이 중 남자 쪽, 주신우와 꽤 친해진 모양이다. 아스 본인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하긴 큰아버지, 권지운과 함께 밥을 먹는 것보다는 또래인 쌍둥이와 노는 쪽이 즐겁겠지. 내가 너무 눈치 없이 회식 권하는 고용주 같은 말을 했나. 나는 아스에게 권유하기를 포기하고, 앞치마를 벗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언니,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안녕하세요!”
그때 마침 쌍둥이가 도착했다.
쌍둥이는 지난 괴물 나뭇가지 사건에서 긴급한 균열 발생에 대비하여 대기하는 역할을 맡았다. 주신우는 말이 좋아 대기지 그냥 집 지키기 아니냐며 투덜거렸고, 주신희는 내 활약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어쨌건 쌍둥이의 여전히 활기찬 모습을 보니까 좋다. 이대로만 크면 좋겠다.
나는 아스와 쌍둥이 몫으로 준비해 둔 간식을 테이블 위에 차리며 말했다.
“오늘 우리 아스하고 놀아 줘서 고마워.”
“내가 얘네들하고 놀아 주는 거거든!”
옆에서 볼멘소리가 들렸다.
“아스,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친구 아니거든!”
“친구, 아니야……?”
쿠쿵. 주신우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차. 예상 밖의 반응에 아스가 당황해서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리고 황급히 수습했다.
“그, 그거! 그러니까 친구가 아니라 베프. 베스트 프렌드!”
아스 너, 오서호한테 하나 배웠구나.
슬슬 출발하면 딱 맞는 시각이겠다. 외투를 걸치고 목도리를 찾는데 주신희가 내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