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있잖아요, 언니.”
“응, 왜?”
“길드장님도 언니가 보고 싶으실 거예요!”
“어, 뭐……?”
퍽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주신희는 필사적인 태도였다.
“이, 일부러 안 온 거 아니에요! 오늘도 같이 오려고 했는데…….”
아. 괴물 나뭇가지 사건 이후로 기유현이 카페에 들르지 않아서 신경 쓴 거구나. 옆에서 주신우도 다급하게 한마디를 보탰다.
“그러니까…… 사정! 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쌍둥이는 내가 혹 기유현을 나쁘게 생각할까 봐 걱정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나쁘게 생각할 리가 없지.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다른 일인데…….’
아차. 이제 정말로 출발해야 늦지 않겠다. 나는 꼬리를 물고 뻗어 나가는 생각을 접어 넣고 문을 향했다. 내 뒤통수에 대고 동물들이 투덜거렸다.
“왜오오옹, 왜옹(하아, 애 보기 담당이라니 피곤한 일이구나).”
“뀨우우!”
글쎄, 아무리 봐도 미음이 네가 애를 보는 게 아니라 아스가 너를 돌보는 거 아닐까?
나는 잠시 우리 집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어제까지 강아지 울음소리를 연습했는데 다행히 포기한 것 같았다. 말하는 고양이까지는 괜찮지만, 강아지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는 좀…… 그렇잖아.
“왜오옭(얼른 가기나 해라)!”
아스와 쌍둥이에게 편하게 있으라고 거듭 말한 뒤 나는 약속 장소를 향했다.
약속 장소는 번화가의 유명 고깃집이었다. 내가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큰아버지와 권지운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잘 지내셨어요? 오빠도 오랜만이네.”
괴물 나뭇가지 사건 이후 두 사람은 바빴다.
권지운은 힐러인 만큼 괴물 나뭇가지 사건의 피해자 치료에도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가 바빴던 진짜 이유는, <씨앤엘 코퍼레이션>의 문제가 <백은 길드>에도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또한 큰아버지는 병원에 하루 입원에서 치료를 받으셔야 했다. 그동안 <씨앤엘 코퍼레이션>의 어느 곳에 갇혀 계셨다더니, 수척해지신 데다 발목에 상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치료 과정에서도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원래 입원 다음 날 정오에 퇴원을 할 예정이었는데 큰아버지는 이른 아침에 몰래 병원을 탈출하려 하셨다. 권지운은 이를 예상하고 병실 앞을 감시했고, 나는 그냥 병문안을 갔다가 상황을 구경했다.
이미 환자복까지 갈아입은 큰아버지를 권지운이 아슬아슬하게 붙잡았다. 두 사람의 진지함만큼은 무슨 첩보 영화가 따로 없었다.
“아버지,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허, 참! 이미 은퇴한 자연인을 이렇게 도시에 매어 놓는 게 어디 있느냐. 산이 나를 부른다!”
“유튜브 조회 수 안 나와서 산 생활 접으시고 돌아온 거 다 압니다.”
“허이고, 우리 조카가 다 불었구나.”
“아하하…….”
큰아버지가 배신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나를 흘겼다.
“이제 각성자도 아닌 이 애비를 붙잡아서 어떻게 하려는 거냐.”
“서류 업무는 각성자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떼잉, 그러면 안 되지. 길드 기밀 서류를 외부인에게 유출하면 쓰나.”
“아버지 이름 길드에서 아직 안 뺐습니다. 같이 가시죠, 권석민 명예 부길드장님.”
“허, 참 어찌된 일인지 나랑 달리 야무지게 자랐구나, 아들아.”
그렇게 큰아버지가 권지운에게 끌려간 것이 며칠 전.
오늘 겨우 셋이서 시간을 맞춰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것이다.
불판 위에서 치이익 소리를 내며 한우가 익어 갔다. 모처럼 비싼 메뉴니까 많이 먹어야겠다. 나는 적당히 익은 고기를 한 점 집어먹고는 권지운에게 물었다.
“일은 잘돼 가고 있어?”
“뭐, 어느 정도는 정리된 참이야. 인력 수급 문제가 해결된 건 좋지만, 조직의 규모가 갑자기 커지니 잡다한 일이 많네.”
“이찬이는 어때?”
“그쪽도 괜찮아. 최이찬을 따르는 헌터들도 많고.”
“흐음…….”
우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강한 능력과 선한 성격 덕분에 최이찬은 꽤 인기가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선하고 동경할 만한 히어로를 원하는 법이다. 헌터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시기라면 더욱 그렇겠지. 최이찬이라면 거기 딱 부합하는 인간상이긴 하지만…….
막 S급이 되었을 때처럼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잘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생각해 보면 여기 있는 큰아버지나 권지운부터, 카페 단골 중에도 유명한 사람은 있다. 그래도 오랜 친구가 유명해지고 잘 풀렸다는 건 뿌듯한 느낌이다. 뭐,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얼른 먹거라. 고기 타겠다.”
“아, 네.”
큰아버지가 내 접시 위에 고기를 올려 주셨다. 우리는 잠시 띄엄띄엄 대화를 하며 식사에 집중했다. 적당히 배가 불러와 젓가락질이 느려질 때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놀랐어요. 큰아버지가 그 이온이란 사람…… 아니, 존재에게 붙잡혀 갔었다니.”
“핫핫핫! 뭐 다 잘 풀렸으니 된 거 아니냐. 그렇지, 조카야.”
큰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떻게 족쇄를 풀고 감옥을 탈출했는지 자신의 무용담을 몇 번이나 즐겁게 이야기했다. 딱 한 번만 더 들으면 열 번을 채우겠다.
“……잘 풀린 게 아니잖습니까.”
권지운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싸늘한 말에 큰아버지가 입을 딱 다물었다.
“모든 것이 운 좋게 맞물리지 않았으면 거기서 끝일 수도 있었어요. 내가 하나뿐인 아버지를 또 잃기를 바라신 겁니까. 제발 혼자서 움직이지 말고 미리 말이라도 했으면…….”
권지운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떨리는 숨에 뒷말이 흐트러졌다.
하나뿐인 아들의 이런 반응에는 진짜로 당황한 듯, 큰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농담에는 능하지만 자식을 달래는 일에는 소질이 없던 그는 한참 쩔쩔 매다가 이렇게 말했다.
“거, 그게, 미안하게 됐다. 그래, 기분이다. 고기 더 시켜라. 아주 그냥 한우로다가!”
“이거 어차피 제가 내는 거 아닙니까.”
“아참, 그렇지. 그럼 육회도 추가해라.”
그리고 큰아버지는 진짜로 직원을 불러 고기와 육회를 추가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직원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권지운은 다시 이마에 손을 짚었다. 시름 깊은 한숨이 뒤따랐다.
“……허, 많이 드세요. 네, 아주 많이 드시죠.”
“아들아, 어째 시선이 좀 따갑다.”
“지금 안 따갑게 됐어요?”
“허이고, 늙은 애비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고기 좀 먹는다고 이렇게 핍박하는구나.”
“하아…….”
“오빠, 고생이 많구나…….”
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권지운을 바라보았다.
이런 대화를 하면서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래서 결국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나를 살리기 위해 수명을 바쳤다는 사실을.
“…….”
이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믿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무턱대고 나를 비난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처음 알았다.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는 걸.
잠시 내가 말이 없자 큰아버지는 육회 접시를 내 쪽으로 밀었다.
“조카야, 뭐 하느냐. 이거 아들이 산다는데 많이 먹어라.”
“……네.”
“쯔쯔쯔, 애가 일을 많이 해서 얼굴이 반쪽이 됐어.”
“아하하, 반쪽……은 아닌데요.”
나는 웃었다. 웃으니까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셋이서 배가 터질 정도로 고기를 먹고 돌아가려는 그때였다.
아까부터 우리 쪽을 슬쩍 보던 식당의 다른 손님이 가까이 다가왔다.
“저기…….”
역시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내 입으로 말하기는 꽤 민망하지만, 나는 다시 유명해졌다.
버프 커피를 만드는 유일한 헌터인 데다가 지난 괴물 나뭇가지 사건에서는 나름 활약도 했다. 거기다 최근에 번지기 시작한 랭킹 1위 무원이 우리 카페 단골이라는 소문까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권지운이야 말해 뭐 하겠는가. 이쪽이야말로 원조 유명인인데 생긴 것부터 튀게 생겼다.
그 때문에 권지운은 개별 룸으로 분리된 조용한 식당을 예약했지만 사람의 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쪽을 알아본 걸까? 나는 괜스레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말을 걸어 온 손님을 보았고.
권지운은 이런 일이 꽤 능숙한 듯, 친절한 웃음을 띠고 고개를 돌렸다. 아마 ‘가족끼리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중이니 양해 바란다.’ 같은 말을 하려 했겠지.
그런데 그 손님이 말을 건 쪽은 나나 권지운이 아니라 큰아버지 쪽이었다.
“저기, 유튜버 산따라바람따라Seokmin 님 아니세요……?”
“엥?”
“누구요……?”
우리는 깜짝 놀라 큰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큰아버지 역시 멍하니 있다가 한 박자 늦게 자신의 유튜브 닉네임을 기억해 내고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 그렇소만?”
설마 구독자 11명, 최고 조회 수 53회의 유튜브를 시청한 사람을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러면 이 사람이 그 11명 중 한 명……?
그런데 이어진 이 손님의 말은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었다.
“곧 실버 버튼 받으실 텐데 미리 축하합니다!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허, 허어……. 실버 버튼이라니?!”
심상치 않은 우리의 반응을 보고 이 큰아버지의 팬(?) 쪽이 더 놀랐다.
“왜들 그러세요? 혹시 모르세요? 지금 한창 인기잖아요. 산따라바람따라Seokmin 님의 채널.”
설마…….
나는 핸드폰을 꺼내 예전에 딱 한 번 들어가 본 큰아버지의 유튜브에 접속했다. 그리고 화면에 뜬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일, 십, 백, 천 만…… 엥?”
어마어마한 구독자 수와 조회 수였다. 이 팬분의 말대로 조금만 더 구독자를 모으면 실버 버튼을 받을 수 있었다.
산 생활 vlog가 이렇게 인기를 끌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