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팬분에게 들은 전말은 이랬다.
큰아버지는 산 생활 vlog를 촬영하던 중 지나가는 말로 현 헌터계 1세대 랭커들의 초보 시절 비화를 언급했다.
“그 녀석도 막, 고블린이 뭐가 무섭다고 쫄아서는. 물에 들어가서 물에다 대고 전기 마법을 쓰는 멍청이가 어디 있나. 자기가 무슨 전기뱀장어야?”
지금처럼 헌터가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전이었던 만큼, 1세대 헌터들의 정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초보 시절 비화라니. 당사자가 자신의 우스운 이야기를 떠들고 다닐 리도 없으니, 그야말로 귀중한 정보. 사람들이 큰아버지의 이야기에 주목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큰아버지가 산 생활을 접고 돌아와 여러 일을 겪는 동안 우연히 그 영상이 발굴되어 화제를 끌었다.
랭커의 우스운 과거를 이야기할 뿐이었다면 당사자 쪽에서 불쾌감을 느끼고 제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각성자센터> 무너지고 혼란스러울 때 고생 많이 한 친구야. 범죄자들이 간보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나서서 처리했지. 지금도 전기 파리채만 봐도 겁먹는 놈들 많을 거다.”
하지만 영상을 찍는 동안 심심했던 큰아버지는 적절하게 감동적인 이야기도 섞었다. 한국인들이 또 자기 PR에 서투른 법 아니겠나. 그러니 이 또한 귀중한 정보.
즉, 산 생활과는 동떨어졌지만 본의 아니게 재미와 감동을 다 잡은 콘텐츠가 된 것이다.
팬분이 감격한 표정으로 큰아버지에게 말했다.
“다음 영상은 언제 올리세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괜찮으시면 사인 좀…….”
그 이야기를 들은 큰아버지는…….
“아들아, 조카야, 미안하지만 나 먼저 간다.”
순식간에 팬분에게 사인을 해 주고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권지운이 황급히 손을 뻗어 큰아버지를 붙잡으려 했다.
“아버지, 아니, 권석민 명예 부길드장님 어디 가세요!”
“떼잉, 곧 실버 버튼 유튜버 산따라바람따라Seokmin이라 부르거라!”
샤샤샥. 권지운의 행동을 예측한 큰아버지가 옆으로 몸을 피했다. 이렇게 보니 참 죽이 잘 맞는 부자다.
“그래서 갑자기 어딜 가시는 건데요?”
“내 참! 앞으로 영상을 찍으려면 카메라를 사야 할 것 아니냐. 그럼, 아디오스!”
‟또 무슨 사고를 치시려고요?!”
‟으핫핫핫!”
손을 흔드는 큰아버지의 눈에는 생기가 넘쳤다. 우리는 아련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배웅했다.
뭐, 어쨌건 즐거워 보이시니 다행이네…….
그렇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뒤 식당을 나서려는 때였다.
“괜찮아?”
권지운이 내게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반문했다.
“오빠야말로 괜찮아? 권석민 명예 부길드장님 방금 퇴직하신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됐다. 무슨 일 있으면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
손이 내 뒤통수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내가 침울해 보여서 걱정했나 보다.
“……응, 알았어.”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웃었다.
* * *
<카페 리을> 생강 페스티벌 대망의 마지막 날.
손님들이 전부 돌아가고 슬슬 영업을 마무리할 시각이 되었다.
“됐다!”
나는 수확한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을 담아 둔 상자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상자 안은 텅 비었다. 즉, 엄청나게 증식했던 생강을 드디어 다 해치운 것이다.
손님들은 이제 언리미티드 생강 세트를 맛볼 수 없냐고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한정 메뉴는 한정이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며칠 사이에 가게는 물론이고 내 앞치마와 손에도 생강 냄새가 배었다. 이제 생강이라면 지긋지긋하다. 한동안 생강이 들어간 메뉴는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후후후…….”
빈 통을 보며 흡족한 웃음을 짓는데 띠링, 하고 시스템 알림이 떴다.
[업적: ‘생강의 지배자’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업적: 생강의 지배자
남김없이 생강을 해치웠습니다.
만드라고라던전생강이 당신을 경배합니다. 당신은 생강의 지배자입니다.
보상: 10연속 황금 뽑기]
생강의 지배자……? 생강 음료 좀 팔았다가 나 그런 사람이 된 건가?
거 참 대단하다면 대단한 것도 같고…….
업적 내용은 그렇다 치고, 보상으로 주는 10연속 황금 뽑기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뽑기를 해 보는구나. 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보상을 수령했다.
일반 황금 뽑기와 10연속 황금 뽑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바로 10연속 뽑기를 하면 한 번은 반드시 3성 이상의 좋은 아이템, 일명 골든 아이템이 나온다는 것!
반짝반짝 화려한 효과와 함께 아홉 번의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나왔고, 이윽고 마지막!
빠바밤!
효과음이 울리고 결과가 떴다.
[아이템: 본격 커피 제조 카트(★★★☆☆)
던전 안에서 커피를 만드느라 어려움이 많으셨죠?
이 카트가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커피를 위한 모든 도구를 완비했습니다.
비고: 카페의 냉장고와 연결되는 미니 냉장고 포함]
“…….”
나는 그대로 본격 커피 제조 카트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냐아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옆에서 미음이가 내 눈치를 보았다.
“왜 그래?”
“너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느냐, 왜옹!”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왜오옼! 원래 던전에는 가기 싫다느니, 던전에서도 커피를 만들라는 거냐며 투덜거리지 않느냐!”
“……그런 건 졸업했어.”
“캬갸갸옭?!”
경악하는 미음이의 반응을 보고, 나는 그동안 속으로 의심만 하던 사실에 확신을 더했다.
왜 자꾸 이런 던전 관련된 아이템을 주나 했더니. 시스템 놈, 나를 놀린 거구나. 경악하는 내 반응을 보고 즐긴 거였어.
그리고 실은 이런 일에 일일이 투덜거리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던전 안에서 커피를 만들건 데굴데굴 굴러다니건, 전부…….
전부,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있잖아, 이건 뭐야?”
그때 아스가 나를 불렀다. 그는 카운터 위에 놓인 생강청 병을 가리켰다.
“아, 그대로 둬. 그건 다른 데 쓰려고 남겨 둔 거야.”
“다른 데 어디?”
때마침 달칵, 하고 문이 열렸다.
아, 왔구나.
오늘의 마지막 손님은 최세드릭과 최로나 남매였다.
“크흠, 오랜만이야.”
최세드릭은 어쩐지 긴장한 표정이었고.
“와아, 언니, 잘 지내셨어요?”
최로나는 여전히 10㎝쯤 공중에 떠서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공중을 걸어 들어온 소녀가 생긋 웃었다.
“실은 아직 마도서의 힘 조절이 잘 안 되어서요.”
“괜찮아. 로나야, 잘 어울려! 천사 같아!”
옆에서 순도 100%의 진심으로 최세드릭이 주접을 쏟아 냈다. 로나는 산뜻한 웃음으로 그 주접에 화답했다.
나는 문득 지존과 김지나도 남매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 역시 권지운이랑 사촌 남매고. 만약 지존 헌터가 저런 말을 한다면…… 이제껏 내가 본 김지나라면 차라리 혀를 깨물 것 같다. 나라면, 윽, 방금 무심코 상상해 버렸는데 소름 돋았다.
같은 남매지간이라고 해도 각양각색이구나.
“편한 데 앉아 있어. 아스, 생강청 병 좀 줘.”
나는 따로 남겨 둔 생강청으로 마지막 ‘언리미티드 생강 세트’를 만들었다. 최세드릭과 최로나가 진저밀크를 한 모금 마시고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크……! 엄청난 맛이야. 입 안이 얼얼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이 맛!”
“아하하, 고마워.”
“역시 너는 커피 십…….”
아니. 칭찬은 고맙지만 제발 ‘커피 십타쿠’라는 단어에서 벗어나 줘. 같은 드립이 허용되는 건 두 번뿐이야. 세 번은 안 된다고.
“아차. 이거 커피 안 들었다고 했지. 그럼, 음…… 음…… 생강의 지배자님!”
“…….”
이번엔 부정하지 않겠다. 아까 진짜로 ‘생강의 지배자’ 업적을 얻었으니까.
“후후. 여기 정말 와 보고 싶었어요. 멋진 카페네요.”
“맞아. 사실 더 일찍 오고 싶었는데. 주변 정리를 하다 보니 벌써 이렇게 됐네.”
드르륵!
그때 최로나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로나야, 왜 그래?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에요. 얘, 김아스.”
“뭐? 나?”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고 혼자 멀거니 취미 생활을 하고 있던 아스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이름이 불려 당황한 표정이다.
“여기 카페를 구경하고 싶은데. 아스, 네가 안내 좀 해 줘.”
“뭐? 내가 왜?”
“언니, 그래도 될까요?”
“응, 되지. 별로 볼 건 없겠지만……. 아스, 미안하지만 로나 좀 안내해 줘.”
“……체, 알았어.”
아스는 딱 ‘내가 왜 이런 이상한 애를.’이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군말 없이 최로나를 안내했고, 자신이 만든 마왕성 미니어처에 그녀가 관심을 보이자 즐거워했다.
“너 마왕이라더니 생각보다 착하구나.”
“뭐……!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창고 쪽으로 멀어져 갔다. 최세드릭은 기쁜 표정으로 최로나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서두를 떼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만 물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전보다 단단해진 눈빛으로 최세드릭이 대답했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 <씨앤엘 코퍼레이션>과 최세드릭 남매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씨앤엘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자 괴물 나뭇가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이세인.
그녀는 검은 액체를 토해 내기 전의 기억 대부분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과 인지 능력을 잃어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사건 조사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이대로면 폐인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때, 최로나는 내게 레몬에이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플미 장사꾼 잡는 데에나 쓴 레몬에이드를 왜? 그런 의문은 들었지만 로나의 말대로 레몬에이드를 만들어서 <던전관리청> 공무원 편에 보냈다.
그 레몬에이드를 마신 이세인은 몇 번 기침을 하더니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 일종의 소독 작업이에요. 몸에 남은 심연의 찌꺼기를 제거하고, 다시는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게 정화하는 작업.
전화로 로나에게 그런 설명을 들었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 고마워요, 언니. 전부 언니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어쨌건 로나가 기뻐했으니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지 능력을 회복했을 뿐 이세인이 기억을 전부 되찾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온’이라는 존재에게 몸이 탈취됐었고, 일련의 사건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잘못은 잘못. 이세인은 모든 혐의를 인정했으며 그대로 구속되었다. 아마 무거운 처벌이 내려지겠지. 그래도 모든 미혹에서 깨어난 이세인은 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속된 이세인을 대신하여 임시 대표가 된 최세드릭이 처음으로 내린 지시는…….
“오늘부로 <씨앤엘 코퍼레이션>을 해체합니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