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9화 (159/192)

159화

오전에 보는 <진달래 전당포>는 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조용한 골목 안쪽에 위치한 낡았지만 깔끔한 건물. 24시간 영업이라고 적힌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영업 중인 거 맞겠지. 나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녕하세요.”

“뀨우우…….”

“계세요? 진달래 씨!”

카운터 안쪽을 향해 큰 소리로 부르자 한참 뒤에 진달래가 나왔다.

“흐아암……. 으앗, 깜짝이야!”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던 진달래가 나를 보고 왼쪽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붉은색 머리카락은 부스스했고 표정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막 잠에서 깬 것 같았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손님이 올 줄은 몰랐군요. 하암…….”

“아하하, 이따가 카페를 열어야 해서요.”

진달래가 카운터 앞의 자리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고 나른함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젯밤에 모처럼 큰 게임 판이 열려서 거기 참석하느라 좀 피곤하군요. 알아요? 이 일대에서…….”

순간 머릿속에 느와르 영화에서 볼 법한 비밀 게임장의 모습이 쫙 스쳐 지나갔다. 자욱한 연기, 암호를 말하고 들어가는 창문이 없는 건물, 서로를 관찰하는 시선…….

불패의 겜블러로 불렸다는 진달래에게 너무나도 어울리는 풍경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곤란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자, 잠깐만요. 그만! 말하지 마세요!”

“왜 그러세요?”

“위험한 불법 게임장 이야기는 좀……. 모르고 싶은데요.”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건가요? 이 일대 상인회 친목 모임에서 부루마불을 했을 뿐이에요.”

“아, 부루마불이요…….”

그거 재밌죠, 네.

아니, 그런 이야기를 왜 그렇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하는 거지? 억울한 표정으로 진달래를 보았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물건을 맡기러? 아니면 다른 용무로?”

“아, 이 슬라임 때문인데요.”

“……슬라임?”

진달래가 둥근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나는 슬라임 이동장의 문을 열어 라임이를 꺼냈다.

“뀨우우! 뀨!”

여기까지 오는 잠깐 동안 갑갑했는지 라임이가 탱탱볼처럼 마구 몸을 튕겨 댔다. 진달래의 왼쪽 눈이 라임이의 움직임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뀨우우우!”

이제 굳이 해석해 보지 않아도 이 울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슬라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도 정말 알고 싶구나, 라임아.

“전에 정보상을 겸하고 있으니 궁금한 정보가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셨죠.”

“……그랬죠.”

진달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라임이…… 이 슬라임이 좋아하는 먹이예요.”

“…….”

“…….”

그리고 정적.

진달래와 나 사이에 서늘한 고요가 자리 잡았다. 진달래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손님, 저 정보상 진달래가 다루는 정보는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역시 그녀도 슬라임의 먹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건가.

그녀의 황당해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나는 나름대로 절박했다. 라임이가 단식을 하고 벌써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뭘 먹어도 뱉어 낸단 말이에요! 봐요!”

나는 주머니에서 커피 열매를 하나 꺼낸 뒤 라임이에게 주었다.

“뀨우우!”

퉷!

받아먹으려는 것 같더니 그대로 뱉어 냈다. 다시, 또 다시……. 몇 번을 시도해도 라임이는 꿋꿋이 커피 열매를 거부했다.

“……호오.”

흥미롭게 그 모습을 보던 진달래가 서랍에서 종이컵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라임이가 뱉어 낸 커피 열매를 그 중 하나의 종이컵에만 넣고 테이블 위에 엎었다.

샤샥, 샤샤샥.

진달래는 빠르게 세 개의 종이컵을 섞다가 손을 멈추었다.

“자, 이 중 어디에 먹이가 들어 있을까?”

“뀨웃!”

라임이가 세 번째 종이컵에서 단번에 커피 열매를 찾아냈다. 마치 영리한 강아지가 노즈 워크를 하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감탄했다.

답은 게임이었나? 라임이에겐 게임으로 직접 먹이를 찾게 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건가?

……퉷!

그러나 라임이는 기껏 찾은 열매를 다시 뱉어 냈다.

샤샥, 샤샤샤샥.

진달래는 다시 커피 열매를 넣고 더더욱 빠른 속도로 종이컵을 섞었다. 눈이 핑핑 돌 정도의 완벽한 손기술이었지만 라임이는 백발백중이었다. 정확하게 열매를 찾아낸 뒤, 다시 뱉어 낸다.

몇 번 게임을 반복한 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진달래가 말했다.

“이 아이, 재능이 있군요. 내게 맡기실래요? 좀 더 가르치면…….”

“……잠깐, 남의 집 슬라임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세요!”

나는 당황해서 라임이를 뒤로 숨겼다. 하마터면 라임이에게 새로운 직업이 생길 뻔했다. 아쉬워하는 티를 감추지 않으며 진달래가 말했다.

“하아……. 동물은 동물 병원에 데려가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슬라임 진료를 보는 병원은 예약하고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하는걸요. 그 사이에 라임이가 영양실조에 걸리면 어떡해요.”

“그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예요. 돌아가 주세요.”

“정보상이라면서요! 합당한 물건을 맡기면 정보를 준다고 명함까지 주셨으면서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말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돌려보내고 잠이나 더 자고 싶은 표정으로 진달래가 말했다.

“난 또……. 그 일을 알고 오셨나 했더니.”

“그 일이요?”

“뭐, 나한테는 달리 쓸데도 없는 물건이니 괜찮겠죠.”

“네?”

진달래는 카운터 뒤의 유리 진열장을 열었다. 진열장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안쪽에 숨겨진 비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그녀는 수첩 한 권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얼마 전, 우연히 손에 넣은 물건이에요. 미안하지만 어떻게 얻었는지는 말해 줄 수 없어요. 이렇게 손님이 오늘 말도 안 되는 용건으로 찾아온 것도 인연이겠죠. 가져가세요.”

“이게 뭔데요……?”

굉장히 낡은 수첩이다. 떨떠름하게 수첩을 받아 들고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표지의 구석에 적힌 이름 때문이다.

박희순.

……이거, 할머니의 수첩이다.

전에 찾은 수첩과 다른 점은 첫 장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손녀, 리을에게.

할머니의 필체가 분명했다. 나는 가슴이 메는 것을 느꼈다.

“안은 백지뿐이더군요. 하지만 손님에게는 중요한 물건인 것…… 같군요.”

“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수첩을 품에 안는 그때.

파라락.

손도 대지 않았는데 페이지가 자동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바로 알았다.

이 감각…… 또다.

정신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차르륵. 빠르게 책장을 넘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눈앞의 풍경이 바뀐다.

캄캄한 어둠 속. 눈앞에서 영상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어느 한 장면에서 멈추었다. 사람이 아닌 것이 말하는 듯한 무감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억겁의 시간을 넘어서 도달한 마지막 세계.】

【이번에야말로…….】

‘여기는…….’

입술을 움직이려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야는 고정된 채였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난번과 달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환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주위는 낯설고 삭막한 풍경. 시뻘겋게 달아오른 돌이 바닥을 굴러다녔고, 근처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던전 안이다.

헌터 여러 명이 몬스터를 해치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열 명 남짓한 그들 중에서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기유현과 주신우, 주신희 쌍둥이, 그리고 오서호까지. 나머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차림새나 전투력으로 보아 꽤 고랭크의 헌터 같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들은 마치 파티가 아니라 그저 개인의 집합 같았다. 끝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를 각자 처치할 뿐, 전혀 협력하지 않는다.

“칫, 저 인간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촤악!

몬스터를 베어 낸 헌터 한 명이 다 들으란 듯이 빈정거렸다. 빈정거림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기유현이다.

“자, 자, 진정하세요. 벌써 대던전 《어비스》의 끝이 머지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원이 있으니 곧 마신을 막고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저놈을 믿으라고? 까놓고, 그 미친 교단이랑 한 통속인지 어떻게 알아? 따지고 보면, 마신인지 뭔지가 나타난 것도 다…….”

“하하, 헌터님. 그런 말씀은 좀…….”

“네놈도 교단 출신이라며? 같은 미친놈이라고 편 드는 건가?”

“하, 하하…….”

오서호가 붙임성 좋게 중재하려 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이거, 설마……. 회귀 전, 기유현이 마신을 막고자 대던전을 올랐을 때인가.

하지만 고작 2년 남짓한 미래의 일인데도 너무 달랐다. 기유현과 오서호는 교단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져 마신의 부활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며 의심 받았고, 쌍둥이는 그저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으로 흘긋 쳐다볼 뿐이었다.

기유현 역시 내가 아는 모습과는 다른 사람 같았다. 내가 아는 그는 저렇게 어두운 표정을 하지 않는다.

파티는 삐걱거리는 채 앞으로 나아갔다. 전투는 점점 더 험난해졌고, 결국…….

오서호가 사망했다.

내내 무표정하던 기유현의 낯에 실금이 가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이후, 파티 분위기는 빠르게 악화일로를 달렸다. 많은 희생 끝에 도달한 마지막 층, 《궁극의 문》 앞. 문 너머의 마신이 제물을 응시하고…….

【열쇠가 준비되지 않았다.】

【네게는 아직 문을 열 자격이 없다.】

어디선가 거미줄처럼 가는 실이 뻗어 나와 기유현을 감쌌다. 이미 부서진 그의 영혼을 움켜쥐고 그러모았다. 검은 눈에 절망과 고통이 비쳤다.

‘안 돼……!’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을 감을 수조차 없다. 통제권을 잃은 몸은 그저 눈앞의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

여기서 죽는구나. 당신은 여기서 이렇게 죽은 거였어.

푸욱!

불쾌한 소리가 들리더니…… 짙은 어둠이 사위를 뒤덮었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