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192)

162화

나는 아스에게 건네받은 상자를 열어 안을 보여 주었다.

“직접 만든 쑥 가루입니다.”

어제 시장에서 구입한 메두사쑥을 냄비에 팔팔 삶은 뒤 건조해서 빻은 것이다. 시간이 빠듯해 쑥이 다 마르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말랐다.

……크투가의 힘을 빌린 덕분이다.

“그럼 먼저, 유리잔에 쑥 가루와 설탕 시럽, 물을 담고 잘 저어 줍니다.”

나는 넉넉하게 쑥 가루를 담은 뒤 걸쭉한 농도가 될 때까지 진동 거품기로 저어 주었다.

“자, 아스도 한번 해 봐.”

“……알았어.”

위이잉-

그러나 아스가 진동 거품기를 쥐는 순간 사방으로 쑥 가루가 튀기 시작했다!

“헉, 안 돼. 아스, 속도 낮춰서, 살살. 살살 해야 해.”

“살살…… 이렇게?”

아스는 진동 거품기의 버튼을 조작했다. 그런데 속도를 낮추는 게 아니라 반대로 올려 버렸다.

위이이이잉-

자그마한 유리잔 안에서 맹렬하게 거품기가 돌아가더니…….

“쿨럭, 쿨럭!”

정확히 근처에 서 있던 기유현을 향해 쑥 가루가 흩날렸다. 쑥 공격을 받은 그의 셔츠가 거무죽죽한 녹색으로 변했다.

위이잉-

“……쿨럭!”

“왜오오옹!”

“뀨우우!”

가루가 풀풀 날리자 영문도 모르고 신난 동물들이 풀쩍풀쩍 뛰었다. 한 마디로 아주 난장판이었다.

“그만! 스톱!”

나는 황급히 진동 거품기의 전기 코드를 뺐다. 헉, 하마터면 쑥 라테를 완성하기도 전에 가게가 쑥 범벅이 될 뻔했다.

“안 되겠다. 아스는 이걸로 해. 천천히, 알겠지? 천천히 하는 거야.”

“……응.”

나는 진동 거품기를 당장 개수통에 집어넣고 수동 거품기를 아스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렇게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무사히 쑥 가루를 날리지 않고 제대로 섞을 수 있었다.

남은 과정은 간단했다. 유리잔에 얼음과 우유를 담고, 아까 만든 쑥 원액을 천천히 부어 주면 끝이었다. 우유에 연한 녹색이 섞여 드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됐다. 완성입니다.”

띠링. 음료를 완성하자 곧장 알림이 떴다.

[아이템: 쑥 라테(★★★★☆)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1:00:00)

효과: 몸이 돌보다 단단해집니다. 때려도 때린 상대가 더 아플 뿐.

(받은 공격을 3회 상대에게 반사합니다.]

이름에 ‘메두사’가 들어가서 그런가? 특이하게 이번에는 회복이 아니라 공격을 반사하는 효과가 붙어 있었다. 평상시에는 쓸 일이 없겠지만, 던전 안에서는 유용하겠다.

다시 쑥 라테를 여러 잔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한 잔씩 건넸다. 그리고 다 같이 맛을 보기로 했다.

나는 쑥 라테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제일 먼저 진한 쑥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씁쓰름한 쑥의 맛을 설탕 시럽의 단맛이 중화해 주고, 우유가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맛있다. 곧 다가올 봄에 판매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쑥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려나? 그런 걱정을 품고 나는 손님들의 모습을 살폈다.

“음! 환상적인 맛입니다. 이 특별한 향기는 쉽게 맛볼 수 없습니다.”

일단 오늘의 메인 게스트인 제임스는 무척 만족했다. 다행이다. 믹스커피만큼은 아니라도 입맛에 맞는 메뉴를 찾을 수 있어서.

“크흑, 흑……. 미로 던전에서 먹을 게 없어서 쑥 뜯어 먹던 생각이 나는구나.”

큰아버지도 좋아해 주셨지만…… 본의 아니게 힘든 기억을 떠올리시게 한 것 같다.

“맛있어요. 리을 씨가 만든 음료는 전부 맛있지만, 이건 독특해서 좋군요.”

쑥 가루 공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기유현도 호평했다. 나는 그의 뺨에 미처 다 닦이지 않은 쑥 가루가 남은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유현 씨, 잠깐만요.”

“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뺨을 닦아 주었다. 난데없는 고난을 겪게 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쿨럭, 쿨럭!”

그때, 쑥 라테를 한 모금 마신 아스가 기침을 했다. 얼른 표정을 감추려 했지만 눈썹을 찌푸리는 걸 다 봤다. 나는 아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스, 입에 안 맞아? 다른 걸로 줄게.”

“하하하! 알바생 소년, 너는 이 쑥 라테가 쓰냐. 어른이 되어 인생의 쓴맛을 알면 달게 느껴진단다.”

큰아버지, 그 말은 역효과일 것 같은데…….

역시나 아스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잔을 붙잡고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아니야! 맛있어. 이거 먹을래.”

하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아스의 머리 위 만족도 막대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멈춘 상태다. 쑥 맛이 입에 맞지 않는 듯했다.

“그래? 그럼 나하고 바꿔 먹자. 다른 버전으로도 하나 만들었거든.”

“그러면…… 알았어.”

나는 쑥 가루의 양을 대폭 줄이고 시럽을 더 넣은 쑥 라테를 한 잔 만들었다. 위에는 우유 거품을 듬뿍 올려 부드러움을 더했다.

“……! 맛있어.”

아스는 조금 전보다는 편안한 표정으로 쑥 라테를 마셨다.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쑥 라테를 맛있어했다. 잔을 전부 비운 초대 손님들은 옹기종기 모여 감상을 나누었다.

“크으, 맛있어!”

“잡초인 줄 알았던 풀에서 이런 멋진 음료가 나오다니……. 천재적이야.”

음, 훈훈한 광경이구나. 이대로면 행사 내용 촬영도 순조롭게 끝날 것 같다. 아마 영상에 ‘봄을 한 걸음 앞서 만나는 쑥 라테’ 이런 힐링을 어필하는 제목이 붙지 않을까.

“공격을 반사하는 효과가 어떤지 궁금한데.”

“한번 시험해 볼까? 야, 나한테 한대 때려 봐. 무기로.”

드르륵!

나는 황급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님, 그건 그만두시는 편이…….”

그러나 나는 한발 늦고 말았다.

쿠콰카캉!

무기를 꺼낸 헌터가 빠르게 앞에 있는 헌터를 공격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범위 공격으로.

“크어억!”

가차 없이 쑥 라테의 효과가 발휘되었고, 반사 대미지를 입는 것 같았지만…….

쿠콰카캉!

……다시 반사되었다.

자, 생각해 보자. 방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쑥 라테를 마셨다. 달리 말하면 모두가 공격을 반사하는 상태. 그런데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어떻게 될까.

반사 대미지가 핀볼 게임의 공처럼 통통 손님들 사이를 오가면서 가게 벽과 바닥에 흠집을 남겼고 마지막에는…… 테이블에 직격했다.

뽀각!

예전에 엄청난 노동을 통해 손에 넣었던 아이템, ‘편안한 카페 테이블(★★☆☆☆)’이 말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아끼는 테이블인데! 그뿐만 아니라 마구 반사된 대미지 때문에 가게 안은 난장판.

“…….”

나는 쑥 라테를 만들기 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도 이제 가게가 엉망이 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일어나는구나. 그것도 몬스터가 아니라 고작 쑥 라테 때문에.

“으헉, 사장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고를 친 헌터 둘이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 그들을 향해 외쳤다.

“……당장 나가요!”

“네, 네넵!”

내 일갈에 사고를 친 헌터들뿐만이 아니라 전원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들 뒤를 따라 가게 밖으로 나간 뒤 문을 닫았다.

“어? 사장님은 왜 같이 나오세요?”

대답 대신 나는 문에 하얀 종이를 붙인 뒤 검은 매직으로 글자를 썼다.

‘카페 수리를 위해 당분간 휴업합니다.

기간: 미정’

이렇게 쓴 뒤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하얗게 질린 헌터들이 나를 말렸다.

“사장님, 제발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저희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어흐흑!”

“에이, 과장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저희가 바로 원상 복구해 놓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니 휴업만은 제발…….”

“……생각해 보고요.”

그 절실함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헌터들은 두어 시간 만에 말끔하게 카페를 복구해 주었다. 청계천까지 가서 출장비를 주고 아이템 복구사를 불러왔다나 어쩐다나. 내 노동의 대가로 얻은 ‘편안한 카페 테이블(★★☆☆☆)’은 다행히 생명을 되찾았다.

“굉장히 극단적인 카페 경험! 재미있었습니다, 하하!”

제임스는 즐거워했지만, 우리 가게가 자주 부서진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을지 걱정된다.

손님들이 돌아간 다음, 나는 잠시 쉬면서 핸드폰으로 헌터 채널에 접속했다. 가장 상위의 글 제목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이슈] 난리난 오늘자 ㅋㅍㄹ 상황.jpg (514)

힐링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제목에 나는 그대로 창을 꺼 버렸다.

* * *

엉망진창인 하루였다.

아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고.

적어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었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음료 만들기 시범 때는 그만 주위에 마구 쑥 가루를 흩날려 버렸다. 초록색 가루를 뒤집어쓴 ‘그 인간’의 모습을 보고 속 시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속상하다.

“하아…….”

달그락.

비스듬히 숙인 시선이 닿는 곳에 리을이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안에는 연한 초록빛의 음료가 들어 있었다.

“……이건 뭐야?”

“마셔 봐. 레시피를 다시 바꿔 봤어.”

“됐어.”

“응? 이건 입에 맞을 거야. 아까는 사람들 많고 해서 제대로 못 마셨잖아.”

리을은 의자를 뒤로 당겨 아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생긋 웃으며 부드럽게 권유하는 그녀는 조금도 아스에게 화가 난 것 같지 않다.

아스가 멋대로 일을 쉬고 가게에서 뛰쳐나가거나, ‘그 인간’과 떨어뜨려 놓으려고 자꾸 사이에 끼어들 때도 그랬다.

그녀는 아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며칠 전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운 게 분명한 엉망진창인 얼굴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응? 당연히 괜찮지. 그럼 잘 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캐물어 봐야 그녀를 더 곤란하게만 만들 테다. 그래서 아스는 그 말을 믿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파파라치 기사는 또 어떤가. 아스는 오직 그 내용 때문에 속상한 것이 아니었다. 거짓인 게 분명한, 사실이 아닌 기사 따위를 왜 신경 쓰겠는가. 그래, 절대 사실일 리가 없다, 암.

다만 ‘그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 것이 속상했다. 어린아이처럼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뭐든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가 되면 좋겠다.

아스는 리을을 볼 때마다 가슴속 어딘가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따끔거림이 심해지면 문득 마음속에서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불완전체라서 그런 걸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