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이쪽으로 가자.”
“……응.”
결정을 내리고 아스와 함께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띠링.
[데이터 취합이 완료되었습니다.]
[엄정한 테스트를 거쳐 퀘스트 참가자를 선정했습니다.
두 번째 참가자: 강현우(A)
……(Now Loading)]
‘달라…….’
할머니의 수첩에서 본 환영과 멤버가 다르다. 미래가 여러 번 바뀌었기 때문일까. 알림은 계속 이어졌다.
[※전원 취합이 완료되면 자동으로 전원 마신 □□□□의 게이트로 이동합니다. 이동에 대비해 주세요.]
“……!”
시간이 얼마 없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휘익!
그때, 등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공중의 비행 몬스터에게 명중했다.
“됐어! 잡았다!”
멀리서 우리를 노리던 몬스터가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나는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쌍둥이 중 주신희였다. 주신희는 다시 화살을 시위에 메기면서 주신우에게 말했다.
“역시 우리 중 한 명은 근거리 딜러를 해야 했어. 원거리 딜러만 두 명은 밸런스가 별로야.”
“그럼 네가 하지 그랬냐, 멍청아!”
손에 저주 말뚝을 든 주신우가 투덜거렸다. 주신희는 당장 반박했다.
“이 멍청아! 나 같은 궁사가 활을 안 잡는 건 세계적 손실이야!”
휙!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두 번째 화살이 몬스터의 몸을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나도 원딜이 좋다고!”
주신우는 바닥에 간단한 마법진을 그리더니 저주 말뚝을 놓았다. 그리고 망치로 말뚝을 두들기면서 외쳤다.
“밸런스고 뭐고 해치우기만 하면 되지!”
마법진이 빛나면서 저주가 발동되었다.
키에에에에!
쿵!
거구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멀리서 달려오던 몬스터가 절명한 것을 확인한 후 쌍둥이가 환한 얼굴로 달려왔다.
“언니!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김아스도!”
“너희들…… 어떻게 여기 온 거야?”
“정찰 나왔다가, 누나랑 김아스 보이길래 왔어요!”
“언니, 우리 길드장님은 저쪽에 있어요.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유현 씨가 여기 있다고?”
“네, 바로 저기예요!”
쌍둥이가 나와 아스 옆에 딱 붙어서 재잘거렸다. 활기찬 쌍둥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둘 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다.
주신희가 내 팔짱을 낀 순간, 다시 시스템 창이 업데이트되었다.
[데이터 취합이 완료되었습니다.]
[엄정한 테스트를 거쳐 퀘스트 참가자를 선정했습니다.
세 번째 참가자: 주신희(A)
네 번째 참가자: 주신우(A)
……(Now Loading)]
“……뭐?”
말도 안 돼.
분명 쌍둥이는 강하지만 아직 어리잖아. 미래는 이미 여러 번 바뀌었는데, 왜 이번에는 예전과 같은 결과인 거야?
나는 떨리는 숨을 삼키며 쌍둥이를 보았다. 아직 작은 키, 둥근 뺨, 천진한 미소…….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인데.
시스템 알림을 확인한 주신희가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놀라움이 없는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회귀 전에 내가 본 창백한 인형 같던 냉혹함과는 달랐다. 담백하고 맑다.
나는 황급히 주신희의 손을 붙잡았다. 작은 손이었다.
“언니, 나는 언니가 나를 어린애 취급해 주는 게 정말 좋았어요.”
“…….”
“지금보다 더 어릴 때도 그런 취급은 받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럴 때면 진짜 내가 어린애가 된 거 같아서, 그래서 사실은 더 어리광 부리고 싶지만.”
쌍둥이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뜻을 알겠다는 듯, 가벼운 웃음이 잠시 입가에 머물렀다. 주신희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나는 헌터고,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때예요.”
그렇게 말하는 쌍둥이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었겠는가.
마지막으로 쌍둥이는 아스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조심해.”
“우리를 뭐로 보고!”
손이 떨어졌다. 쌍둥이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멍청아! 자동으로 이동된다는데 어디 가는 거야?”
“이 멍청아! 그러면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몬스터를 해치워야 할 거 아냐!”
“누구더러 멍청이래! 내가 더 많이 잡을 거거든?”
검은 마력이 몬스터의 발을 묶었다. 이어 매서운 화살이 급소를 꿰뚫는다.
쌍둥이가 완전히 건물 사이로 모습을 감춘 뒤, 시선이 닿는 끝에 그가 있었다.
“……유현 씨!”
차가운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는 무척 아름답게 웃었지만, 왜인지 나는 왈칵 불안해졌다.
그만둬요. 그렇게 말할 틈조차 없었다.
연속적인 균열 발생 및 몬스터의 공격으로 엉망진창이 된 거리. 찬란한 빛의 입자가 흩뿌려지더니 가는 실이 되었고, 다시 얽혀 그물을 자아냈다.
부서진 거리가 수복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한 번도 상처 입지 않은 것처럼.
* * *
서울시 중구 명동. 한 보육원 앞.
“크으윽…….”
무소속 탱커, 한우주는 자신의 키보다 큰 방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체구는 작지만 솜씨는 능숙했다.
여기서 한 걸음도 더 물러설 수는 없었다. 등 뒤는 어린아이와 노인뿐이다.
‘어떻게 된 거야……!’
보육원과 같은 중요 시설에는 방호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니 한우주는 아이들이 결계 안으로 피신한 사이 여유롭게 몬스터를 방어선 쪽으로 몰아넣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몬스터 중에 하나 범상치 않은 지능을 가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우주에게 달려드는 대신 오염 스킬로 결계를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가 이 고립된 상황. 결계가 부서진 틈을 노리고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겹겹이 방어 스킬을 썼으나 몰려드는 적을 혼자서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한우주는 급히 지원 요청을 했다. 그러나 다른 헌터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아니, 아니다. 절망하지 말자.
‘누가, 물러설 줄 알고……!’
무슨 퀘스트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기유현을 위시하여 상위 랭커들이 선발되는 중이었다. 그러니 자기 같은 보통 헌터들은 그때까지만 견디면 된다. 이 징글징글한 균열 사태도 그때는 다 끝날 테다. 그러니까…….
“크윽, 으아아악!”
한우주는 소리를 지르며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앞에서 달려드는 두 놈을 한 번에 베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뻐할 틈은 없었다. 잠시 등이 무방비해졌고, 몬스터의 날카로운 발톱이 등을 꿰뚫었다. 치명상이다.
“……쿨럭, 쿨럭!”
피가 쏟아졌다. 방패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에 피가 들어간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싸우다가 죽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시×, 정년퇴직하고 연금 받아 쓰는 게 꿈이었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래도 한 번은 더 공격할 수 있겠다. 범위 공격을 터뜨리면 몇 마리는 함께 데려가겠지. 마음을 굳히고 공격하려는데.
사아악-
“……!”
그때, 온화한 미풍이 불었다.
고통이 사그라든다. 피가 멎고 상처에 새살이 차오른다. 지친 몸에 다시 힘이 나, 방패를 쥐고 버티게 한다.
‘궁극 힐링 스킬……!’
대체 누구지? 한우주는 미풍이 불어온 방향을 보았다.
반짝이는 은빛 머리카락, 서늘한 외모에 <백은 길드>의 이름이 들어간 긴 겉옷.
“괜찮으세요? 잘 버텼습니다.”
‘헐, 대박, 미쳤다. 시, 실물…… 실물 맞지?’
상황도 잊고 감탄이 나왔다.
한우주가 각성한 이래로 쭉 팬이었던 힐러, 권지운이 눈앞에 있었다. 지난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으로 <백은 길드> 면접에서 떨어진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인…… 아, 아니, 슬로건……. 으악, 지금 인벤토리에 없어!’
하필이면 지난주에 인벤토리를 정리해 버렸다. 제때제때 인벤토리를 정리하지 말 걸 그랬다.
“……헌터님?”
권지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반응이 이상하다. 설마 정신계 공격까지 당한 건가? 그렇게 의심한 권지운은 추가로 정신 치유 스킬까지 걸었다.
한우주는 생각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다. 여한은 없지만…… 정년퇴직하고 연금 받아 쓸 날까지 방패질을 해 봐야겠다.
푹! 방패를 바로 세웠다. 한우주는 굳건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때, 눈앞에 시스템 알림이 업데이트되었다.
[데이터 취합이 완료되었습니다.]
[엄정한 테스트를 거쳐 퀘스트 참가자를 선정했습니다.
다섯 번째 참가자: 권지운(A)
……(Now Loading)]
뒤이어 나타난 지원군도 있었다.
샤샤샥, 쾅!
사람 키만큼 긴 검을 한 손으로 자유롭게 다루는 헌터였다. 범위 공격 스킬 한 방으로 한우주 앞의 몬스터를 쓸어버린 헌터가 여유롭게 착지했다. 한우주는 금방 그를 알아보았다.
“어, 최세드릭 헌터……?”
<씨앤엘 코퍼레이션>이 해체한 이후, 어느 지방으로 떠났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었나.
그리고 또 한 명. 자그마한 은빛 머리카락의 소녀.
“조금만 더 버텨 봐요. 지금 결계를 복구할게요.”
도저히 헌터처럼은 보이지 않는 가냘픈 외모였다. 그런데…….
‘날고 있어……?’
“저는 결계사가 아니라 완벽하게는 안 되지만. 마도서의 좋은 점이 잡탕이라는 거 아니겠어요. 21세기형 만능 마도서랄까. 임시로 쓸 정도는 될 거예요.”
소녀의 장담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결계는 곧 복구되었다. 겨우 한시름을 놓은 한우주가 이 독특한 지원군을 향해 감사 인사를 하려는 찰나였다.
“……으아앗! 가까이 오지 마세요!”
권지운을 발견한 최로나가 깜짝 놀라 최세드릭의 뒤에 숨었다. 그녀와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인 권지운이 당황해서 물었다.
“왜 그러지?”
“머리색이 겹치잖아요. 머리색이 캐릭터성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완전 신비하게 나타날 생각이었는데!”
“하아…….”
낯선 소녀에게서 익숙한 컨셉충의 냄새가 난다. 권지운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휴, 이럴 줄 알았다면 모자라도 쓸 걸 그랬어요.”
그런데 최세드릭은 언제나처럼 동생의 말에 장단을 맞추는 대신,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아.”
이제 내 차례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최로나는 이미 짐작한 듯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애틋함을 담아 최세드릭을 볼 따름이었다.
[여섯 번째 참가자: 최로나(N/A)
……(Now Loading)]
[※ 데이터 취합 후 마지막 참가자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