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192)

170화

* * *

갑자기 모든 헌터의 상태 창에 동시에 나타난 공통 퀘스트.

사흘이라는 제한 시간 내에 마신을 봉인하지 않으면 세계가 소멸한다고 한다. 그간 전례가 없던 일인 데다가 그 내용 또한 엄청나다.

그리고 마지막 참가자의 발표만 남겨 놓은 지금. 세상의 관심이 온통 그 참가자가 누가 될지에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퀘스트만 해결되면 지긋지긋한 균열 사태가 끝나리라는 희망으로, 누군가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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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킹, 길드 추노 금지. 현피는 던전에서

[실시간] 마지막 멤버 누가 될거 같음? (21)

추천 : 10 / 비추천 : 0

작성자 : 루비복사버그

솔직하게 누가 될거같냐

말해보셈ㅇㅇ

ㅇㅇ : 이런글이나 쓰고 한가하신듯

└루비복사버그 : 오늘 균열두개막았음;; 좀 봐줘 ㅜㅜ 솔직히 궁금하잖아

pin*** : 어차피 천상계 얘기 ㅋㅋㅋ 남은 S급 중에 한명 아닐까??

└ㅁㅁ : 주노을일수도,, 소환술사니까ㅋㅋㅋ 소환술이 고난이도던전에서 유리함ㅇㅇ

 └힘없찐 : 시스템이 그런 사정까지 봐가면서 뽑으려나???

 └힐러구인중 : 테스트란게 머징,, 경험치 보고 뽑는거면 A급이 될수도,,

  └ㅇㅇ : 어쩄건 S 아니면 A라는것이 학계의 정설 ㅋㅋㅋ

망서커존버 : 최이찬에 한표ㅇㅇ 이유 1. S급입. 2. 갓서커임

└pin*** : 꾸준히 최이찬 미시네; 팬임?

 └망서커존버 : 갓.서.커.는.뜬.다

ㅇㅇ : ㅋㅋㅋ나 되면 어떡하지 가족들이랑 미리 작별인사 해놨다

└scr*** : ㅁㅊㅋㅋㅋㅋㅋㅋㅋ 설레발오져ㅋㅋㅋㅋㅋ

└루비복사버그 : 스급이나 에이급이심? 인증없으면 안믿음ㅡㅡ

dda*** : 그래도 퀘스트 뜨니까 마음이 편하다,,ㅎㅎ 저 퀘스트만 끝나면 이 사태도 끝나겠지,,?ㅜ

└힘없찐 : ㅁㅈㅁㅈㅋㅋㅋㅋ

└ll1IlI1l : ㅇㅇㅇㅇ 일단 우리 1짱이 간다니까 편-안

설탕할짝 : ㅈㄴ멋있는 일은 1짱한테 맡기고 우리는 뺑이나 치자ㅋㅋ 이런글 쓸 시간에 몬스터를 더 써셈 ㅋㅋ

└루비복사버그 : ㅅㅂ왜 내글에만 일침충짓하심???? 님들도 궁금해서 시스템 계속 새로고침하는거 다 알거든ㅡㅡ 서러워서 진짜,,ㅜ

ddd*** : 헐 지금 떴당

└ㅇㅇ : ?????뭔데 이 듣보는????? C급??????

└루비복사버그 : 지존??? 첨 듣는데; 지존이 누군지 아시는분????

[엄정한 테스트를 거쳐 퀘스트 참가자를 선정했습니다.

일곱 번째 참가자: 지존(C)]

[※ 참가자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눈앞에 뜬 시스템 알림을 보고 지존은 크게 당황했다.

“어? ……나? 나라고?”

당황 다음에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세계의 소멸을 막기 위해 마신을 봉인해야 하는 퀘스트였다. 고작 일곱 명밖에 참가할 수 없는 퀘스트의 마지막 자리.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지존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나는 이거 못해……. 이런 중요한 일을 어떻게 내가…….”

서울시 중구 명동. 게이트에서 쏟아진 몬스터들 때문에 엉망이 된 거리.

조금 전 멋지게 몬스터를 해치우고 보육원을 구한 최세드릭의 모습이 가까이에 보였다.

지존 역시 지원 요청을 받고 이곳에 왔다. 왜냐하면 위기가 있는 곳에 영웅이 나타나는 법이니까. 헌터계의 지존이 되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지존검법을 만들어 낼 수 없는 하찮은 C급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망설이는 사이에 최세드릭이 혼자서 몬스터를 처치했다. C급 혼자서는 버거운 몬스터를 손쉽게 해치우는 모습은 여유롭게도 보였다.

너무도 큰 자리에 뽑히면서, 이제껏 직시하지 않으려 한 열등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헌터계의 지존이 되겠다느니 영웅이 되겠다느니 떠들어 댔지만, ‘지존’이 어울리는 것은 최세드릭 같은 사람이다.

……이제 겨우,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시스템은 왜 하필 나를 뽑은 거지? 자신이 그저 그런 스킬밖에 없는 그저 그런 C급 헌터라는 걸 알 텐데, 대체 왜.

“어? 당신, 설마!”

지존을 발견한 최세드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얼른 가까이 다가오려 했다.

“사, 사람 잘못 봤어요.”

지금은 마주치고 싶지 않다. 지존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어, 어어어, 거기! 아직 나오면 안 되쇼!”

결계가 쳐진 보육원 안에서 한 노인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대형 몬스터는 처치되었어도 소형 정찰용 몬스터가 배회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야아압! 지존검법!”

스르륵, 쾅!

지존은 노인의 발치를 노리는 소형 몬스터를 처리했다.

“할아버지, 얼른 안에 들어가 계쇼.”

휘휘, 손을 저으며 몸을 돌리는데……. 턱, 하고 어깨를 붙잡혔다.

“역시! 지존 헌터가 맞네! 오랜만인데, 잘 지냈어?”

“……으아악!”

최세드릭이 눈앞에 있었다. 들켰다. 지존은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

“왜 그렇게 놀라?”

“아…… 아니야.”

지존은 슬그머니 최세드릭의 시선을 피했다.

<씨앤엘 코퍼레이션>의 해체, 이세인의 체포 등 최세드릭에게는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아직은 랭킹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다음 측정 때는 랭킹이 대폭 내려가리란 추측이었다.

어떤 자는 최세드릭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떠들었고, 또 어떤 자는 그가 <씨앤엘>을 버림으로써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세상이 뭐라고 수군거리건, 많은 것을 내려놓은 최세드릭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그러나 버린다는 것은 애초에 가진 사람의 특권이다.

높은 랭킹, 명성, 거대한 길드……. 지존은 최세드릭이 버린 것 중 어떤 것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열등감 하나 어쩌지 못하는 못난 인간이 되었나 보지. 속으로 빈정거렸다.

“방금 시스템에 뜬 이름…… 지존 헌터 맞지?”

지존은 보일 듯 말 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네가 뽑혔는지 모르겠다고 하려나. 네가 뽑히느니 자신이 가는 게 낫다고 할까. 아니면, C급 따위가 무슨 자신감이냐고 비웃을까.

할 수만 있다면 대신 가 달라고 하고 싶었다. 나는 못 한다고, 너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최세드릭은 조금의 의문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저 격려와 걱정만을 담아 지존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로나를…… 내 하나뿐인 동생이야. 로나를 잘 부탁해.”

“나, 나는 그럴 능력이…….”

“믿을게.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

지존은 흠칫 놀라 최세드릭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리고 천천히, 명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헌터계의 지존도, 난세의 영웅도 못 되는 못난 자신이라고 해도…….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안심한 듯 최세드릭이 살짝 웃음 지었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이 들렸다.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스킬: 참 잘했어요(B)를 획득했습니다.]

[※ 모든 참가자의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잠시 뒤 게이트 안으로 자동 이동합니다.

이동에 대비하여 주세요.

100, 99, 98…….]

* * *

나는 가만히 앞을 보았다.

반쯤 부서진 어느 건물의 옥상에 기유현이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아름다워서 무심코 시선을 빼앗겼던 검은 눈동자가 또렷이 보였다.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일순, 공기의 질감이 달라진 것 같았다. 아까와 같은 곳에 서 있는데, 동시에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된 느낌.

머리 위로 넓게 빛의 그물이 펼쳐졌다. 부서진 보도블록과 건물, 몬스터가 남긴 상처마저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나는 이와 같은 광경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김덕이 할머니의 공방에 불이 났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빛의 그물은 시선이 닿는 아득한 끝까지 뻗어 나갔다.

“……기, 기적이야!”

근처에서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환호성이 뒤따른다.

아. 이제 분명히 알겠다. 인과에 개입해서 세계를 개변하는 저 힘은 확실히 기적이라고 불릴 법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나를 살리기 위해 수명을 잃으셨듯, 그도 무언가 대가를 바쳤을 테다. 그래서 이렇게 불안한 거였어.

“유현 씨……!”

있는 힘껏 소리쳐 불렀지만, 기유현은 답이 없었다. 옥상은 목소리가 닿기에는 멀다.

“아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뭐? 잠깐, 누나!”

앞에 옥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계단을 올랐다.

타다닷! 덜컹!

“헉, 허억…….”

옥상 문을 여는 순간 매서운 바람이 눈을 찔렀다. 손으로 대강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보는데, 시스템 창이 떴다.

[※ 모든 참가자의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잠시 뒤 게이트 안으로 자동 이동합니다.

이동에 대비하여 주세요.

100, 99, 98…….]

“……아.”

계단을 오르면서 그에게 할 수많은 말을 떠올렸었다. 그러나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말은 염려에 녹아 사라졌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나는 옥상에 홀로 있는 기유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맞은편, 말끔하게 수복된 거리를 보고 있던 기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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