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186/192)

186화

* * *

출범식에서 내가 일찍 돌아와야 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카페 리을>의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서 업자가 방문할 예정이었다.

지난번 퀘스트를 끝내면서 나는 갑자기 S급 카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카페는 여전히 C 등급에 불과했다.

참고로 현재 카페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면 시스템 창에 이렇게 뜬다.

[이름: 카페 리을

등급: C

명성: 1200 / 인기 : 2400

※ 카페를 멋지게 꾸며서 등급을 올려 보세요.]

굳이 카페의 등급을 올릴 의욕은 없었지만, 인테리어를 바꾸면 기분 전환에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본격적인 공사 준비에 앞서 가게 내부를 실측하기로 했다.

“사장님, 방금 실측 끝냈습니다.”

“네, 고생 많으셨어요.”

가게 내부를 살핀 인테리어 업자가 메모를 하면서 물었다.

“미리 말씀드렸듯 우선 시안 작업을 할 겁니다. 원하시는 콘셉트를 말씀해 주시면, 맞춰서 시안 보내겠습니다.”

“음, 모던하고 심플하게 해 주세요. 검정하고 흰색으로 깔끔하게!”

“네, 흠흠, 네…….”

업자가 다시 가게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래된 벽돌 건물에 나무 테이블이 내가 말한 콘셉트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리라. 업자는 조심스럽게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했다.

“요즘은 오히려 이런 레트로한 스타일이 인기가 있어요. 전체를 다 바꾸기보다는 원래 분위기를 살리면서 살짝만 손보는 쪽은 어떻습니까.”

합당한 의견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전부 다, 싹 바꿔 주세요.”

“비용 면에서도 원래 인테리어를 살리는 쪽이 나을 텐데요.”

“상관없어요. 얼마가 들든 팍팍 해 주세요.”

가능한 한 원래 인테리어와 다른 분위기로 해 달라고 나는 거듭 강조했다. 가게에 있을 때 계속 예전 생각이 나서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예 가게 분위기를 바꿔 버리면 조금이나마 생각이 덜 나지 않을까.

“네……. 그럼 시안이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업자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뀨우우…….”

그때, 라임이가 내 발치로 통통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라임이의 말랑한 몸을 끌어안고 물었다.

“라임아, 오늘 꼭 가야 해? 그냥 계속 여기 있으면 안 돼?”

“뀨웃, 뀨우우…….”

라임이가 슬픈 표정으로 울었다. 그러나 끝내 떠나지 않는다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슬라임의 마음을 바꾸기란 어려울 듯싶었다.

“뀨우웃!”

내 품에서 쏙 튀어나온 라임이가 몸을 튕겨서 문 앞으로 향했다.

“음메에에!”

그리고 이공간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코롱이의 등에 올라탔다. 라임이와 코롱이는 여전히 사이가 좋다.

내가 일찍 돌아온 두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오늘, 라임이와 코롱이가 크투가의 정원으로 떠난다.

미음이가 돌아오지 않게 된 이후로 라임이는 무척 쓸쓸해했다. 예전처럼 활기차게 울거나 통통거리지 않고, 시무룩한 울음소리만 내었다. 라임이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슬라임 카페도 데려가 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라임이가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뀨우웃, 뀨우.”

‘곧 별의 길이 열린다.’

“뀨우……. 뀨웃, 뀨…….”

‘돌아가고 싶다. 크투가님의 정원으로.’

완전히 우리 집 슬라임이 되어서 잊고 있었지만, 라임이는 원래 크투가의 정원에서 살다가 가출한 슬라임이었다. 코롱이 역시 그곳에서 데려왔고.

처음에 나는 라임이와 코롱이의 귀환에 반대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얘들이 돌아가고 나면 가게에는 정말로 나 혼자 남는다. 예전과 달리 조용해진 가게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라임이의 말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라임이가 우울증에 걸리느니, 돌아가서 행복하게 지내는 쪽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이윽고 와 버린 오늘.

오늘 밤, 크투가의 정원에 갈 수 있는 별의 길이 열린다고 한다. 오늘을 놓치면 다음 번 별의 길은 몇 년 뒤에나 열린다.

대던전 《어비스》가 사라지면서 별의 길이 아니면 크투가의 정원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지만 재회는 최소 몇 년 뒤에야 가능한 일.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라임아, 코롱아, 너희가 없으면 쓸쓸할 거야.”

“뀨우우…….”

“음메에…….”

코롱이와 라임이가 서글프게 울었다.

“잠깐만 기다려. 먹을 걸 좀 싸 줄 테니까, 가면서 먹어. 응?”

나는 주방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다. 버터 쿠키와 비스킷, 코롱이가 먹을 만한 옥수수 따위를 네모난 보자기에 싸서 코롱이의 목에 걸어 주었다.

어느덧 별이 뜰 시각이었다.

나는 배웅을 하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라임이와 코롱이를 한 번씩 꽉 끌어안았다.

“잘 지내야 해.”

그때, 저 멀리서 삼색 털을 한 고양이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미음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털의 무늬가 미음이를 꼭 닮아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나는 곧 실망했다.

저 고양이는 무척 말라서 몸집이 미음이의 반만 했다. 길을 오래 떠돌아다녔는지 털이 꼬질꼬질하다. 그냥 길고양이인가 보다.

미음이를 닮은 고양이를 보자 괜히 반가우면서 싱숭생숭했다.

“뀨우웃?!”

라임이 역시 고양이를 발견하고 놀란 울음소리를 냈다.

곧 고양이가 가게 앞에 당도했다. 완전히 지친 듯 축 늘어진 모습이 안타까웠다.

“고양아,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창고에 고양이용 사료가 한 포대 있을 텐데.

나는 황급히 가게 안으로 돌아와 그릇에 사료를 담아 왔다. 고양이 앞에 그릇을 놓아 주자 고양이는 도망가지도 않고 그릇 가까이 다가왔다.

이 사료는 미음이가 우리 집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구입한 것이다. 그래도 고양이니까 사료를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샀는데 미음이의 반응이 엄청났다.

“퉷! 퉷퉷! 이런 걸 먹으라는 거냐, 캬갸갸옭!”

“아니, 왜?! 고양이 쇼핑몰에서 제일 비싸고 인기 많은 걸로 샀는데? 봐, 최고 수준의 맛과 영양이라고 적혀 있잖아!”

“내가 보통 고양이인 줄 아느냐! 이런 걸 먹을 줄 알고! 퉷!”

“미음아, 입에서 사료 뱉지 마!”

“인간, 맛있는 것을 내놔라! 왜오오옭!”

어떻게 고양이용 사료를 줄 수 있냐며 길길이 날뛰는 통에 그대로 창고행이었다. 입맛만 까다로워서는.

후후, 지금 생각하니 그리운 추억이구나.

“퉷! 퉷퉷! 이런 걸 먹으라는 거냐, 캬갸갸옭!”

추억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이런 환청도 들리는 거 같…….

잠깐, 환청이 아니잖아?

방금 목소리는 이 비쩍 마른 고양이에게서 들렸다.

설마. 말도 안 돼.

“이런 것 말고 맛있는 걸 내놔라! 왜오오옹!”

“설마, 너……. 미음이야?!”

“뀨우우!”

옆에서 라임이가 몸을 통통 튕기며 미음이를 환영했다.

“왜오옭! 나를 못 알아본 거냐!”

파바밧!

미음이가 마구 앞발을 날렸다. 그러나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지 기운 빠진 솜방망이였다. 나는 그 힘없는 냥냥펀치를 얌전히 맞아 주었다.

“그치만 완전히 반쪽이 되어 버렸잖아.”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왜오옭!”

어떡해. 미음이다. 진짜 미음이가 돌아왔어.

와락!

나는 미음이를 꽉 끌어안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흑……. 잘 돌아왔어, 미음아.”

“뀨우우!”

“음메에에!”

라임이와 코롱이도 미음이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그 바람에 나는 미음이의 절실한 밥 요청을 미처 듣지 못하고 말았다.

“왜우우웅……. 그래, 그러니까 먼저 밥을 좀…….”

“미음아? 왜 그래, 미음아?”

“밥…….”

풀썩. 내 품에 껴안긴 미음이가 쓰러졌다.

* * *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잔뜩 골난 표정의 미음이 앞에 시리얼이 가득 든 그릇을 밀어 주면서 물었다.

“기다리거라, 왜옹!”

“……넵.”

미음이는 배를 다 채우기 전까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묵묵히 내가 꺼내 온 시리얼을 먹어 치웠다.

통통한 몸이 매력이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굶었길래 반쪽이 되어 버렸을까. 나는 미음이의 밥그릇 옆에 쿠키를 담은 간식 접시도 놓아 주었다.

참고로 미음이가 돌아온 순간 라임이와 코롱이는 크투가의 정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마구 몸을 튕기며 기뻐하는 라임이의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기뻤다.

“……하아, 이제 살 것 같구나!”

실컷 먹고 배가 볼록해진 미음이가 바닥에 발라당 하고 누웠다. 나는 미음이의 꼬질꼬질한 털을 행주로 팍팍 닦으면서 물었다.

“미음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이제야 돌아온 거고?”

“왜오오옹…….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되었군.”

아련한 표정으로 미음이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원래 나는, 너를 문으로 인도하기 위한 길잡이였다, 왜옹! 내 역할을 다했으니 위대하신 □□ □□□의 곁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

“응, 그런데?”

“하지만, 나는……. 그게…….”

“뀨우우?”

잠시 망설이던 미음이가 다시 말했다.

“잘렸다.”

“뭐어어?!”

이번에야말로 미음이가 실직자 고양이가 되어 버린 걸까?

“캬갸갸옭! 하지만 그분의 곁에 있으면 텔레비전도 볼 수 없고 간식도 먹을 수 없단 말이다! 넷플릭스라도 보여 달라고 했더니 그분께서 나를…….”

“나를?”

“가차 없이 쫓아내셨다, 왜오옹! 귀찮으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다!”

“…….”

파바바밧! 미음이가 앞발을 마구 날리면서 외쳤다.

“나를 불쌍해하는 눈으로 보지 마라, 왜오옭! 고양이의 몸으로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밥을 먹었다고 그 사이에 앞발 공격이 제법 매워졌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고 얌전히 맞아 주었다.

“그래, 밥도 주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는 우리 집이 제일 좋지?”

“왜오옭! 그, 그리고 곧 오서호의 영화가 개봉할 것 아니냐! 프리미엄 시사회에 가기로 했는데 빠질 수는 없지! 그래서 올 수밖에 없었다!”

쑥스러운지 저렇게 말하지만, 미음이가 여기로 돌아오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프리미엄 시사회에 고양이가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야겠다.

나는 커다란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서 들고 왔다. 그리고 여전히 꼬질꼬질한 미음이를 붙잡아 담그려 했다.

미음이는 둔한 주제에 목욕시키려는 기색만은 재빨리 알아챘다. 폴짝 뛰어올라 내 손을 피한 미음이가 다시 말했다.

“맞다. 그분이 네게 맡긴 것이 있다.”

“맡긴 거?”

“왜우우웅……. 슬슬 올 때가 되었을 텐데.”

“……?”

똑똑. 그때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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