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190/192)

190화

슬슬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시원한 음료를 찾는 사람이 많겠지. 마침 잘 갈리는 새 블렌더도 샀다. 무엇보다 모카 프라페 달달하고 맛있잖아.

그럼 카페를 열기 전에 한번 만들어 볼까.

나는 카운터 앞에 서서 재료와 유리잔을 꺼냈다.

먼저 블렌더에 에스프레소, 초코소스, 우유, 얼음을 담았다. 그리고 곱게 갈아 준 다음, 유리잔에 약간 공간이 남을 때까지 프라페를 부었다. 마지막으로 위에 넉넉하게 휘핑크림을 짜 올렸다.

이렇게 하면 모카 프라페가 완성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 과정이 더 추가되었다.

“후후후…….”

나는 선반 위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쿠키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제 아스와 함께 잔뜩 만들어 둔 것이다.

이 쿠키는 예전에 만든 버터 쿠키와는 한 가지 차별점이 있었다. 바로 각각 미음이, 라임이, 코롱이의 그림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그림 아래에는 ‘카페 리을 재오픈 기념’이라는 글씨가 들어갔다.

장식을 추가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전용 쿠키 커터를 주문해서 만들었다.

“냐아아. 내 귀여운 모습이 들어갔으니 아주 인기가 많겠구나!”

“뀨우, 뀨우우!”

미음이와 라임이가 쿠키를 보며 즐거워했다.

이 기념 쿠키를 휘핑크림에 꽂으면 완성이다. 이름하여 기념 모카 프라페.

[아이템: 기념 모카 프라페(★★★★★)

상태: 완벽함 (남은 시간: 02:00:00)

효과: 축하합니다!]

다만 효과 항목에는 ‘축하합니다!’라는 말뿐,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시험 삼아 마셔봤는데 버프가 걸리거나 몸이 회복되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괜찮긴 한데…….

의욕이 넘쳤던 나는 이 기념 모카 프라페와 함께 판매할 푸드 메뉴도 하나 만들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이공간에서 자라고 있는 이빨당근을 활용해 당근 케이크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빨당근을 뽑으러 이공간 안으로 들어갔더니…….

‘슈슉, 슉…… 슈슉, 슉…….’

못 하겠다.

그동안 이빨당근에게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구슬프게 우는 이빨당근을 차마 뽑아 버릴 수 없었다.

뭐, 당근 하나쯤 계속 키운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대신 선택한 메뉴는 바로 계란빵이다.

반죽에 달걀을 넣고 구우면 끝이라 미리 잔뜩 만들어 놓을 수 있고, 무엇보다 배도 부르고 맛있으니까.

아스와 함께 달걀을 잔뜩 까서 계란빵을 굽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산더미 같은 계란빵을 접시에 옮겨 담느라 허둥지둥하는 나를 보며 미음이가 핀잔을 주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구나, 왜오옭!”

으음, 할 말 없다.

그래도 이왕 만드는 거 잔뜩 만들어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으면 좋잖아.

참고로 기념 모카 프라페와 계란빵을 만들자 콤보 보너스가 떴다.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콤보 보너스가 발생합니다.

콤보: 카페 리을 재오픈 기념(기념 모카 프라페, 기념 계란빵)

효과: 다음으로 하는 뽑기에서 무조건 가장 좋은 결과를 1회 얻을 수 있습니다.]

뭐…… 뭐?!

뽑기에서 무조건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세상에 커피 한 잔에 이렇게 엄청난 효과가 있을 수 있단 말야?

기쁨은 잠시였고, 나는 곧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잠깐, 복권도 뽑기에 속하지 않나?

그럼 우리 카페에서 이 기념 콤보 메뉴를 먹은 사람이 복권을 사면 모두 다 당첨되겠네? 이 메뉴를 팔았다가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고 잡혀 가는 건 아닐까?

눈물을 머금고 산더미같이 만든 신메뉴를 판매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다행히 단서 조항이 있었다.

[※ 복권 및 그 밖의 현금, 유가증권, 고가의 물품이 걸린 뽑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24시간 내에 뽑기를 실행하지 않을 시 무효입니다.

1인당 1회 한정.]

휴우. 이 조건대로라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다. 1회 한정이라니 기념 메뉴에 어울리는 효과였다.

그럼 나는 무슨 뽑기를 할까. 그동안 묵혀 둔 황금 뽑기 티켓을 털어 볼까.

그때 문 바깥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문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벌써 저렇게 많이?”

이런저런 일로 한 달이 넘게 카페를 쉬었다. 워낙 오래간만이라 그 사이에 잊히진 않았을까 했는데 터무니없는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인 만큼, 오늘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손님을 받기로 했다.

바쁜 하루가 될 테다.

나는 허둥지둥 안을 정리하고 문을 열었다. 옆에 세워 둔 푯말을 뒤집어 ‘영업 중’ 글씨가 앞으로 오게 바꾸었다.

앞에는 기대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손님들의 행렬이 있었다. 나는 환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카페 리을> 지금부터 영업 시작합니다.”

* * *

바쁜 하루가 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첫날은 진짜, 정말로, 엄청나게 바빴다.

“사장님, 저는 이번에 깨달았슴다. 제가 커피의 노예라는 사실을!”

“아, 어떡하지. 기념 세트도 궁금한데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싶어……. 에라, 그냥 둘 다 주세요!”

“가게가 엄청 예쁘네요. 카페 다시 여는 거 기다렸어요!”

“하아, 커피를 마시면서 귀여운 동물도 볼 수 있다니 정말 최고로군요.”

손님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무척 기뻐했다.

자주 얼굴을 본 손님이 있는가 하면, 처음 온 손님도 있었다. 얼결에 커피 구매권에 당첨되어서 와 봤다는 손님이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자 정말 뿌듯했다.

“떠, 떴다! SSR 캐릭터! 골드 시티!”

“이렇게 엄청난 효과가 1회 한정이라니, 크읏……. 그래도 최애를 뽑았으니 됐어…….”

이렇게 기념 콤보 효과로 뽑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손님도 있었고.

오픈 직후에 온 손님 중에 한 명은 이초록이었는데, 늦었지만 개업 기념이라며 화분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냥 오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꽃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화분인가요?”

“차나무예요! 드디어 던전그린티나무를 화분에 키울 수 있는 크기로 개량했거든요. 잘 기르면 찻잎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와, 감사합니다.”

찻잎을 얻으면 다음에 차 메뉴를 추가할 수도 있겠다. 나는 기쁘게 화분을 받아 장식해 두었다.

“설거지는 끝났어. 이 계란빵은 손님한테 나가면 되지?”

“어, 응!”

아스는 여전히 엄청나게 일을 잘했다. 다 쓴 블렌더를 순식간에 씻더니 척척 남은 일을 해치웠다. 그야말로 천재 아르바이트생! 아스가 옆에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주문을 처리하기란 불가능했을 테다.

나는 재빨리 기념 모카 프라페를 만들어 손님에게 건넨 뒤 기운차게 말했다.

“다음 손님, 주문 결정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바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한때 나는 주5일제(※휴식이 5일이란 뜻이다)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쉬는 건 좋다. 느긋하게 뒹굴뒹굴하고 빈둥거리고, 정말 최고지.

하지만 이토록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뿌듯함도 있는 법이다.

막 뽑은 에스프레소에서 진한 커피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좋아하는 냄새다.

어쩔 수 없나. 이번 생은 별수 없이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고, 가끔 참견하는 미음이와 라임이에게 간식을 챙겨 주고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나는 쌓인 커피 구매권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처음에 예약을 받은 수량에서 90% 이상이 회수되었다. 이제 남은 손님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현 씨가 안 보이네…….’

이번에는 인터넷 티켓팅으로 미리 예약을 받았다. 선착순 50%, 추첨 50%였다. 그러니 그가 예약에 실패했을 수도 있지만.

아니면 내가 오늘 바쁠 걸 알아서 배려했을 수도 있고.

그가 예약은 실패했지만 아는 사이니까 그냥 커피를 팔아 달라느니 하는 말을 할 성격도 아니지.

‘으음, 그래도…….’

좀 아쉽다. 당연히 올 줄 알았는데.

우리 아직 해야 할 이야기도 남지 않았던가?

오늘 그를 만나면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 더 기다릴 필요 없다고. 아니, 내가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다른 지인들도 오늘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아까 이초록이 화분을 선물해 준 것이 전부. 자주 오던 주노을도 오늘은 소식이 없고, 큰아버지와 권지운 역시 일언반구도 없다.

“…….”

깊이 생각하지 말자.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만들면 될 일이다.

그동안 한 달이 넘게 휴업했으니 카페에 흥미를 잃었을 수도 있지. 멋대로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은 좋지 않다.

끊임없이 밀려들던 손님의 행렬이 끊겼다. 이 틈에 잠시 쉬면 되겠다. 한참 동안 바쁘게 일했으니 아스가 피곤할 테다.

나는 얼른 카페모카를 한 잔 만든 뒤 계란빵과 함께 쟁반에 담았다.

“아스, 안에 들어가서 이제 좀 쉬어. 여기 간식 있으니까 먹고.”

그런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스가 있던 쪽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 아스, 어디 있어?”

분명 저기서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는데? 잠깐 화장실이라도 갔나?

조금 전까지 바닥에 늘어져 있던 미음이와 라임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미음아, 라임아! 뭐 해?”

나는 바닥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통통거리는 소리도 미음이의 우당탕하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

어느새 가게 안에 남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창문 앞으로 가 바깥을 확인했다. 바깥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순식간에 이 공간에 나만 혼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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