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화 (4/862)

4화. 튜토리얼 (2)

[극심한 고통이 육체를 지배합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팔이 찢어질 것 같다. 숨이 멎을 것 같다.

연우는 그런 느낌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았다.

하지만 정신을 놓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만한 고통쯤은 몇 번이고 겪었다. 총에 맞아 목숨이 위험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화살이 박힌 곳은 왼쪽 어깨, 팔뚝, 종아리. 옆구리는…… 스쳤어. 상처가 찢어지긴 했어도 움직일 수 있다.’

판단이 서자마자 행동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이제 너덜너덜해지다시피 한 백팩을 높이 들어 올리고, 최대한 뒤쪽으로 재빨리 물러섰다.

‘분명 트랩은 어느 지점을 지났을 때 동시에 작동했어.’

그렇다는 건, 본격적으로 트랩이 밀집되어 있는 구역이 따로 있다는 것.

거기까지 최대한 피신해야만 했다.

물러나는 동안에도 쇠 화살은 계속 날아왔다.

처음에는 한두 개씩만 날아오던 게, 어느 기점에서는 네다섯 개씩 동시에 날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최대한 노출하는 걸 자제하면서 움직였다.

벽을 따라 상처에서 번진 핏물이 길게 남았다. 그 사이에도 장딴지에 쇠 화살 두 개가 추가로 박혔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쇠 화살은 쏟아지지 않았다.

연우는 쇠 화살로 무장하다시피 한 백팩을 바닥에 던지면서 벽에 등을 기댔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뜨거운 단내가 입가를 맴돌았다.

[출혈이 심각합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출혈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연우는 꺼지려는 정신도 겨우 붙잡았다.

여기까지 몸을 끌고 온 것도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만약 여기서 정신을 잃는다면 즉사였다.

연우는 찢어진 백팩 사이로 손을 불쑥 넣었다.

안에 수북하게 담겼던 물건들이 쏟아져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대신에 쇠 화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다행히 응급 키트는 바닥에 쏟아지지 않았는지 금세 잡혔다.

연우는 키트를 열어 소독약과 붕대, 미리 연결해 둔 의료용 바늘과 실, 그리고 기름을 먹인 솜과 라이터를 꺼냈다.

왼팔을 거의 사용할 수 없어서 물건을 집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연우는 지체 없이 왼쪽 어깨에 박힌 쇠 화살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뽑았다.

“큭!”

역시나 팔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

쇠 화살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연우는 두 눈에 핏대가 잔뜩 선 모습으로 솜에 불을 붙여 상처에 갖다 댔다.

치이익.

탄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화상을 입었습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화상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상처는 흉터와 함께 금세 아물었다.

연우는 같은 방식으로 다리에 박힌 쇠 화살들도 똑같이 뽑고 상처를 지혈했다. 그리고 그 위에 소독약을 발랐다.

다행스러운 건 신기하게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얻은 결과였다.

그는 모든 응급 처치까지 끝난 뒤에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왼쪽 팔과 다리에 쉽게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출발부터 이따위라니. 미칠 노릇이군.”

연우는 어이가 없어 욕지거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역시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나마 특성이 있어서 다행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유지하게 해 준다는 특성, 냉혈.

연우는 냉혈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원래도 정신력이 강한 편이긴 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끔찍한 상황에서도 빠른 사고(思考)와 판단을 내릴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내성’은 고통을 조금씩 덜어 주는 효과도 있었다.

그만큼 특성이 강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육체가 적응을 하는 것인지.

작용의 체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연우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기민한 사유 작용도 뒤따라왔다.

연우는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는 통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마치 맹수의 아가리처럼 흉포하게 느껴졌지만, 분명 거기에도 약점은 있었다.

‘화살이 날아오는 데는 일정한 타이밍이 있었어. 그리고 아주 미약하 지만 신호도 있었고.’

연우는 눈을 가느다랗게 좁혔다.

‘타이밍을 찾아야 해.’

쇠 화살이 장전된 트랩은 여러 장치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형태였다.

센서로 인기척을 포착하고, 톱니바퀴가 움직이며 방향을 가늠하고, 마지막으로 쇠 화살을 토해 내는 형태.

‘어둠 때문에 육안으로 쇠 화살을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해. 그보다 먼저, 톱니바퀴.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때가 쇠 화살의 위치와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야.’

하지만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쇠 화살이 발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3초가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소리가 아주 작았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작은 소리를 정확하게 포착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말은 쉬울지 몰라도 아주 예민한 감각과 반사 신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하지만 다행히 연우에게는 새로운 무기가 있었다.

‘스킬…… 감각 강화가 있었지.’

오감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하는 이 스킬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길 것이다.

튜토리얼은 절대 불가능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각자 맞는 기초 스킬이 주어지는 건, 그걸 이용해서 얼마든지 난관을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뿐.

연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변 소리에 가만히 집중했다.

집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런 것 역시 연우에게는 익숙했으니까.

[감각이 활성화됩니다. 청각이 강화됩니다.]

[‘감각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0.8%]

연우는 고요하기만 한 적막 속에서 들리는 모든 것들을 듣고자 했다.

하지만 듣는 건 도저히 쉽지 않았다.

수십 개의 자잘한 잡음 속에서 원하는 걸 찾아내기란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

뚝.

뚝.

어디선가 벽면을 타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그긍. 철컥.

쇠 화살이 재장전 되는 소리도 미약하게 들렸다.

그 외에도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잡음이 잡혔다.

그래도 침착하게 소리를 하나하나씩 더듬어 가면서 원하는 걸 찾고자 했다.

그러길 한참.

끼릭.

‘찾았다!’

기름칠을 하지 않아 삐거덕대는 소리였다. 분명 톱니바퀴였다.

연우는 눈을 뜨면서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한쪽으로 세게 던졌다.

퍽!

챙그랑.

대검이 천장 한쪽에 깊숙하게 박히더니 곧 부서진 기계 장치와 쇠 화살이 아래로 쏟아졌다.

‘됐다. 찾을 수 있어.’

연우는 눈을 반짝였다.

물론 다른 감각을 죽이고 청각을 계속 집중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통로를 통과할 방법을 찾았다는 게 중요했다.

연우는 삐거덕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여전히 몸 곳곳이 고통스럽다면서 비명을 질러 댔다.

왼팔은 움직이는 게 버거웠고, 한쪽 발은 절름발이 신세였다.

이런 상태로 움직이려는 게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연우는 느린 발걸음이라도 꿋꿋이 다시 트랩이 설치된 지점을 넘어섰다.

쉭!

다시 한 번 쇠 화살이 날아왔다.

‘오른쪽 어깨!’

이미 청각으로 톱니바퀴 소리를 들었던 연우는 쇠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가늠하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

퍽!

쇠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어깨 위를 통과, 그대로 벽에 깊숙하게 박혔다.

‘됐다!’

연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감각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5%]

통한다는 확신이 들자, 연우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바로 다음 지점으로 넘어갔다.

쉬쉬쉭!

화살이 다시 날아왔다.

‘네 개.’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관자놀이, 심장, 복부, 무릎.

연우는 머리를 옆으로 돌려 피하는 것과 동시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허벅지를 노리던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꽂히고, 대검의 면을 살려 복부로 오던 화살을 쳐 냈다.

채앵!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대검이 충격으로 부르르 떨렸다.

손아귀가 떨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그래도 짜릿한 감각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었다.

[‘감각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2.1%]

[힘이 1만큼 올랐습니다.]

[민첩이 1만큼 올랐습니다.]

스킬 숙련도와 함께 스탯도 같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망막을 채웠다.

‘힘과 민첩이 올랐다면…… 상태창.’

[플레이어: 차연우]

특성: 냉혈

힘: 11 민첩: 16 체력: 12 마력: 21

스킬: 용마안(0.0%). 감각 강화(2.1%). 시간 예지(0.0%).

‘역시.’

연우가 흡족하게 웃었다.

스탯이 올랐다.

현실에서는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시간과 훈련 강도를 필요로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쌓는 기록만큼 업을 달성한다. 여기 같은 곳이 어디 있을까.’

동생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이런 인터페이스 시스템 덕분이었다. 연우는 상태창을 끄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이제 알아채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반사 신경이 조금 더 느려.’

쇠 화살을 튕겨 낼 때. 대검이 반 박자 정도 늦었다.

감각으로 알아차린다고 해도 반응이 느리다면 말짱 도루묵.

연우는 청각에 집중했던 의식을 오른손 쪽으로도 일부 나눴다.

[감각이 활성화됩니다. 촉각이 강화됩니다.]

[‘감각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2.3%]

연우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쉭!

미간으로 날아오는 화살.

재빠르게 옆으로 쳐 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속도.

‘감각을 동시에 둘로 나누는 건 힘들어. 집중하는 건 청각과 오른팔만.’

두 눈이 빠르게 어둠 속을 훑고 지나갔다.

‘천천히. 하지만 과도하지 않게.’

연우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쉬쉬쉬쉭!

걸을 때마다 쇠 화살이 연거푸 쏟아졌다.

그때마다 연우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화살을 피하거나, 피하기 어려운 건 적당히 대검으로 경로를 차단했다. 그다음에는 차단하는 방법을 조금 더 다양하게 변형했다.

검면으로 화살을 빗겨 내고, 머리를 숙여 피했다. 측면으로 틀기도 하고, 앞으로 성큼 나서면서 정면에서 부딪치기도 했다.

퍽!

미처 방어하지 못한 화살이 오른쪽 등에 박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연우는 신음 소리 한 번 흘리지 않고 쇠 화살을 무심하게 뽑아냈다.

지혈을 한 뒤에 곧장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연우는 기계처럼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감각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3.1%]

[힘이 1만큼 올랐습니다.]

[체력이 1만큼 올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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