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화 (8/862)

8화. 튜토리얼 (6)

철그럭, 철그럭!

청동으로 만들어진 허수아비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연우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연우는 몸을 틀어 허수아비를 피했다.

허수아비는 단숨에 간격을 좁혀 왔고, 연우는 녀석이 달려오던 그대로 안다리를 세게 걸어 넘어뜨렸다.

단단한 경도 때문에 다리가 아팠지만, 연우도 근력이 그만큼 늘어서 충분히 감당할 만했다.

그다음 허수아비는 정면에서 부딪쳤다.

팔꿈치를 뾰족하게 세워 녀석의 가슴팍을 후려치고, 반동으로 밀려나는 틈을 타서 겨드랑이 아래로 쏙 빠져나갔다.

덩달아 여러 트랩들도 같이 작동했지만, 연우를 잡을 수는 없었다.

[민첩이 1만큼 올랐습니다.]

[체력이 1만큼 올랐습니다.]

……

[‘감각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5.6%]

……

[‘감각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6.9%]

……

각 트랩을 통과할 때마다 스탯이 올랐다.

연우는 이 오른 스탯을 바탕으로 더 정교한 동작을 구사했고, 덕분에 스킬 숙련도도 같이 올랐다.

그럼 그 오른 숙련도만큼 예민해진 감각으로 트랩을 통과, 새롭게 스탯이 또 올랐다.

스탯 상승-숙련도 상승-스탯 상승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덕분에, 연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A구획을 뛰었을 때보다 훨씬 빨라.’

연우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발이 훨씬 가벼웠고, 손에 힘이 실렸다.

그렇게 허수아비가 열 개 정도가 남았을 때.

여태 앞을 막기만 하던 허수아비가 처음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마치 사람처럼 어깨를 단단히 세우면서 연우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쾅!

연우는 벽에 있는 힘껏 부딪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쇠 화살에 처음 꽂혔을 때와 똑같은 느낌.

숨이 턱 하고 막히는 통증에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멀찍이 뒤로 떨어졌다.

반면에 허수아비는 부딪쳤던 자세 그대로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있었다.

앞에서 봤던 허수아비와는 다르게 구리로 만들어진 듯, 표면이 붉은 빛깔로 번쩍였다.

탄탄한 어깨가 위압적이었다.

‘이 녀석이 플레이어를 모방한다는, 그 녀석들인가?’

[구리 허수아비]

플레이어의 동작과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는 허수아비. 일정 범위 내에서는 공격도 가능하다.

동생도 이 녀석들에 대해서 따로 언급을 해 뒀었다.

A구획 보스룸의 진짜 보스는 허수아비들이 아니었다. 가장 뒤에 있는 10마리의 구리 인형들. 녀석들은 플레이어를 똑같이 따라 해서 신경을 박박 긁어 대는 놈들이었다.

단단하기는 왜 또 그렇게 단단한지. 때문에 우리는 녀석들에게 한참 동안 붙잡혀 있어야만 했다.

돌파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정면으로 부수거나.

아니면.

‘찍어 누르거나.’

연우는 대검을 고쳐 쥐었다.

구리 인형은 그 전까지 플레이어가 A구획에서 수련하고 획득했던 것들을 시험한다.

3명이 팀을 짜면 3개가, 5명이 오면 5개가 뭉쳐서 플레이어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똑같은 기술을 모방하면서 그것을 뛰어넘기를 강요한다.

뛰어넘는다면 보스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뛰어넘지 못한다면 영영 발목이 묶이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못한다면?

죽음뿐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이미 A구획을 몇 번이고 통과하면서 한계를 계속 했던 몸.

이런 구리 인형은 귀찮기만 할 뿐,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단번에 보스룸을 관통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가로막힌 게 짜증 날 뿐이었다.

용마안을 활짝 열고, 구리 인형을 이루고 있는 결을 찾았다.

그리고 대검을 찌르려는 찰나.

“그 녀석은 센서로 움직이고 있어. 센서를 찾아서 노려!”

한쪽 구석.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연우는 이미 감각으로 녀석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관여하고 싶지 않아 그냥 무시했다.

구리 인형이 손날을 바짝 세워 연우의 머리를 노렸다.

연우는 살짝 옆으로 몸을 틀면서 녀석의 관절을 잡아 꺾었다.

콰드득.

녀석의 팔뚝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연우는 녀석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역수로 쥔 대검을 결이 응집된 장소에 세 차례 연거푸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대검을 상수로 고쳐 쥐어 복부를 세게 후려쳤다.

콰앙!

구리 인형은 마치 폭죽처럼 수십 개의 파편으로 터져 사방으로 튀었다.

후두둑.

구리 인형의 조각들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먼지가 풀풀 날렸다.

연우는 어깨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 냈다.

“마, 말도 안 돼…….”

뒤쪽에서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들렸다.

* * *

연우는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명이 잘 닿지 않는 구석.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어떤 청년이 숨어 있었다.

녀석은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랐다.

그러다 지지 않겠다는 듯, 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연우를 노려봤다.

연우는 무뚝뚝하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청년은 이를 악물었다. 곁눈질로 슬쩍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다 연우가 관심을 가지는 게 자신이라는 걸 알고 더더욱 눈에 힘을 줬다.

하지만 깡이 있어 보이는 겉보기와 달리 다리는 살짝 떨고 있었다.

겁이 나면서도 혹시 연우가 해코지를 할까 싶어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연우는 얼핏 녀석에게서 호랑이 앞에서 꼬리를 바짝 세운 비 맞은 강아지를 떠올렸다.

청년 앞에 서서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뭘?”

청년이 콧잔등을 팍 찡그렸다.

“구리 인형이 센서로 움직인다는 것.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거다.”

“뭐? 그건.”

청년은 잠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우는 재촉하지 않았다. 참을성 있게 녀석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할 때까지 빤히 쳐다봤다.

‘이 플레이어, 한참 보스룸을 공략하던 그 팀원 중 하나야. 다른 놈들은 어디로 간 거지?’

연우가 A구획을 몇 번씩이고 돌던 6일 동안, 보스룸에서는 내내 통과도 하지 못하고 발목이 묶여 전전긍긍하던 팀이 있었다.

그때는 별반 관심이 없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남들은 보이지 않고, 혼자 남아 있을 줄이야.

혹시 구리 인형을 상대하다가 모두 죽은 것인가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 이렇다 할 시신이 없는 데다가, 청년의 주변에는 혼자서 끼니를 때운 흔적이 있었다.

‘버림받은 거로군.’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다.

튜토리얼을 통과하는 내내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팀원을 가차 없이 버리고 가는 경우가.

지구에서라면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이렇다 할 손가락질 받을 행동이 아니었다.

당장 자신들의 성과를 이루기에도 바쁜 튜토리얼 내에서. 필요에 의해서 결맹을 맺은 것일 뿐, 이렇다 할 친분도 없는 사이라면 이게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이 청년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털을 바짝 세우고 있지만, 풍기는 힘은 너무 유약하다.

연우를 보는 눈빛에는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피하고 싶어도 주변에 허수아비들이 가득해서 그러지 못할 뿐.

어떻게 탑에 입성할 생각을 한 것인지, 튜토리얼에 참관할 자격을 얻은 것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때문에 연우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었다.

애초 그는 튜토리얼을 통과하고, 선두 주자를 따라잡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니까.

괜히 발목 잡힐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구리 인형을 상대하던 중에 녀석이 소리쳤던 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구리 인형이 센서로 작동하고 있다는 말.

연우도 강화된 감각을 통해 겨우 알았던 것일 뿐, 보통 플레이어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이렇게 약해 보이는 자가.

보통 이런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보스룸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서 구리 인형의 패턴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눈치를 챘거나.

아니면.

‘구리 인형을 작동시키는 마력의 흐름을 읽었거나.’

마력.

혹은 마나.

연우가 계속 머릿속에 담고 있던 숙제였다.

그렇게 청년을 빤히 쳐다보길 한참.

청년은 입만 여러 차례 벙긋거리다 끝내 내뱉듯이 말했다.

“그게…… 보였어.”

“보였다고?”

“그래…… 구리 인형을 둘러싼…… 마력의 실이…….”

연우는 도중에 어떤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곧바로 용마안을 활짝 열었다.

두 눈의 동공 깊게 가라앉고, 파충류를 닮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흡!”

청년이 그걸 보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새하얀 가면 위로 둥둥 떠오른 세로 눈. 당연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어째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순간, 청년이 몸을 움찔 떨었다.

“무슨?”

“네가 하고 있는 모습 말이다. 위장이잖나.”

“……!”

청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우는 용마안에 더더욱 힘을 실었다.

그러자 청년을 둘러싼 여러 개의 결 안쪽으로 아주 작은 존재가 드러났다.

“나이는 열 살 내외? 어리군. 키가 작아. 하지만 너무 안개로 가려져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기는 힘들고. 평범한 인간이 아닌가 보지?”

청년이 이를 악물면서 바닥에 놔뒀던 칼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여차하면 뽑을 기세였다.

“날,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갑작스러운 말.

연우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어떻게 해?”

“날 어쩔 셈이냐는 거다!”

“내가? 왜?”

“그야, 내가…….”

청년은 말을 하려다 말고 뒷말을 겨우 삭이고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뜻이었다.

연우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관심 없다.”

“그럼?”

“내가 관심 있는 건 네가 어떻게 마력을 ‘볼’ 수 있고, 다룰 수 있냐는 거다. 그 방법이 궁금하다. 혹시 말해 줄 수 있나?”

“뭐?”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우가 출구 쪽으로 턱짓을 했다.

“물론 공짜로 가르쳐 달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여기에 내내 갇혀 있었던 것 같은데. 나가는 걸 도와주지. 여기에만 있어서는 식량 수급도 제대로 안 되고, 볼일도 제대로 못 볼 테니까. 어떤가? 너에게도 나쁜 조건이 아닐 텐데?”

청년의 눈가에 혼란이 가득해졌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투였다.

“만약 가르쳐 주기 뭣하거나, 대가가 부족한 거라면. 뭐, 어쩔 수 없지.”

연우는 청년에게서 마력을 배울 수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여겼다.

마력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건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친화도가 극에 달했다는 뜻이니까.

그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마력을 다루는 방식을 터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비밀리에 전승되는 것이라고 해도, 상대가 어린아이라면 어루만졌을 때 캐내기도 쉬웠다.

그 외에는 전혀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물론 상대가 이걸 기회로 삼아 뭔가 큰 것을 요구한다면 바로 내칠 생각이었지만.

이번이 아니더라도 찾다 보면 마력을 다루는 법은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연우는 여전히 청년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없자, 관심을 거두고 몸을 반대로 돌렸다.

“안 되나 보군.”

“그, 그게 아니라, 잠깐!”

연우는 다시 청년을 돌아봤다.

“왜 그러지?”

“지금 그 말,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야? 정말 마력을 다룰 줄 모른다는 거.”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마, 말도 안 돼! 마력도 다루지 못하면서 저런 일이 가능하다고?”

청년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연우의 주변을 둘러봤다.

부서진 구리 인형 조각들이 보였다.

그가 그토록 팀원들과 함께 물리치려고 아등바등하면서 노력했지만, 꿈쩍도 않았던 괴물.

아무리 스킬을 퍼붓고 물리적 타격을 입혀도 생채기조차 남지 않았던 인형이었다.

그런 걸 단 몇 번 만에 박살내 버려 놓고서 마력을 다룰 줄 모른다고?

도저히 청년이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청년을 이해 못하는 건 연우도 마찬가지였다.

“했다만.”

“…….”

청년은 고향에서 멋진 풍경화를 그려 놓고 ‘참 쉽죠?’라고 해맑게 웃던 어떤 아저씨를 떠올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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