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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랭커-13화 (13/862)

13화. 블랙 루트 (2)

자꾸만 요리조리 피해 가는 연우 때문에 단단히 약이 오른 걸까.

붉은 오공의 울음소리는 아주 날카로웠다.

타다닥!

‘약점. 약점이 어디지?’

연우는 붉은 오공의 근처만 자꾸 배회하면서 신경을 살살 긁었다.

A구획에서 꾸준히 쌓은 민첩과 체력 스탯 덕분에 속도가 떨어지거나 체력적으로 지칠 일은 없었다.

그러다 간간이 붉은 오공이 드러내는 허점을 파고들었다.

녀석에게도 유일하게 속살이 드러나는 장소가 있었다.

껍질과 껍질 사이.

마디 사이사이로 대검을 찌르고 갈랐다가, 그대로 뒤로 빠져나왔다.

캬아아!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바닥에 붉은 오공이 쏟은 핏물과 체액이 흥건했다.

그런데도 녀석은 절대 지칠 줄을 몰랐다.

더더욱 약이 바짝 오르고, 더욱 포악해졌다.

‘트랩과 몬스터 간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 이 차이를 확실히 실감해야만 해.’

단순히 회피만 하면 되었던 트랩과 다르게 몬스터는 직접 사냥도 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맹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

멀리 봐서는 아프리카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도 생명은 생명. 약점이 있을 거야. 약점. 잠깐. 약점?’

그러다 연우는 도중에 뭔가 번뜩이는 게 있었다.

‘용마안!’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시커먼 동공이 확장되면서 흑색으로 구분되는 시야로 붉은 오공을 잡았다.

검은 선으로만 이뤄진 녀석이 보였다.

마치 크로키를 한 것처럼 대략적인 형태만 잡혔지만, 윤곽 사이사이로 자잘한 결이 보였다.

그리고 결이 집중적으로 뭉친 지점까지.

‘찾았다.’

머리와 목 부근으로 이어지는 껍질 사이.

인간으로 치면 경추 부위였다.

왜 여태 용마안을 살아 있는 생명에게 써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늘 무생물에게만 쓰다 보니 거기에만 한정지어서 여겼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찾았으니 되었다는 생각에 용마안을 계속 유지하면서 붉은 오공의 움직임을 살폈다.

물론 약점을 찾아냈다고 해도 사냥이 순조로워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녀석은 빠르고, 매서우며, 강했으니까.

무엇보다 무생물과 다르게 붉은 오공의 약점은 계속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작은 지점을 정확하게 찌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용마안의 지속 시간이 길지 않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콰아앙!

연우는 부서진 돌가루 사이로 몸을 멀찍이 떨어뜨리면서 모든 감각을 더 예민하게 강화시켰다.

붉은 오공의 움직임을 더 세밀하게 살피고자 했다.

키키킥.

녀석이 둥근 벽면을 따라 크게 회전하면서 아래로 달려든다.

연우는 왼쪽으로 다리를 빠르게 놀리다가, 붉은 오공이 집게 입을 높이 들고 포효할 때를 노렸다.

‘지금!’

팟!

연우는 지면을 세게 박차 앞으로 튀어나갔다.

붉은 오공은 신경을 거슬리게만 만들던 먹이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구나 여기면서 집게 입을 달그락거렸다.

수십 개의 발이 움직이면서 뿔을 세운 황소처럼 와락 달려들었다.

연우는 다시 한 번 녀석의 머리통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껍질을 왼손으로 짚으면서 높이 뛰어 올라, 녀석의 목덜미에 올라탔다.

그리고 역수로 쥐고 있던 대검을 약점 부위에 세게 박아 넣었다.

퍽!

[‘용마안’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2.4%]

[상대의 결을 찌르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푸우우-

동맥이 지나가는 자리였는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여태 자잘하게 흘렸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이었다.

하지만 대검은 중간 깊이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약점에 다다르기 직전, 무언가에 단단히 걸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속껍질?’

연우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설마하니 외피 안에 또 다른 껍질을 둘러 약점을 보호하고 있을 줄이야.

용마안으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연우는 위기감에 녀석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쐐애액!

어느새 붉은 오공의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퍼억!

연우는 양팔을 교차해 최대한 상반신을 보호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뒤로 크게 튕겨 나 벽에 세게 충돌했다.

“컥!”

연우는 거칠게 피 화살을 토해 냈다. 몸이 으스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현기증이 핑 하고 돌아 정신을 차 릴 수가 없었다.

[극심한 고통이 육체를 지배합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심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쇼크 상태에 빠집니다.]

[붉은 오공의 체액에 체내로 스며들었습니다. 중독 상태에 빠집니다.]

하지만 연우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활성화된 감각 상태를 이용해 몸 상태를 빠르게 점검했다.

‘부러진 갈비뼈 4개. 척추 부위 2개 골절. 왼쪽 허벅지 정맥 파혈. 오른쪽 발목 아킬레스건 절단.’

누가 봐도 당장 움직이기 힘든 중상.

붉은 오공도 대가리를 치켜들며 화살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집게 입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연우는 어떻게든 당장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들을 유추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쇼크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충격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중독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

[스킬 ‘물리 내성’이 생성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당신, 인내와 불굴의 정신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 ‘전투 의지’가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 두 가지가 생성되었다는 메시지.

하지만 연우는 스킬을 확인할 겨를이 도저히 없었다.

그래도 두 스킬이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는 대강 알 것 같았다.

육체를 지배하던 끔찍한 고통이 한 순간 크게 가라앉았다. 대신에 의식은 더더욱 또렷해지면서 더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아주 잠깐 들었으니.

사고 가속(思考加速).

덕분에 연우는 붉은 오공이 달려들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많은 포지션들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그 순간.

키에엑!

집게 입이 면전으로 치달았다.

연우는 마침 손에 쥐고 있던 대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쾅!

‘흡!’

연우는 다시 크게 들썩이는 충격을 받았다. 상반신이 더 깊게 벽을 파고들어갔다.

간당간당하던 척추뼈 부위 한 개가 추가로 골절되고, 두 팔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그래도 억지로 대검에서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손아귀가 찢어져 핏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졌지만, 이를 악물었다.

두 눈에 핏대가 잔뜩 서 뻘겋게 충혈 되었다.

카카카칵!

붉은 오공의 집게 입은 대검에 가로막혀 아슬아슬하게 연우의 얼굴 앞에서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집게 입 뒤쪽으로 무저갱처럼 깊게 뚫린 목젖과 톱니처럼 자글자글하게 난 이빨들이 보였다.

붉은 오공은 당장이라도 연우를 잡아먹기 위해서 바동거렸다. 집게 입이 달그락거릴 때마다 대검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결국 연우가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었고, 붉은 오공의 집게 입은 거의 얼굴까지 다다랐다.

치이익.

입에서 쏟아진 체액이 땅에 닿자 바위가 녹았다.

그 순간.

연우의 몸이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다시 한 번 붉은 오공의 머리가 벽에 박혔다. 그사이 연우는 붉은 오공의 머리 아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디 외에 단단한 껍질이 없는 유일한 부위.

‘복부.’

눈앞에 매끈한 녀석의 복부가 있었다.

날이 거의 다 빠지다시피 한 대검의 끝을 그대로 찔러 넣었다.

퍼어억!

키에에엑!

붉은 오공이 끔찍한 고통에 대가리를 높이 치켜들면서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런데도 연우는 녀석의 복부에 깊숙하게 박힌 대검을 악착같이 붙잡았다.

녀석이 어서 떨어지라면서 몸을 마구 뒤척이면서 광란을 부려 댔다.

그럴수록 연우는 더더욱 깊숙하게 대검을 밀어 넣었다.

콰드드득.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이를 악물고 양팔이 들어갈 정도로 밀었다. 이전에 봐 뒀던 결이 뭉친 지점에 대검의 끝이 다다랐다.

빠각.

안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녀석에게 가장 필요한 부위일 터.

“내가 이겼다.”

연우는 차갑게 웃으면서 대검을 그대로 아래로 내리그었다.

촤아악! 푸우우-

복면을 따라 길쭉한 상처가 났다. 내장이 잔뜩 쏟아지고, 핏물이 튀었다.

동혈이 금세 시뻘겋게 물들었다.

키에에엑!

붉은 오공은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 댔다.

그러다 서서히 힘을 잃어 가더니 자신의 핏물로 이뤄진 웅덩이에 대가리를 처박고 쌔액쌔액거렸다.

털썩.

연우도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

이 이상은 손가락 하나 꿈쩍할 힘도 없었다.

붉은 오공은 그런 연우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노려봤다.

오랜 동굴 생활로 퇴화된 눈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그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곧 호흡이 멈췄다.

‘미칠, 노릇이군.’

연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A구획에서 시간을 보내고 플레이어 몇 놈을 상대하면서 이제 어느 정도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빌어먹을 튜토리얼은 절대 여유를 허락지 않았다.

역시 난이도가 높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태 수련했던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쓰러져 있는 건 붉은 오공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전투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연우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자신 역시 피를 너무 많이 쏟았다.

당장은 스킬의 힘에 기대어 어떻게든 의식을 차리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언제 꺼질지 몰랐다.

그 전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망석중이처럼 철저하게 망가진 몸을 이끌고 어기적어기적 기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 있는 하얀 이끼를 마구 뜯어 입 안에 우악스럽게 밀어 넣었다.

도저히 씹을 힘이 없었지만, 다행히 이끼는 물처럼 녹아 목젖을 타고 흘러갔다.

쏴아아.

체내에서 차가운 뭔가가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연우는 이번에는 붉은 오공의 단단한 껍질을 붙잡고 상반신을 일으켜 갈라진 상처 안쪽으로 얼굴을 밀어 넣었다.

썩은 악취와 역겨운 비린내가 가득한 곳을 마구 뒤지다가 드디어 저 안쪽 끝에 원하던 것을 찾았다.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맥박 치는 녀석의 심장.

연우는 입을 쩍 벌리면서.

콰드득.

심장을 물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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