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6화 (16/862)

16화. 블랙 루트 (5)

[현재 사냥한 몬스터의 수: 543]

던전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놀란 몬스터들이 각자의 구역을 벗어나 난동을 피워 댔다.

연우는 바로 그 틈을 타 대검을 역수로 쥐고, 개미굴에 난입했다.

키리릭!

들끓는 대기와 바닥에 깔린 불길 때문에 발을 디딜 틈도 없었지만.

연우는 숨을 한껏 참으면서 감각을 개미굴 쪽으로 전부 투사했다.

[전투 의지]

[감각 강화]

화아악!

스킬을 발동하는 것과 동시에 연우를 둘러싼 시간이 느릿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극한의 집중력과 함께 감각이 극대화되면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들이 뇌리 속으로 쏟아졌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끔찍한 두통이 뒤따랐지만, 틈틈이 연습을 해 둔 덕분에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5분!’

그리고.

쐐애액!

연우는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개미들의 명줄을 끊었다.

괴성을 질러 대면서 달려드는 놈들도 갑각이 무를 대로 물러진 상태. 처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 있는 심장 상당수를 못 먹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한꺼번에 잡았으니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질식사를 하거나, 아직 숨통이 붙어 있는 녀석들도 아직 상당히 많았으니 천천히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장 처치해야겠다는 만용은 부리지 않았다.

거친 폭발이 휩쓸고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개미굴에는 절반에 가까운 개미들이 살아 있었다.

죽은 녀석들 중 상당수가 새끼이거나 갓 부화할 준비를 하던 알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일꾼 개미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바토리의 흡혈검을 얻고 나서 정리해도 돼. 당장 위험한 건.’

키에엑!

그때 연우 앞으로 보통 군대개미보다 덩치가 5배는 될 것 같은 녀석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여왕개미!’

녀석은 한 순간에 자신의 소굴을 초토화시킨 범인에게 거친 분노를 드러냈다.

[보스 몬스터, 여왕 군대개미가 출현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정면에서 부딪치면 절대 이길 수 없을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여왕개미는 여섯 다리 중 두 개가 날아가고, 날개 쪽은 완전히 물러 터져 있었다. 갑각도 화상으로 짓눌려 보기 흉측했다.

하나 남은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면서 연우를 잔뜩 노려봤다.

쿵!

쿵!

대지를 들썩이면서 달려온다.

처음 붉은 오공을 만났을 때보다 더한 압박감이었다.

‘4분.’

연우는 개미굴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을 문을 빠르게 물색했다. 하지만 굴의 너비가 너무 넓어서 작업이 도무지 쉽지 않았다.

그사이 여왕개미의 다리가 벼락처럼 꽂혔다.

연우는 재빨리 바닥을 구르면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사이에도 물색은 계속 진행되었다.

‘3분.’

아슬아슬하게 남은 시간.

그때 연우의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개미알 둥지 너머에 가려진 자그마한 문.

‘찾았다!’

하지만 위치를 찾았다고 해도, 여왕개미는 절대 길을 내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2분.’

전투 의지와 감각 강화를 이용한 사고 가속은 빠른 판단이 가능해 편하긴 하지만, 끝나고 나면 두통과 현기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후유증이 있었다.

여기서 후유증을 겪었다가는 끝장이었다.

연우는 허리춤에 걸려 있던 대검 세 자루를 뽑아 여왕개미에게로 던졌다.

따다당!

키에!

하지만 여왕개미는 가볍게 옆으로 쳐 내면서 오히려 이런 걸로 자신을 잡으려는 거냐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쉭-

퍼억!

한 박자 늦게 뒤따라온 대검이 여왕개미의 하나 남은 눈알에 깊숙하게 박혔다.

키에에엑!

녀석이 고통에 차 난동을 부렸다.

그사이.

‘이제 1분!’

연우는 슬라이딩을 하면서 여왕개미의 배 아래로 통과했다. 동시에 대검을 역수로 고쳐 잡아 그대로 여왕개미의 다리 두 개를 잘라 버렸다.

쿵!

여왕개미의 몸이 기울어지면서 머리통이 지면에 처박혔다.

다른 개미들이 여왕을 지키기 위해 벌 떼처럼 모여들었다. 한꺼번에 움직이니 개미굴이 들썩였다.

그동안 연우는 개미들의 영역을 통과, 문에 완전히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순간, 사고 가속이 끝나면서 막대한 두통과 현기증이 몰려왔다.

연우는 헛구역질을 참으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 세게 닫았다.

쾅!

개미 하나가 다리를 뻗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문이 닫혔다. 공간이 완전히 단절되면서 녀석들을 겨우 저지할 수 있었다.

[‘흡혈군주의 신전’에 입장했습니다.]

“후우.”

연우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벽에 등을 기대면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쿵쿵쿵.

문밖에서 어서 이걸 열라면서 개미들이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드문드문 여왕개미의 괴성도 같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개미굴과 바토리의 방은 완전히 분리된 개념이었는지, 아니면 여기서 풍기는 어떤 기운이 녀석들의 접근을 막는 건지.

개미들은 계속 문만 두들길 뿐, 방으로 난입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연우는 어느 정도 두통이 가시자 주변을 살폈다.

70제곱미터 남짓한 좁은 공간.

하지만 천장은 아주 높아서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빛이 지면 일부를 밝히고 있었다.

거기에는 제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붉은빛깔이 감도는 다섯 계단 위의 제단.

양옆에는 불길한 녹색 불길을 토하는 청동 화로가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신상(神像)이 서 있었다.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두르고, 송곳니를 훤하게 드러내며 서 있는 여인.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눈빛이 또렷했다.

‘흡혈군주, 바토리.’

연우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다가, 곧 손에 쥐어져 있는 단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불그스름한 검손잡이. 번개 모양으로 독특하게 제련된 푸른색 검날.

크기는 대략 30센티미터 정도로 보였다.

‘저게, 흡혈군주의 애병, 흡혈검이란 말이지?’

[바토리의 흡혈검]

넘버링 352

분류: 한손 무기

등급: 유니크

설명: 흡혈군주가 애용했던 애병으로, 상대의 생혈(生血)을 빨아들인다.

군주의 사념이 남아 있는 신물이니만큼, 주인을 가린다고 알려져 있다. 선택을 받지 못할 시, 정신이 잡아 먹히게 된다.

* 피의 표식

대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대상을 ‘출혈’ 상태로 만든다. 출혈 상태가 된 대상은 공격력의 일정 비율만큼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는다.

* 흡혈군주의 권능

비활성화 상태의 능력. (봉인)

연우는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쥐었다.

바토리의 흡혈검은 일주일 때문에 벌어진 선두 주자와의 간격을 확 좁혀 줄 수 있는 히든 피스였다.

흡혈군주의 유산도 품고 있기 때문에, 탑에 입성하고 나서도 꾸준한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다른 사용 방법이 또 있지.’

연우의 시선이 아이템의 옵션을 향했다.

‘봉인’이라는 문구와 함께, 비활성화 표시가 되어 있는 마지막 옵션.

물론 이 옵션이 없더라도 바토리의 흡혈검은 충분히 뛰어난 무기다.

자체적으로 가진 공격력이 뛰어날 뿐더러, ‘피의 표식’ 옵션만 하더라도, 중상급 이상의 성능을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아티펙트의 진가는, 봉인되어 있는 마지막 옵션에 있었다.

‘이게 있어야 진정한 흡혈검이라고 할 수 있지.’

연우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신상의 시선이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연우는 예를 표하는 뜻으로 신상에다 가볍게 목례를 취하고, 바토리의 흡혈검에 손을 갖다 댔다.

그 순간.

‘흡!’

연우는 손바닥을 뚫고, 무언가가 체내로 비집고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뜨겁고, 끈적끈적하며, 이질적인 어떤 것.

흡혈검을 쥐고 있는 오른쪽의 손등과 팔뚝 위로 푸른 핏줄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해지고, 피부가 새하얘지며 검붉게 변했다.

혈관을 따라 검은 무언가가 타고 올라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고통에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설명창에도 적혀 있던 ‘주인을 가린다’던 문구가 다시 눈에 밟혔다.

흡혈군주는 역대 군주들 중에서도 가장 탐욕스러운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비록 나는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은 전부 다 혀를 내둘렀으니. 욕심은 악마 대공에 버금갈 정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남긴 검은 또 얼마나 욕심이 많을까?

흡혈검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송곳니를 번뜩이는 녀석의 위협을 찍어 눌러야만 했다.

하지만.

갓 튜토리얼에 입성한 플레이어가 흡혈검을 억누를 만큼 기량을 갖추고 있을까?

간간이 던전을 발견하고, 바토리의 흡혈검까지 찾았던 여러 플레이어들이 소식조차 없이 갑자기 증발해 버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 흡혈검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어떻게 다뤄야 할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흡혈검이 히든 피스로 주어졌다면, 거기에 따른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얀 이끼를 섭취하는 방법처럼?

동생은 오랜 연구 끝에 초보자들도 바토리의 흡혈검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것 또한 어떻게 보면 히든 피스라 할 수 있었으니.

‘히든 피스의 히든 피스.’

연우는 이중으로 트랩을 설치해서 플레이어들을 곤혹으로 빠뜨린 설계자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바토리의 흡혈검을 높이 들어 왼쪽 손등 위에 세게 찍었다.

콰직!

남들이 봤으면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광경.

하지만.

츠츠츠.

갑자기 혈관을 타고 오른쪽 어깨까지 올라갔던 검은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왼쪽 손등으로 쏟아졌다.

검은 기운은 왼쪽 손등과 손바닥에 응어리로 맺혔다. 바토리의 흡혈검도 형체를 잃고 흐물흐물 녹더니 왼손을 따라 감겼다.

손바닥 안쪽에 강제 이식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토리의 흡혈검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무기처럼 보이고, 설명에도 아티팩트라고 명시 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숨겨진 또 다른 형태가 있다는 점이었다.

‘주인을 가린다면, 가릴 수 없게 강제로 신체에다 이식해 버리면 그만.’

스킬.

바토리의 흡혈검은 원래 스킬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고난이도의.

탐욕스러웠던 흡혈군주는 죽으면서까지 자신의 애병이 타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진짜 능력과 모습을 봉인하고, 세상에다 던져 놓았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그 봉인이 풀린 것이다.

스스스.

바토리의 흡혈검이 어느새 완전히 녹아 사라졌다.

하지만 연우의 왼손은 겉보기엔 평상시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손바닥도 마찬가지. 평범했다.

방금 전까지 음습한 기운을 뿌려 대던 검은 기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증발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연우는 싱긋 웃으면서 손을 활짝 펼쳤다.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손바닥.

하지만 의식을 왼손에 집중하는 순간.

화아악!

갑자기 손바닥을 따라 검은 기운이 멍울처럼 맺히더니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면서 옆으로 잔뜩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짐승의 아가리처럼 톱니 이빨이 자글자글한 또 다른 입이 되었다.

차각! 차각!

톱니 이빨이 닫혔다가 열리기를 반복했다.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바토리의 흡혈검, 진(眞)]

넘버링 66

숙련도: 0.0%

설명: 흡혈군주가 애용했던 애병이 숨기고 있던 진짜 모습. 상대의 생기(生氣)를 뽑아 영혼을 먹어 치운 다고 한다.

* 피의 표식

대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대상을 ‘출혈’ 상태로 만들어 체력과 마력을 일부 빼앗아 온다. 출혈 상태가 된 대상은 공격력의 일정 비율만큼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는다.

* 흡혈군주의 권능

정기(精氣)를 뿌리까지 뽑아 능력치 일부를 빼앗아 온다. 숙련도가 최고치에 이를 경우, 일정 확률에 따라 상대의 스킬을 강탈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넘버링 66!

당대 탑의 최상위 랭커들도 쉽게 얻지 못한다는 넘버링 스킬이.

그것도 유니크 스킬이 연우의 손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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