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0화 (30/862)

5화. 동족 포식 (5)

순도 높은 마정석은 고급 아티팩트의 기초 소재가 된다.

당연히 구매층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도 늘 일정했다.

그런데.

신비 상인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마정석을 구매했다.

이는 갑자기 마정석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뜻.

갑자기 랭커의 숫자가 늘어났을 리는 없을 테니, 이유는 단 하나.

‘그만큼 고급 아티팩트를 대량으로 생산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뜻이겠지. 바로, 전쟁.’

팀 아르티야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탑 내 수많은 클랜과 랭커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생하며 아르티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아르티야가 사라진 지 시간이 꽤 흐른 지금.

탑 내의 공생 관계는 흐지부지한 것이 되었고, 다시 그들 간의 대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이렇다 할 큰 반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튜토리얼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테니까.

하지만.

최소한 물밑으로 그만한 준비들이 일어나는 건 확실했다. 군비 경쟁이 그 증거였다.

‘오월동주는 있을지 몰라도, 계속된 평화는 없는 이리들의 세계. 그것이 바로 탑일 테니까.’

연우는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게 웃었다.

저들이 서로 물어뜯으면 물어뜯을수록 노출되는 약점도 더 많아질 테니까.

그러나.

‘아직은 아니지.’

여전히 연우는 아직 탑에도 들어가지 못한 존재.

저들의 목덜미를 깨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

아직은 한참 뒤에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 * *

칸과 도일은 한순간에 갑자기 증표를 얻은 연우의 수완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드디어 모든 골치 아픈 것들이 끝났다는 사실에 기지개를 켰다.

B구획의 대기실로 돌아가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히든 피스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칸과 도일은 슬쩍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미 둘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가까운 사이. 의견을 주고받는 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칸이 대표로 나서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무엇을?”

연우는 새롭게 얻은 가면을 고쳐 쓰고, 단검을 줄로 혁대에 고정시키다 그를 돌아봤다.

“너, 앞으로의 일정 말이야. 어떻게 되냐고. 이번에 증표도 제법 모았을 것 아냐? F구획으로 바로 넘어 갈 예정이냐?”

연우는 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튜토리얼 랭킹을 확인했다.

[튜토리얼 랭킹]

1위. 에도라(63,101Point)

2위. 판트(57,612Point)

3위. 칸(55,212Point)

……

52위. 비공개(32,594Point)(본인)

……

‘대략 1만 포인트 정도가 올랐나?’

증표를 갑자기 대량으로 얻은 게 유효했던 것 같았다.

원래 150위였던 게 벌써 52위까지나 올랐으니.

남들이 봤다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를 속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1위와의 격차는…… 미쳤군.’

2위 판트는 거의 포인트 변동이 없었다. 칸은 하르간의 둥지 퀘스트를 깨면서 5천 포인트를 챙기며 2위의 턱밑까지 쫓았다.

하지만 1위의 에도라는 달랐다.

아직도 먹어 치울 공적치가 많이 남았던 건지, 아니면 1위의 자리를 확실하게 굳힐 셈이었던 건지, 그 짧은 사이에 다시 6천 포인트 이상을 쌓은 상태였다.

하지만 연우는 여전히 1위까지 쫓아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아직 내게는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으니까.’

연우가 처음 튜토리얼에 들어왔을 때부터 목표로 하던 녀석이 있었다.

E구획에서 거주하는 놈.

튜토리얼 내 최고의 히든 피스.

‘이제 그놈을 찾아갈 때다.’

육체도 어느 정도 완성되었고, 필요한 것들도 챙겼다. 연우는 이들과 헤어지고 바로 그쪽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더구나 동생이 겪은 피해를 봤었다. 연우는 팀이나 클랜에 대한 불신이 아주 컸다.

그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F구획으로 바로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칸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야, 그럼 너 혹시.”

“하지만 가야 할 곳이 있다.”

칸의 말이 도중에 멈췄다.

“가야 할 곳?”

“그래.”

“으음.”

칸이 침음을 삼킬 때, 도일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형, 사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저희와 함께 다니실 생각은 없으세요?”

“너희와?”

“예. 튜토리얼이 끝날 때까지. 아니, 앞으로도 계속이요.”

연우를 보는 도일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사실 칸 형이랑 둘이서 이야기 많이 나눠 봤어요. 카인 형과 저희의 케미도 나쁘지 않았고, 활약도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잖아요? 어쩌면 셋이서 팀을 이루면……!”

도일은 잔뜩 흥분하며 속사포로 말을 쏟아 냈다.

하지만.

“아니. 안 돼.”

연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도일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말했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해결하고 뒤늦게 합류하셔도…….”

연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 나는 팀에 별 관심이 없어. 어딘가에 얽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러신가요. 아쉽네요.”

도일의 어깨가 축 가라앉았다.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때 칸이 도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어쩔 수 없지. 사람 개개인 성향이란 게 있으니까. 맞지 않다면야,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 탑에 넘어가서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을 것도 아니고. 그래도 여기 나갈 때까지는 같이 갈 거지?”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칸이 씩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그럼 이만 돌아가자. 밖에서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 *

리자드맨의 늪지대는 아주 넓었다.

그렇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돌아다니는 리자드맨도 많아서 연우는 늪지대를 빠져나갈 때까지만 그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플레이어들은 연우, 칸과 도일의 뒤만 쫄래쫄래 붙어 다녔다.

여기서 일행들과 떨어진다면 바로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과 일정한 거리는 띄운 상태였다.

칸이 브랜드를 압박할 때에 보였던 모습이 두려움을 안긴 것이리라.

결국 플레이어들은 칸과 도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이상한 풍경을 연출했다.

칸과 도일은 그런 사람들의 어정쩡한 태도가 불편하기만 했다.

“저 사람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연우는 슬쩍 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칸과 도일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어쩔 수 없으니까. 늪지대를 나갈 때까지는 동행해야겠지.”

사실 두 사람도 연우와 마찬가지로 바로 어딘가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원하던 하르간의 왕관도 얻었으니, 더 이상 이렇게 죽치고 있을 이유도 없건만.

튜토리얼의 남은 시간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계속 데리고 다닐 의리는 없을 텐데.”

“야, 그래도 사람이 인정(人情)이 있지. 어떻게 그냥 두고 떠나냐?”

칸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연우를 타박했다.

하지만 연우는 담담한 눈빛이었다.

인정이라.

그것도 튜토리얼에서?

늘 느꼈던 거지만, 이 둘은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무르다.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그런 게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는 법인데.

하물며 뒷덜미를 노릴 기회만 노리는 승냥이들이 가득한 이런 곳이라면, 더더욱.

“글쎄.”

연우는 하고 싶은 충고가 많았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말을 해도 제대로 듣지 않을 게 뻔한 데다가.

어차피 곧 여기서 떠날 몸이었으니까.

* * *

연우가 미심쩍어하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저, 호, 혹시 머, 먹을 것 좀 나눠 줄 수 어, 없으실까요?”

처음에는 별 게 아니었다.

쭈뼛대면서 찾아와 먹을 걸 구걸하는 전부였다.

억류되어 있느라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사람들.

도일은 미처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가지고 있던 식량 중 일부를 나눠 줬다.

육포를 받은 플레이어는 품에 꼭 끌어안으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저절로 그쪽으로 돌아갈 때, 순간 플레이어와 이든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플레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도 될 것 같다는 뜻.

‘그렇단 말이지?’

이든은 입꼬리를 싹 말아 올리면서 웃었다.

사실 식량을 구해 보라고 보낸 건 바로 이든의 지시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챙기려 할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뭐야, 그냥 호구잖아?’

사실 이든이 브랜드에게 제시했던 계획은 간단했다.

‘저와 동료들이 진상을 부려서 이동을 더디게 만들 테니, 형님이 나서서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말씀해 주십시오. 늪지대 외곽에 바위 세 개가 놓인 곳 기억하시죠? 그쪽으로요.’

‘그 뒤에는?’

‘그럼 거기서 쉬는 동안, 이 녀석이 움직일 겁니다. 저 세 사람도 리자드킹을 잡느라 많이 지쳤을 테니,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쉬는 동안 저와 이 친구가 같이…… 그 뒤에는 아시죠?’

모두 지쳤으니 휴식을 취하자는 명분을 들어 정해진 장소로 이동, 거기서 경계를 풀었을 칸과 도일 등의 물건을 훔치자는 게 작전의 내용이었다.

‘그동안 놈들의 상향을 지켜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야.’

이든이 가진 특성은 ‘포착’.

상대의 습관이나 버릇을 면밀히 관찰, 성격과 행동을 유추해 내는 능력이었다.

이런 특성 덕분에 그동안 이든은 별다른 재주가 없어도, 오로지 눈치와 말재주만으로 E구획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칸이 브랜드를 압박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고 난 뒤에 느낀 점은 하나.

칸이 중요시 여기는 점이 이득이나 명예가 아닌, ‘의리’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성향이 다르고,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특히 플레이어들은 스스로가 추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 절대적인 ‘선’을 추구한다.

이든이 봤을 때, 칸과 도일이 추구하는 의리는 때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용이 가능했다.

저런 사람들은 보통, 의리에 발이 묶여 되레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냥 모른 척해도 되거나, 구해 주고 나서 버려둬도 될 플레이어들을 책임감 하나 때문에 이렇게 밖에까지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동료의 명예를 깎아 먹는 뒷담화를 싫어하는 모습도 그랬다.

‘쉽게 말해, 적절한 선만 넘지 않으면 얼마든지 이용해 먹을 수 있단 뜻이지.’

그래서 이든은 수하를 시켜 선의 정도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선을 알 것 같았다.

‘의리나 자존심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거지? 그런 정도라면야. 흐흐.’

물론 걸리는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조금 찝찝한 게 있다면 저놈인데.’

이든은 칸과 도일의 뒤를 말없이 가만히 따라다니기만 하는 가면 쓴 사내, 연우를 힐끔 훔쳐봤다.

‘저놈은……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리자드킹을 처치하는 데 가장 큰 공적을 세웠다는 녀석.

그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튜토리얼 내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보통 저런 경우는 딱 하나였다.

스스로를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으며,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그리고 상황 판단을 냉정하게 내릴 줄 안다.

이든의 특성으로도 여태 뭔가 보이는 점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더구나 이따금 연우를 파악하기 위해서 수하들 사이에서 몰래 그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우연인지 아닌지, 연우도 똑같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하얀 가면 아래, 차갑게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 마치 도깨비불이 떠다니는 것처럼 스산하고, 벌거벗은 것처럼 속내를 다 엿보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든은 계획을 중단하지 않았다.

아무리 수상쩍다고 해도 자신들의 계획을 미리 눈치채는 건 힘들뿐더러.

‘브랜드, 저 멍청한 놈이 총대 메고 알아서 판을 잘 깔아 줄 테니까.’

이든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브랜드를 떠올리면서 비웃음을 던졌다.

사실 그가 계획한 작전은 브랜드에게 말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건 1차. 본격적인 건 바로 그 뒤부터였다.

증표나 아티팩트만 조금 훔칠 테니 눈길을 끌어 달라?

전부 헛소리였다.

‘훔치는 정도로 끝내서 되겠어? 상대는 칸과 도일이라고. 랭킹 3위와 11위. 게다가 다른 놈은 리자드킹을 거꾸러뜨린 놈이고. 그런 놈들을 모조리 털면…… 1위도 절대 꿈은 아니라고.’

이든은 잔혹하게 눈빛을 빛내면서 혀로 입술을 축였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눈치와 타이밍이었다.

연우도 이 덫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든은 즉시 수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수하들과 입을 맞춘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꾀병을 부리기 시작했다.

“칸 님, 칸 님. 저, 지금 갑자기 몸이 안 좋은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조금만 천천히 가 주시면. 너, 너무 힘드네요.”

“저, 화장실 좀.”

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제자리에 주저앉아 행패를 부리는 놈들까지 생겼다.

“못 가! 더는 못 간다고! 갖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나가 봤자 몬스터들 먹이밖에 더 되겠냐고! 차라리 여기서 죽치고 앉아 있는 게 낫지!”

칸과 도일은 살짝 인상을 구겼다.

가뜩이나 갈 길이 먼데 계속 발목을 붙잡고 있으니.

아니, 이건 붙잡는 수준이 아니라 질질 끌고 있는 수준이었다. 짐덩이가 아니라 족쇄라고 해야 할까.

도일이 칸을 돌아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눈빛.

칸은 인상을 구겼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서도 앞길이 막막할 플레이어들의 마음이 영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응석을 다 받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차라리 증표를 몇 개 떼어 주고 여기서 헤어져 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던 순간.

‘지금!’

이든은 곧바로 브랜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브랜드는 플레이어들을 대표하고 있던 인물. 그런 사람이 나서서 중재를 한다면 어느 정도 먹히겠지.

브랜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쩍 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아무래도 사람들이 그동안 억류되어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피곤해져서 그런 것 같소. 세 분 다 길이 바쁘신 건 알지만, 그래도 근처에서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어떠실는지?”

칸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도일과 연우를 돌아보면서 의견을 구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이든은 히죽대면서 웃었다.

‘자, 어서 가자고. 너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이 아주 많을 거란 말이지.’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수십 명으로 이뤄진 부대. 스캐빈저 무리였다.

지정된 장소로 들어선 순간, 트랩이 발동되면서 칸을 비롯한 그 무리는 그들의 식량거리로 수중에 떨어지겠지.

크게 한탕 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랫입술을 혓바닥으로 축이는 순간.

‘어?’

이든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린 곳.

귀신처럼 새하얀 가면 아래, 연우의 두 눈이 살짝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웃어?’

그 생각에 미치는 순간.

‘들켰……!’

이든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내뺐다.

여태 숨어 있었던 자신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쉭-

앞으로 뭔가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퍼억!

미간에 화끈한 느낌이 들면서 시야가 빨갛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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