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2화 (42/862)

17화. 아카샤의 뱀 (10)

원래 내단의 옆에는 독샘이 붙어 있었다.

몬스터들을 단번에 녹일 정도로 지독한 산성의 독이 담긴 독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 내단을 보호하기 위해 아카샤의 뱀이 진화한 방식이었다.

그래서 내단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을 필요로 했지만.

‘내단이야 그냥 먹어 버리면 그만이지.’

바토리의 흡혈검은 기운이 담겨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운다. 아무리 독샘이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덕분에 연우는 내단을 손쉽게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독샘은 따로 분리시켜 운디네의 잔이 보관된 가방 안에 넣어 뒀다.

‘독샘도 같이 흡수한다면 큰 도움이 될 테지만…… 그래도 기에스의 눈을 만드는 주요 재료가 될 거니까.’

[‘바토리의 흡혈검’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6.2%]

[막대한 양의 정기(아카샤)가 쏟아집니다. 마력으로 성질 변환이 이뤄집니다.]

[막대한 양의 독기가 폭발합니다. 마력으로 성질 변환이 이뤄집니다.]

[반룡체의 특성이 적용됩니다.]

[마력이 8만큼 올랐습니다.]

[마력이 6만큼 올랐습니다.]

……

[‘마력회로’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2.1%]

[정기와 독기의 양이 너무 많아 마력으로 치환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체력을 필요로 합니다.]

[반룡체의 특성으로는 모든 마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단, 육체의 재성장도 병행됩니다.]

[성질 변환이 이뤄집니다.]

[중단되었던 계승 작업이 다시 재기됩니다. 44, 46…… 48%…….]

[안전한 장소에서 마력을 다스릴 것을 권고합니다. 외부의 강한 충격이 있을 시, 치환 작업이 더뎌지거나 폭주할 우려가 있습니다.]

[예상 소요 시간: 15시간]

콰드득! 콰득!

내단이 품고 있는 기운의 양은 연우가 어떻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았다.

내단 속에는 아카샤의 뱀이 급성장을 이루면서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정기와 죽기 직전에 품었던 원한이 뒤섞여 있었다.

게다가 바토리의 흡혈검은 근원까지 뿌리 뽑으면서 효율적인 흡수를 추구하니.

가뜩이나 많은 양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려다 보니 육체가 급격한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강화골을 이뤘을 때보다 훨씬 심할지도 모르는 변화.

인터페이스 시스템이 경고한 대로 육체가 안정화될 때까지 외부로부터 격리되는 게 좋았지만.

연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일어서서 고블린 왕과 오크 왕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력회로를 따라 어마어마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회로가 끊어지고, 막혔던 회로가 뚫리고, 근육과 골격이 부서졌다가 재조립되었다.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연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군데의 통각을 차단해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물리 내성 스킬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흡!”

“말도 안 되는……!”

붉게 충혈된 연우의 눈을 마주 친 두 왕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연우를 따라 휘감아 도는 막대한 기의 잔재 폭풍 때문이었다.

고오오-

내단을 흡수하면서 필요 없다 여겨져 밖으로 배출된 기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아, 기류를 바꿔버린 것이다.

더구나 연우가 풍겨 대는 기도는 본능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포식자.

그랬다.

이건 포식자의 눈이었다.

아카샤의 뱀보다 더 끈적끈적하고, 공포를 자극하는 포식자가 눈앞에 있었다.

“죽인다아, 취이익!”

하지만 오크 왕은 그깟 공포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와락 달려들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 사태를 만든 원흉이 연우라는 걸 너무 잘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건 연우도 바라던 상황이었다.

두 왕은 하르간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보스 몬스터.

그런 것은 당연히.

‘막대한 공적치와 증표를 품고 있다.’

그리고 놈들은 아카샤의 뱀과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반면에.

연우는 육체가 성질 변환을 이루는 것 외에 지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

연우는 카르슈나의 단검을 역수로 쥐면서 그대로 옆으로 돌렸다.

촤아악!

오크 왕의 머리통은 무기와 함께 잘려 허공으로 튀었다.

[보스 몬스터, 파락(오크 킹)을 처치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연우는 메시지를 전부 확인하지 않고, 연이어 미끄러지듯이 고블린 왕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고블린 왕은 굳은 얼굴로 두 개의 핼버드를 높이 들었다.

녀석의 두 눈은 오크 왕과 달리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그러면서도 순순히 목숨을 내어 주지는 않겠다는 듯, 전력을 다해 덤볐다.

콰앙!

* * *

콰드드득.

골격이 다시 한 번 크게 찢어졌다가 도로 붙었다.

이제는 통각을 차단해도 끔찍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질 정도였다. 덕분에 물리 내성의 숙련도가 단 번에 17%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연우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오크의 머리를 잘라 버렸다.

촤악!

원통함에 잠긴 오크의 머리통이 데구르르 바닥에 굴렀다.

“하아!”

연우는 길게 날숨을 내뱉었다.

두 왕이 죽고 난 뒤, 남은 몬스터들이 택한 길은 두 가지였다.

끝까지 저항하거나. 도주하거나.

도주하는 놈들은 굳이 쫓지 않았다. 어차피 허약한 놈들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항하는 녀석들은 철저하게 제거했다. 그리고 톱니 이빨을 쑤셔 넣어 정기까지 빼앗았다.

연우는 단순히 내단과 독샘으로만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강탈하는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육체는 더 크게 발전하고 계승 작업 속도도 빨라진다.

보다 더 많은 것을 탐하고, 보다 더 많은 것을 삼킬 생각이었다.

탐욕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수백 마리나 되는 몬스터들을 먹어 치우다 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크게 지쳤다.

이제는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뱀 굴로 가서 조금 쉴까 싶었지만, 연우는 다시 카르슈나의 단검을 쥐었다.

아직 귀찮은 놈이 한 명 남아 있었으니까.

“이만 나오지.”

연우는 한쪽으로 무심한 눈빛을 던졌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

하지만 곧 공간이 출렁인다 싶더니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딱딱한 표정으로. 하나 남은 팔로 어깨를 부여잡은 채로.

베인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연우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대놓고 감정 조절도 하지 못해 기운을 출렁여 대는데 모르면 등신이지.”

“……괴물 같은 놈.”

베인은 두려움에 젖은 눈길로 연우를 바라봤다.

그는 여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카샤의 뱀이 날뛸 때부터, 연우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내단을 삼키고 남은 몬스터들을 정리하기까지.

그 뒤에 든 생각은 하나.

두려움이었다.

하얀 가면을 쓰고 귀신처럼 돌아다닌다. 그리고 칼을 휘두를 때마다 적의 목숨을 앗아 가는 모습은 사신(死神)을 떠올리게 했다.

두려움과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 힘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기에 있는 모든 히든 피스를 독차지할 수 있다면.

베인이 봤을 때, 연우의 실력은 탑에서도 충분히 통할 솜씨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이 가져야만 했다.

그래서 연우가 지치기를 기다렸고, 가져갈 시간이 찾아왔다.

스르릉!

베인은 허리춤에서 천천히 검을 뽑았다.

1조에 들었을 때, ‘섬’에서 직접 그에게 내려준 보물 같은 아티팩트.

차가운 쇳소리가 퍼졌다. 칼 손 잡이 끝에 걸린 녹색 수실도 같이 떨렸다.

“하지만 네가 가진 괴물 같은 그 힘, 내가 가져가야겠다.”

연우가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네가? 무슨 수로?”

“여유로운 척하지 마라. 네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베인은 연우가 허세를 부린다고 여기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싸울 수 있는 몸이어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그동안 숨어 있으면서 휴식을 취한 상태.

한쪽 팔이 날아간 게 짜증나긴 했지만, 그래도 전력을 펼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연우는 베인이 다가올 때까지 비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무슨 수로 가져가겠냐고 묻지 않나? 여긴 나만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무슨……!”

베인이 헛소리하지 말라면서 한 마디 쏘아붙이려던 그때.

피융-

난데없이 허공을 가르는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퍽!

어떻게 방어할 새도 없이 관자놀이에 화살이 깊숙하게 박혔다.

화살에 실린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베인은 머리통이 옆으로 꺾이다시피 하면서 허공으로 튀어 바닥에 굴러야만 했다.

죽은 녀석의 눈가에 저 멀리, 돌산 위에서 이쪽으로 시위를 겨누고 있는 갈리어드가 비쳤다.

쉭!

갈리어드는 가볍게 돌산을 박차 연우가 있는 곳으로 착지했다.

그는 온통 쑥대밭이 된 주변을 둘러보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숲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대체 무슨 일인가 싶더니. 네놈의 짓이었나?”

여태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튜토리얼을 겪어 봤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음? 왜 웃는 거냐?”

연우는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싶었다.

성질 변환 속도가 너무 빨라, 베인의 말마따나 이제는 정말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마침 기가 막히는 타이밍에 갈리어드가 나타났다.

이것도 인연인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우연인 건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제는 조금 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갈리어드.”

“뭐냐?”

“선물입니다.”

“무슨…… 너!”

연우는 품속에 넣어 뒀던 펜던트를 꺼내 갈리어드에게 던졌다.

갈리어드는 얼결에 그걸 받았다가, 그게 어떤 물건인지 깨닫고 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찾았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연우가 어느새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지고 있었으니까.

갈리어드는 연우가 다치지 않도록 재빨리 부축했다. 연우를 보는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선물을 줬으니 대가를 치르라는 것.

게다가 육체는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열병은 아니었다.

다만, 육체 내부에서 뭔가가 이뤄지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

갈리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연우를 등에 업고, 모옥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 * *

연우가 다시 눈을 뜬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가장 먼저 보인 광경은 익숙한 모옥의 내부 모습이었다.

그리고.

망막을 가득 메운 메시지였다.

[성질 변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특성 ‘강화골’이 ‘금강체(金剛體)’로 변경되었습니다.]

[정기(아카샤)와 독기 중 94%를 마력으로 성공적으로 변환, 흡수하였습니다.]

[육체의 성장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릇이 단단해졌습니다. 계승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현재 작업량: 92.5%]

[상태가 ‘반룡체’에서 ‘미완전한 용체’로 변경되었습니다.]

92.5%!

연우는 단번에 완성 직전까지 성공한 계승 작업을 확인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여태껏 자신이 했던 고생이 성공했다는 뜻이었으니.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많은 양의 기운을 흡수했는데도 아직까지 계승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혀를 찼다.

대체 용체(龍體)란 게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많은 내용물을 담고도 완성되지 않은 걸까?

계승 작업이 끝났을 때에는 스스로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연우는 바로 그 다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플레이어: 차연우]

특성: 냉혈, 금강체

힘: 121 민첩: 133 체력: 129 마력: 208

스킬: 용마안(11.2%), 감각 강화 (32.5%), 시간 예지(0.0%), 물리 내성(20.3%), 전투 의지(10.5%), 바토리의 흡혈검(9.5%), 순보 (19.5%), 마력회로(10.9%)

상태창 역시 많은 부분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게 보였다.

대부분의 스탯이 120을 넘었고, 가장 뒤처졌던 마력 스탯은 어느새 제일 높은 계수를 자랑했다.

스킬도 많은 부분이 변했다.

그동안 계속된 전투와 성장을 병행하면서 이룬 성과였다.

특히 얻은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던 마력회로가 가장 가파른 발전을 이뤘으니.

연우는 재빨리 마력회로에 감각을 집중하고, 가동을 시도했다.

그러자.

우우웅-

여태껏 말 안 듣는 동생 같았던 마력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부드럽고, 원활하게.

그건 신기한 감각이었다.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감각. 마치 새로운 몸의 기관이 생겨의 도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연우는 마력을 천천히 손바닥 끝으로 끌어모았다.

그걸 가볍게 허공에다 흔들어 보니 움직이는 게 훨씬 수월했다. 게다가 손바닥 자체에 실린 경도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력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활용도가 천차만별이라고 했지.’

연우는 나중에 마력에 대해서 천천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마력을 이용한 공격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 봐야만 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연우는 마력을 제자리로 되돌리다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체질이 훨씬 많이 달라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단순히 마력 순환만 자유로워진 게 아니었다.

육체 자체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

‘감각이…… 예민해졌어.’

살짝 움직이는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막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눈이 부시고, 코끝이 마비될 것 같았다.

통증이 찌르르 울렸다.

처음 감각 강화 스킬을 사용했을 때 받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

단순한 육체 강화로 인한 변화라고는 보기 힘들 것 같았다.

혹시 내단의 기운 중 일부가 체내로 스며들지 못하고, 따로 육체에 흡수된 건가 싶었지만 마력 총량으로 봤을 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낯설지가 않았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마치 운디네의 잔 같은…….’

연우의 생각이 깊어질 무렵.

끼익.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상념도 같이 깨졌다.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갈리어드가 과일이 가득 담긴 소쿠리를 든 채 들어오고 있었다.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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