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종료 (6)
콰아앙!
연우는 순간적으로 남아 있던 마력 전부를 터뜨렸다. 코어가 과열되면서 마력회로가 미친 듯이 출력을 뿜어냈다.
용마안, 전투 의지, 감각 강화. 3개의 스킬도 한꺼번에 열리면서 육체에 막대한 과부하가 걸렸다.
하지만 덕분에 연우는 육체의 한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느릿해진 시간 속을 한껏 유영하면서 자신이 붙잡은 가능성을 마음껏 도출해 냈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연우는 ‘예지했던’ 것에 맞춰 판트가 내지른 주먹을 잡아당겨 반대로 돌리고.
우드득!
무릎으로 놈의 복부를 세게 후려쳤다.
콰앙!
“컥!”
판트가 피 화살을 토하면서 붕 떠올랐다.
‘1초.’
녀석이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허공에서 몸을 바로잡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연우는 판트 쪽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각각 머리와 목, 발목을 쓸어 오는 세 개의 칼날이 있었다. 몸을 바짝 아래로 낮춰서 피했다.
동시에 지면을 세게 박찼다.
쾅!
‘2초.’
지면이 내려앉았다. 모래 더미가 치솟았다.
연우는 그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면서 왼손을 뻗었다. 손끝에 바이람의 목덜미가 잡혔다.
버프 중첩으로 감각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녀석이 목을 뒤로 내뺐지만, 연우는 그마저도 ‘예지’하고 있었다.
쉭!
손가락 사이에 끼어져 있던 대검이 날아들었다. 바이람이 목을 잽싸게 옆으로 틀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바이람은 연우가 대부분의 마력을 소비했단 걸 깨닫고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녀석의 눈가에 처음으로 환희가 깃들었다.
“끝났……!”
“그래. 끝났어.”
그 순간.
“너희들이.”
연우가 바라던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
두 사람과의 간격을 벌리는 것.
비그리드를 고쳐 쥐면서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고오오-
여태껏 그에게 꼬리처럼 따라붙던 태풍이 다시 회오리바람을 그리면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칼날을 따라 바람이 단단히 압축 되고, 그 위로 귀기가 멍울처럼 피어나 바람을 까맣게 물들였다.
검의 축복.
두 강한 상대를 맞아 다시 귀기가 극한까지 피어났다.
연우는 비그리드를 옆으로 크게 휘둘렀다.
‘3초.’
횡대로 사선이 그어졌다.
콰아아앙!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단단히 압축되었던 바람이 일제히 해방되면서 거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속에 담긴 귀기는 날카롭게 벼린 칼날처럼 사방팔방으로 튀어 나가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공간도.
사람도.
심지어 스킬까지도.
허공에서 다시 한 번 화려하게 터지려던 뇌정권이 귀기에 완전히 잡아먹혔다.
판트는 전신이 귀기에 난도질을 당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튕겨 나고 말았다.
소낙비 같았던 새하얀 빛살은 산산조각이 났다.
부서진 검의 파편들이 위로 튀어 오르고, 바이람은 입가로 피를 흘리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털썩!
쿠쿠쿠-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퍼졌다.
스테이지를 따라 사람들의 경악에 찬 고함 소리가 잔뜩 퍼져나갔다.
* * *
〈시간 예지〉.
G구획으로 넘어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스킬을 점검할 때.
연우는 이걸 두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거, 계륵이야.’
다른 스킬들은 여러모로 사용하기가 편리했다.
하나하나 분리해서 따져도 쓸모가 많았고, 합쳐서 사용하면 더 다양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 예지는 달랐다.
분명 겉으로 봐서는 아주 좋았다.
아주 짧게나마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
이만한 메리트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특히 연우는 ‘아차’하는 순간에 목숨이 날아가는 전장을 겪었다. 단 몇 초라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건 목숨을 여벌로 들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 마력도 많이 잡아먹고.’
아주 뛰어난 스킬이기 때문에 발동 조건도 그만큼 까다로웠다.
시간 예지는 겨우 몇 초에 불과한 미래를 보여 준다. 그 시간은 잡아먹은 마력에 따라서 늘어 났고, 소비되는 마력량은 너무 많았다.
아카샤의 뱀과 인형설삼을 섭취해서, 마력량만 따진다면 튜토리얼 내에서도 최고라 할 만할 텐데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마저도 ‘언제’ 발동하느냐는 까다로운 조건이 따랐다.
‘내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 언제 어느 타이밍에서 발동해야 할지 쉽게 가늠이 되질 않으니까.’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상대를 상대하면서, 3초를 내다보는 걸로도 모자라, 미래를 분석하고, 파훼하고, 전개까지 한다?
말은 쉽지만, 미친 짓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기술을 하나 더 만든다.’
예측된 미래 동안에 육체의 한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도박에 도박을 더하는 거지.’
그런다면 밀리는 판이라도 단번에 역전할 수 있을지 몰랐다.
물론, 실패했을 때는 바로 죽겠지만.
그럼에도 연우는 시도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먹혔어.’
처음으로 시도한 시간 예지와 마력 폭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 * *
“……!”
“……!”
플레이어들은 짧은 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따라잡질 못했다.
그저 놀랍고, 충격적인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다는 사실만 본능적으로 깨달을 뿐.
유일하게 쫓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에도라.
그녀는 태도를 더 세게 끌어안으면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보라색 눈동자 위로 금색 광망이 맺혔다.
〈혜안(慧眼)〉.
판트가 뇌정권을 얻었듯이, 에도라도 일족 내 청람가의 비기를 하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차별과 망집을 버리고, 물체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하는 스킬.
다만, 습득 과정이 너무 까다로워 지금은 에도라의 고유 스킬이 되다시피 한 것이었다.
그리고 판트 남매가 튜토리얼에서 나란히 랭킹 1, 2위를 하게끔 만들어 준 스킬이기도 했다.
에도라는 혜안을 사용해서 연우의 행적을 쫓았다.
그때.
먼지구름을 뚫고 치솟는 연우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4초.’
연우는 허공에서 몸을 크게 뒤틀었다.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두 개의 요소가 훨씬 잘 맞물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 예지로 미래를 포착하고, 용마안과 전투 의지, 감각 강화를 통해 육체를 최대로 끌어올리며, 순보를 사용해 빠르게 이동한다. 여기에 더해질 막대한 과부하는 물리 내성으로 버텨 내는 방식.
금강체를 얻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지.
하지만 연우는 해냈고, 이제 마지막 목표만 남았다.
저곳에.
에도라가 서 있었다.
눈가에 금색 광망을 틔운 채.
그가 얼핏 보았던 ‘뭔가’를 밖으로 끄집어내고서. 똑같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초.
‘이걸로 끝낸다.’
연우는 마력회로를 마지막까지 쥐어짰다. 코어가 다시 한 번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남은 출력을 뽑아냈다.
쾅!
대기를 박찼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에도라 쪽으로 쇄도했다.
쐐애액-
스르릉!
에도라도 인형처럼 끌어안고 있던 태도를 칼집에서 분리시켰다.
신마도(神魔刀). 신선과 마귀의 힘이 같이 담겨 있다는 이름이 붙은 보도(寶刀)였다.
촤악!
에도라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비그리드가 신마도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이런 건 ‘예지’ 안에 잡혀 있던 것.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연우는 착지하기 직전에 몸을 크게 비틀었다.
소매에 숨겨 뒀던 크라슈나의 단검이 갑자기 튀어나오면서 왼손에 잡혔다. 연우는 그대로 에도라의 목을 갈랐다.
그는 승리를 장담했다. ‘예지’대로라면 에도라는 여기서 피를 뿌리면서 쓰러질 테니까.
하지만.
채앵!
에도라는 신마도를 살짝 옆으로 틀어 목을 보호했다.
워낙에 칼의 면적이 넓으니 조금 방향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크라슈나의 단검이 힘없이 튕겨 났다.
‘막혔어?’
연우의 눈가로 이채가 어렸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몸을 반대로 틀면서 비그리드를 세 차례 깊게 찔러 넣었다.
따다당!
하지만 그마저도 에도라는 가볍게 튕겨 내는 것으로 모자라.
콰앙!
반격까지 가했다.
신마도를 수직으로 거세게 긋자, 비그리드의 궤적이 도중에 차단 되었다.
연우는 충격파와 함께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가 지난 자리로 짙은 두 개의 고랑이 남았다.
휘휘휘!
먼지구름이 후폭풍에 떠밀려 사라졌다.
그 자리로 연우와 에도라가 서로를 노려보면서 서 있었다.
“강하시네요. 엄청.”
에도라가 앵두 같은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연우는 눈을 가만히 좁히기만 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시간 예지가 이렇게 막혔으니.
‘저 눈. 저 눈 때문이야.’
연우는 에도라의 눈가에 맺힌 금색 광망, 녀석이 숨기고 있는 ‘뭔가’가 예지를 꿰뚫어 봤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찰칵.
그때 마지막 남은 1초도 사라지면서 회중시계의 태엽이 멈췄다.
과열되었던 육체가 축 가라앉았다. 코어와 마력회로가 출력을 중단하면서 막대한 피로와 현기증이 한꺼번에 연우를 찾아왔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
연우는 여전히 우뚝 서서 에도라를 직시했다.
“계속, 하실 건가요?”
에도라는 당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다는 듯이 살짝 걱정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서도 신마도에서는 손을 놓지 않았다. 언제라도 당신을 노릴 수 있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연우는 갑자기 고개를 가로젓더니 자세를 풀었다. 비그리드를 등에 매단 칼집에 수납했다.
철컥!
“아니. 그만하지.”
“잘 생각하셨어요. 오빠에 바이람,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들까지 한꺼번에 상대하셨으니. 그래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에도라가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 같은 분은 처음 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1위를 양보해 드리고 싶지만…… 저희에게도 절실한 사정이 있어서요.”
미안해하는 투.
하지만 그 속에는 절대 공적치를 내어 줄 수 없다는 단호함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연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하군. 내가 왜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무슨?”
에도라가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던 그때.
연우가 갑자기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끝에 금색 수정 5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춤을 췄다.
에도라는 흠칫 놀라면서 허리춤을 재빨리 살폈다.
하지만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금색 수정이, 판트가 건네줬던 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어, 떻게……?”
에도라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두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혜안은 진실을 꿰뚫어 본다.
때문에 상대가 가진 생각이나 노림수를 즉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사전에 공격을 차단할 수 있었다.
연우의 시간 예지가 죄다 가로 막힌 것도 전부 이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스킬 속성상 천적 관계에 놓였다고도 할 수 있는 셈.
그런데 어떻게 혜안을 피해서 갖고 갈 수 있었던 거지?
연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금색 수정을 도로 챙겼다.
“네가 가진 그 눈, 시야에 담긴 것에만 한정지어서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던데. 아닌가?”
“……!”
에도라는 혜안의 약점이 너무 쉽게 들통나자 충격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연우가 무슨 수를 썼던 건지 유추할 수 있었다.
크라슈나의 단검.
처음 튕겨 났던 그 단검이 떨어지는 동안, 자신을 그쪽으로 끌어 들여 허리띠와 금색 수정을 연결하고 있던 줄을 끊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연우의 맹공을 읽는 데만 집중했으니, 그런 ‘우연’적인 요소까지 찾을 수는 없었던 것일 테고.
다행히 잃어버린 금색 수정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만 해도 뼈아픈 손해였다.
“이건 내가 잘 챙겨 가도록 하지.”
연우는 금색 수정을 허리춤에 걸었다.
띠링.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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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랭킹]
1위. 비공개(510,590Point)
2위. 에도라(60,000Point)
3위. 브락(13,200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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