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7화 (57/862)

7화. 종료 (7)

“……!”

“……!”

새롭게 바뀐 튜토리얼 랭킹은 플레이어들의 정신을 전부 아득해지게 만들었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여태 저런 점수를 기록한 플레이어가 있긴 있었을까?

하지만 스테이지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을 밀어내고, 판트와 바이람이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독식(獨食).

플레이어들의 눈에 연우는 허기진 포식자로만 비쳐졌다.

애초 연우가 에도라의 금색 수정을 빼앗지 않았더라도, 1위는 원래 그의 것이었던 셈이다.

그때.

연우의 신형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순보를 밟아 자취를 감추려는 것이다.

“잠……!”

에도라가 뒤늦게 연우를 붙잡아 보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서 연우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

에도라는 연우를 놓치고 아쉬움에 찬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우두커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연우가 그녀에게 준 충격과 여운이 너무 컸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에도라의 가슴에 북받쳐 올랐다.

튜토리얼에 온 뒤 처음으로 겪은 패배.

그것도, 완패였다.

에도라는 살짝 부르르 떨다가, 살짝 볼이 상기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멋…… 있어.”

* * *

[00:00:00_05]

[00:00:00_04]

……

[00:00:00_00]

연우는 고개를 들었다.

후유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남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할 생각으로, 사람이 찾지 않는 곳에 숨어서 명상을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만큼 훌쩍 지나 있었다.

[튜토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대기 공간으로 소환됩니다. 충격에 유의하십시오.]

연우를 둘러싼 스테이지가 흔들리더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노이즈가 섞인 텔레비전 화면처럼.

대신에 드넓은 공터를 따라,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두 이번 튜토리얼에 참가했던 플레이어들.

그들은 갑자기 사람들이 많은 장소로 소환되어 잠시 당황했지만, 곧 튜토리얼이 종료되었단 사실을 깨닫고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이번 튜토리얼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리고 한쪽에 홀로 서 있는 연우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어. 그 1위야. 독식자.”

“외뿔부족 남매와 마커스 계 검사를 이겼다면서? 말도 안 돼.”

“대체 정체가 뭘까?”

독식자.

G구획에서의 일이 끝난 뒤, 플레이어들 사이에 연우의 소문이 퍼지면서 붙은 별명이었다.

이름이나 정체에 대해서 알려진 게 전혀 없는 상태로, 갑자기 화려하게 등장하고 말았으니까.

그저 알려진 건, 하얀 가면을 쓴다는 것과 칸, 도일 콤비와 친분이 있다는 것뿐.

이마저도 연우가 칸, 도일 콤비와 하르간의 둥지로 이동하던 걸, 어떤 플레이어가 우연히 목격했기 때문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우가 누군지를 너무 궁금해했다.

하지만 감히 연우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 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저 멀리 떨어져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연우도 괜히 다른 사람이 귀찮게 굴지 않아서 편했다.

아니, 사실은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조차 조금 피곤했다.

‘차라리 G구획을 가지 말걸 그랬나? 그랬다면 이런 집중도 받지 않았을 텐데.’

물론, 생각만 그렇게 할 뿐이지, 정작 당시로 돌아가더라도 G구획으로 가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1위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제우스의 열쇠. 그걸 얻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연우가 탑에 들어가면 반드시 가야 할 곳이 딱 두 군데가 있었다.

하나는 아르티야의 클랜 하우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올림포스의 보고(寶庫).’

과거 신들이 자신들의 성물을 보관해 놨다는 곳.

제우스의 열쇠는 그런 보고의 문을 열기 위한 열두 가지 재료 중 한 가지였다.

그러니 연우로서는 1위를 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연한 말이지만, 1위를 한다면 자연스레 집중과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견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겠지.

‘이미 비밀리에 성장하고, 비밀리에 적들을 처치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카인이라는 존재를 드러내되, 차연우는 최대한 숨기면서 다니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한동안 그가 걸을 길은, 아르티야가 걸었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사람들의 이런 눈빛에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나저나.’

연우는 주변을 쓱 훑어봤다.

‘칸과 도일은, 결국 간 건가?’

자신이 떠난 뒤에 곧바로 리타이어를 할 거란 말은 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날 수 없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때.

“형! 역시 형이었군요!”

사람들 사이로 청년이 한 명 나타났다.

익숙한 얼굴. 율이었다.

“너?”

연우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칸, 도일과 마찬가지로 바로 리타이어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을 줄이야.

율은 다급하게 뛰어왔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어려 있었다.

“새로운 루키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가면을 썼다는 말을 듣고 형인 것 같아서 왔어요. 그런데 정말…… 형이었네요.”

연우는 율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녀석의 얼굴에는 더 이상 근심과 독기가 보이지 않았다. 풍기는 기운도 조금 남달랐다.

“프레지아의 화원, 찾았구나.”

“예. B구획 대기실에 있는 걸, 우연찮게 찾을 수 있었어요.”

프레지아의 화원은 사실 히든 피스 중 하나였다.

다만, 연우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어 찾지 않았던 곳.

프레지아의 화원에서는 정령과 계약을 맺는 게 가능했다.

연우가 봤을 때 율은 인챈터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를 바탕으로 정령술을 익힌다면,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던 것 같았다.

용마안을 열어 율을 위아래로 살폈다.

결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태 아래는 텅 빈 공간만 있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율이되, 율이 아니었다.

“꽤 성과가 있었나 보군. 기연이라도 얻은 거냐?”

율이 정령을 사용해서 남긴 사념체.

“조금 비슷해요. 스승님을 만났어요.”

“스승?”

“예. 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카엔 녀석들 같은 분이 아니라, 정말 고마운 분이시니까요.”

연우는 어렴풋이 율이 말한 ‘스승’이라는 존재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그 사람’이라면 율과 같은 인재를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

‘그걸 의도했던 것도 조금은 있었지만.’

율이 꾸벅 인사했다.

“그래서 갈 때 가더라도, 고맙다는 인사는 드리고 싶었어요. 형은 제게 은인이시니까요.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었고, 좋은 스승님도 뵐 수 있었어요.”

율은 다시 허리를 펴면서 단단해진 눈빛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언젠가 꼭 다시 형을 보러 올게요.”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율의 안색이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파아아-

율의 사념체를 구성하고 있던 결이 풀려 사라졌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탑에 깊숙하게 발을 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탑은 그런 곳이었다. 인과율이 겹겹이 쌓여 쇠사슬처럼 ‘나’라는 존재를 구속하고, 제약을 하면서도, 그렇기에 온전한 ‘나’로 있게 만드는 곳.

그리고 ‘신’이 된다는 건, 그런 쇠사슬을 끊어 내고 나온다는 뜻은 아닐까?

언뜻 동생이 일기장에다 남겼던 단상이 떠올랐지만, 가볍게 고개를 털어 생각을 지웠다.

그리고 그사이.

하늘이 갈라지면서 포탈 아래로 누군가가 툭 떨어졌다.

“오효효효. 이렇게 다들 훤한 모습으로 한 달 만에 뵙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군요.”

작은 키. 턱시도. 외눈 안경을 쓴 고블린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튜토리얼의 관리자, 이블케가 오랜만에 여러분들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이블케는 허리를 펴며 플레이어들을 쓱 둘러봤다.

외눈 안경 너머로 눈꼬리가 깊은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 회차에는 다른 때와 달리 플레이어 분들의 기막힌 재치와 임기응변, 다양한 상황들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탑을 오르실 때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들을 보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블케는 외눈 안경을 고쳐 쓰면서 씩 웃었다.

“결과를 발표해 드리겠습니다.”

[튜토리얼 랭킹]

1위. 비공개(510,590Point)

2위. 에도라(60,000Point)

3위. 판트(20,200Point)

4위. 바이람(11,000Point)

……

곳곳에서 깊은 탄식이 들려왔다.

“설마설마 했지만, 51만?”

“미친! 저게 가능해?”

“보통 튜토리얼 통과 상위 랭커들이 5만에서 10만 내외라고 들었었는데.”

“대체 G구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플레이어들은 공적치 결과를 보고 충격에 빠져 웅성거렸다.

그만큼 수치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연우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판트와 바이람이?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줄기차게 사냥을 해 댔었나보군.’

분명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몸으로 날뛰었을 걸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연우는 자신을 보는 시선이 있단 걸 깨닫고,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에도라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신마도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두 사람 사이에 시선이 오고 갔다.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에도라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배시시.

입술이 살짝 달싹였다.

축하한다고.

연우는 에도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미간을 좁혔다.

용마안을 살짝 열어 보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축하하고 있었다.

‘왜?’

하지만 에도라가 자신에게 적개심을 가졌으면 가졌지, 좋은 인상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금 이상했다.

지금 에도라 옆에서 자신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판트가 맞는 것일 텐데.

하지만 연우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블케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연우 쪽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오효효효. ###님은 510,590 포인트로 1위가 되셨습니다. 이는 이번 회차뿐만 아니라, 역대 회차를 통산해서 가장 높은 성적. 당연히 거기에 맞춰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연우를 가리키는 이름에는 노이즈가 끼어서 ‘인식’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때.

연우 앞으로 메시지가 한 개 떠올랐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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