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3화 (63/862)

13화. 탑 (5)

“너, 꼬락서니를 봐서는 갓 튜토리얼을 나온 노비스 같은데. 대체 뭘 믿고 우리들의 경고를 무시했던 거냐?”

연우는 순간 뭘 하는 놈들인가 싶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곧 어떤 녀석들인지 깨닫고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놈들이었나? 헤노바의 대장간에다 몇 번씩이나 깽판 놨다던 놈들.’

왜 그동안 안 나타나나 싶긴 했었다.

최근 헤노바의 대장간을 드나들면서 주변 상가인들로부터 계속 들었던 소리가 ‘괜찮냐?’는 질문이었으니까.

연우도 5대 명장이나 되는 헤노바의 대장간에 계속 파리가 날렸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8대 클랜의 압박.

물론, 체면을 중시하고 상위 층계에만 관심이 많은 녀석들이 탑 외 지역의 일에 일일이 신경 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산하 조직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알아서 ‘눈치’ 있게 행동하던 중에 아르티야와 관련이 있는 헤노바를 압박했던 것이겠지.

그리고 이렇게 연우를 찾아온 것도 그런 눈치 있는 행동의 일환인 듯싶었다.

확실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8대 클랜의 소속이라고 하기엔 너무 형편없었다.

“웃어? 이 새끼가, 미쳤나.”

하지만 녀석들은 연우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연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만 하더라도 탑에서 낙오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연우는 굳이 녀석들을 상대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괜히 손을 섞어 봤자 시간만 아까웠다.

“귀찮으니까, 꺼져.”

하지만 그런 연우의 태도가 녀석들을 자극했던 걸까.

“이 개 같은 새……!”

경고는 한 번이면 족했다.

쉭!

한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갑자기 눈앞에서 연우가 사라지자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연우는 녀석의 허벅지에다 마장대검을 깊숙하게 박아 넣고 있었다.

퍼억!

“크악!”

녀석이 피를 쏟으면서 쓰러지고.

“이 새끼가!”

“뒈져!”

남은 네 명이 악다구니를 지르면서 와락 달려들었다.

연우는 마장대검을 역수로 쥐면서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녀석들의 발목 인대를 끊고, 허벅지를 부수고, 명치와 가슴팍에다 순서대로 칼을 꽂아 버렸다.

“커컥!”

“쿠르륵.”

바닥에 피가 잔뜩 뿌려졌다. 녀석들은 입가에 게거품을 물면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연우는 전투 때 외에는 손쓰기를 귀찮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한 번 부딪치면 절대 그 냥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

죽이는 게 아닌 이상, 어설프게 싸운 상대는 언젠가 다시 반기를 든다.

그렇다면 아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완전히 꺾어 놔야만 했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부터 단단히 들여 놨던 버릇이었다.

녀석들은 어떻게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피 웅덩이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몸이 걸레처럼 넝마가 된 채로.

“미친…… 새…… 컥!”

연우는 피투성이가 되고도 마지막까지 반항기를 보이던 녀석의 명치에다 칼을 꽂아 버렸다.

녀석은 게거품을 물면서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연우는 마장대검에 묻은 핏물을 쓰러진 녀석의 옷깃에다 닦고, 가볍게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그놈들 데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힐러나 신관들에게 데려가면 살릴 수는 있을 거다. 그 뒤에는 모르겠지만.”

연우는 정신이 반쯤 나간 녀석에게 가볍게 말하고 난 뒤, 뒤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그때, 복부를 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한 녀석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면서 바락바락 악을 질렀다.

“감히! 감히 노비스 주제에! 우리를 건드리고 무사할 것 같아? 우리들 뒤에 누가 있는지 아는 거냐고! 너 이 새끼도, 헤노바, 그 영감탱이와 똑같은 꼴로 만들……!”

순간, 연우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쐐애액, 퍼억!

“커억!”

연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에게 달려들어 가슴팍에다 마장 대검을 꽂았다.

마장대검이 꽤 깊숙하게 박히면서 늑골이 죄다 박살 나고, 칼끝이 심방 근처에 걸렸다.

조금만 더 깊게 밀어 넣으면 그대로 심장이 터져 나갈 상황.

함부로 헤노바를 운운하던 녀석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숨이 턱 막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한 공포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하얀 가면.

그 사이로 피어오른 두 개의 안광이 도깨비불처럼 일렁였다.

“다시 말해 봐. 뭐? 헤노바?”

녀석은 공포에 덜덜 떨면서도 당황하지 않은 척하려 했다. 헤노바를 인질로 삼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 이걸 풀면, 그 영감도 살 수 있……!”

연우는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녀석의 심장을 완전히 박살 내고, 다음 녀석을 찾았다.

“헤노바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벌벌 떨면서 연우를 쳐다봤다.

“그, 그건……!”

연우는 대답하기를 주저하는 녀석의 목도 그어 버렸다.

그 순간, 남은 녀석들은 깨달았다.

대답을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는 순간 목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묻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그, 그냥…… 쿠르륵!”

적당하게 변명을 둘러대려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용마안이 활짝 열려 거짓말을 하는 것쯤은 쉽게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남은 녀석은 둘.

“말할 수 있는 입은 하나면 충분하겠지.”

한 명만 살려 주겠다는 의미였다.

“그, 그건!”

“헤노바를 이대로 그냥 두면 클랜 위신이 떨어진다고, 대여섯 명이 가서 죄다 깽판을 치, 치고 있습니다!”

촤아악!

연우는 대답하지 않은 놈을 처치했다.

부르르.

동료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녀석이 바들바들 떨었다.

연우가 차갑게 말했다.

“안내해.”

* * *

연우는 대장간으로 돌아오고 나서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대장간은 온통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문은 아예 박살이 나고, 안쪽 내부에 전시했던 무구며 집기들도 전부 부서져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아티팩트도 꽤 있었다.

사람들은 혹시 난리통에 같이 휩쓸릴까 싶어서 웅성대면서도 근방에 다가서지 못했다.

오로지 헤노바만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

깽판을 놓았던 녀석들을 상대로 저항이라도 했던 건지, 그는 온통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몸 곳곳에 발자국이며 피멍도 남아 있었다.

원래 헤노바는 대장장이 기술만 뛰어날 뿐, 싸움 실력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르티야와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공략에 참여하지 않았던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헤노바.”

“애…… 송아.”

헤노바는 멍하니 있다가, 연우를 발견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면목 없다는 듯이.

“미안하구나. 네가 부탁했던 물건들이며 맡겼던 것들, 전부 도둑 맞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든 보상은 할…….”

“몸은, 괜찮으십니까?”

연우는 헤노바가 크게 다친 곳이 없는지부터 살폈다.

헤노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일단 근처에 의원이나 힐러에게 가도록 하죠. 혹시 아는 사람, 있으십니까?”

“너……!”

“일단 뒷정리는 마저 제가 할 테니까, 이쪽은 걱정 마시고 몸부터 돌보십시오.”

“…….”

헤노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연우가 의뢰했던 기에스의 눈은 탑에서도 몇 개가 되지 않는 고급 아티팩트였다. 그리고 이미 절반가량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필요한 재료들까지 잃어버렸는데도.

연우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특히 아카샤 뱀의 독샘은 다시 구할 수 없는 최고급 재료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의 안부부터 묻고 있었다.

연우는 그런 헤노바의 심란한 마음을 잘 안다는 듯이 살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대장간 문 밖에서 알짱대고 있던 옆 상가 주인에게 말했다.

“대신 헤노바를 의원에게 데려다주셨으면 합니다.”

“하, 하지만.”

괜히 도와줬다가 자신도 해코지를 당하면 어떠냐는 불안한 눈빛.

연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제가 해코지를 저지르는 건 괜찮나 봅니다?”

“아, 알았네.”

상가 주인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허겁지겁 대장간으로 들어와 헤노바를 둘러업었다.

헤노바가 불안한 눈빛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너, 뭘 하려고……?”

“잃어버린 물건, 금방 찾아오겠습니다.”

헤노바는 연우가 뭘 하려는지 깨닫고, 위험하다면서 만류하려고 했다.

이 일을 저지른 놈들은 이전에도 몇 번씩 똑같이 사고를 쳤던 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상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따지지 못했던 건, 탑 외 지역에서 녀석들의 위세가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나이트 워치.

탑 외 지역에 거주하는 암흑가 클랜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게다가 녀석들의 배후에는 8대 클랜 중 한 곳인 ‘레드 드래곤’이 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나이트 워치가 행패를 부려도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헤노바가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선의로 자신에게 도움을 줘 봤자,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악의밖에 없었으니까.

게다가.

헤노바는 여태 그것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업이라고 생각했다.

아꼈던 친구를 허망하게 잃어버린 죗값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는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헤노바는 이번에도 연우가 잘못될까 싶어 뜯어말리려고 했지만.

순간, 연우의 눈빛을 보고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강렬한 눈빛.

그 눈빛이 다시 한 번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머릿속에 있는 눈빛의 주인은 언제나 장난기가 많고 익살맞은 성격이었고, 눈앞에 있는 녀석은 무뚝뚝하고 말이 없어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지금만큼은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우는 헤노바를 두고 땅을 가볍게 박찼다.

헤노바는 멍하니 연우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 * *

“이름.”

“우, 윌렛이라고 하, 합니다.”

연우는 자신에게 붙잡힌 녀석에게 클랜의 위치를 불게 했다.

암흑가 클랜은 적대 세력으로부터 클랜을 보호하기 위해 위치가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져 있다.

그것을 발설할 경우,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동료들에게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다.

하지만 멀리 있는 칼보다 가까이 있는 주먹이 더 무서운 법.

윌렛은 당장 살고 싶은 마음에 위치를 있는 대로 떠벌렸고, 나중에는 길 안내까지 해야만 했다.

시장 동서쪽에 있는 2층짜리 여관.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만약 잘못된 장소를 가르쳐 준 것이라면 넌 죽는다.”

“아, 알겠습니다.”

윌렛은 침을 꼴깍 삼켰다.

여기까지 끌려오면서도 몇 번씩이고 갈등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장소로 안내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랬다간 정말 죽겠지? 하지만 말해도 클랜장한테 죽을 텐데?

하지만 너무 쉽게 죽어 나가던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라 그럴 수가 없었다.

최소한 그런 꼴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저, 저 눈, 대체…….’

새하얀 가면 아래 드러난 두 개의 눈.

새벽처럼 어둡고, 심연처럼 깊은 눈을 마주치고 있노라면 저절로 공포감이 들었다.

결국 윌렛은 클랜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고 말았다.

“여, 여깁니다.”

연우는 말없이 녀석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외관으로는 다 쓰러져 가는 볼품없는 여관.

가난한 플레이어들이나 머물 것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맞는 것 같군. 여기저기 잡히는 것들이 많으니.’

인지 영역을 확장시켜 여관을 스캔해 보니 곳곳에 여러 기관 장치 같은 트랩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숨어 있는 녀석들도 꽤 많았고.

“들어가지.”

“하, 하지만…… 아, 알겠습니다.”

윌렛은 들어가길 꺼려했지만, 연우의 눈빛을 보고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마치 그 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보는 것 같았다.

“응? 윌렛, 네가 이 시간에 왜…….”

어둡고 담배 연기가 자욱한 실내 안.

카운터를 보고 있던 녀석은 월렛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연우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무, 무슨…… 크악!”

연우는 녀석의 팔을 낚아채 그대로 돌려 박살 내 버렸다.

그제야 놈들은 목표물이 오히려 침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윌렛, 이 새끼! 감히 클랜을 배신해? 덮쳐!”

청소부, 식사하던 고객, 방에서 자던 손님들까지. 한 패거리였는지 단번에 쏟아졌다.

“그, 그게 아닌데.”

윌렛이 변명하려 덜덜 떨며 입을 열었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팟!

연우는 카운터 보던 놈을 벽에다 던지고 지면을 박찼다.

‘최대한 놈들을 빨리 제압한다.’

예민해진 감각을 바탕으로 놈들이 각각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공격을 시도하는지 패턴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쾅! 콰쾅!

마력은 그렇게 많이 끌어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놈들을 제압하기엔 충분했다.

단검으로 옆구리를 베어 오는 놈은 팔을 뽑아 반대로 돌렸고, 하체를 쓸어 오는 놈은 턱주가리를 걷어 차 턱뼈를 박살 냈다.

카운터가 부서지고, 벽면이 터져 나갔다.

“무,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놈은 한 놈이라고! 어떻게든 막아!”

대체 이 비좁은 여관에 얼마나 많은 놈들이 숨어 있던 걸까.

클랜 멤버들은 끝도 없이 나왔다.

하지만 연우는 빠른 속도로 놈들을 하나하나씩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부러뜨리고, 박살 내고, 차올리고. 칼을 뽑아 허벅지를 가르고, 발목의 힘줄을 끊고, 어깨를 찍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로 사지가 뒤틀리거나 부러져 쓰러진 놈들이 허다했다.

“아아악! 내 팔! 내 팔!”

“미쳤……! 으아아악!”

연우는 마침 잡고 있던 놈의 어깨를 반대로 돌려 주고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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