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9화 (69/862)

19화. 1층 (1)

상의 레더 아머(가죽 갑옷) 한 벌이 곱게 접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이상하게 생긴 검은색 가면이 올려져 있었다.

연우는 뭔가 이상해서 다른 아티팩트는 없나 확인했다.

하지만 철함 안에는 두 가지 외에는 없었다.

“철함이 바뀐 거 아닙니까? 기에스의 눈이 없습니다만?”

연우는 헤노바를 돌아봤다.

기에스의 눈은 아뮬렛이었다.

흔히 펜던트나 팔찌 형태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 아뮬렛.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레더 아머와 가면이 전부이니.

헤노바가 자신만만하게 한쪽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리면서 대답했다.

“네 물건들, 맞다.”

“그럼?”

“일단 감정이나 해 봐, 이것아. 오늘부로 나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네놈이 더 이상 깐족거릴 일도 없을 테니까.”

연우는 용마안을 열어서 먼저 레더 아머부터 살폈다.

[기에스가 깃든 마갑(魔甲)]

분류: 가슴 방어구, 아뮬렛

등급: A-

설명: 수십 개의 눈과 수백 개의 팔을 가졌다는 거인, 기에스의 이름을 딴 부적.

여기에 드워프 명장 헤노바는 칼날로 이뤄진 덤불에서만 살아간다는 희귀한 새, 칼까마귀의 꼬리깃만 모아 만든 흉갑을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마갑(魔甲)을 만들어 냈다.

아주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며, 웬만한 도검은 쉽게 튕겨 낼 정도로 뛰어난 탄력과 단단한 내구도를 지녔다.

마력을 불어 넣을 경우 숨겨진 눈과 팔이 열리게 된다.

각각의 눈은 소유자에게 다가오는 대부분의 공격과 저주를 꿰뚫어 보고, 해가 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팔로 막아 버린다.

* 수십의 눈

감각을 세밀하게 강화시켜 외부의 변화를 빠르게 포착한다. 위기시에 육체의 반응 속도가 20% 이상 빨라진다.

* 수백의 팔

다섯 가지 속성(물리, 화염, 냉기, 번개, 신성) 공격에 대한 피해를 감소시킨다.

또한, 다른 세 가지 속성(저주, 중독, 비전)에 대한 저항력을 대거 향상시키며, 10-15% 확률로 사전 차단 및 반사 효과를 가진다.

* 기간토마키아의 예방

소유자가 받은 데미지 중 일부를 체력으로 전환시킨다. 만약 체력이 15% 아래로 내려갈 경우, 하루 한 번에 걸쳐서 체력을 절반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

연우는 마갑이 가진 기능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원래 기에스의 눈은 다양한 방어용 옵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랭커들에게 각광을 받는 아티팩트였다.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소유자를 보호하고, 대부분의 속성 공격력을 약화시킨다.

때에 따라서는 공격을 무효화하거나 반사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기간토마키아의 예방은 기에스의 눈이 가진 최고의 옵션이었으니.

체력이 바닥날 경우, 절반 이상으로 회복시킨다는 대목은 목숨을 하나 더 여벌로 구비하는 것과 같았다.

평소에는 입은 데미지를 체력으로 환원시키면서 HP를 관리시켜 주다가, 위기 시에 발동시키면 숨겨진 패로 활용이 가능했다.

다만,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는 게 까다롭고, 제작이 가능한 명장도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에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헤노바는 이런 기에스의 눈을 흉갑 형태로 만들면서 방어적인 기능을 더 증가시켰다.

웬만한 물리적인 타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탄력성도 뛰어나서 쉽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웠으니.

기동성을 중시하는 연우에게 딱 알맞게 제작된 맞춤형 아티팩트였다.

“그렇게 멀뚱히 감상만 하지 말고 일단 입어 봐라. 그래야 뭐라도 알 것 아니냐.”

헤노바는 곰방대를 입에다 물면서 턱짓을 했다.

연우는 그의 말대로 마갑을 상체에 걸치기 시작했다.

역시나 마갑은 아주 가벼웠다. 그리고 피부에 부드럽게 달라붙 어서 착용감도 아주 좋았다.

연우는 내친김에 몸도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여 보다가, 천천히 마력회로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기에스의 눈에는 설명창에 적힌 것 외에 또 다른 기능이 한 가지 더 있다.’

연우가 한 달이라는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기에스의 눈을 필요로 했던 이유.

우웅-

마갑에 마력을 밀어 넣는 순간.

화아악!

마갑의 표면 곳곳에 그어져 있던 검은색 실선들이 동시에 활짝 열렸다.

그 속에는 갖가지 색깔을 가진 눈동자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수십 개의 눈동자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행동했다.

데구루루 옆으로 굴러가는 것도 있었고,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는 것도 있었다.

“역시 그건 몇 번 만들어 봐도 볼 때마다 꺼림칙해.”

헤노바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보기 끔찍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십 개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니 혐오스러울 수밖에.

하지만 연우는 그 눈들 덕분에 여태껏 체감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의 영역을 맛보고 있었다.

마력회로와 마갑이 연결되면서 수십 개의 눈이 가진 ‘시각’이 감각 영역에 융화되기 시작했다.

[포착할 수 있는 감각 영역이 1.5배가량 확장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것들을 포착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기에스의 눈’이 마력회로를 따라 감각에 동조되기 시작합니다. 신체의 일부로 간주됩니다.]

[공감각(共感覺)이 열렸습니다.]

[‘감각 강화’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37.2%]

기에스의 눈은 원래 아무리 정밀한 감각이라고 해도 절대 포착하지 못할 미세한 것까지 정확하게 읽어 낸다.

그러한 ‘시각’이 이제 감각 영역에 연동되었다.

덕분에 연우는 더 많은 것을 관찰하고, 더 넓은 곳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들을 때로는 시각으로, 때로는 후각으로, 때로는 청각으로, 여러 개의 감각으로 다채롭게 풀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분석력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공감각의 탄생이었다.

이것이 바로 기에스의 눈이 가진 또 다른 기능.

감각 공유였다.

[육체의 성장이 확인되었습니다. 중단되었던 계승 작업이 다시 재기됩니다. 98, 99%…….]

[현재 작업량: 99.1%]

‘계승 작업까지?’

연우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곧 이유를 깨달았다.

‘역시 마갑 안에 내장된 이 기에스의 눈, 기능적인 면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기존 기에스의 눈보다 훨씬 뛰어나.’

어쩌면 소유자의 마력 순환을 보다 원활하게 해 주는 부가 효과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헤노바가 제작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뜻.

헤노바는 드디어 그런 연우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던지 피식 웃으면서 연기를 가볍게 내뱉었다.

“네놈 눈빛을 보니 이제 좀 속이 시원하구나. 보아하니 예상한 것 같다만, 마력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며 마력 복원력도 10%가량 향상되는 기능이 내재되어 있다. 속성 방어력은 물론, 체력 회복까지, 모든 옵션의 기본은 마력에서부터 비롯되니까.”

‘역시.’

연우는 침음을 삼켰다. 마력 회복력까지 올리다니. 이건 이제 더 이상 ‘기에스의 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헤노바가 주는 선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가면이나 살펴봐라.”

연우는 이번에는 검은 가면을 들어 올렸다.

전체적으로 흑요석처럼 반짝거리고 별다른 무늬가 없지만, 눈가를 따라 새겨진 3개의 붉은 무늬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마치 신화 속 악마의 탈을 보는 것 같았다.

[헤노바의 마장철면(魔裝鐵面)]

분류: 머리 방어구

등급: A

설명: 헤노바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가면. 짐승왕의 사자 갈기 투구를 밑바탕으로 특정 지역과 환경에서만 난다는 곤오철(昆烏鐵)과 한철(寒鐵)을 섞으면서 효력이 배로 증가하게 되었다.

* 인식 방해

인식 저해 마법이 새겨져 있어 상대방의 인지를 흐리게 만든다. 사용자가 원하지 않을 시, 절대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복원 효과를 가지고 있어 깨지더라도 금세 원래 형태로 되돌아간다.

* 공격 강화

처치한 몬스터의 숫자만큼 30초 동안 공격력이 1%씩 증가해 최대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제어 방해 효과의 지속시간을 10% 이상 감소시킨다.

*공포 영역

죽은 짐승왕의 힘을 일부 강림시켜 주변의 적들을 15-20초 동안 공포 상태에 빠지게 만들어 발을 묶는다.

또한, 공포 분위기에 따라 적들의 방어력을 20% 약화시킨다.

**이 아티팩트는 ‘성장형’입니다. 주인의 성장에 맞춰서 아티팩트도 같이 성장하므로, 친숙도와 능숙도를 함께 올리십시오.

**이 아티팩트는 ‘유니크’입니다. 탑에서도 오로지 단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주인에게 완전히 귀속됩니다. 타인으로의 거래나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마장대검과 같은 세트 아이템입니다. 세트가 갖춰질수록 더 많은 추가 기능이 제공됩니다.

-현재 추가된 기능

2세트: 공격 속도 +8%

후우우-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나와 헤노바를 감쌌다.

“시간이 남기도 하고 해서, 네놈이 허구한 날 쓰고 다니는 거, 영 답답해 보여서 한 번 만들어 봤다. 땀도 잘 안 찰 거고, 크기도 그만하면 잘 맞을 게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투.

하지만 이건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대가로 지불했던 짐승왕의 사자 갈기 투구를 아예 뜯다시피 하면서 더 상위의 아티팩트로 강화시켜 버렸으니까.

거기다 마장대검과 세트라니.

연우는 마장철면을 매만지다가 물었다.

“……제가 드린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만.”

헤노바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럼 고작 네놈이 가진 것들로 이 위대하신 헤노바 님의 물건을 하나나 제대로 건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그냥 갖고 가. 외상이다. 나중에 갚아.”

다리도 짧은 난쟁이가 굵은 주먹을 양 허리에 얹은 채 배를 쭉 내민 모습.

그러면서도 귀 끝이 살짝 빨개진 모습은 조금 웃음이 나왔다.

연우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헤노바의 말과 다르게 여전히 공방을 휘감는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았다.

용마안으로 얼핏 보였다.

밤이 새도록, 헤노바가 자신에게 제대로 된 아티팩트들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작업을 했던 모습이.

그동안 같이 있으면서도 뭔가를 자꾸 숨기는 것 같다 싶더니.

사실 이런 걸 주기 위해서였나.

“…….”

검은 가면을 만지는 연우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니면, 역시 바할 때문일까?’

바할이 헤노바에게 다녀간 건 맞는 것 같았다.

헤노바는 그게 짜증이 나서 실컷 망치를 두들겨 댄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물건들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바할 때문에 완성이 하루 이틀 정도 빨라질 수는 있어도, 물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작을 하고 있었단 뜻이었다.

바로 연우를 위해서.

그리고 그런 사실들이 연우의 가슴을 조금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사람이 그리웠던 걸까?’

잔정이 많으나, 더 이상 줄 곳이 없어 쓸쓸한 마음을 감춘 노인.

그리고 그에게 불쑥 찾아온 연우라는 인연.

‘역시, 이 사람은 바뀌지 않았어.’

그런 확신이 들었다.

“평소랑 다르게 입이나 꾹 다물고. 왜 그래? 왜? 이 헤노바 님의 은혜에 감격이라도 한 것이냐?”

헤노바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 연우의 마음은 더 깊게 가라앉았다.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고맙게 잘 쓰겠습니다.”

연우는 무겁게 고개를 숙이면서 돌아서려는데.

“아, 참. 그리고.”

“예.”

헤노바가 연우를 잡더니 살짝 헛기침을 했다. 부끄러운지 콧잔등이 붉었다.

“헛험! 그러고 보니 여태 너와 계속 지냈으면서도 이름을 묻지 않았었는데. 뭐냐?”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도로 작아졌다.

그는 잠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름이 뭐냐니까? 왜 말을 안 해?”

가면 아래, 연우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카인.”

긴 고민 끝에 그렇게 대답했다.

“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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