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환수 (3)
연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왜 이러는 거지?’
연우가 아는 피닉스는 오만하기는 해도 이렇게 경계심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물들이 설치면 어떻게 설치나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았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를 않으니.
연우는 우선 대화를 시도해 봤다.
“저는 당신이 갖고 있다는 ‘생명의 불꽃’을 얻고자 먼 길을 왔습니다. 시험을 내어 주십시오.”
『인간에게 내어 줄 시험 따윈 없다. 돌아가라.』
연우는 몇 번씩 설득을 해 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돌아가라는 말뿐. 그리고 더 접근을 해 온다면 죽일 거란 말도 섞여 있었다.
정말 뭔가 이상했다.
‘마치 한창 예민해진 고슴도치 같은데.’
고슴도치는 겁이 많은 동물이다. 하지만 겁이 많은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적이 나타나면 뾰족한 가시를 잔뜩 드러낸다.
지금 피닉스가 그런 것 같았다.
신수인 그를 고슴도치에 비하자니 조금 그랬지만, 외부의 상황을 너무 심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피닉스 정도라면 당장 자신을 죽일 수 있을 텐데도.
협박만 그럴 듯하게 할 뿐이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물리적인 제약은 주지 않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러다 연우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사람, 짐승, 환수까지, 모든 종을 막론하고 생물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약점.
가장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
팟!
연우는 몸을 날려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피닉스가 꺼지라며 더 큰 으름장을 놓았지만, 연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타닥.
동굴 안쪽으로 발길을 들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인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짙은 어둠이 깔렸던 동굴 사이로 샛노란 뭔가가 번쩍였다.
그것은 눈이었다.
연우를 몇 명이나 세울 정도로 거대한 눈. 신수 피닉스는 어둠 속에서 오롯이 노란 안광을 번뜩인 채, 짙은 살의를 풍겼다.
그래도 여전히 녀석은 허락받지 않은 침입자를 쫓아내려는 적극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연우는 어떤 확신을 가졌다. 용마안을 활짝 열어 동굴 내부를 재빨리 살폈다.
어둠 너머로, 엄청 넓은 공동을 따라,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붉은 새 한 마리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불꽃을 휘감고 있는 새.
얼마나 큰지 연우는 문득 자신이 상대에게 개미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웅크린 정도가 이 정도라면, 날개를 활짝 펼치면 얼마나 큰 걸까?
그리고 붉은 새, 피닉스는 뭔가를 잔뜩 품고 있었다. 두툼한 배 아래에 두 개의 알이 놓여 있는 것도 보였다.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새끼를 품고 있으셨군요.”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가? 꺼져라. 더 이상 네 녀석의 장난에 어울려 줄 시간 없으니.』
여전히 피닉스는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의념 속에는 적잖게 당황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그리고 경계심은 극도로 올라갔다.
알이 다칠까 봐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이글거리는 불꽃은 금방이라도 연우를 태워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야.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니까. 부화가 얼마 남지 않았어.’
피닉스가 예민해진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연우는 용마안으로 상황을 더 살피다가, 피닉스의 눈을 마주보면서 말했다.
“알을 잃어버리셨습니까?”
『…….』
순간 묻어나는 당혹감.
“맞나 보군요.”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것이냐. 알았으면 썩 꺼져라.』
환수를 뛰어넘은 신수. 그런 종의 알은 비싸게 거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꽤 많은 클랜이나 플레이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신수의 알을 구하고자 했다.
연우는 피닉스가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마지막까지 동생을 그리워하시던, 그러면서도 원망은커녕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까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알을 구해 온다면.”
『뭐?』
그래서 연우는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이기적이긴 해도, 이건 그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시험을 주시겠습니까?”
피닉스가 당혹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러다 녀석은 연우의 생각을 읽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혹시나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나 싶어서.
신수는 꿈을 먹고 사는 생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표면 의식을 읽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피닉스는 연우가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꿍꿍이는 없었다. 오로지 생명의 불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인상을 심어 주고 싶다는 사념만 전해졌다.
『……마음대로 하도록.』
피닉스는 샛노란 눈을 감으면서 머리를 뒤로 물렸다.
허락이다.
그 순간.
띠링.
[서든 퀘스트 / 피닉스의 알]
내용: 남쪽 대수림을 지배하는 신수 피닉스는 곧 태어날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구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알을 도난 당하는 아픔을 겪고 말았습니다.
피닉스의 알을 되찾아 그의 염려와 걱정을 덜어 주십시오. 피닉스는 당신의 도움과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제한 시간: 부화 시간까지.
보상:
1. 피닉스의 환심
2. ‘생명의 불꽃’의 시험 자격
연우는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고, 조용히 물러섰다.
* * *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알을 가진 녀석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연우는 암벽 아래로 내려오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피닉스의 시험을 받고 난 뒤, 근방 적당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보상으로 받은 칠흑왕의 절망과 아이기스를 확인할 참이었는데.
조금 늦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지.’
보아하니 알이 부화할 시기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범인들을 찾아야만 했다.
‘정확한 시간이 표기되지 않은 타임 어택이라. 그래도 24시간은 넘지 않을 거야.’
다행히 뒤를 쫓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알을 훔친 게 얼마 되지 않았던지, 피닉스의 등지로부터 암벽, 그리고 대수림을 따라 곳곳에 묘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결도 잔뜩 헝클어져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곳곳으로 도망치는 게릴라 부대를 쫓는 것도 중요했다.
이런 건 너무 익숙했다.
팟-
연우는 흔적을 쫓아 빠르게 움직였다.
* * *
“으하하! 이게 웬 떡이냐!”
“히히. 하필 그때 딱 타이밍 좋게 피닉스가 자리를 비울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비안과람은 대수림을 벗어나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품에는 사람 상체만 한 크기의 알이 들려 있었다.
신수 피닉스의 알. 그것도 부화가 얼마 남지 않은 알이었다. 자신들을 떼부자로 만들어 줄 행운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실 비안과람은 피닉스의 영역에 발을 들였을 때까지만 해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의뢰를 받아 움직이긴 했어도, 피닉스는 워낙에 대단한 신수였고, 서식지에 대한 경계심이 네 마리의 신수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트레저 헌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난이도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던 건지. 기회만을 엿보던 중에 갑자기 피닉스가 자리를 비워 버렸으니.
덕분에 두 사람은 그때를 틈타 알을 훔칠 수 있었다.
비록 뒤늦게 피닉스가 눈치채 전부 훔칠 수는 없었지만, 하나만 해도 쾌거였다.
“으흐흐. 이참에 이거 눈 딱 감고 가격 확 더 높게 불러 봐? 이런 거 어디서도 못 구할 텐데 말이지. 사실 부르는 게 값이잖아?”
“아니면 더 좋은 방법도 있지.”
“뭐?”
“우리가 이대로 그냥 갖고 나르는 거.”
람의 말에 비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그러다가 놈들한테 잘못 걸리면……!”
“그러니까 잘 잠적해야지. 그리고 생각해 봐. 피닉스라고, 피닉스. 이놈이 제대로 크고 나면? 그때는 그놈들이 뭐라고 할 건데?”
순간, 비안의 눈가에 탐욕이 일렁거렸다.
여태 알을 훔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렇지, 사실람의 말이 옳았다.
그들에게 의뢰를 맡긴 놈들은 분명 대단한 자들이었다. 강하고,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들이고, 독하기로 유명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그래서?
이 알을 그대로 가진다면.
눈 딱 감고 몇 년을 잠적하고 나면 자신들은 피닉스의 주인이 된다.
수천만 명의 플레이어들이 살아 간다는 탑에서도, 몇 안 되는 신수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놈들이 신수의 주인을 당해 낼 수나 있을까?
오히려 설설 기기에 바쁘다.
어쩌면 꿈에나 그리던 랭커가 될 기회가 열릴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비안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다가, 문득 다른 생각에 미쳤다.
‘잠깐만. 그렇게 되면 피닉스의 주인은 누가 되는 거지? 굳이 두 명일 필요가 있나?’
비안은 슬쩍람을 돌아봤다.
손발이 아주 잘 맞아 3년을 넘게 같이 해 왔던 파트너.
하지만 대부분의 트레저 헌터가 그렇듯이, 그들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 뭉쳤지 따로 이렇다 할 의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순간, 비안의 눈가에 스산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때, 갑자기람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씩 웃었다. 비안은 재빨리 살의를 감추며 따라서 빙긋 웃었다.
“왜 그러나?”
“자네도 결국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뭔…… 컥!”
비안은 잘 달리다 말고 갑자기 울컥 피를 토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몸이 무거워졌다.
람이 어느새 알을 끌어안으며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소가 차갑게 빛났다.
“뭐, 우리 업계가 다 이렇지 않나. 억울해하지 말라고. 내가 안 이랬으면 자네가 먼저 했을 테니까. 그렇지?”
“언…… 제?”
“아까 전에 건네줬던 물. 만드라고라의 진액을 잔뜩 넣어 뒀는데도 모르더군. 많이 지쳤었나 봐. 평소에는 그렇게 의심을 하더니.”
서둘러 도망치느라 너무 목이 말라 아무 생각 없이람이 건넨 물을 마셨었던 게 떠올랐다.
“젠…… 장…….”
비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절명했다.
람은 회까닥 뒤집힌 녀석의 눈을 보면서 실실 웃었다.
“피닉스의 알이라. 횡재했군. 언젠가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는 했지만, 진짜로 올 줄이야.”
람은 이 알을 두고 어디로 잠적할까 고민했다.
의뢰자의 눈은 층계 곳곳에 닿아 있다.
그걸 피해 숨으려면 정말 철저하게 숨어야 했다.
최소 3년.
피닉스가 성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긴 시간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 정도만 꾹 참고 기다리면 랭커의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강하고, 호화롭고,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삶이.
웅, 우웅-
품에 안은 알이 놓으라면서 꼼지락대는 게 느껴졌지만 그냥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고 움직이려 했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쭉 빠지지만 않았다면.
가슴팍. 칼날이 심장을 뚫고 나와 있었다.
“어떻게 된……?”
그 말을 끝으로람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곧 뒤에 연우가 튀어나오며 떨어지는 알을 조심스럽게 낚아챘다.
“멍청한 놈들.”
연우는 죽은 두 시체를 보면서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흔적을 따라 쫓던 중에 대수림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들을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기습해서 알을 빼앗을까 싶었지만, 싸우는 중에 혹시 알을 떨어뜨릴까 봐 그러지 못하고 조용히 뒤만 따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알을 두고 다투더니 훤히 뒤만 내줬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기회를 놓칠 연우가 아니었다.
운이 좋아 얻은 보물은 사람의 욕망과 이기심을 더 크게 부채질할 뿐이다. 녀석들은 그래서 죽은 거였다.
연우는 허공에 손을 흔들어 열화 스킬로 두 시체를 모두 불살랐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 같은 알을 꼭 끌어안으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앞으로도 이런 퀘스트만 있으면 좋겠어.’
솔직히 쉬워도 너무 쉬웠다.
* * *
『아, 아. 정말 찾아올 줄이야. 내 아이야.』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연우는 기쁨에 찬 눈물을 흘리는 피닉스를 보면서 엷은 미소를 떴다.
‘다행이군.’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