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2화 (82/862)

7화. 환수 (5)

감응선을 좀 더 또렷하게 만들 수 있다면 통제 범위도 더 많이 늘어날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 외에 마법적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물리적 한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퍼억!

부두술사의 영혼이 몇 번 주먹을 내지르자, 나무가 그대로 옆으로 기울어졌으니까.

그러면서 슬쩍 연우를 쳐다보는 게, 영혼이라 표정은 읽을 수 없어도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연우가 수고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영혼을 따라 감도는 칙칙한 검은 안개가 크게 출렁거렸다.

제 딴에는 주인의 칭찬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작게 피식 웃다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귀의 능력은 망령에서 조금 나아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아. 하지만 물리적 타격은 어느 정도 가능하니 숫자만 적당히 갖출 수 있다면 쓸 만해지겠어.’

연우는 빌드에게 달려들던 사귀 무리를 떠올렸다.

하나하나만 따지자면 보잘것없지만, 많은 머릿수를 가져다 놓으니까 자신도 흠칫거릴 정도였다.

게다가 유령의 특성상, 생전의 원한이 깊으면 깊을수록 격도 저절로 높아지고, 무리를 이룰수록 서로 기운의 동조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강해지는 것도 있었다.

‘사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좀 더 알아 봐야겠지. 한 개의 표본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조직적인 움직임의 한계나, 사귀의 최대 수용 범위에 대해서도 파악해 봐야 하고.’

무엇보다.

연우는 사귀를 이용해서, 차후에 더 큰 것을 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언데드는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더 상위 종으로 진화할 자격을 얻게 된다. 어쩌면 이 녀석도…… 리치 같은 걸로 부화시킬 수 있을지 몰라.’

언데드 군단.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를 얻을 수 있다면, 더더욱 깊게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연우는 좀 더 구체적인 실험을 위해서 컬렉션에 있는 망령 목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눈에 띄는 게 두 녀석 있었다.

‘자이언트 놀과 불카 정도인가?’

자이언트 놀은 6층에서 아르테미스의 월계관을 만들 때에 월계수 잎을 지키던 수호자였고, 불카는 9층에서 판트 남매와 함께 잡았던 강적이었다.

초심자 구간에서 잡을 수 있는 최고의 놈들.

혹시 어디 쓸 데가 있을지 몰라 영혼을 잡아 뒀던 게, 이렇게 쓰일 줄이야.

연우는 내친 김에 두 녀석을 뽑아 흑기를 불어 넣었다.

덕분에 컬렉션에 남아 있던 망령들을 전부 소진해야 했지만,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크헝. 크허헝.」

「꾸우우!」

부두술사의 영혼과 다르게 자이언트 놀과 불카는 사귀가 되자마자 포효부터 질러 댔다.

자이언트 놀은 족히 3미터는 될 만큼 길쭉한 길이를 자랑했고, 불카는 몇 사람을 한꺼번에 안을 수 있을 만큼 큰 덩치를 가졌다.

서로 다른 특징 때문인지 구분하기는 수월했다.

연우는 둘과 연결된 감응선을 짚으면서 별도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 * *

연우는 부두술사의 영혼은 ‘부’, 자이언트 놀에는 ‘놀’, 불카에게는 ‘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령을 내릴 때 일일이 지적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성의 없게 지은 이름이었지만, 녀석들은 오히려 좋다면서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까지 했다.

[사귀의 이름을 지정하였습니다.]

[사귀들의 정체성이 확립됩니다. 사귀들의 사기가 오릅니다.]

[‘권속 친화도’ 항목이 개설되었습니다.]

[권속 친화도]

* 사귀

부(부두술사의 영혼): 15/30

놀(자이언트 놀): 8/41

카(불카): 10/55

[권속들과의 친화도를 향상시키십시오. 친화도가 높을수록 유대감과 연대감이 향상하여 사귀의 능력도 강화될 것입니다. 또한, 더더욱 충실한 마음으로 당신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연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름을 짓는 것만으로 이렇게 좋아한다고?

게다가 친화도라는 항목까지 덩달아 생겼다.

‘정체성의 확립이라.’

유령은 자아가 흐트러진 존재. 사귀가 망령보다 한 단계 격이 높다지만 여전히 자신이 누군지는 자각하질 못한다. 여기에다 이름을 준다는 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다.

사귀들과의 감응이 좀 더 또렷해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항목에 나와 있는 대로 친화도의 수치가 높을수록 감응선도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덕분에 연우는 추가로 몇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건 대부분 맞았다.

사귀의 능력은 생전에 가졌던 능력이나 격을 어느 정도 따라가는 것 같았다.

민첩했던 놀은 빠른 속도를 자랑했고, 맷집이 강했던 카는 느린 대신에 힘이 대단했다.

부의 힘, 민첩, 체력을 각각 1로 둔다면, 놀은 1, 3, 2, 카는 5, 1, 3쯤 되는 것 같았다.

‘결국 질 좋은 유령을 꾸준히 수집해야 한다는 뜻이군.’

그 뒤에는 세 사귀를 풀어 보기도 했다.

다행히 사냥에 있어서는 본능이 남아 있었던지 별도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냥 간단하게 ‘저 녀석을 사냥하라’는 명령만 내렸을 뿐.

그것만으로도 세 사귀는 역할 분담을 하며 알아서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카가 정면에 서서 맷집을 자처하고, 놀이 치고 빠지면서 딜러 역할을 했다. 부는 뒤쪽에서 두 사귀가 지치지 않도록 버프를 자꾸 불어 넣었다.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지만, 열댓 번 정도 계속 진행하다 보니 얼추 그럴 듯한 모양새가 갖춰졌다.

‘학습 능력도 있다는 뜻이야.’

연우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사귀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지도 없어서 내버려 두면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망령과는 천지 차이였으니까.

그렇게 하루 날이 저물 쯤에는 컬렉션도 꽉 찼다.

[수집한 망령의 수: 500]

‘일단 컬렉션의 크기는 이전보다 3배 정도 늘어났어.’

이전의 수용 범위는 150마리. 지금은 500마리였으니 세 배는 더 늘어난 셈이었다.

연우는 이번에도 망령을 전부 소진시켜 되도록 많은 사귀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사귀의 수용 범위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추가로 만들어진 숫자가 총 7마리.

도합 10마리가 한계였다.

‘생각보다 적은데.’

연우는 부, 놀, 카와 함께 서 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망령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흑기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쓰임새가 없다.

그나마 사귀가 쓸 만한데 고작 열 마리라니.

게다가 추가로 만들어진 녀석들은 급히 만든 녀석들이다 보니 격도 많이 낮아서, 크게 쓸모도 없었다.

연우는 칠흑왕의 검은 팔찌를 손으로 훑었다.

팔뚝까지 감긴 검은 쇠사슬.

차갑고 이질적인 감촉이 느껴졌다.

[망자 수집가]

소유자가 죽인 대상자의 영혼을 거둘 수 있다. 이때, 영혼은 망령으로 타락해 생전의 힘을 모두 잃고, 짙은 원한만 남는다.

수집된 망령들은 컬렉션에 속박되어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소유자의 숙련도에 따라 컬렉션의 크기도 대폭 늘어날 수 있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컬렉션의 크기도 늘어난다는 대목…… 당장은 여기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는 없겠는데.’

당장 검은 팔찌가 주는 기능들은 대단한 것 같지만, 실상 깊게 따지고 보면 제약이 많았다.

특히 군주의 유품이라고 하기에는.

당장 바토리의 흡혈검만 보더라도, 군주의 유품이자 스킬답게 상대의 모든 능력을 갈취하고 나아가 스킬까지 강탈하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팔찌는 아직까지 거기에 미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명창에 나와 있는 대로 아직까지 숙련도가 부족해서 그런 건지, 아직 개방되지 않은 두 옵션들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아직 숨겨진 비밀이 많은 건지.

‘아스트라페를 먹은 만큼, 그만 한 가치를 보여 줬으면 좋겠는데.’

연우는 눈살을 가느다랗게 좁히다가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일단은 이 유품이 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에도라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나.’

에도라가 가진 스킬, 혜안은 사물의 현상을 직관하여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꿰뚫는다.

연우의 용마안이 진리를 꿰뚫기 때문에 두 가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특징을 자랑한다.

어쩌면 연우가 보지 못하는 다른 정보를 가져다줄지도 몰랐다.

연우는 일단 검은 팔찌에 대한 궁금증은 에도라가 올라올 때까지 미뤄 두기로 했다.

게다가.

그에게는 아직 아스트라페 대신에 갖게 된 다른 무구가 있었다.

『재미난 걸 갖고 있군.』

연우가 등에 걸쳤던 9겹의 꽃잎 방패 쪽으로 손을 가져가려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익숙한 피닉스의 목소리.

‘스킬이나 권능 같은 걸로 보고 있는 건가?’

어디에서도 기척을 느낄 수 없는데.

피닉스는 자신이 하는 일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쉬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까 전에는 요동치던 것들이,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다. 그리고 가만히 있기도 심심해서 말이지. 네가 갖고 있는 것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기도 하고.』

연우는 피닉스가 자신이 가진 검은 팔찌와 아이기스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수라 그런지 ‘신의 물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았다.

특히 피닉스의 보이지 않는 시선은 검은 팔찌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네가 감고 있는 팔찌.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 * *

“제기랄, 제기랄……!”

절뚝. 절뚝.

나무가 우거진 밀림 사이로. 리언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절름발이 신세로 천천히 걸었다.

그의 전신은 온통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얼굴은 반쯤 녹아 흉측하게 일그러져 목소리도 칙칙해져 있었으니.

하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

바할과 레드 드래곤의 습격은 그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다.

갖고 있던 아티팩트와 스킬들을 전부 사용해 어떻게든 몸을 내빼는 데는 성공했지만, 청화도 안에 구축했던 기반과 수하들이 대부분 날아가고 말았으니.

‘돌’만 남아 있었다면. 심장만 그에게 있었더라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으드득.

리언트는 돌을 훔쳐 간 작자와 바할에 대한 분노를 담아 으스러져라 이를 갈았다.

“어떻게든 되돌려 줄 것이다. 어떻게든…….”

* * *

레드 드래곤이 청화도를 상대로 선전 포고를 했다는 소식이 탑을 강타했다.

바할과 플레임 비스트가 리언트를 습격, 리언트가 겨우 몸만 내뺀 채로 도망을 쳤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각 층계의 주요 도시에 레드 드래곤의 성명이 담긴 포고문이 개시되었다.

수많은 클랜과 랭커, 플레이어들이 사태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은 다가올 전운에 대비했다.

레드 드래곤과 청화도는 탑을 상징하는 거대 클랜.

두 곳이 부딪친다는 건 그만큼 커다란 지각 변동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건, 외뿔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딜 가도 저 소리밖에는 없네. 대체 우리가 시련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길목 사이로, 판트와 에도라가 휘적휘적 길을 걸었다.

판트는 잔뜩 이골이 난 상태였다.

미로처럼 복잡해서 조금 힘겨웠던 10층의 시련을 겨우 끝내고, 이제 마음 편하게 11층으로 넘어가나 싶었는데.

관리자 이블케와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 앞으로 한 마리 새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붉은 까마귀. 제약 없이 층계를 맘껏 돌아다닐 수 있어 일족에서 주로 전령 역할로 부리는 영물이었다.

녀석이 가져온 전갈의 내용은 간단했다.

‘서찰을 받는 즉시 부족으로 돌아올 것.’

소집령이었다.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붉은 까마귀를 통해 전해진 만큼 급한 일이다 싶어 다급하게 탑을 벗어났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도시를 보고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판트는 시련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이 짜증나 연신 툴툴거렸고, 에도라는 신마도를 세게 끌어안기만 하고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시를 빠져나온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외곽에 위치한 어느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촌락으로 보이는 곳.

하지만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탑의 여러 도시와는 이질적이었다.

어귀에 들어서자 밭을 갈던 사람들이 판트 남매를 발견했다.

“오?”

“판트 님과 에도라 님? 두 분이 갑자기 여기는 웬일로?”

“요즘 탑이 꽤 시끄럽다잖은가.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오신 모양인데? 아가씨! 요즘 신랑감 찾기는 잘 되십니까?”

판트와 에도라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곧 어귀가 시끌벅적해졌다.

두 사람은 간만에 만난 마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만 왕족일 뿐이지, 부족원들은 아무도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

“오오! 아들, 딸! 왔냐?”

마을 안쪽에서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판트보다도 훨씬 우락부락한 덩치에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한쪽 어깨에는 곡괭이를 짊어진 중년인이었다.

겉보기에는 힘 좋은 농부로만 보이는 모습.

에도라는 그런 모습이 보기 싫은지 고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서찰에는 엄청 다급한 일이라고 하셨으면서. 텃밭을 일구실 시간은 있으신가 보네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래도 사람이 이 정도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그런데 우리 딸, 왜 이렇게 오늘따라 더 뾰족하실까? 혹시 그 날이기라도 한……!”

“뒷말 더 하시면 칼 뽑을 거예요.”

에도라의 차가운 말투에 중년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옆에 있던 판트를 돌아보며 왜 저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판트가 피식 웃었다.

“왜 그러긴. 그야 낭군이랑 시시덕대면서 다시 돌아다닐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가, 아버지가 산통 다 깨놨으니 짜증이 날 만하…… 쿠에엑!”

“좀 닥쳐!”

판트는 말을 하다 말고 에도라의 날라차기에 옆구리를 세게 얻어맞고 저만치 나뒹굴었다.

에도라는 쓸데없는 말을 봉쇄하려고 했지만, 이미 중년인과 다른 마을 사람들이 다 들은 뒤였다.

“뭐? 신랑감?”

“오오! 우리 아가씨께서 드디어!”

“이야. 그럼 우리 조만간에 다 같이 국수 먹을 수 있는 건가? 오랜만에 잔치라도 열어? 어?”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에도라는 손으로 얼굴을 뒤덮었다.

이래서 마을에 돌아오기 싫었던 건데.

일족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이 오지랖 넓은 성격이 문제였다.

중년인은 실실 웃으면서 턱 하고 딸의 어깨에다 팔을 걸쳤다.

“으흐흐. 우리 도도하신 따님의 마음을 빼앗으신 분이 과연 누구실까? 엄청 궁금한데?”

“……팔 내려요.”

“뭐하는 놈이냐? 우리 같은 아인? 아니면 인간?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실까?”

중년인은 에도라가 뭐라고 하건 간에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에도라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야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신마도에 손까지 가져갔다.

“알았다, 알았어. 하여간 저 뾰족한 성격은 대체 누굴 닮은 건지. 어째 농을 못하게 하누.”

중년인이 과장되게 떨어지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에도라가 다시 도끼눈으로 째려봤지만, 그의 입가에서는 싱글싱글 웃음기가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크게 박수를 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뭐, 그럼 장난은 이만하면 되었으니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순간, 중년인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여태껏 보였던 장난기 가득한 것과는 달리 묵직한 눈빛.

거짓말처럼 왕으로서의 위엄이 물씬 풍겨 나왔다.

“서찰에 이유는 적지 못했다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대강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눈치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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