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4화 (84/862)

9화. 환수 (7)

전혀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부탁이었다.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름을 지어 줬을 때, 존재가 묶이는 걸 염려하는 것이겠지?』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귀들의 이름을 지어 줬을 때 느꼈지만, 영적인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 준다는 건 틀에 얽매이게 한다는 뜻이었다.

환수 역시 사귀와 종류는 달라도 영적인 존재. 연우가 이름을 지어 주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하지만 피닉스는 걱정 말라는 듯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대와 연이 깊게 맺어진 아이이고, 그대를 아주 좋아하는 아이이기도 하니까. 오히려 이름을 지어 준다면 더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피닉스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네게도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건 전혀 없을 것이다. 내 아이에게 금칠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만, 신수와 영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그대 역시 영혼의 ‘격’이 그만큼 상승한다는 뜻.』

그리고 그러한 온화함은 연우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더 높은 층계에 올라 더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수행자라면. 앞으로의 걸음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 있을까.

결국 연우는 부탁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 * *

모든 동물이 그렇듯, 갓 태어난 새끼는 아주 귀여웠다.

『내 아이지만, 막내면서도 잠재 능력이 아주 뛰어난 아이다. 앞으로도 크게 자라날 수 있겠지.』

연우는 자신에게 안겨 마구 지저귀는 새끼 피닉스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잘못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깨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녀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우의 품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그럴 때마다 연우는 새끼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쩔쩔 매야만 했다.

『딱딱해 보이던 그대에게도, 어려운 게 있나 보군.』

피닉스는 뭐가 그리 재미난지 흥미로운 눈길로 연우와 새끼를 바라봤다.

연우는 새끼를 조심스레 껴안으면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해.’

불꽃으로 이뤄진 새인데도 불구하고 뜨겁지 않았다. 너무 따뜻해서 놓고 싶지가 않았다.

새끼가 마구 지저귀었다.

『자, 그럼 이름을 지어 다오.』

[피닉스가 자신의 셋째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어 주시겠습니까?]

연우는 새끼를 보다가 고민 끝에 지은 이름을 붙였다.

“짹짹이.”

[이름을 ‘짹짹이’로 지으시겠습니까?]

연우는 확인을 묻는 메시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갑자기 요상한 시선을 느꼈다.

『…….』

고개를 돌리니 피닉스가 떨떠름 해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지한 눈빛.

『…아니다. 아무것도. 뭐, 그런 것도. 음. 괜. 으음. 찮겠지.』

연우는 헛기침을 하는 피닉스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라 의아스러웠지만, 이미 메시지는 승인되고 있었다.

[피닉스의 셋째 아이에게 ‘짹짹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짹짹이와의 교감이 생성됩니다. 짹짹이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습니다. 친화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화 속성에 대한 친화도가 50만큼 상승했습니다.]

[풍 속성에 대한 친화도가 50만큼 상승했습니다.]

[신수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신수의 영향으로, 앞으로 마수(魔獸)를 제외한 모든 환수들의 경계심이 옅어집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2,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1,500만큼 획득했습니다.]

……

연우는 체내에서부터 뭔가가 벅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하기 힘들지만, 피닉스의 말마따나 새끼 피닉스와 영적으로 연결되면서 영혼의 ‘격’이 상승하면서 생긴 결과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영혼의 성장이 확인되었습니다. 중단되었던 계승 작업이 다시 재기됩니다. 99.1%, 99.2%…….]

[현재 작업량: 99.5%]

계승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장한 영혼에 맞춰 육체라는 그릇이 맞춰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작업량은 0.5%.

계승 작업이 끝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연우는 성장한 육체가 주는 쾌감을 한껏 만끽하면서 짹짹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짹! 짹!

* * *

팟-

연우는 육체의 성장을 확인한 후, 완전한 적응을 위해서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확인이 전부 끝난 검은 팔찌와 아이기스도 완전히 손에 익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연우는 몇 가지 조합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예전에 개발했던 흑의 칼날과 열기의 조합식은 흑기와 열기의 조합으로 변해 더 큰 화력을 자랑했고, 전투 의지와 여신의 창칼은 서로 간에 상승효과를 더해 사고 가속이 더 순조로워지는 결과를 낳았다.

사귀들 역시 부, 놀, 카를 중심으로 작은 부대를 편성했다.

학습 효과도 있어서 격이 떨어지던 녀석들도 이제 제 몫은 다 하고 있었다.

연우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자율 행동을 하며 여기저기서 망령을 끌어왔고, 다양한 능력 개발도 이뤄졌다.

물론, 막막한 구석도 있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하는 거지?”

연우는 아이기스를 살피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9겹의 꽃잎 방패는 단순히 ‘방패’로서의 기능만 하는 건 아니었다.

신의 무구답게 사용 방식도 일반 방패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연우는 그 사용 방식을 알아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용마안으로 아무리 감정을 시도해도 더 자세한 내용은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이리저리 만져 보면서 몇 가지 방식은 알 수 있었다.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워.’

9겹이나 되는 데다가 독특한 소재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리도 되는 것 같고.’

9겹의 방패는 하나면서도 또 따로 9개였다.

작은 하나를 중심으로 팔방에 걸쳐 같은 크기의 방패들을 꺼내 거대한 보호막을 이루게 할 수 있었고, 필요에 따라서는 하나씩 따로 떼 내는 것도 가능했다.

연우는 이것이 9겹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사방에서 날아올 공격에 대비하는 용도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마력을 불어 넣어 볼까?’

연우는 마력회로를 가동시키면서 아이기스에다가 마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지이잉-

아이기스가 가볍게 진동을 하면서 ‘찌릿’하고 연우와 보이지 않는 뭔가가 연결되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 같은 기분. 사귀와 연결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의지만으로 조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염동(念動)인가?’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잘되었다 싶었다.

연우는 아이기스를 바닥에 놓고, 위에다 손을 뻗어 허공에 붕 떠오도록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치 이륙하려는 UFO처럼 아이기스가 가볍게 몸을 떨더니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력을 더 많이 불어 넣으니 연결력이 더 강해져 단숨에 머리 위치까지 도착했다.

‘편한데? 생각보다.’

어쩌면 사용하는 게 수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의지만으로 위치를 조절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테니까.

유니크는 유니크답게 다루는 것도 아주 힘들 거라고 동생이 누누이 이야기했었는데.

아이기스는 그 범주에서 벗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우는 곧 그 생각을 접어야만 했다.

한데 뭉쳤던 아이기스를 각각 9개로 분리시키려는 순간, 연결도 9개로 분산되면서 집중이 단번에 흐트러지고 만 것이다.

쨍그랑, 쨍그랑!

9개의 아이기스가 요란한 쇳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9개를 전부 다루려면 9개에 전부 따로 집중해야 한다고?’

불현듯 드는 생각에 분리된 아이기스를 다시 움직여 보려 했지만, 미미하게 떨리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장 가까운 한 개에만 집중해서 의지를 불어 넣으니.

우웅, 우웅, 우웅-

처음에 사용했을 때처럼 아주 수월하게 떠올랐다.

연우는 이를 악물면서 이번에는 왼손을 뻗어 다른 하나에 시선을 돌렸다.

두 개가 동시에 둥둥 떠다녔다.

‘생각보다 어려운데.’

연우는 바싹 마른 아랫입술을 혀로 축이면서 두 방패를 자유롭게 다뤄 보고자 했다.

하지만 한 개에 집중하면 다른 한 개의 집중이 흐트러지고, 다른 한 개에 집중하면 또 다른 한 개의 집중이 흐트러져서 움직임이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았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다.

따로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는 건 쉽지만, 동시에 그리려고 하면 실패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그런 것을 총 9개나 다뤄야 하니 쉬울 리가 없었다.

‘전부를 사용하려면 의식을 분할해야 해.’

연우는 그제야 아이기스가 얼마나 사용하기 까다로운지를 깨달았다.

웬만한 공격쯤은 쉽게 막아 내고, 역공으로 석화 마법까지 가할 수 있는 신의 무구였지만, 그만큼 능수능란하게 다루려면 뛰어난 집중력과 제어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번에도 쉽지 않겠어.’

게다가 전투 중이라면 어디 아이기스만 다룰까.

두 팔이며 두 다리, 적을 상대할 방법까지 모색해야 하니 정신이 없어지겠지.

그야말로 전장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뛰어난 안목을 지녀야만 했다.

‘역시 전쟁과 지혜의 여신.’

그나마 연우에게 다행인 점이 있다면, 특성이 상황 판단력과 계산력이 빠른 금강체와 냉정을 잃지 않는 냉혈이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워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서너 개쯤은 뜻대로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감각도 뛰어난 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걸로 어느 정도 사용법은 터득한 셈이니 연습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부, 놀, 카.”

크르르-

연우의 부름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세 사귀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아이기스를 아주 두려워하던 녀석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경계하는 기색이 많이 옅어진 상태였다.

“지금부터 간단한 훈련을 하려고 한다.”

쿠르?

녀석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들은 우선 주변에 흩어져 있다가 신호를 보내면 돌아와서 나를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 전략은 철저하게 히트 앤 런으로.”

녀석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냐는 듯.

생김새는 흉측하게 생겼으면서 하는 행동들은 은근히 귀여웠다.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오로지 너희들을 막기만 할 생각이니까. 고르곤의 머리가 달린 방패는 따로 빼 둘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검은 팔찌와 아이기스의 상성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번 연습을 해 보니 기능을 극대화시키지 않는 한 큰 충돌은 없었다.

연습을 할 정도로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세 몬스터도 그제야 알겠다면서 고개를 숙이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연우는 녀석들의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감각 강화 스킬을 발동시켰다.

화아악-

넓은 범위를 따라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여기에 기에스의 눈까지 가동시키면서 영역은 계속 늘어났다.

연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누르면서 우선 9개의 아이기스 방패 중 2개만 의식에 연결시켰다.

순간, 살짝 현기증이 핑 하고 돌았다.

가볍게 혀를 찼다.

‘인지 영역을 유지하면서 아이기스 제어까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

신의 무구를 사용하는 일이니 쉬울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와라.”

팟! 파밧!

사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달리는 방향으로 2개의 아이기스를 재빨리 이동시켰다.

* * *

연우는 몬스터들과의 대련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강도.

당연히 단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충격 흡수율도 아주 좋았다.

불카는 사람쯤은 한 손으로 가볍게 찢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자랑한다.

그런 녀석이 전력을 다해 부딪쳤지만 아이기스는 미미한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방어를 하는 것도 용이했다.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허공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각 지대에 배치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습격에 대비하기에도 아주 편했다.

‘결국 컨트롤만 제대로 따라올 수 있으면 최고란 뜻이야.’

그런 면에서 자이언트 놀이 가장 알맞은 상대였다.

녀석은 아주 재빠른 움직임을 자랑했다. 높은 도약력으로 단번에 나무 꼭대기까지 도착하고, 나무 기둥을 박차서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무게가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숲을 맘껏 쏘아 다니면서 연우를 노려 왔다.

덕분에.

훈련 방식은 간단했다.

먼저 확장된 인지 영역을 따라 아이기스를 한 개만 사용해서 녀석들의 합공을 상대해 보고, 어느 정도 숙달이 된다 싶으면 하나씩 늘려 나가는 방식이었다.

하나를 다루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의식을 쏘아 보내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2개 이상부터는 확실히 힘이 들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억지로 했을 때 최대 3개. 하지만 자유롭게 다루려면 2개가 한계야.’

연우는 굳이 억지로 개수를 늘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익숙해지다 보면 개수는 저절로 늘어날 테니까.

대신에 3개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이번에는 직접 뛰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최고의 이점은 기동력과 민첩성. 그렇다면 아이기스를 다루는 것도 그런 식으로 해야 해.’

연우는 자신의 장점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자이언트 놀을 잡기 위해 지면을 박차면서 아이기스를 곳곳으로 날려 보낸다.

그건 마치 ‘또 다른’ 나가 분리되어 곳곳에서 제멋대로 뛰어다. 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전장을 전지적 3인칭 시점으로 내려 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절대 쉬울 일이 아니었다.

의식이 곳곳에 산재해서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신이 핑핑 돌았다.

정보가 다양하게 섞이면서 현기증이 돌았고, 멀미가 생겨서 시야가 흐트러졌다.

그래도 연우는 훈련의 강도를 높이면 높였지, 낮추지 않았다.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3개의 아이기스에다 감각을 더 집중시키고, 뇌의 정보 처리 영역을 주체와 부체로 철저하게 분리시켰다.

마력회로가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과열된 나머지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지만.

연우는 그래도 달리고 또 달렸다.

파앗-

* * *

연우는 새벽이 되어서야 환수의 알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근방에 있는 연못에 들어가니 피로가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튜토리얼에서 만년설삼과 아카샤 뱀의 내단을 먹은 뒤 처음으로 마력회로를 한계치까지 사용해 봤기 때문일까.

마력회로가 텅 빈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니 빠른 속도로 마력이 차올랐다.

마력 사용이 수월하다는 것.

이게 바로 금강체가 가진 최고의 이점이 아닐까.

‘남은 계승 작업도 서둘러 마쳐야 할 텐데.’

이제 몇 퍼센트 남지 않은 계승 작업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연우는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연우는 이것을 깨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다.

‘계속 구르다 보면 어떻게든 방법이 나오겠지.’

연우는 노곤해지는 몸을 눕히면서 상태창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어.’

[차연우]

특성: 냉혈, 금강체

칭호: 괴물사냥꾼

* 신체 능력

힘: 235 (+23)

민첩: 245 (+29)

체력: 239 (+14)

마력: 320 (+22)

* 스킬 용마안(25.1%), 감각 강화(43.2%), 시간 예지(1.0%), 물리 내성(30.1%), 전투 의지(25.5%), 바토리의 흡혈검(15.5%), 열화 (52.1%) 순보(39.1%), 마력회로(18.2%)

이미 연우는 탑에 처음 들어올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파른 성장 속도만 따진다면 기나긴 탑의 역사를 통틀어도 몇 되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거기다 뛰어난 장비들까지.

도저히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라고 할 수 없는 수치들이었다.

그런데도 연우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혹독하게 자신을 밀어붙였다.

특히 아이기스 사용을 연습하면서는 감각 강화의 숙련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의식을 분할하는 데 감각을 집중시켰기 때문인가?’

연우는 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어차피 아이기스를 다루기 위해서는 몇 번씩이고 해야 할 연습.

그런데 스킬 숙련도까지 같이 올릴 수 있다면?

이것만 한 게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이미 아이기스 사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태.

‘한 개라면 자유롭게, 두 개라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세 개라면 방어까지.’

연우는 앞으로 할 연습 방식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당분간은 여기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환수가 태어날 때까지는 특별히 할 게 없는 11층이었기 때문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그나저나.’

연우는 상태창을 끄면서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

“이 녀석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연우가 11층에 들어온 지도 벌써 6일째.

하지만 판트와 에도라는 여전히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10층이 까다롭기는 해도, 강한 정신력을 가진 녀석들이라면 크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아니, 성격이 급한 판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혜안을 가진 에도라까지 발목이 묶일 스테이지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연우는 허공에다 손을 뻗어 층계 랭킹창을 허공에다 띄웠다.

[10층 랭킹]

1위. 에도라 (25,000Point)

2위. 비공개 (23,900Point)

3위. 차정우 (20,100Point)

……

‘이런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히 아닐 텐데.’

원래 연우가 차지했던 1위 자리를 어느새 에도라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판트 이름도 5위에 당당히 기록되어 있었다.

결과도 며칠 전에 새겨진 것.

그렇다면 시련을 마무리 지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여태 11층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옆으로 샀다는 뜻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탑 외 지역으로 나갔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둘이 함께.

두 사람 다 계속 탑을 오를 거라고 했었기 때문에 의문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련은 무사히 마쳤으니. 때 되면 돌아오겠지.’

연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제 앞가림은 잘하는 녀석들이니 따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자신과 길이 엇갈리지 않도록 환수의 알이 부화하기 전에만 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많이, 변했구나. 나도.’

연우는 연못 깊숙하게 몸을 묻 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걸린 달은 마침 그믐이라 평소보다. 밤이 깊었다.

* * *

하지만 판트와 에도라는 5일이 더 지나고서도 11층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동안 연우는 맹목적으로 수련에만 집중해서 어느덧 3개의 아이기스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고, 사귀들도 자율 행동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주 조금씩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해도 무방하겠어.’

연우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등에는 아이기스와 비그리드를 매고, 허리춤에는 마장대검과 크라슈나의 단검을 걸었다.

마갑 형태인 기에스의 눈도 잘게 떨렸다.

『이제야 출발하려는 거냐?』

그때, 새끼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던 피닉스가 말을 걸었다.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생각보다 늦게 시작하는구나.』

“준비할 게 많았습니다.”

『그래도 빨리 출발하는 게 좋을 거다. 네 아이도 이제는 생명의 불꽃을 탐내는 것 같으니.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는 내가 잘 돌보고 있겠다.』

“감사합니다.”

연우는 감사 인사를 하고 대수림을 벗어났다. ‘생명의 불꽃’을 담을 그릇을 만들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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