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생명의 불꽃 (1)
환수는 사람의 꿈을 먹고 사는 존재. 하지만 이 말은 다르게 말하자면 주인의 의도에 따라 충분히 원하는 종을 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100%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는 없었다. 탑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니까.
하지만 최소한 원하는 속성으로, 그리고 상위종으로 유도할 수는 있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그 유도 방법이 결코 쉬운 건 아니었다.
필요한 재료들 하나하나가 전부 구하기가 엄청 힘든, 아주 귀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개 히든 피스, 정확하게는 히든 퀘스트 아래에 가려져 있었다.
‘이쯤 어디일 텐데?’
연우가 가장 먼저 구할 것은 거대 새, 알바트로스의 알.
‘새끼일 때는 모르지만, 성체가 된 알바트로스는 웬만한 플레이어쯤은 가볍게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해. 덩치도 크고.’
알바트로스는 크기만 장장 5미터에 달한다.
부리의 악력은 갑옷쯤은 쉽게 으스러뜨리고, 발톱의 힘도 섰다. 날래기도 엄청 날래서 상대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
하지만 연우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애초 이렇다 할 사냥법이 없었다면 사냥을 시도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는 지난 열흘 동안 단련한 사귀들을 믿고 있었다.
연우는 일기장에 남겨진 기록을 따라, 11층의 지도를 되짚으면서 알바트로스의 서식지를 찾아 숲속 깊이 들어가다가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언제부턴가 주변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뜻.
연우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15미터 넘게 서 있는 나무 꼭대기에 거대한 그림자가 해를 등지며 서 있었다.
익룡 같은 생김새를 한 괴조.
알바트로스가 연우를 발견하고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괴성을 질러 댔다.
키에에엑!
숲자락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저주파가 가득해서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지레 겁을 먹고 자지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연우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
[히든 퀘스트 / 알바트로스 사냥]
내용: 11층의 북쪽에 위치한 알바트로스는 식탐이 많아 먹이가 보이는 대로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알바트로스가 있는 주변에는 언제나 생태계가 망가집니다.
11층의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알바트로스를 사냥하고, 새끼가 부화하지 않도록 알을 수거 하십시오.
*이 퀘스트는 ‘생명의 불꽃’ 퀘스트와 연동됩니다.
보상: 전체 스탯 +5, 알바트로스의 벼슬
‘11층은 이런 점이 좋지.’
곳곳에 위치한 히든 피스는 원하는 환수를 만들기 위한 좋은 재료도 되지만, 더불어 보상도 한 가득 안겨 주는 보물 창고이기도 했다.
생명의 불꽃을 만들기 위한 재료도 모으고, 보상도 얻고.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나와라.”
스스스-
연우의 부름에 따라 지면을 따라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형상을 갖췄다.
리더 격인 부, 놀, 카를 따라 일어선 10마리의 사귀.
녀석들은 별다른 지시도 없었지만, 곧장 허공으로 거세게 몸을 날렸다.
팟! 파밧!
알바트로스가 재빨리 홰를 치면서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하지만 비행 중이면 모를까, 그만한 덩치가 비상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사이에 놀이 이미 녀석에게 다다르고 있었다.
콰앙!
놀은 발톱을 곧추 세우면서 알바트로스를 세게 후려쳤다.
알바트로스가 피를 토하면서 뒤로 튕겨 나는 사이, 뒤에서는 이미 다른 사귀들이 나타나 달려들고 있었다.
거기다 밑에서는 부가 손을 뻗어 저주를 걸고 있었다.
체력 저하.
너무 단순한 디버프였지만, 알바트로스는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에 칭칭 감긴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크아앙-
녀석의 구슬픈 괴성만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사이.
연우는 한 손에는 마장대검을, 다른 한 손에는 크라슈나의 단검을 들고 허공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츠팟!
* * *
“먹어라.”
연우는 왼손을 활짝 펼쳐 마지막 숨결을 내뱉고 있던 알바트로스의 목덜미에 갖다 댔다.
톱니 이빨이 살갗을 파고들면서 무서운 속도로 정혈을 빨아들였다.
스킬, 바토리의 흡혈검이었다.
끼아아!
[생기와 정기를 갈취합니다.]
[힘이 1만큼 올랐습니다.]
[민첩이 2만큼 올랐습니다.]
……
[‘바토리의 흡혈검’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5.9%]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알바트로스가 놓으라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홰를 쳤지만, 곧 미라가 되어 축 늘어졌다.
용마안이 잡은 시야를 따라 희뿌연 영혼이 입술을 따라 삐져나오는 게 보였다.
연우는 재빨리 알바트로스의 영혼을 컬렉션에 수납했다.
‘나에 대한 원한이 깊어서 당장 사귀로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만한 망령은 어디서 쉽게 못 구하지. 나중에 어떻게든 제압할 수 있을 거야.’
알바트로스는 불카에 버금가는 녀석이다. 어떻게든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다.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500만큼 획득했습니다.]
……
[보상으로 전체 스탯이 5만큼 상승했습니다. ‘알바트로스의 벼슬’을 획득했습니다.]
연우는 쭉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다가, 기세등등하게 선 사귀들을 돌아봤다.
“다들 수고했다.”
키아악! 키악!
케에엑-
[사귀들이 첫 집단 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뻐합니다.]
[사기가 올랐습니다.]
[친화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주로 본능이 남은 녀석들이라 그런지 더 크게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도 받고.”
연우는 흑기를 단단히 압축시킨 구슬을 사귀들에게 던져 줬다.
사귀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구슬을 받아 꿀꺽 삼켰다.
그러자 회색 빛깔의 몸뚱이 위로 불그스름한 광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망령의 구슬을 사용했습니다.]
[부(부두술사의 영혼)이 강화되었습니다. 전체 능력치가 1만큼씩 증가했습니다.]
[놀(자이언트 놀)이 강화되었습니다. 민첩이 3만큼 증가했습니다.]
[카(불카)가 강화되었습니다. 힘과 체력이 2만큼씩 증가했습니다.]
……
망령의 구슬은 사귀를 만드는 재료가 망령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연우가 만들어 낸 먹이였다.
연우가 봤을 때, 사귀는 아무리 훈련시키고 친밀도를 꾸준히 올린다고 해도 강해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미 죽기 전에 정해진 ‘격’이 능력치에 한계선을 그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격’을 올릴 방법을 따로 강구해야만 했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리치나, 데스 나이트 정도로 성장시킬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망령의 구슬은 아주 효과가 뛰어났다. 먹을 때마다 전체적인 능력치가 향상하고, 사고 속도도 빨라졌다.
특히 단순한 버프 계통 마법만 쓸 수 있었던 부는 더 다양한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연우는 수시로 녀석들에게 망령의 구슬을 나눠 주고 있었다. 녀석들도 구슬을 얻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다녔고.
일석이조였다.
사귀들은 마치 도토리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다람쥐처럼,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망령의 구슬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냥은 훨씬 성공적이었어.’
사실 연우는 가담할 필요도 없었다. 녀석들이 알아서 알바트로스를 요리했으니까.
연우는 그냥 실컷 구경만 하다가 마지막에 바토리의 흡혈검으로 정혈을 갈취하는 게 전부였다.
편히 앉아서 스탯을 올릴 수 있으니. 이만한 꿀이 또 있을까도 싶었다.
‘나머지 레시피도 쉽게 구하겠는데.’
연우는 둥지에 있던 알바트로스의 알을 챙기고, 둥지 아래로 내려왔다.
개수는 총 3개.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라 들기가 어려워서 옆에 있던 사귀에게 넘겼다.
‘이 다음에는.’
연우는 레시피에 적힌 두 번째 목록을 살폈다.
‘그림자 뱀의 사과라.’
서식지가 가까운 순서대로 루트를 짰기 때문에 그림자 뱀의 서식지도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자.”
연우는 사귀 군단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 *
‘트리니티’라는 거창한 이름과 다르게, 소속 멤버는 각각 탱커, 딜러, 힐러로 구성된 아주 평범한 팀이었다.
하지만 델란과 쥰, 하이디는 같이 다니기 시작하던 튜토리얼 때부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잡음이 생기지 않았을 정도로 끈끈한 우정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런 우정은 ‘그림자 뱀의 땅굴’을 공략할 때에도 계속 이어졌다.
“헉, 헉. 제기랄. 미치겠네.”
“대체 끝이 어디야……?”
“조금만 힘내. 실프가 그랬어.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엘프인 하이디가 그렇게 말한다면 진짜겠지. 자자, 다들 좀만 더 힘을 내자.”
그림자 뱀의 땅굴은 여태껏 트리니티 팀이 공략했던 수많은 던전을 통틀어 가장 험난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굴의 높이는 머리를 살짝 숙여야 할 정도로 아주 낮았다. 좌우 너비도 아주 협소해서 몇 번 움직이면 끝이었다.
그런 곳에서 천장, 벽, 지면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뱀이 갑자기 튀어나오니.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게다가 그림자 뱀의 독침은 한 번 쏘이면 사지에 마비가 올 정도로 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챙겨 온 해독제도 거의 바닥이 난 상황이라, 더 이상 독침에 노출되었다가는 죽은 목숨이었다.
평소였다면 바로 후퇴했을 것이다. 트리니티는 위험에 도전하기보다는 안전을 택하는 팀이었으니까.
그런데도 트리니티 팀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땅굴을 들어온 지 벌써 5일째.
이대로 돌아가기엔 그동안 고생한 게 너무 아까운 데다가, 이 끝에는 그런 고생을 모두 만회할 만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 뱀의 사과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 돼. 이런 땅굴도 이제 손가락 하나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고.’
그림자 뱀의 사과는 뛰어난 효과를 가진 영약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나만 먹어도 상처가 아물고 체력이 늘어나며, 두 개 이상을 먹게 되면 먹는 숫자의 곱절만큼 마력량이 늘어나게 된다는 영약.
그리고 트리니티 팀은 그런 그림자 뱀의 사과가 열린다는 산지의 위치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히든 피스.
트리니티 팀은 그동안 5년 넘게 고생한 것에 대해서, 신이 그들을 가엽게 여겨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이 땅굴 가장 깊숙한 곳에는 사과나무가 아예 숲을 이룰 정도로 무성하다고 했으니까.
믿을 만한 정보였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말처럼 지천에 널린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고수로 거듭날 수 있는 정도는 충분히 될 거라고.
그리고.
“도착…… 했다!”
“드디어!”
“아아!”
대장 델란의 외침에 쥰과 하이디는 감격에 찬 얼굴이 되었다.
저 멀리, 보스룸의 입구로 짐작되는 거대한 철문이 놓여 있었다.
“다들 기쁜 건 알겠지만, 아직 축배를 들기엔 너무 일러. 일단 전투 준비부터 하자. 지금부터는 더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하니까.”
델란의 설득에 쥰과 하이디는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마따나 보스룸의 난이도는 훨씬 더 클 테니까.
딜러인 쥰은 팀원들이 가진 공적치를 모두 모아 산 드라고니안의 단검을 들었고, 힐러이자 엘프인 하이디는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다.
“자, 그럼 간다.”
탱커인 델란이 앞장서면서 철문을 활짝 열었다.
쥰과 하이디는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면 곧바로 공격을 할 수 있게 준비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두 눈에는 긴장감이 잔뜩 어려 있었다.
이 너머에 그림자 뱀의 사과가 매달린 숲이 있다. 그들을 고수로 만들어 줄 보물 단지가 있……!
“어라?”
“어……?”
“이게 뭔?”
보스룸에 드러난 광경에 트리니티 멤버들은 입을 떡 하니 벌리고 말았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앙상하게 메말라 비틀어진 나무들로 가득해 을씨년스런 분위기만 가득한 숲이었다.
바닥에 한가득 떨어져 쓸쓸하게 뒹구는 낙엽들만이, 뭔가가 이미 싹 쓸고 지나갔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었다.
* * *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
[퀘스트를…….]
……
[보상으로…….]
……
연우는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를 한 쪽 옆으로 치워 버렸다.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별 감흥도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