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00화 (100/862)

25화. 외뿔부족 (10)

달의 씨앗을 얻기 위해 받았던 서든 퀘스트에 이어서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다.

‘팔극권? 음검?’

보상 내역에 적힌 두 무공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왕이 직접 지도를 해 준다는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퀘스트였다.

하지만.

그만큼 기가 막힌 난이도여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라고? 그것도 나흘 안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마 여기서 말하는 무공의 창안이라는 건, 자신만의 새로운 마력의 운용법을 터득하라는 의미였겠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어진 4일 동안 무공이 대한 기본 개념을 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응용 지식에까지 나아가야 했으니까.

만약 무공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혼자서 시도해 볼 생각이긴 했다지만,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연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이런 일은 할 수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먼저 나서서 하고 싶다고 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무왕의 속내는 이제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왕은 단순히 그를 자식들의 지인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무엇이 무왕의 관심을 끌었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시험이 주어졌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이상에는 해 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 준다면,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그만한 가치를 보여야만 했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퀘스트를 수락했다.

에도라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연우의 두 눈은 다른 어느 때보다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 * *

“여기에요.”

에도라가 안내한 곳은 마을 외곽에 위치한 큰 건물이었다.

무서고는 마을 내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엄청난 너비에 걸쳐서 크게 4개의 동으로 나뉘고,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전사들은 날카로운 기색을 띠고 있었다.

연우는 왕족인 에도라와 함께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철저한 검문과 감시를 받은 뒤에야 겨우 통과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여기가 철급 무서고,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곳이 동급 무서고예요. 그 뒤부터는 호위병들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을 테니 호기심이나 실수로라도 절대 넘어가시면 안 돼요.”

에도라는 몇 번이고 두 개의 건물만 이용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허락되지 않는 무서고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아무리 왕족이라도 추살되는 게 일족의 규율이라고 했다.

그렇게 여러 주의 사항을 들으면서 ‘철(鐵)’이라고 적힌 서고에 들어선 순간.

“아!”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책장이 끝도 없이 길게 쭉 이어지고, 위로는 최소 다섯 층을 넘을 정도로 높았다. 올라가려면 곳곳에 배치된 나선형 계단을 타고 쭉 올라가야만 하는 구조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압도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서적들.

외뿔부족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시조이신 소호 금천께서 처음 일족을 이끌고 탑에 오셨을 때부터 만들어진 곳이라고 해요. 일족이 창안하거나 개량한 무공뿐만 아니라, 탑을 오르면서 구했던 희귀한 고문서나 스킬북, 연금술서 등 종류도 아주 다양하답니다.”

무서고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내내, 에도라의 목소리에는 일족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했다.

연우는 그럴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조금 암담한 심정을 느껴야만 했다.

‘대체 책이 얼마나 많은 거지?’

대충 어림짐작하기에도 수십만 권은 되어 보인다.

그중에는 뛰어난 것들도 많을 테지만, 잡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또 괜찮은 책자 중에서도 연우에게 필요한 것들을 고르는 데에만 4일이 부족할 게 뻔했으니.

문제는 여기가 불과 4개의 동 중에서도 가장 최하위 동이라는 점이었다.

그럼 동급은 또 언제 뒤져야 할까.

에도라도 연우의 그런 심정을 읽었는지 안타까워하는 눈빛이 되었다.

“오라버니, 저는…….”

“안다.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 미안해하지 마. 여기까지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니까.”

무왕이 내건 제약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

연우는 소맷자락을 걷어 올렸다.

시간은 지금 이 시간에도 흘러 가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만 했다.

‘일단은.’

연우는 서적들을 뒤지기에 앞서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발동시켰다.

[전투 의지]

[용마안]

순간, 연우의 사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를 따라 흐르는 모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여기에 용마안을 활짝 열자, 한없이 느려진 세상 위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결들이 잔뜩 나타났다.

‘나흘 동안 여기에 있는 서적들을 모두 뒤지는 건 말이 안 돼. 아니, 시간이 많다고 해도 여기 있는 것들을 전부 뒤지려면 평생을 들여도 모자라.’

그렇다면 편법을 써야만 했다.

‘이중 상당수는 잡서일 테고, 귀중한 것들은…… 그만큼 오랫동안 관심을 받아 사람의 손때를 탔을 게 분명하다.’

손때가 많이 묻었다는 건 그만큼 사념이 많이 어렸다는 뜻.

아니나 다를까.

그의 짐작대로 곳곳에 결이 잔뜩 뭉쳐 응어리가 지다시피 한 것들이 있었다.

연우는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결이 뭉친 책자들만 쏙쏙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새 책자도 있었고, 아주 오래된 낡은 고서도 섞여 있었다.

‘한쪽 부분만 돌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뽑아내니 대략 3천여 권 가량이 되었다.

그리고 연우는 골라낸 책자에서 다시 제목을 보면서 빠르게 분류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게 필요한 건, 심법 계통이야. 검법이나 도법 같은 무기술 같은 건 전부 뺀다.’

무공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병기를 사용하는 무기술, 몸을 움직이는 신법과 보법, 그리고 호흡에 따라 마력을 조절하는 심법.

연우는 이 중에서 심법만 골라 내어 한쪽에 가득 쌓았다. 이따금 심법과 무기술이 혼합된 것들도 있었지만, 전부 제외시켰다.

그러자 3천여 권의 서적은 단숨에 1백여 권으로 양이 확 줄었다. 연우는 곧바로 제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책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집은 건, 책자 중에서 결이 가장 많이 뭉쳐 있던 것.

책을 활짝 펼치면서 그대로 읽어 가기 시작했다.

‘내공? 혈(穴)? 기맥은 또 뭐지? 단전과 소주천은 또 뭐고?’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아서 쉽게 읽히질 않았다.

외뿔부족은 폐쇄적인 성향만큼이나 탑에서 통용되는 것과 다른 단어를 많이 쓴다더니.

아무래도 거기서 빚어진 문제인 것 같았다.

‘안 된다면, 그냥 외워 버린다.’

이해할 수 없다면 통째로 외우는 게 가장 좋았다.

당장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종류의 많은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게 독서의 세계였으니까.

다행히 암기는 자신이 있었다.

전투 의지가 발동되는 동안에는 사고 속도와 함께 기억력도 대폭 증가하기 때문에, 무식하기는 해도 그에게는 가장 알맞은 방법이었다.

“…….”

연우는 금세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에도라는 그런 연우를 지켜보다가, 그의 집중이 깨지지 않게 조용히 움직여 골라낸 책자들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살짝 놀랐다.

‘어떻게 저런 것만 골라냈지?’

목록들은 에도라도 아주 잘 아는 것들이었다.

삼재심법, 육합공, 오행서, 자하공, 태청심법, 건곤공, 금정공, 천룡공…….

하나 같이 일족 내에서 갓 무공에 입문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기초를 쌓게 해 줄 목적으로 권장하는 것들이었다.

아니, 기본공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불리는 것들.

하나하나가 버릴 게 없는 것들만 골라 왔다.

게다가 연우가 가장 먼저 보고 있는 건 더 놀라웠다.

〈역근경〉

‘역근경이 원래 여기에 있었나? 아니, 그보다 이걸 어떻게 알고 집은 거지? 무공에 대해서 원래부터 어느 정도 알고 있으셨을까?’

역근경은 기본공 중의 기본공이며, 심법과 무기술을 비롯한 모든 무공의 모태(母胎)라고까지 불리는 심법이었다.

역근경은 육체와 단전을 동시에 다진다.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근력을 강화시키며, 뼈마디를 단단하게 만들어 체질을 완성시킨다. 이후, 마력이 흐르는 통로를 자연스럽게 개통시키면서 심(心, 마음)과 신(身, 몸)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

따라서 제대로 익힐 수만 있다면 탄탄한 기초 바탕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많은 부족원들이 익히기를 꺼려 하는 무공이기도 했다.

완성을 이루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심법과 기본공들을 두루 섭렵하는 게 훨씬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무공이 역근경에서 출발한 만큼, 기본 교리는 그 속에 다 담겨 있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개량을 거듭해 효율성도 증대되었으니까.

역근경은 이제 거의 구시대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에도라는 알고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역근경으로 쌓은 기본 바탕은 아주 단단하다는 것을.

탄탄한 반석 위에 세운 건물이 천년을 가듯, 역근경으로 만들어 진 육체와 단전은 모든 무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높게 세울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에도라도 만약 시간이 충분하다면 연우에게 역근경을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장은 오라버니에게는 독밖에 안 되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는 연우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주 적다는 점이었다. 괜히 발목만 잡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간단한 심법 창안이라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

에도라는 결국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시선으로 연우를 지켜봐야만 했다.

* * *

역근경을 모두 정독한 뒤, 연우는 자하공의 비급으로 손을 뻗었다.

그사이에 머릿속은 빠르게 역근경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많은 단어들이 뇌리를 왱왱 돌았지만, 그래도 얼추 전체적인 내용은 잡을 수 있었다.

‘내용물을 무조건 많이 담는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그보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단단하고 넓은 그릇을 빚는 것.’

단순히 마력의 효율적인 움직임만 고려했던 연우로서는 기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내용물은 마력을, 그릇은 마력회로에 빗댈 수 있다.

즉, 마력을 운행하는 데에 초점을 두지 말고, 마력회로를 보다 더 넓히고 강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동안 나는 마력을 더 많이 쌓는 데만 집중했지, 그것을 수용하는 마력회로를 확장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까. 곧 완성될 거라 믿었던 용체에만 의지했다.’

자하공의 비급을 펼치는 연우의 손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언제 용체가 완성될지 모르는 지금은. 그보다 먼저 마력회로를 더 강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해. 그럼 제어력도 그만큼 올라가겠지.’

[마력회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보다 마력의 운용이 손쉬워집니다.]

[마력이 2만큼 올랐습니다.]

[마력이 1만큼 올랐습니다.]

……

[‘마력회로’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9.3%]

‘일단은 마력회로의 강화에 초점을 두자. 마력의 운행은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어.’

물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도 당장 어떤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마력회로는 용종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힘이다.

그것을 강화시킨다?

용체를 완성하는 것 외에 연우도 생각해 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부터는 순수하게 연우 혼자서 연구하고 지식을 습득해야만 했다.

다음 책자를 읽어 나갔다.

다 읽은 다음에는 다른 책자를, 그것도 다 읽으면 그 다음 책자를…….

처음에는 하나하나씩 읽는 속도가 느렸지만, 정독한 책자의 수가 점점 쌓일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개념이 하나둘씩 머릿속에 잡혔다. 용어도 연우가 아는 단어로 저절로 해석되었다.

‘단전은 마나홀, 내공은 마력, 기맥은 마력 통로, 원기는 마나 스트림.’

사고가 계속 이어진다.

‘심법은 대기 중에 흐르는 원기(元氣)-마나 스트림에서 호흡법을 통해 마력을 끌어오고, 체내에 쌓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마력은 각 심법에 따른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이동한다. 여기에는 시전자의 의념이 실리며, 운용할 수 있는 마력량이 많아질수록 신체가 강화된다.’

‘마력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혈(穴)이다. 혈은 마력의 저장고 및 증폭제 역할을 겸비한다. 흐르는 통로에 각각 위치해 마력을 조절한다.’

연우는 쌓은 지식들을 하나둘씩 마력회로에 대입시켜 보았다.

‘마력회로에는 ‘혈’을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없어. 그냥 흐르는 대로만 놔둘 뿐. 아니, 애초에 용종에게는 필요하지가 않아. 그들은 의지만으로 법칙을 구현하는 종족이니까. 하지만 난 다르다. 인간이고, 용종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혈을 필요로 해. 이것을 코어(Core)라고 하자.’

‘마력이 흐르는 회로 곳곳에 코어를 설치하고, 이것의 개폐(開閉)를 뜻대로 할 수 있다면.’

연우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길이 보였다.

자신만의 심법을 창안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마력을 의지대로 다루는 건, 문제는 아니야……!’

[마력회로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용종도 개척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1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

[특성 ‘기인(氣人)’을 획득했습니다.]

[마력이 10만큼 올랐습니다.]

[마력이 15만큼 올랐습니다.]

……

[칭호 ‘개척자’를 획득했습니다.]

[힘이 10만큼 올랐습니다.]

[민첩이 15만큼 올랐습니다.]

[칭호 ‘마력의 축복을 받은’을 획득했습니다.]

……

[스킬 ‘기공(氣功)’이 생성되었습니다.]

……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그리고.

[98층의 여러 신과 악마들이 당신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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