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03화 (103/862)

3화. 서막 (1)

“뭘 그렇게 좋아서 혼자서 싱글벙글 쪼개 대?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또 사고 치려는 건 아니겠지?”

“거 참, 영감. 내가 매번 사고만 치고 다니는 줄 아나.”

“흥! 그럼 아녔었더냐?”

무왕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장로를 보면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자신이 젊은 시절에 사고를 좀 많이 치고 다니긴 했지. 그 뒷감당은 오로지 장로들의 몫이었고.

“오늘이 그 날이거든.”

“그 날?”

“우리 사윗감, 얼마나 대단한가 확인해 보는.”

“아, 그거였군.”

장로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에게 4일 동안 동급 무서고의 접근을 허락했다는 사실은 장로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한 가지 무공을 완성하라는 말도 안 되는 숙제를 냈다는 사실까지도.

“역시 에도라는 음검을 그 친구에게 맡길 생각인가?”

“그럴 모양이야.”

“하긴. 그럴 법도 하지. 그 나이에, 튜토리얼을 갓 통과했으면서 30층계의 장을 단번에 꺾을 자질에…… 그만한 사람은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겠지.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꽤 잘생겼을걸?”

“음? 어떻게 그걸 아나?”

무왕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씩 웃기만 했다.

장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왕이 저렇게 익살맞게 웃을 때는 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저럴 때는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무왕이 한 수 접어 줘야 한다는 영매조차도.

“아무튼 적당히 하게. 4일 만에 무공을 완성하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퀘스트가 어디에 있나? 초장에 고삐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알겠네만, 너무 심하면 괜히 반발만 커지는 법이야.”

장로들은 연우가 무왕의 퀘스트를 수행해 내지 못할 거라 여기고 있었다.

젊은 시절 천재라 불렸던 무왕도 그런 업적은 해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무왕은 여전히 대답 없이 아리송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무왕은 화제를 슬쩍 돌렸다.

“그보다 알은? 어떻게 되어 가?”

“하면 할수록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도무지 짐작하기가 어렵다네.”

“그럼 역시 신수급?”

“음.”

장로는 잠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하다가, 곧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분명 그만한 존재인 건 맞는데…… 그래도 일단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 줌세. 아직 확인이 덜 끝났거든.”

“꽤 큰 건가 보네. 알았어.”

무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연우를 확인하러 갈 차례였다.

“그럼 이제 슬슬 우리 사윗감이 얼마나 숙제를 했는지 확인하러 가 볼까?”

* * *

“이야. 이거 완전히 애가 반쪽이 다 되었네. 에도라, 얘 밥도 안 먹이고 굴린 거냐?”

무왕은 피골이 상접하다시피 한 연우를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도 몸이 전체적으로 말라 있어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가면 아래 살짝 보이는 두 눈 밑도 퀭해져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무왕은 그런 연우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이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이뤘구나.’

그때, 연우가 말했다.

“여기서 보이면 되겠습니까?”

“그럼.”

무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연우는 마력회로를 한껏 가동시켰다.

그 순간.

[새롭게 완성된 ‘천익기공(속성 : 불꽃, 어둠, 전격)’이 외부로 발현 됩니다.]

[‘천익기공’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2.9%]

화아악-

연우를 중심으로 후끈하게 달아 오른 공기가 커다란 동심원을 그리면서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에도라는 깜짝 놀라 재빨리 뒤로 멀찍이 떨어졌다. 심장을 간질이는 기분.

그건 분명히 경고였다.

저 기세에 휘말리면 위험하게 될 거라는.

아니나 다를까.

열풍이 스쳐 지나간 자리로 풀 잎이 바싹 메말라 황갈색으로 변했다.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지면은 가뭄이 찾아온 것처럼 수분이 빠져나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마구 갈라졌다.

그러다 불똥이 튀면서 금세 불길이 일어나 사방으로 점차 퍼져 나갔다.

불기둥이 높게 치솟으면서 연우를 천천히 감싸 안았다.

그리고 확 하고 드러나는 모습.

파직, 파지직-

불꽃을 휘감은 연우의 모습은 여러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어떻게 보면 불로 이뤄진 갑주를 두른 신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등 뒤를 따라 불로 만든 날개를 품고 있는 천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악마처럼 보였다.

특히 입고 있는 까만 갑주와 칠흑색의 가면은 붉은색 불꽃과 너무나 잘 어울려 위압적으로 다가왔으니.

공기를 후덥지근하게 만드는 열기와 함께 사위를 짓누르는 패기가 겹치면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 숨어 있었다.

역근경을 기본 뼈대로, 다양한 심법들이 주변을 단단하게 받치고, 그 위를 육양공 등으로 둘러싸 완성시킨 심법.

이건 무학(武學)의 반열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

에도라는 그것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혜안을 활짝 연 눈동자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기존 출력의 두 배……! 아니, 세 배?’

그녀는 연우의 마력 효율을 체크하고 기함을 터뜨렸다. 단지 새로운 심법을 만든 것만으로 저런 변화라니.

대체 뭘 만든 걸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동안 오라버니가 보였던 것들은 효율이 얼마나 엉망이었던 거지? 아니, 그렇게 엉망이면서도 그 정도였다고? 그럼 무공을 완성하게 되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엉망인 마력 효율로도 그만한 힘을 발휘했었는데…… 아직 엉성한 심법만으로도 이 정도로 발전할 정도다.

만약 여기에 심법을 제대로 완성한다면.

약속대로 무왕이 무공 지도를 도와준다면 대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도무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하, 이 새끼 봐라? 이거 완전 괴물이었네?”

무왕은 그런 연우를 보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연우가 퀘스트를 성공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그보다 훨씬 대단한 성취였으니까.

물론, 아직 엉성한 점이 많아 뜯어고칠 곳은 많아 보였지만.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였다.

“그런데 말이야. 이거.”

무왕은 에도라와 판트가 참 대단한 물건을 집어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득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간만에 피가 끓는 것 같은 기분.

아홉 왕에 오른 이후,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강해진 이후, 처음으로 ‘호승심’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짐승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그래서.

무왕은 자기도 모르게 송곳니를 훤히 드러내면서 물었다.

“나, 따라 한 거 맞지?”

무왕은 연우가 기공을 보인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연우가 무공을 완성시키면서 누구를 떠올렸는지.

그가 익힌 〈마천신공(魔天神功)〉과 너무 비슷한 냄새가 풍겼으니까.

연우는 굳이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당장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서 가장 강한 분이시니까요.”

“흐흐. 인석아, 그렇게 아부 안 해도 되거든? 뭐, 사실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무왕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연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의 눈은 예리하게 빛나 연우의 기공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역근경을 베이스로 해서, 육합공과 삼재심법을 뼈대로 잡았군. 그 위에다가 천룡공이나 자하공을 둘러서 어느 정도 균형을 갖췄고. 특색은…… 각각 육양공, 역혈마공, 뇌벽세, 환야심법인가?”

연우는 무공의 내력이 속속들이 간파당하자 속으로 혀를 찼다.

재료가 된 심법들을 거의 해체했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무왕은 무왕이었다.

“공격력과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초점을 뒀군. 다만, 여기에 환야심법을 둬서 얼추 균형을 잡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여기서는 환야심법의 ‘환’자 결보다는 ‘야’자 결이 더 어울릴 거다. 이따가 다시 맞춰 봐.”

연우는 무왕이 충고를 해 주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를 채고, 허리를 바짝 세웠다.

아무리 책자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무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예?”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무왕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냥 그런 것 같아서.”

“…….”

“뭘 그런 눈으로 보냐? 정말 그렇게 보이는데. 그걸 뭐라고 설명해? 원래 나 같은 천재들은 딱 한 번 보면 바로 딱 하고 알아낼 수 있단 말씀이지.”

연우는 순간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처음 마나에 대한 개념을 공부할 때에도 동생과 율, 두 녀석 모두 비슷한 말을 해 대서 골머리를 썩이더니.

천재라는 종자들은 사람을 기만하는 게 패시브 스킬로 장착이라도 되어 있는 걸까.

“그래도 이만하면 합격점이지. 축하해. 내 시험을 통과하다니. 네가 이걸로 세 번째다.”

[높은 수준의 무공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퀘스트(무왕의 시험)를 최대 조건으로 달성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2,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1,000만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무왕으로부터 지도를 받을 자격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무왕에게서 무공 지도를 받아 더 높은 경지로 거듭나십시오.]

[보상으로 무공서 〈팔극권〉을 획득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무왕에게 요구하십시오.]

[보상으로 〈음검〉의 계승권을 획득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무왕과 논의를 나누십시오.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전체 스탯이 15만큼 상승했습니다.]

[‘천익기공’ 스킬의 숙련도가 5%만큼 상승했습니다. 26.1%]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기분 좋은 내용의 메시지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받아라.”

무왕은 메시지를 다 읽기도 전에 품에서 뭔가를 뒤적이더니 앞으로 던졌다.

연우는 가볍게 그것을 낚아챘다.

한 권의 책자였는데, 책자의 겉면에는 ‘팔극권’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살짝 열린 용마안 사이로 결이 잔뜩 뭉쳐 있는 게 보였다.

‘상급이라는 뜻이야.’

이 무공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단어만 본다면 권법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약속한 것처럼 앞으로 나는 네 옆에서 그 무공을 가다듬어 주고, 팔극권을 전수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물론, 거부는 거부한다.”

무왕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알다시피 우리는 이제 곧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니 한동안은 내 종자로 따라다니면서 전수받아. 한 번 가르친 건 두 번 안 가르친다.”

연우의 눈이 반짝였다.

전쟁 기간 동안 무왕의 옆을 계속 따라다닐 수 있다면, 그의 활약상도 지켜볼 수 있다.

용마안으로 좇는다면 상당한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무왕의 1:1 지도까지 따른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그동안 히든 피스만 계속 모으면서 상대적으로 성장이 더뎠던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가 있어도, 바탕이 되는 하드웨어가 그만큼 좋지 않으면 소용없으니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방금 전에 보상으로 음검의 계승권이라는 걸 얻었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때가 되면 말해 줄 거야. 아직은 아냐. 물론, 그때 가서 거부할 수도 있는 거고. 다른 건?”

“이 시험을 통과한 게, 제가 세 번째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다른 두 사람이 누군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어쭈! 요놈 봐라? 벌써 호승심이냐? 한 명은 너도 들어 본 적이 있는 놈일걸? 꽤 유명하거든.”

“누굽니까?”

“검무신.”

“……!”

연우의 눈이 커졌다.

검무신은 청화도의 다섯 무신 중 최고 우두머리. 검을 다루는 솜씨로는 탑에서 비견할 만한 자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

항간에는 올포원도 그의 검술만큼은 인정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런 사람이 첫 번째 통과자였다고?

“원래 그놈이 내 제자였거든.”

무왕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 놓았다.

그럴수록 연우는 더 크게 놀라고 말았지만. 동생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청화도와 외뿔부족의 관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어. 나중에 청화도와 대적하게 되면 외뿔부족과도 부딪치게 될까?’

연우는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뭐, 지금은 파문한 지 오래된 새끼지만. 하여간 너는 그만큼 대단한 스승을 모시게 되었다, 이 말씀이야. 그러니까 좀 더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감사하라고. 좀 더 이 스승님을 존경하고. 알았지?”

무왕은 스스로 얼굴에 금칠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럼 두 번째는 누굽니까?”

“비밀. 말해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해 줘도 넌 몰라.”

연우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탑은 수많은 실력자들이 날뛰는 세계이니만큼, 스스로를 외부에 드러내기를 꺼려 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보통 혼자서 조용히 탑을 공략하는 걸 선호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뭔데?”

순간, 가면 아래 속 연우의 두 눈이 빛을 뿌렸다.

“무왕께서 가진 ‘진짜’ 힘을 보고 싶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