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22화 (122/862)

22화. 임무 (2)

“도무신에게 아들이 있다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바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짝 찡그린 눈매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어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무신에게 가정이 있다는 말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도무신은 청화도 내에서도 가장 무인의 표본이라고 불릴 정도로, 칼에만 미쳐 있는 플레이어였다.

9자루의 칼이 담긴 철함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고수를 만나 싸움을 요청하고, 그렇게 여러 전장을 전전하면서 오로지 강해지는 것에만 몰두한다는 자.

때문에 도무신은 한평생 여자도 가까이 두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자식이 있다고?

“혹시 도무신이 언제부턴가 마력 부족으로 고생을 한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바할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도무신이 최근에 마력 부족으로 싸움을 길게 끌지 못한다는 사실은 몇몇 고위 간부만 파악하고 있던 것.

언제나 화려하게 펼치던 9자루의 칼도 언제부턴가 7개 아래로 줄여서 쓰기 시작했고, 깔끔하고 정교하기로 유명한 싸움도 어지러운 난투에 가까워졌다.

다른 클랜들은 도무신이 혹시 수련을 하던 중에 마력 폭주를 겪어 몸이 망가진 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숨겨진 자식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

“예.”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도무신의 아들은 난산으로 태어났습니다.”

“난산?”

“예. 때문에 여덟 달도 못 채우고 태어나 선천적으로 몸이 좋질 않다고 합니다.”

“흠. 하지만 도무신쯤 되면 어떻게라도 엘릭서나 암브로시아를 구했을…….”

“마력을 쌓을 수 없는 몸이라고 합니다.”

“쯧. 그런.”

그냥 평범한 일반적 환경이라면 모를까.

마력이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탑의 출신이 마력을 다룰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인 장애나 다름 없었다.

그런 건 아무리 뛰어난 신약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체력적으로도 좋질 않아서 위험한 고비를 간신히 넘긴 적이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도무신에게는 적이 많기도 하니…….”

“어떻게든 숨겨야 했겠지. 그러면서도 치료도 병행해야 할 테고. 푸핫!”

바할은 뒷내용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손으로 무릎을 쳤다.

도무신은 청화도에 들어가기에 앞서, 비무행을 다니면서 사이가 좋지 않은 랭커나 클랜이 많았다.

만약 도무신의 아들이 아프다고 소문이 난다면.

곳곳에서 이리 떼처럼 달려들 게 분명하다.

그래서 도무신이 택한 곳이 바로 16층.

16층에는 ‘앉은뱅이 세 여신’의 신전이 있다.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해 언제나 제자리에만 있어야 한다는 세 명의 여신. 하지만 덕분에 사람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능력을 깨달아 많은 플레이어들이 신봉하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신전은 신관과 사제들의 치료 행위로도 유명한 곳. 또한, 싸움이 일체 불허가 되는 신성한 장소였다.

그러니 도무신이 아들을 맡기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리고 아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마력을 계속 뽑아내고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겠지?”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은 그렇습니다.”

바할은 그럴 거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필요 이상의 마력을 주기적으로 계속 뽑고 있다면. 많은 마력의 운용을 필요로 하는 기존 싸움법과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도무신이 4대 신수를 사냥하기 위해 나선 이유이기도 하겠지. 청화도에서 그에게 내단과 심장을 전부 내어 준다고 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연우는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녀석이 삼킨 피닉스의 내단과 심장. 어떻게든 되찾아야 해.’

연우는 되찾은 피닉스의 내단과 심장을 짹짹이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남은 다른 신수들의 내단과 심장은 자신이 삼킬 생각이었고.

이미 도무신이 전부 먹어 소화까지 했을 게 분명했지만. 되찾을 방법은 있었다.

연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이런 정보들은 일기장에 적혀 있던 내용이었다.

동생은 개인적으로 청화도의 약점을 캐내던 차에 우연찮게 수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당시 아르티야의 내분으로 이 정보들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는 다르겠지만.

짹짹이는 눈앞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구하려다 다치는 것을 봐야만 했다. 도무신에게도 똑같이 아픔을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음.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정보이긴 해. 한데, 정보의 출처는?”

“외뿔부족에 있으면서 알았던 정보입니다.”

적당히 둘러댔다.

“함정일 수도 있겠어.”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함정일 가능성이 크지. 자네가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역정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말로 쓰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바할은 쓰게 웃었다.

“굳이 그렇게 대놓고 말하니. 조금 미안하군. 하지만 우리들 입장도 생각해 주게.”

청화도의 군영 배치도를 가져와 연우가 신임을 샀다지만, 여전히 연우를 의심하는 눈길은 많았다.

만약 그것이 큰 함정을 파기 위한 밑그림이었다면. 16층에서 랭커들을 끌어들이려는 수작이라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러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연우는 자신이 움직일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

“자네가 자처해서?”

“예. 2조와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그렇다면 설사 함정이라고 해도, 레드 드래곤에게는 절대 손해가 아니지 않습니까?”

바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연우는 외부 인사이고, 외인부대는 언제든지 채워 놓을 수 있는 용병 집단에 불과했다.

얼마든지 써먹고 버릴 수 있는 패라는 뜻.

그걸 자처해서 이야기한다.

바할은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어 주는 연우를 보고 있으려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만약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자네는 자네를 보는 의심의 눈들을 걷어차고, 앞으로 승승장구를 할 수 있겠군.”

“그런 마음이 없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작전을 ‘지시’하신 바할 님께는 큰 공이 되리라 자부합니다.”

바할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전의 공을 전부 자신에게 넘겨주겠다는 뜻이니까. 대신에 연우는 확실하게 그의 우산 아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전에 봤을 때에는 절대 누군가 밑에 안 들어갈 것처럼 굴더니.”

“세상은 많이 추운 곳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잘 생각했어.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 있어야지. 그리고 앞으로도 자네 앞에는 봄날이 가득할 거야.”

“그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연우는 고개를 숙이면서 생각했다.

‘따뜻한 봄날이라.’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글쎄. 당신에게 앞으로 그런 날이 있을까?’

다행히 가면을 쓰고 있어, 그의 비웃음은 바할에게 보이지 않았다.

* * *

2조에 소집령이 떨어졌다.

“임무? 벌써?”

“바할 님과 직접 대면을 했다더라고. 대단하지? 일개 조장이 총사령관과 일대일 대면이라니.”

“그만큼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또 그만큼 위험하지 않으려나. 위험 수당이나 두둑하게 챙겨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2조의 용병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동을 하다가, 서서히 연무장에 가까워지자 말이 없어졌다.

저 멀리 판트가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저승사자가 팔짱을 끼면서 어서 오라고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250명 전원의 대열이 정비되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용병 집단답지 않게 엄격한 군율과 기강이 잡혀 있어 마치 잘 정련된 군대를 보는 것 같았다.

“임무가 떨어졌다.”

연우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맡게 된 임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무신의 아들을 잡으러 간다는 건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는 사안.

그래서 비밀리에 16층에 위치한 레드 드래곤의 조직을 습격하는 게 임무라고 밝혔다.

용병들은 갑작스런 이동에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임무에 있어 그런 걸 판단하는 건 수뇌의 몫. 용병은 그저 주어진 급료만큼 일만 깨끗하게 처리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외인부대에 채용될 정도로, 업계에서 신용도와 실력을 함께 겸비한다고 알려진 자들이었다.

다만, 여기서 연우는 1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한 가지 신신당부를 했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다.”

“……?”

“……?”

모두의 시선이 연우에게로 쏠렸다. 의문 가득한 시선.

“아직 내가 16층까지 시련을 마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

“……!”

“그러니 15층까지 시련을 빨리 끝내면서 이동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용병들은 저마다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뭐? 그, 그럼 소문이 지, 진짜였단 말이야?’

‘30층이나 40층이 아니라?’

‘그게 말이 돼……?’

분명히 연우가 11층의 플레이어라는 말은 있었다.

하지만 다들 그걸 헛소문으로 취급하는 편이었다.

어느 누구도 세미 랭커를 이겼다는 실력자가 그런 저층 구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테니.

그런데 그 소문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놀란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용병들의 믿기지 않아하는 표정을 무시하면서 티켓을 찢어 포탈을 열었다.

[12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그럼 다녀올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어.”

연우는 판트와 에도라에게 짧게 인사했다.

아직 11층의 시련을 끝내지 못한 두 사람은 조금 불만 섞인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발밑으로 깔린 푸른색 포탈을 타고 연우와 2조는 모두 12층으로 이동했다.

* * *

[이곳은 12층, 방랑하는 자의 관입니다.]

화아악-

짧은 빛무리와 함께 연우와 외인부대 2조는 드넓은 초원 지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지는 지평선이 끝없이 넓게 펼쳐져 흔한 구릉도 보이지 않았고, 지면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모두 갈라져 있어 삭막한 환경을 훤히 드러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말라 비틀어진 작은 나무들이 전부.

갈라진 땅의 균열 사이로 벌레나 전갈들이 이따금 모습을 드러 내는 게 전부였다.

[12층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시련: 탑을 오르고자 하는 도전자여. 그대는 앞으로 층계를 오르는 데 있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한 우여곡절 속에는 망설임도 있을 것이고, 희생도 있을 것이지만, 반대로 기쁨과 희망도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에 위치한 대사막도 똑같습니다.

수맥이 메말라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오로지 가뭄과 죽음만 가득한 이곳은 오랫동안 정처 없이 방랑만 일삼는 자들로 가득 차 버린 죽음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죽음의 세계를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건너십시오. 대사막을 건널 수 있는 의지와 힘만 있다면, 어떤 우여곡절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 방랑을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후우. 또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미칠 노릇이군.”

2조의 용병들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보면서 하나 같이 인상을 찡그렸다.

11층은 수많은 층계 중에서도 가장 살기가 편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

그런 곳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12층에 도착하면 보통 괴로워하기 마련이었다.

‘11층과 차이가 너무 크니까.’

12층은 생존이 아주 팍팍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메시지에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수맥은 이미 메마른 지 오래라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당연히 식수는 구할 수 없다.

식량도 마찬가지.

말라비틀어진 나무 조각 따위를 씹거나, 간혹 밖으로 비치는 곤충과 전갈 따위를 잡아서 먹을 수 있다면 사치를 부리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튜토리얼의 F구획과 여러모로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시 두더지라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도전을 포기할 수 있는 F구획과 다르게 12층은 그런 편의로 제공되는 게 일절 없었다.

그냥 대사막을 건너야 했다.

방향은 남쪽. 언제나 하늘에 단단히 고정되어 이정표가 되어 주는 뜨거운 태양이 전부였다.

또한, 대사막은 깊숙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열기나 환경이 더 극악하게 변하기로 유명했다.

현재는 그저 망가진 황무지가 전부였지만.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모래 바람이 잔뜩 부는 사막이 나타나다가, 열풍과 열기가 짙어지면서 속이 익을 것 같은 고통이 이어지는가 하면, 끝내 용암이 펄펄 끓는 화산까지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지만, 그만큼 너무 힘든 시련인 것이다.

그러니 온갖 고생을 하면서 12층을 통과한 플레이어들은 다른 층계는 방문해도 12층에는 절대 다시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우에게 코가 꿰여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올 수밖에 없었으니.

그들은 벌써부터 연우를 따라 대사막을 횡단해야 한다는 사실에 울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연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도 더위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여기 따뜻해! 엄청!』

오히려 어깨 위에 올라탄 짹짹이는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환호하기까지 했다.

신수의 계승자라는 타이틀을 얻고 난 뒤, 웬만한 환경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면역력과 저항력을 가진 덕분이었다.

물론, 용병들은 연우가 먼저 16층에 도착하고, 연락을 주면 뒤늦게 합류를 해도 되지 않겠냐고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왜?’

연우는 이렇게 편한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다.

12층부터 일정 층계까지는 보통 험난한 환경을 중심으로 스테이지가 구성되어, 그것을 극복하는 게 주된 시련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험난한 환경답게 다른 층계에서는 절대 구하지 못할 특정 희귀 물품들이 곳곳에 히든 피스로 배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불의 보옥(寶玉)’이었다.

그리고, 일기장에는 불의 보옥 같은 희귀 물품들이 잘 모여 있는 특정 장소를 몇 곳 언급하고 있었다.

이 드넓은 대사막을 건너면서 그런 장소들을 모두 뒤지기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많은 일손(?)들이 있었다.

이왕에 공을 세울 것이라면, 올라가면서 챙길 걸 전부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것도.

‘레드 드래곤의 도움을 받아서.’

연우는 자신을 멀뚱하게 쳐다보는 용병들을 보면서 씩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용병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안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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