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임무 (3)
‘대, 대사막을 뒤지라고?’
‘미친……!’
‘대체 여기에 볼 게 뭐가 있다고!’
용병들은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12층의 대사막.
그런데 이곳에서 해야만 하는 임무가 있다고 한다.
“그럼 제한 시간까지 각자 물건을 찾아 13층으로 넘어와라. 나는 그동안 대사막을 건너고 있겠다.”
결국 연우의 지시에 따라 용병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사막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연우가 지시한 제한 시간도 아주 촉박했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팟-
파밧-
연우는 흩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뒤에다가 몰래 따로 사귀를 붙였다.
‘이렇게 해 두면 첩자가 있는지 구분하기도 쉬워지겠지.’
연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대사막을 건너기 시작했다. 후끈한 열기가 모래 바람을 가득 싣고 날아왔다.
『그런데 주인! 주인!』
그때, 연우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짹짹이가 말을 걸었다.
“왜?”
『왜 쟤네들은 주인 말을 저렇게 잘 듣는 거야?』
“글쎄.”
연우는 짹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크기가 많이 자라긴 했어도 아직 짹짹이는 어린 아이였다. 굳이 삭막한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 주기에는 정서상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쟤네들 뭐 구하러 가는 거야?』
“불의 보옥.”
『보옥? 그게 뭐야?』
짹짹이가 귀엽게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맛있는 거.”
『우와아. 정말?』
연우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짹짹이를 보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불의 보옥은 짹짹이에게 맛있는 간식이 될 테니까. 영양분도 좋을 것이다.
‘절반은 짹짹이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사귀들에게 써야겠군.’
최근에 사귀들의 강화는 어느 정도 한계를 맞았다. 당장 주어진 검은 팔찌의 옵션 제약 때문이었다.
때문에 연우는 사귀들을 강화시킬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속성력 강화.’
당장 악과 어둠 계통의 속성밖에 갖고 있지 않은 녀석들에게 다양한 속성력을 부여할 수 있다면.
본래 불의 보옥이 각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아주 효과 좋은 강화석으로 통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여러 연금술의 좋은 재료가 되어 주기도 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나쁠 건 없는 물건이지.’
그런 것들을 무보수로 마음껏 캐내게 할 수 있으니. 연우는 처음으로 레드 드래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맛있는 거 나 많이 줘야 해! 꼭! 꼭! 약속이다!』
“알았으니까 걱정 마.”
『히히히. 맛있으면 좋겠다.』
짹짹이는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지 부리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두 눈도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러다 크게 부리를 열면서 하품을 했다. 큰 눈을 끔벅끔벅거렸다.
『흐응. 나 이제 잠 와. 자고 싶어.』
“잠시 쉬고 있어.”
『응! 간식 오면 깨워야 해?』
짹짹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푸른색 불꽃으로 흩어져 연우에게로 깃들어 사라졌다.
환수들이 살기 좋은 몽상 세계인 11층과 다르게 12층부터는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다.
때문에 환수들은 형체를 유지하기가 힘들어 보통 플레이어의 몸을 빌려 기생을 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완전히 동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짹짹이도 마찬가지.
녀석은 난조로 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체내에 기운의 갈무리가 덜 끝난 상태였다. 여기에 불의 보옥까지 삼킨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
그래서 짹짹이는 기운의 관리를 위해서 하루 중 대부분을 숙면으로 채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짹짹이가 체내로 스며들었을 때 쉬는 공간이 조금 특이했다.
‘돌. 또 여기란 말이지.’
연우는 심장 옆에 자리를 잡은 돌을 느끼면서 살짝 입맛을 다셨다.
최근 들어 돌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연우에게 몇 번씩 감지될 정도로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기운을 뿌려 대거나, 어떤 작용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피닉스가 남긴 불씨를 잡아당겨 화로로서 역할을 하고, 이제는 짹짹이에게 보금자리 역할까지 한다.
언제는 짹짹이에게 왜 돌에서 자꾸 쉬는 건지 물었다.
그러자 짹짹이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어. 그냥 거기에 있으면 편했어.』
“편했다고?”
『응응. 엄청 따뜻하고 포근해. 그래서 막막 잠이 쏟아져! 엄청!』
처음에는 피닉스의 불씨가 있으니 짹짹이가 편하게 여기는 건가 싶었지만.
계속 관찰해 본 결과, 그것과는 또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짹짹이는 그것과 별개로 돌에서 머무를 때 기운을 갈무리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리고 안정적이었다.
다른 마력회로의 부위보다 훨씬.
마치 겉으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외부와 전혀 다르다는 듯이.
‘어쩌면 불씨가 자리를 잡은 것과 같은 이유일지도.’
돌을 감지하는 내내 연우의 두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허무나 심연의 기운도 파편으로 남아 있고. 샤벨 타이거의 잔해도 돌을 중심으로 단단히 뭉쳤어.’
처음에는 실패작으로만 생각했던 돌이, 이제는 단순한 실패작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냥 미완성일 뿐. 언제든지 재료만 주어진다면 완성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4대 신수의 파편들이 그런 재료 중 일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연우로서는 어떻게 뜻대로 제어하지도 못하고, 꺼림칙하기만 한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언제, 어떻게, 자신에게 독으로 작용할 줄 알 수가 없으니.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결과물인 것도 싫지만, 컨트롤할 수 없는 힘이라면 없느니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당장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4대 신수들의 기운이 자리를 잡고, 짹짹이가 보금자리로 생각하고 있는 한 이제는 그러기도 힘들었다.
‘차라리 완성을 시켜야 하나? 아니면 제어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까.’
연우는 어느새 계륵이 되어 버린 돌을 보면서 다시 혀를 찼다. 그리고 생각을 그쳤다.
짹짹이가 자리를 잡고 있는 한, 당장 돌이 그에게 독으로 작용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사막을 횡단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 * *
[모든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대사막을 건너는 기적을 보였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3,000만큼 획득했습니다.]
……
[획득한 공적치는 누계 공적치에 합산됩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등록을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아도 당신의 업적은 탑에 깊게 새겨져 원할 시에 언제든 등록 여부를 전환하실 수 있습니다.]
……
[13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연우는 푸른색 포탈 위에 발을 얹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대사막을 횡단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산보를 하는 것처럼 재미까지 느낄 정도였다. 수련도 병 행할 수 있었으니까.
뜨거운 모래 바람과 화상을 입을 정도로 지독하게 들끓는 대기,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잠기는 모래 바닥은 모든 게 엉망이었지만.
덕분에 외부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내성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성화의 속성력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코어도 추가로 설치해 현재 108개까지 완성해 둔 상태였다.
사막을 건너는 사이에도 자기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다. 판트와 에도라가 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지도 몰랐다.
연우는 자신이 건너온 대사막을 돌아보다가, 곧 별 미련 없이 13층으로 넘어가려 했다.
바로 그때.
“잠시만 기다리시지요오.”
갑자기 허공에서 다른 포탈이 열리더니 토끼 머리를 한 관리자가 툭 하고 떨어졌다.
11층에서 마주쳤던 관리자, 라플라스였다.
연우는 살짝 놀란 눈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11층을 통과할 때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이 여기는 왜?
연우는 순간 자신이 여기에 있는 걸 들키면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털었다.
관리자는 탑의 시스템에 종속되어 절대 플레이어의 일에 관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뭘 하러 온 것일까?
연우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라플라스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 질문도 없이.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는 듯.
“이전에 뵈었던 것처럼 역시 과묵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시는 길도 바쁘신 것 같으니 용건만 간단하게 말씀드리지요.”
연우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라플라스는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혹시 입꼬리가 올라간 게 다른 의미로 비치지 않을까 스스로 점검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님은 16층에 위치한 앉은뱅이 세 여신의 신전으로 가는 게 맞으시지요?”
가면 아래로 비치는 연우의 눈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무리 관리자가 플레이어들의 신상을 안다고 해도, 자신의 행적을 들키고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라플라스는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면서 그를 달랬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저희 관리자들이 할 일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 분들께서 쾌적한 환경에서 시련에 몰두할 수 있게 보좌하는 역할을 할 뿐. 절대 ###님의 일에 방해가 되거나, 소문을 퍼뜨리는 일은 없으니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우는 라플라스의 빨간 두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도저히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도 관리자들은 상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지. 특히 12지신으로 통하는 총 관리자들은 더더욱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그리고 연우가 알기로 라플라스는.
‘12지신의 묘. 토끼는 호기심이 많고 사사건건 타인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한다.’
그닥 바람직한 성격을 가진 녀석은 아니었다.
“그럼. 무슨 일로 온 거지?”
“윗분들로부터 말씀을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윗분?”
“아실지 모르지만, 저희 관리자들, 특히, 최상위 12지신들에게는 또 다른 역할도 있지요. 바로 신과 악마들의 전령 역할입니다.”
‘전령?’
연우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전혀 뜻밖의 말이었으니까.
“저는 그중 한 악마 분의 말씀을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라플라스는 싱긋 웃으면서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미소를 뚝 그쳤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을 흐르는 공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대사막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갑고 어두침침한 적막이 주변으로 흘러 다녔다.
그리고 라플라스의 두 눈이 탁한 검붉은 빛깔로 변했다. 음습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마기.’
연우는 라플라스에게서 풍기는 기운을 읽고 살짝 낯을 일그러뜨렸다.
라플라스는 자신에게 전언을 부탁한 악마의 목소리로, 그의 힘을 빌려 말했다.
“앉은뱅이. 세 여신. 중에. 맏이를. 주의. 하라.”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주변에 흐르던 마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사막의 열기가 다시 빈자리로 찾아오고, 라플라스의 눈이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앉은뱅이 세 여신들을 주의하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그리고 이 말을 전한 악마는 누구고?”
라플라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는 어디까지나 전령 역할만 할 뿐. 자세한 건 알지 못합니다. 알아도 시스템의 제한 상 말씀드릴 수가 없고요. 자세한 건 ###님께서 알아서 판단하셔야 합니다.”
라플라스는 재미나다는 듯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연우는 더 이상 거기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에 잠겼다.
‘앉은뱅이 세 여신 중에 맏이라면 우르드일 텐데. 갑자기 왜?’
연우는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뭔가를 해 보려 하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딴지를 걸어 온 셈이었다. 신과 악마들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던 메시지가 이렇게 짜증나기는 처음이었다.
“이런 걸 왜 나에게 전달하는 거지?”
“저야 모르는 일이지요. 그저 잔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은 저 같은 것이 어떻게 감히 심계 깊은 신과 악마 분들의 생각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안 그런가요?”
연우는 왠지 라플라스가 말을 빙빙 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들었다고 해도 16층으로 안 갈 수 없다. 이름도 밝히지도 않는 악마의 말을 무작정 믿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악마는 악마. 간교한 혀를 가진 그들은 원래 믿을 수 있는 족속들이 아니었다.
아니, 그런 것을 떠나, 자신을 어떻게 마음대로 하려는 손길이 있다는 게 짜증이 났다.
그래서 무시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세 여신의 분노를 살 각오도 했었고.’
도무신의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신전을 엉망으로 만들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세 여신에게 좋은 인식이 박힐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역시 생각대로, 들을 생각은 없으신 듯하군요. 그럼. 마저 가시던 길을 이어 가시기를. 제가 따로 손을 써 두었으니, 더 이상 16층까지 ###님을 방해할 관리자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라플라스는 연우의 눈빛을 읽었는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허리를 숙였다.
연우는 라플라스의 인사를 뒤로 하고 푸른색 포탈을 타고 13층으로 이동했다.
짜증 섞인 생각과 함께 빛무리가 눈가를 가렸다.
* * *
[13층…….]
[시련을…….]
……
그렇게 여러 개의 층계를 빠르게 지나.
[이곳은 16층, ‘삶의 물레’의 관입니다.]
연우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타트 존은 거대한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였다. 숲 사이사이로 나 있는 세 개의 아주 커다란 길과 연결되어 있어 원하는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때마침 공터에는 연우 외에 용병들이 미리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다들 행색이 11층을 떠날 때에 비해서 많이 꾀죄죄했다.
다들 각 층계를 돌면서, 불의 보옥 말고도 연우가 지시한 대로 히든 피스를 찾느라 고생을 해 댄 결과였다.
연우는 손가락을 튕겨 그들에게 성화를 고루 뿌려 주면서 말했다.
“그럼 각자 모은 것들, 다 여기 꺼내도록 해.”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무뚝뚝한 말투.
용병들은 저마다 울상이 되었다.
‘이거 꼭…….’
‘수금하는 것 같은데.’
‘설마 우리 데려온 이유가 앵벌이를 시키기 위해서는…… 아니겠지? 그렇겠지?’
그들은 자신들이 정확하게 정답을 맞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외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