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28화 (128/862)

3화. 전쟁 준비 (3)

[칭호: 죽음을 이끄는 자]

세상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개의 양면으로 나눠져 있다. 두 가지는 서로 섞이지 못한 채 서로를 미워한다. 하지만 이 칭호를 가진 당신은 예외적으로 산 사람으로서 죽은 자들에게 많은 사랑과 추앙을 받을 것이다.

효과: 모든 언데드 계통에 대한 속성력 우위. 어둠 계통의 속성력 및 지배력 +20.

연우는 새롭게 얻은 칭호를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칭호를 얻었다는 것은 남들이 쉽게 해내지 못할 분야를 통달했거나, 자신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어떤 업적을 성취했다는 뜻이었다.

원래 연우에게 주어진 한계는 사귀 사역이 전부였지만. 이보다 뛰어넘는 리치를 만들어 냈으니 시스템이 바로 이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획득했습니다. 사고 지식이 넓어졌습니다. ‘용마안’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35.1%]

덩달아 연우는 용체에게서 주어지는 용의 지식이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한 폭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조금 우려스러운 마음 역시 들었다.

만약 리치로 진화한 부가 검은 팔찌의 통제에서 벗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손을 써서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연우로서는 히든 피스만 날리는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니 그건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부는 진화를 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주인님은. 깊은 곳에 가라앉은 저를. 꺼내 주신 고마우신 분. 어떤 것이라도.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달게. 수행하겠습니다.」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 아직 사고 체계가 완전하게 자리 잡히질 않아 생긴 후유증인 것 같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럼 현재 네가 가능한 마법 계통은 어떤 쪽이지?”

리치는 연우가 전쟁을 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재원 중 하나다. 녀석의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생전. 아니. 전생에서의 마법 능력은 대부분 펼칠 수 있습니다.」

“대략적이면, 어떤?”

「우선. 보여 드리겠습니다. 혹시. 갖고 계신. 망령 중 일부를.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연우는 각 층계를 통과하면서 망령을 대거 수확해 뒀었다. 소유자의 역량이 커졌기 때문인지 컬렉션의 크기도 1,500마리까지 대폭 늘어난 상태.

우선 세 마리만 뽑아서 꺼내자, 부는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로브로 가려진 머리 부위로 해골 두상이 나타났다. 푹 꺼진 두 눈덩이 사이로 푸른색 도깨비불이 찬란하게 피어올랐다.

부는 세 망령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불빛이 피어났다.

첫 번째 망령이 폭죽처럼 터졌다. 그리고 가루가 떨어진 자리로, 땅이 갈라지더니 누더기처럼 얼룩덜룩한 들개가 대가리를 꺼냈다. 두 눈이 꺼떻게 죽어 있었다.

「‘사령 소환’이란. 것입니다. 영혼을 매개체로 삼아. 저승에 기거하는. 소환수를. 꺼내 부릴 수. 있습니다. 사체가 있으면. 스켈레톤과 좀비도. 꺼낼 수. 있습니다.」

부는 손을 다시 흔들어 소환수를 역소환시키고, 이번에는 두 번째 망령을 터뜨렸다.

그러자 잿빛 안개가 자욱하게 퍼지면서 실내를 가득 메웠다.

예전에 연우도 본 적이 있는 기술이었다. 클랜 연합과의 싸움 때 적들에게는 공포 상태를 낳고, 아군 사귀에는 버프를 걸었던 광역 범위 스킬.

「‘피의 안개’라는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적에게 공포를. 나아가서는 집단 실성이나 환각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적에게 빼앗은. 체력과 마력을. 아군에게 불어 넣기도. 합니다.」

연우는 눈을 반짝였다. 피의 안개는 이전보다 효과가 훨씬 좋아졌다.

단순한 공황 상태뿐만 아니라, 체력까지 갈취할 수 있다면.

대규모 전장에서 이보다 좋은 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체 흡착’입니다.」

마지막 망령이 터졌다. 그러자 그 자리로 불덩이가 잠깐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시체나. 망령이. 얼마나 있냐에 따라. 불과 얼음의. 기초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부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전생에. 부두술사였습니다. 부두술사는. 강령술사나 흑마법사. 주술사와 달리. 시체와 저주를.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칙칙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이지만. 더 강해지겠습니다. 틀을 벗어나. 제대로 된. 리치가. 되어. 주인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부두술사는 시체와 저주를 다루는 만큼 기초 마법에는 많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는 이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만약 자신이 평범한 흑마법사이기만 했었어도, 더 많은 마법으로 연우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부두술사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이야 앞으로 스킬북을 구해서 습득하면 그만이지만, 망령과 시체를 다루는 부두술은 전혀 달랐다.

연우는 일인군단을 꿈꾼다. 하지만 개인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마당에, 자신을 옆에서 든든하게 보좌하고 지원할 수 있는 녀석을 만난 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귀들을 부리면서 나도 같이 싸우기가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마음 놓고 지휘권을 맡길 수 있겠어.’

사체를 다루는 녀석이니 사귀도 곧잘 다룰 것이다. 거기다 피의 의식과 사령 소환, 시체 흡착 같은 스킬들을 번갈아 사용하다 보면 전장을 연우의 입맛대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연우는 괜찮다며 녀석을 달랬다.

부는 그런 연우가 감사한지, 더 크게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부는 그 말을 남기면서 조용히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지원을 맡을 마법사를 구했으니, 이제는 정면에서 같이 싸울 기사를 구해야겠지.

연우는 컬렉션 목록 중에서 샤논의 망령을 꺼내 소환했다.

세미 랭커의 영혼답게 다른 녀석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색깔이나 풍기는 기운이 짙었다.

연우는 남은 망령을 전부 흑기로 치환시켜 샤논의 망령에다 불어 넣었다.

빠각.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망령이 소용돌이를 치면서 조금씩 커져 사귀가 되었다.

「여긴…… 어디지?」

샤논의 사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녀석은 사귀인데도 불구하고 의식이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

“레드 드래곤의 군영입니다. 샤논.”

「넌……!」

샤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난 분명…… 너에게 죽었을 텐데?」

샤논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잠깐 혼란스러워하다가, 곧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건가? 부두술사나 흑마법사 중에 영혼을 다루는 자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영혼을 재생시킨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검은 팔찌는 아스트라페를 집어삼켰을 정도로 뛰어난 아티팩트. 당연히 다른 직업군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연우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기에 검은 팔찌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차분한 샤논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그를 포섭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사귀라고 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모습에 욕심이 들었다.

‘의식 수준만 따지면 리치가 된 부보다 훨씬 또렷해. 이 사람을 데스 나이트로 만들 수 있다면.’

보통 사귀들이 갓 깨어났을 때, 망령 때의 습관이 남아 본능만 앞세운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샤논은 원래 정신적으로도 뛰어났던 사람이 틀림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되었지?」

자신이 죽더라도 수하들은 무사히 보내 달라던 부탁.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보내 드렸습니다. 다만, 이전에 당하신 분들은…….”

「아아. 괜찮아. 그 정도쯤은. 거기까지 바란다면 욕심쟁이일 뿐이지.」

샤논은 손사래를 치면서 연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리고 가늘게 눈을 좁히면서 연우를 바라봤다.

「아무튼. 이렇게 날 불러냈다는 건, 용건이 있다는 뜻이겠지? 자네가 청화도가 아닌 레드 드래곤에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레드 드래곤에 투신하게 된 이유. 도무신과 싸울 거란 이야기와 그를 불러낸 목적까지.

샤논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인연이 있어 도무신과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그래도 알려진 것처럼 욕심만 많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야.」

수하들을 목숨처럼 아꼈던 샤논이니만큼 그는 연우의 목적을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데 나더러 데스 나이트가 되라고? 그 말은 자네의 밑에 들어오라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거절하지.」

“…….”

「물어볼 것도 없어. 내가 몸을 담았던 곳은 레드 드래곤이었고, 자랐던 곳도 레드 드래곤이었어. 죽어서도 그곳을 떠날 마음은, 없다네.」

샤논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레드 드래곤의 ‘아이’로 자랐던 사람이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말로 표현할 것도 없었다.

수하들에 대한 마음도, 사실 그런 조직의 충성심에서 발로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았다.

연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이렇게 완고할 줄이야.

‘그래도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만 해.’

샤논 같은 영혼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가 가르쳐 줬던 ‘허초’라는 것도 배우고 싶었다.

되도록 설득으로 회유하고 싶었지만, 안 된다면 강제로라도 굴복시킬 생각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영혼에 훼손이 생겨 생전의 기억이나 자질이 망가질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강제로 종속시킬 수밖에요.”

「음? 방법이라도 있나?」

“당신의 영혼을 수확할 수도 있었는데, 종속시키는 걸 못하겠습니까?”

「으음. 그것도 그렇군. 그러면 안 되는데. 이런.」

샤논은 뭔가 계면쩍어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연우는 손길을 뻗으려다가 잠깐 멈췄다. 뭔가 그의 생각이 바뀐 것처럼 보였다.

「그냥 저승으로 보내 주는 건 안 되겠지?」

“안 됩니다.”

「욕심이 많군. 죽어서도 쉬지 못하게 하고. 으음. 뭐, 그래도 이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한평생 레드 드래곤에 얽매여 있었으니, 이젠 바깥을 둘러보는 것도.」

샤논은 잠깐 생각에 잠기다, 다시 연우를 바라봤다.

「그럼 조건을 하나 걸지.」

연우는 손길을 거뒀다.

“말씀하십시오.”

「자네에게 복종은 하지. 하지만 되도록 내 자유 의사는 남겨 놓을 것. 그리고 날 강하게 만들어 줄 것. 생전보다 훨씬. 세미 랭커나 랭커 따위가 아닌. 하이 랭커만큼이나.」

샤논의 흐릿한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났다.

사실 그에게는 레드 드래곤에 대한 충성심보다 앞서는 게 있었다.

강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

49층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세미 랭커로만 남아야 했던 그에게. 남은 미련이 있다면, 그것은 랭커가 되고, 하이 랭커가 되어 77층을 올라 보는 것이었다.

강하다는 기준의 끝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연우가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저 역시 강해질 겁니다. 남들보다 훨씬.”

「그럼 됐어. 사실 자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거든. 나와 똑같은 종자라는 걸. 흐흐!」

“하지만 제게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쩌면 레드 드래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고요. 옛 동료와 부딪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남은 시험.

충성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 정도는 각오해야겠지. 새 삶을 시작하는데, 굳이 옛것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지 않겠어?」

아까 전과는 인격이 확 바뀐 것처럼 너무 달라 보였다.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신 겁니까?”

「괜히 악을 쓰기는 싫거든.」

“…….”

「그리고 내가 망가지는 것도 싫고. 어차피 넘어가게 될 거라면. 그래. 내 의식이 온전한 상태로 넘어가고 싶어. 그리고.」

연우는 샤논이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바로 옆에 있으면 그걸 볼 수 있지 않을까?」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샤논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존재인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강직하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너무 부드럽다 못해 휘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알 것 같았다.

이자가 있으면 앞으로의 여정이 훨씬 쉬워질 것 같다는 것.

연우는 아공간 포켓을 꺼냈다.

“그럼 제가 드리는 순서대로 기운을 온전히 흡수하십시오.”

* * *

[사귀가 성공적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가 탄생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

[데스 나이트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칠흑왕의 절망’에 귀속되어 앞으로 든든한 당신의 칼이자 방패가 될 것입니다.]

[이름을 지정하시겠습니까?]

“샤논.”

[데스 나이트의 이름이 ‘샤논’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충성도가 15만큼 올랐습니다.]

[지배력이 5만큼 올랐습니다.]

「새로운 주인께, 인사를.」

칠흑빛 갑주와 투구. 그리고 생전에 쓰던 소드 브레이커를 바닥에 꽂은 채, 데스 나이트가 된 샤논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

「이제부터 하대를 하십시오. 저는 당신의 종이며 기사. 주인은 종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 법입니다.」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를 하면서 샤논이 고개를 들었다. 휑한 어둠이 내려앉은 투구 속에는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물론, 저는 가끔 반말도 섞을 생각이지만.」

연우는 유쾌한 데스 나이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앞으로 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한쪽 팔이 되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연우만의 군단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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