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40화 (140/862)

15화. 부화 (6)

연우는 바할을 통해서 레드 드래곤과 청화도의 전쟁 이면에 있던 진실들을 알 수 있었다.

하나같이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히는 내용들이었다.

“여름여왕의 드래곤 하트가 망가졌고,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서 현자의 돌을 필요로 했다는 말이지?”

바할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사념을 쥐어짤 힘도 없는 듯, 녀석의 영혼은 너덜너덜해진 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역시나 리언트 때처럼 말의 앞뒤를 맞추기 위해서 몇 번씩 고문을 진행한 결과였다.

더구나 이미 그 전에도 몇 번씩 성화를 집어삼킨 덕분에, 이제는 흑기를 불어 넣어도 복구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연우도 알아낼 건 전부 알아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최후의 용이라는 여름여왕이 위기에 빠졌단 말이지.’

그것도 동생과 싸운 뒤로 겪은 후유증 때문이라니.

‘그래도 한 방을 먹이긴 했구나. 멍청하게 당하기만 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야.’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웃음은 여름여왕을 비롯해서 레드 드래곤과 청화도, 전체에 대한 비웃음으로 변했다.

돌의 행방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 바빴던 놈들.

병신들처럼 놀아났다는 사실이 우습기만 했다. 정작 녀석들이 찾는 돌은 자신이 갖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녀석들은 연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던 셈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잘만 이용한다면 한동안 더 갖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래곤 하트가 망가진 상태로도 전쟁에 참여를 했던 것이라면. 지금쯤 꽤나 안달이 나 있겠어. 가뜩이나 부족한 마력이 아예 동나 버렸을 테니.’

드래곤 하트는 용종에게 있어 단순한 심장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마력을 공급하는 근원이며, 위대한 존재로 남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다.

그런 게 망가진 상태라면. 그리고 복구가 당장 힘든 상태라면.

‘판세를 크게 뒤집을 수 있다.’

연우는 눈을 반짝이면서 붉은 혀로 메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 사실을 어디다 흘리는 게 좋을까. 마군? 엘로힘?’

레드 드래곤은 적이 많다.

특히 악마를 신봉하면서 용의 사냥에 몰두하는 마군과 레드 드래곤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엘로힘이 이 사실을 듣는다면 좋아서 춤을 출 게 분명했다.

연우는 비밀리에 이 사실을 퍼뜨릴 만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자신은 절대 드러나지 않도록.

‘그리고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겠어. 언제 낌새를 눈치챌지 모르니까.’

여름여왕은 용종이니 만큼 명석한 두뇌를 자랑한다. 당연히 이번 전쟁 배후에 다른 손길들이 닿아 있다는 것을 눈치챌 게 분명했다.

‘일단 한동안은 현자의 돌을 완성하고, 층계를 공략하는 데 집중하자. 칼라투스의 행방도 찾아봐야 할 거고.’

연우는 바할을 고문하면서 기존의 생각 중 몇 가지를 바꿨다.

한 가지는 미완성인 현자의 돌을 완성시키자는 것이었다.

원래는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제어가 안 될 것 같았기에 현자의 돌을 이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여름여왕이 현자의 돌을 드래곤 하트의 대체재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한 여러 재료들을 모아 둔 창고가 있다는 사실까지 안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연우는 용체를 각성하면서 마력 회로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권능을 차례대로 개방할 때마다 마력 회로는 차츰차츰 용맥(龍脈)으로 변하면서 심장도 드래곤 하트로 변해 나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리고 아무리 용의 인자를 깨운다고 해도 언젠간 인간이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고.’

그러니 편법을 쓰려는 것이다.

현자의 돌이라면 충분히 드래곤 하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마력회로의 발전도 더 빨라질 것이고, 용체 각성도 순조롭게 풀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권능을 전부 개방했을 때쯤에. 두 개의 드래곤 하트를 가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원래 동생과 고룡 칼라투스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 둔 안배보다 더 높은 곳을 노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아무도 탄생시키지 못한 현자의 돌이니, 그것을 완성시키는 과정은 아주 힘들 테지만.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레드 드래곤은 클랜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여름여왕을 위한 재료를 모두 한데 모았다.

그 재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인트레니안’.

레드 드래곤에서도 몇 개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대용량을 자랑하는 거대 아공간 마법 창고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인트레니안이 현재 바할의 손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리언트를 꼬드길 목적으로, 바할에게 임시로 권한이 주어졌던 것인데. 도중에 연우가 개입을 하면서 허공으로 증발해 버린 셈이었다.

연우는 바할이 죽으면서 남겼던 아티팩트 중 반지를 꺼냈다. 다행히 녀석이 착용하고 있던 것들 대부분을 아공간 포켓에 넣어 뒀기 때문에 꺼내는 건 쉬웠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구리 반지로 보이는 아티팩트.

[구리 반지]

분류: 액세서리

등급: F

설명: 단순한 구리 반지. 안쪽에 희미하게 특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아티팩트에는 ‘봉인’이 걸려 있습니다. 봉인을 해제할 시, 숨겨진 기능이 드러납니다.

설명 창에서 보이는 내용도 아주 간단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줘도 가지지 않을 물건이었지만, 바할이 말한 대로 만지고 나자 숨겨진 봉인이 풀렸다.

화아악-

[인트레니안의 열쇠]

분류: 액세서리

등급: A++

설명: 인트레니안을 열 수 있는 열쇠. 인트레니안은 레드 드래곤의 여름여왕이 직접 거대 아공간을 가공하여 만든 마법 창고로, 어마어마한 용량을 자랑한다. 사용자와 의식이 연결되어 있어,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직접 아공간으로 넘어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수납이 가능하다.

* 무한대의 창고

무한대에 가까운 용량을 자랑한다. 아공간을 기반에 두기 때문에 휴대가 간편하며,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연우는 용마안을 열고, 반지 안 쪽에 그려져 있는 무늬를 살피면서 일부를 훼손시켰다.

추적 마법. 함부로 인트레니안이 열렸을 때를 대비해 걸려 있었던 것이지만, 바할이 말해 주는 것을 토대로 해 용마안으로 살피니 쉽게 지울 수 있었다.

이것으로 거대 마법 창고가 고스란히 연우의 손에 떨어진 셈.

‘추적 마법이 파훼되었다는 게 전해질지도 모르지만. 위치가 외뿔부족이면 저쪽도 단념할 수밖에 없겠지. 외뿔부족의 전리품이 되어 버리는 거니까.’

연우는 이렇게 고마운 선물을 해 준 여름여왕을 떠올리면서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 반지를 왼손에 끼웠다. 그리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눈앞으로 아공간이 활짝 열렸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각각 구획별로 나눠져 있는 마법 창고는 크기만 따지면 외뿔부족의 무서고를 능가할 정도였고, 안에 담긴 것들은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재화들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앞으로 돈 걱정은 크게 없겠는데.’

가뜩이나 휴대용 창고, 인벤토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것만 있으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그러다 연우는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거기엔 바할이 말했던 재료들이 가지런히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연금술에서 귀한 보물로 분류되는 것들. 여기에 있는 것들만 다 모아도 S급 아티팩트를 다량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를 자랑했다.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만족에 찬 미소를 흘리면서, 인트레니안에서 나와서 도로 아공간을 닫았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내용도 알고 있는 이상. 재료도 충분히 있으니 현자의 돌은 얼마든지 완성시킬 수 있어.’

물론, 1할의 거짓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건 용의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다 보면 금세 풀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연금술과 마도공학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마도공학은 야금술을 단련하면서 용의 지식을 습득하면 되니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건, 연금술.

다행히 연금술을 배울 만한 곳은 있었다.

‘브라함. 그 양반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동생이 인연을 맺었던 연금술사는 총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안티 베놈 베이럭.

다른 한 명은 ‘연단가’ 브라함.

브라함은 사실 여러모로 기이한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 멋대로인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선이 있어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수행자(修行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기질을 닮아서 그런지. 그가 정립했다는 연단술은 여러모로 신기한 점을 많이 품고 있었다.

사실 연단술은 연금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학문이었다. 연금술은 쇠를 다루고, 연단술은 약을 다룬다. 시작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갖가지 여러 재료를 다루며, 궁극적으로 ‘금인(金人)’이 되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목표 지점은 같았다.

그래서 연단술과 연금술은 서로 교차하는 점이 많으며, 교류도 잦은 편이었다. 서로가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티팩트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연금술은 흥하는 데 반해, 자기 수양도 같이 따라야만 하는 연단술은 점차 쇠락해 간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브라함은 그런 연단술에 마지막 남은 대가였다.

그를 통한다면, 연금술과 함께 연단술도 공부해서 현자의 돌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정우와 작지 않은 인연을 갖고 있기도 하고.’

뱀사냥꾼 갈리어드와 함께 동생이 깊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 연우가 갈리어드를 찾았을 때 팔았던 이름이기도 했다.

다행히 브라함은 자신의 행적을 잘 숨기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금방 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랭커이니 만큼 상위 층계에 있을 테니, 빠른 공략은 필수였다.

우드득.

두득.

연우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래저래 정리를 하다 보니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할 게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층계 공략에도 신경을 쓰면서, 아직 단단히 잠겨 있는 여러 권능도 차례대로 개방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연우는 다시 바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바할이 화들짝 놀라 주춤거렸다. 흐릿한 안광이 출렁이면서 두려움에 잠겼다. 얼마 전까지 하이 랭커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단 뜻이겠지.

연우도 더 이상 바할에게서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샤논을 소환했다.

여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샤논은 하이 랭커의 영혼을 자신에게 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허락이 떨어진 순간, 샤논은 즐거운 마음으로 바할을 먹어 갔다. 그가 가진 능력들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특히 녀석을 상징하던 시그니처 스킬, 불벼락과 볼케이노 중 최소한 한 개는 자신에게 주어지기를 기대하며.

콰드득. 콰득.

「크아아아……!」

그렇게 바할의 고통에 찬 절규만이 음산하게 퍼져 나갔다.

* * *

[샤논(데스 나이트)이 상대의 근원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체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어둠 계통의 속성력이 15만큼 상승했습니다. 더욱더 강한 악 속성을 띠기 시작합니다.]

[샤논(데스 나이트)이 스킬 ‘볼케이노’를 획득했습니다.]

「하아! 그래. 이거야. 이런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어.」

샤논은 아주 크게 기뻐했다. 원래 강해지는 것을 추구하던 성격답게, 부쩍 오른 능력치에 쾌락을 느끼는 중이었다.

물론, 하이 랭커의 영혼을 흡수했다고 해서 당장 샤논이 그만큼 강해진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전장에서 포식을 했던 괴이들도 집단 진화를 이뤘을 테니까.

하지만 ‘격’이라는 것은 남아 있기에. 샤논은 그 격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었다. 데스 나이트로서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아주 높게 올린 것이다.

한계를 높인다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단 뜻이고, 높은 경지를 노릴 수도 있을 테니. 격을 올리기 위한 필수 과정인 것이다.

특히 스킬 볼케이노를 얻었다는 사실은 샤논을 잔뜩 흥분케 했다.

볼케이노는 화력을 마구 남발하여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화권의 상징.

그것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다면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았다.

연우는 그런 샤논을 보면서 만족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권속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그와 부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의 전력도 높아질 테니까.

그리고.

[샤논(데스 나이트)의 성취가 주인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바토리의 흡혈검’의 특성이 적용되어 상대의 근원을 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킬을 일부 강탈하였습니다.]

[스킬 ‘불벼락(넘버링 41)’이 생성되었습니다.]

샤논의 성취를 바탕으로, 심령으로 연결된 연우에게도 그 효과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토리의 흡혈검으로 흡수했던 바할의 정수가 화려하게 꽃을 틔운 것이다.

[불벼락]

넘버링 41

숙련도: 0.0%

설명: 하이 랭커 바할을 상징하던 시그니처 스킬. 잔뜩 응집시킨 불의 기운을 벼락이라는 형태로 풀어낸다. 그만큼 빠르고 강렬해서 지정된 대상자가 미처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직은 숙련도와 속성력이 터무니없이 낮아 제대로 된 사용이 불가능하다. 상당한 양의 마력도 필요로 한다.

* 뇌흔(雷痕)

소비된 마력에 비례해서 강렬한 벼락을 내리꽂는다. 때에 따라서는 높은 확률로 방어 결계도 부수며, 사방을 망가뜨려 상대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 이글거리는 화상

스킬이 전개된 뒤로도, 상당한 시간에 걸쳐 화상 효과를 낸다. 이때에 낮은 확률로 치유 마법을 파훼한다. 또한, 살갗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극대화시킨다.

불벼락!

연우는 스킬란에 새롭게 추가된 스킬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화권 바할을 있게 만들었던 스킬을 손에 넣은 것이다. 동생도 부러워했던 파괴력이 짙은 스킬.

사실 연우는 각종 연계기 스킬은 있었어도, 강렬한 한 방을 보일 수 있는 파괴력 있는 스킬은 그동안 없었다. 위기에 내몰렸을 때에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비밀의 패가.

하지만 이것만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불벼락이 자랑하는 파괴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더구나 연우는 짹짹이 덕분에 불 계통의 속성에 있어서는 높은 수치를 자랑했다. 그와 상성도 잘 맞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숙련도가 낮아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고 설명되어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마력을 상당히 소비한다고 해도, 내가 마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 거기다 성화까지 섞는다면…… 큰 힘이 되어 줄 거야.’

그런 숙련도를 뒤집어 버릴 만큼, 용체라는 특성은 아주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연우는 불벼락의 힘을 한 번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그런데 주인.」

샤논이 갑자기 연우를 빤히 바라보면서 슬쩍 말꼬리를 올렸다.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어투.

연우는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험험! 난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아니까 하는 말이다. 녀석은 안 돼.”

샤논은 팔짱을 끼면서 그답지 않게 투덜거렸다.

「쳇! 그래도 놈이 주인의 수족이 되어 줄 것 같지는 않은데? 안 되면 그땐 넘겨. 어때?」

“안 돼.”

아무래도 하이 랭커의 영혼을 한 번 맛보니 더 강한 자극을 받고 싶은 모양인데.

하지만 연우는 그런 샤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바할이나 리언트와 다르게 이 녀석은 권속으로 삼을 생각이었으니까. 이미 짹짹이에게도 따로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새로운 사귀가 나타나 고요한 눈길로 연우를 바라봤다. 녀석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것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연우는 녀석의 사념이 처음부터 똑바로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럼 네 아들을 살려 주겠다, 도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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