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41화 (141/862)

16화. 부화 (7)

고요하기만 하던 녀석의 눈가에 처음으로 파문이 퍼졌다.

「내 아들이, 살아 있다고?」

도무지 믿기 힘들다는 말투.

도무신은 컬렉션 속에 있으면서 드문드문 의식이 들 때마다 밖을 관찰했었다. 때문에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아들이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포기한 상태였다.

청화도가 망가지고, 레드 드래곤도 여름여왕의 부상으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이때. 자신의 아들을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자신들을 이런 꼴로 만든 원흉이, 직접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을 한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신뢰 문제와 다르게. 연우에게서 전해지는 사념은 분명히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연우는 팔짱을 풀면서 말했다.

“못 믿겠다면 따라와.”

「…….」

연우는 대답을 듣지 않고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렸다.

도무신은 빤히 그것을 보다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 * *

연우가 도착한 곳은 마을 내에 위치한 의실(醫室)이었다. 거기서 한빈은 의원의 치료를 받으면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붕대를 감고 있는 얼굴은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빈아.」

도무신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슬픔에 잠겼다. 아들이 왜 저런 몰골이 되었는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마약에 찌들어 있던 아들이다. 그걸 강제로 끊은 데다가, 갖가지 고문까지 겹쳤으니 정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외뿔부족이 치료를 해 주고 있다지만, 그들의 성격상 아들의 고집을 받아 줄 리도 만무했다.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여태껏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댔던 아버지란 존재가 사라지고 만 상태. 녀석이 의지할 곳도 없으니 무너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도무신은 한빈이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기만 했다.

여태 비뚤어진 길을 걷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지만.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태 모른 척 넘겨 왔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었으니까.

「언제…….」

“언제 데려왔냐고?”

도무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바할이 귀찮으니 정리하고 오라는 걸 몰래 따로 빼 뒀었지.”

「역시. 살려 둘 생각이 없었던 거로군. 레드 드래곤은.」

도무신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홱 하고 고개를 돌려 연우를 노려봤다. 그들 부자지간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게 누군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도 잠시.

도무신은 곧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지금 상황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아들을 저쪽에서 취하고 있는 이상, 그는 무조건 자세를 낮춰야만 했다.

그리고 연우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짹짹이에게 고마워하는 게 좋을 거야.”

「짹짹이?」

“너에게 죽은 피닉스의 자식.”

「……?」

도무신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피닉스의 새끼가 왜?

“그 아이가 저놈을 살려 주라고 했었으니까.”

「……!」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여럿 만들 필요는 없다고. 굳이 목숨까지 거둘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그러더군.”

「…….」

도무신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연우의 말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래서 녀석을 살려 둔 거니, 고개를 숙이려거든 나중에 그 아이를 만났을 때 하도록 해.”

「……그러, 지.」

도무신은 그 말 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탑의 세계에서는 서로가 욕심을 부리는 플레이어들로,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원한이 성립되었다가 사라진다.

그런 마당에 원한은 더 큰 복수로 되갚기를 바라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짹짹이는 그런 원한을 도무신에게만 한정시킨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 때문에.

도무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들을 살려 주었다는 피닉스의 새끼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래서 도무신은 더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때, 탑에서 유명한 투사이자 자존심 강한 하이 랭커였던 그는. 모든 원한을 접고 굴복했다.

「주인을, 뵙습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연우는 따로 보충한 증강환의 재료들과 함께, 남은 흑기를 전부 도무신에게 부여했다.

[사귀가 성공적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가 두 번째로 탄생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3,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2,000만큼 획득했습니다.]

……

[데스 나이트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앞으로 그는 ‘칠흑왕의 절망’에 귀속되어 당신의 칼이자 방패가 될 것입니다.]

[이름을 지정하시겠습니까?]

“한령.”

도무신의 본명이었다.

[데스 나이트의 이름이 ‘한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충성도가 15만큼 올랐습니다.]

[지배력이 5만큼 올랐습니다.]

[한령(데스 나이트)의 영혼이 가진 높은 ‘격’을 현재 만들어진 육체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능력치가 새롭게 재조정됩니다.]

[전체 능력치가 21만큼 하락하였습니다.]

[전체 능력치가 17만큼 하락하였습니다.]

……

[한령(데스 나이트)의 능력치 조정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격’은 그대로이므로, 잠재 능력치는 그대로입니다. 존재의 성장에 따라 잃어버린 기존의 ‘격’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빠른 성장을 권고합니다.]

「몸이, 조금 무겁군.」

시커먼 투구를 쓴 데스 나이트가 된 도무신, 아니, 한령은 새롭게 주어진 육체를 보면서 불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많은 흑기를 불어 넣었어도, 확실히 데스 나이트의 육체는 하이 랭커 때와 비교했을 때에 그 급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스템도 거기에 맞춰서 능력치를 재조정한 것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우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설명 창에 나왔듯이 격이 사라지지 않은 이상, 얼마든지 예전의 무위를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성장을 해야만 하는 샤논보다 훨씬 더 빠른 성취를 이룰 게 분명했다.

더구나 연우로서도 오히려 능력치가 조정되는 게 나았다.

만약 한령의 능력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높다면. 중요할 때에 제대로 통제가 안 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권속에게 뒤통수를 맞을 위험은 피하고 싶었다.

샤논은 그런 한령을 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령을 흡 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아쉬웠고, 당장 그의 능력치가 더 높다고 해도 한령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더 부단하게 뛰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 탓이었다.

한령은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다시 연우를 돌아봤다.

「주인께, 요청드릴 게 있습니다.」

한령은 원래 뼛속부터 무인이다 보니, 연우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샤논보다 더 크게 격식을 갖췄다.

“말해.”

「아홉 자루의 칼을 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스킬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한령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도무신을 상징하는 두 개의 시그니처 스킬, 아홉 칼의 무덤과 칼날 소용돌이를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필요로 한다.

바로 단단한 내구도를 자랑하는 칼을 소지할 것.

칼날 소용돌이는 칼을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크기의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낸다. 그런 엄청난 압력을 견디기 위해서는 웬만한 내구도로는 절대 불가능했고, 일정한 투로가 존재하지 않는 싸움법인 아홉 칼의 무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령은 소싯적에 비무행을 다닐 당시에, 뛰어난 칼을 소지한 플레이어들만 골라 상대해서 칼을 강탈하기도 했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고 난 뒤부터는 보도(寶刀)를 구하기가 쉬워져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런데 이제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칼들은 모두 검무신에 의해 부서졌습니다. 스킬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칼을 필요로 하고, 뛰어난 보도일수록 스킬의 위력도 증가합니다.」

“인트레니안에 쓸 만한 칼 몇 자루가 있을 테니, 우선 급한 대로 그것부터 써. 보도는 앞으로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 줄 테니.”

「감사합니다.」

한령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연우가 열어 준 아공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철함에 담아 천천히 끌고 나왔다.

철그럭. 철그럭.

연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어느새 눈을 뜨고 연우의 시선을 빌려 한령을 지켜보는 짹짹이에게로 의식을 집중했다.

‘고맙다.’

짹짹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단단하게 잡힌 녀석의 눈동자는 더 이상 어미를 그리는 연약한 새끼의 것이 아니었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고자 하는 청년의 것이 되어 있었다.

* * *

그날부터.

연우는 개인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콰앙! 콰콰쾅-

우르르-

쥐고 있던 비그리드를 거칠게 휘두를 때마다 공간이 잘려 나갔다.

막대한 마력이 실린 귀기에 성화가 붙으면서 불바다가 일어나 몇 번씩이나 땅거죽을 뒤집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절벽에 부딪쳐 통째로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콰르르르-

무너진 낙석 더미 위로 먼지구름이 잔뜩 올라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리게 만드는 광경이었고, 강렬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용마안을 활짝 연 연우의 시선은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다.

시야를 따라 잔뜩 퍼져 있는 결들을 좇으며 뭔가를 찾다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고개를 위로 번쩍 들었다.

그리고 용의 권능을 잔뜩 깨웠다.

촤르륵. 촤륵.

피부가 뒤집히면서 상반신을 따라 검푸른 비늘이 잔뜩 올라왔다. 턱밑까지 올라온 비늘이 부딪쳐서 소리를 낼 때마다 연우에게 쏟아지는 감각의 정보도 방대해지면서 목표를 빠르게 쫓았다.

원래대로라면 어떻게든 철저하게 숨겨야만 하는 힘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힘을 숨겨서는 절대 맞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그가 전력을 다해 덤벼도 절대 승리를 할 수 없는 강자였고, 부딪칠 때마다 그의 한계를 계속 시험하는 시험관이었다.

더구나 연우 역시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360개까지 늘어난 코어들이 일제히 열을 내고, 마력회로가 핑핑 돌아가면서 불의 날개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불길이 잔뜩 담긴 비그리드를 다시 한 번 더 내그었다.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서.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스킬들을 한꺼번에 연동시키면서.

[푸른 정령의 가호]

[성화]

[불벼락]

콰르르릉-!

모든 마력을 한데 집중시켜 주는 정령의 가호와 함께, 최근 며칠 동안 꾸준한 연습으로 숙련도를 7%대까지 끌어 올린 불벼락을 터뜨리자 하늘이 시뻘건 색으로 물들었다.

이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굉음을 동반한 채. 비그리드의 칼날을 떠난 불벼락이 어디론가 작렬했다.

하지만 대상자는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히려 재미나다는 듯. 입술 사이로 가볍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왼손을 휘저어 불벼락을 지워 버렸다.

강렬한 위력과는 다르게 너무나 허망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대상자, 무왕의 옷깃에는 살짝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무왕은 제법 실력이 늘었구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번에는 주먹을 세게 앞으로 내질렀다.

도시 쿠람을 부있을 때와 똑같은 일격. 팔극권의 비기, 파공이었다.

콰콰콰-

연우는 그것을 정면에서 부딪쳤다가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자리에서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휘리릭. 불의 날개가 회전하면서 몸을 칭칭 감았다가 비그리드의 끄트머리로 쏠렸다. 그리고 칼날을 옆으로 빗겨 치면서 파공의 핵심을 옆으로 날렸다.

동시에 연우는 순보를 밟아 공간을 빠르게 이동, 무왕의 바로 뒤편에서 나타나 사각지대 쪽으로 비그리드를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좋구나!”

무왕은 감탄을 터뜨리면서 감각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왼손을 바짝 세워 비그리드를 쳐 내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을 말아 쥐면서 연우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연우는 불의 날개를 거세게 펄럭이면서 재빨리 뒤로 빠졌다. 무왕이 어딜 가느냐며 쫓아오자, 대기하고 있던 아이기스가 인트레니안의 문을 열고 불쑥 튀어나와 무왕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무왕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아이기스를 부술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6개의 방패가 어지럽게 날아다니니 무왕의 보폭도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연우는 바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순보를 밟아 무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노렸다.

무왕도 그것을 읽고, 투로를 꺾으며 맞대응했다. 팔극권이 차례대로 풀려나왔다.

쿠르릉, 콰쾅!

콰콰콰-

쾅!

팔극권과 팔극권이 부딪쳤다. 비그리드와 손날이 충돌했다.

연우는 전력을 다해 비그리드를 매섭게 휘몰아쳤다.

악다문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오고, 용마안은 실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충혈이 되었다. 마력 회로는 과열로 인해 뜨겁게 잔뜩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런데도 무왕은 절대 봐주지 않았다. 여유롭게 연우의 공격을 일일이 맞대응하면서, 자꾸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한계를 시험하며, 진짜 그의 목숨을 위협했다.

그럴 때마다 연우는 용의 감각을 있는 대로 쥐어짜면서 어떻게 든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의식을 집중하면서 반격할 기회를 노렸다.

쿠쿠쿠쿠-

그리고.

그걸 한참 멀리서 지켜보던 판트와 에도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분명 저 두 사람은 수련을 한답시고 하는 것 같았지만. 말과 다르게 주변 일대는 철저하게 초토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절벽이 무너지고, 구릉이 평야가 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땅에 흐르던 강물은 열기 때문에 메말라 버린 지 오래였다.

만약 미리 주변에다 진법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탑 외 지역은 엉망이 됐을 게 분명했다.

“……더 큰 괴물이 됐어.”

특히 판트는 또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 * *

“……졌습니다.”

연우는 진이 다 빠진 얼굴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로와 무력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마력회로는 그 많던 마력이 전부 어디로 갔냐는 듯 텅 비어 있었다.

무왕이 수련을 핑계 삼아 그의 대련 상대가 되어 준 것도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

사실 연우는 간단한 정비만 끝나면 곧바로 층계 공략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자님? 갈 때 가더라도, 스승한테 검사는 받고 가야지?

떠나기 직전. 무왕이 내뱉은 말에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으로서 성취를 확인해 보겠다는 말을 거절하기도 힘들었던 데다가, 각성한 용체가 무왕에게 얼마나 통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대련을 시작했었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

무왕은 연우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보이라고 강요했다.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 누르면서, 그를 계속 궁지로 몰아넣었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전부 내보이지 않으면 정말 목숨이 위태로워질 정도로. 무왕은 정말 연우를 죽일 생각으로 몰아붙였다.

그래서 숨겨 두고 있던 패를 전부 까발리고 말았지만.

반대로 덕분에 연우는 자신의 한계를 몇 번이나 실감하고, 그때마다 돌파하면서 가진 것들을 전부 완벽하게 습득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다.

그래서 한참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과연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도 되는 것일까 하고.

여전히 마지막 패인 검은 팔찌의 성능은 보여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종의 힘을 드러낸 것만 해도 연우로서는 많은 것을 보여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우는 곧 그런 생각을 거뒀다.

외뿔부족을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에 무왕이 보여 줬던 모습이 떠올랐다.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은 아직도 가슴 속에서 잊히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도 남아 있었지만, 무왕은 거기에 대해 일체 묻지 않았다.

자신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듯이, 관심도 두지도 않았다. 다른 곳에서 실수로라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대련 중에 오로지 그걸 깨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래서 연우도 마음 놓고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발전했고, 단순히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무왕을 보는 연우의 시선에는 존경심과 함께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호승심.

스승 대 제자가 아닌.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로서, 실력으로 언젠가 그를 꺾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물씬 풍겨났다.

그리고.

무왕은 그런 시선을 읽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를 가르쳐 줄 때마다 스스로 열을 깨닫는 총명한 제자는 볼 때마다 그를 흡족케 만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가르쳐 줄 건 없겠는걸.

그런 생각과 함께.

무왕은 팔짱을 끼면서 빙긋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카인.”

“예.”

“이제, 가도 좋다.”

네 앞가림을 할 정도는 되었다는 스승의 말에.

연우는 눈을 크게 뜨다가 곧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다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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