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43화 (143/862)

18화. 앉은뱅이 세 여신 (2)

똑-

똑.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검무신은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덮고 있던 사자 탈은 어느새 날아가고 없었다.

여긴 어디지?

검무신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새된 소리만 흘러나올 뿐. 아무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태생이 벙어리인 그는 원래 말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항상 멸시와 구박을 받으면서 살았고, 이 험난한 탑의 세계에서 장애인인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힘을 얻는 수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무술에 집념했다.

그러다 무왕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되고, 높은 경지에 올라 어기전성이라는 스킬을 획득했을 때.

그는 누구보다 감격에 찬 눈물을 흘렸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었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어기전성을 육성처럼 너무 편하게 잘 써 왔기 때문에 별달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육체가 크게 망가진 상태가 되니 따라 줘야 할 마력이 따라오질 않아 어기전성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나 불편하구나. 검무신은 너무나 오랜만에 옛 기억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고통으로 혼란스러운 의식을 겨우겨우 억누르면서. 여전히 고통의 잔재가 남아 있는 육체를 억지로 쥐어짜면서. 어기전성을 열었다.

『누…… 구, 없나?』

그렇게 힘들게 말을 꺼냈지만. 아무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의 어기전성은 허공에서 허망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혹시 듣지 못한 걸까?

검무신은 다시 기력을 억지로 쥐어짜 어기전성을 내뱉었다.

『아무도, 없느냐?』

하지만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검무신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수하들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래서 지쳐 있을 때에도 언제든지 따라왔었는데.

아니, 이렇게 부르지 않아도 의식을 차릴 때면 귀신같이 나타나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곤 했었다.

그래서 검무신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파편처럼 남아 있는 기억 속에는 여전히 자신을 따르던 수하들이 있었으니까. 큰 부상을 입은 상태로도 자신을 따르던 수하들, 그리고 그를 업고 달리던 창무신의 모습.

그리고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더라?

송곳으로 뇌를 푹푹 찌른 것처럼 두통이 엄습했다. 검무신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마치 아무것도 떠올리지 말라는 듯. 머리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피곤하니 조금 더 눈을 붙이고 쉬라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검무신은 더더욱 인상을 찡그리면서 사고(私考)를 더듬어 갔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것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의식을 되짚었고, 점점 또렷해지는 정신력에 따라 부서졌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솟아나 퍼즐처럼 맞춰졌다.

악착같이 뒤쫓은 여름여왕. 그리고 레드 드래곤. 그를 살리기 위해 불나방처럼 몸을 던지는 수하들과 무너지는 섬.

그리고.

기절한 자신을 어떻게든 옆에서 지키면서, 전신을 온갖 화살과 칼로 상처 입고도 웃고 있던 창무신.

『……!』

검무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드문드문 눈을 떴을 때 보였던 광경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쫓겼던 건 떠오르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전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검무신은 결국 마지막 남은 기력을 쥐어짰다.

엉망이 된 마력 기관을 계속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사지가 조금씩 뒤틀리면서 고통스럽다고 악다구니를 질러 댔지만, 어떻게든 버터 냈다.

그렇게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자극을 육체 전반으로 옮겨 나갔다.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옮기면서, 어기적어기적 일어서기 시작했다.

검무신은 팔을 뻗어 벽면을 짚었다. 그리고 무거운 고개를 들어 시야를 확보했다.

검무신은 그제야 여태 자신이 어느 동굴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코끝으로 습기가 느껴졌다. 간신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고인 웅덩이가 찰박, 찰박, 소리를 냈다.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하늘에서부터 그에게 주어진 동아줄인 것처럼. 거기가 이정표라는 듯 걸었다.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퀴퀴한 동굴 냄새가 사라지고, 메마른 바람이 검무신의 얼굴을 때렸다. 속이 탁 트였다.

하지만 검무신은 웃을 수가 없었다.

동굴 앞의 넓은 평원을 따라 펼쳐진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곳곳에 익숙한 얼굴들이 장벽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동굴 쪽으로 아무도 넘어가지 못하게 막겠다는 듯. 검무신의 그림자를 자처하던 수하들이 횡대로 도열한 채로, 적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아니, 막아 냈‘었’다.

적으로 보이는 자들은 전부 장벽을 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거친 격전이 있었던 듯, 주변은 온통 부서지고 무너진 폐허의 흔적만 가득했다.

『아……!』

때문에. 장벽을 세운 검무신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한 명도 통과시키지 않고 무사히 지켜 냈다는 사실이 즐거워 죽겠다는 듯.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임무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아아……!』

이미 숨을 쉬지 않은 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여전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죽고 나서도 자신들의 주인을 지켜 내겠다는 듯.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창무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잔상으로 남아 있는 기억 속에 보였던 모습보다 더 처참한 몰골로. 저대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병기를 몸에 박아 넣은 채.

창을 한 자루 지팡이 삼아, 한쪽 무릎만 꿇은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적을 무찌른 듯, 그의 발아래에는 수많은 사체들이 깔려 있었다.

『아아아아!』

검무신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온갖 감정을 쏟아 내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검무신은 처음으로 벙어리인 자신의 몸을 저주했다.

세상 모든 일들을 계산으로만 다루는 검무신이었지만.

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탁 털어놓는 존재가 딱 한 명 있었다.

창무신. 남들에게 멸시를 받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줬던 친구. 무공이라는 재미난 놀이가 있으니 같이 배워 보자면서 꼬드겨 댔던 못된 녀석.

그런 녀석이 죽었다. 그런데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녀석은 웃고 있었다. 어떻게든 친구를 지켜 냈다는 사실이 기뻤겠지.

하지만 검무신은 오히려 그런 사실이 더 괴로웠다.

차라리 도망이라도 칠 것이지. 미련 곰탱이 같으니라고. 뭐가 좋다고 목숨을 버린단 말인가. 차라리 살아만 있다면 가볍게 원망만 하고 치울 것을. 이렇게 해 버리면 원망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심장이라도 뜯어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창무신을 살릴 수 있다면. 죽은 수하들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내놓을 텐데.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검무신은 울부짖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들었다. 뻘겋게 충혈 된 얼굴에는 핏대가 잔뜩 섰다.

그때.

검무신의 손끝에 뭔가가 잡혔다. 팔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궁그닐. 그토록 다루고 싶어 했던 칼이 아직 그에게 남아 있었다.

순간, 끓어올랐던 감정이 거짓말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검무신은 생각했다.

이미 그는 빈손으로 청화도를 세운 경험이 있었다. 한 번 해낸 것을 두 번이라고 못 해낼까. 아니, 그때보다 더 큰 세력을 형성할 자신이 있었다.

비록 그때와 다르게 더 이상 옆에 창무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검무신은 그가 죽어서도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제는 옆이 아니라.

『나와 함께할 것이다. 평생토록.』

검무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회복이 덜 된 몸은 고통스럽기만 했지만, 그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무미건조한 얼굴로 창무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날을 바짝 세워 창무신의 왼쪽 가슴을 그었다. 열어젖힌 가슴 사이로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된 심장이 보였다.

검무신은 과감하게 심장 쪽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와그작. 와그작. 질긴 심장 조각이 어금니 사이로 물컹거렸다. 썩어 가던 중이었는지 악취가 풍겨 구토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검무신은 억지로 창무신의 심장을 씹어 삼켰다.

아주 천천히. 제대로 소화가 될 수 있도록.

[카니발(Cannibal)]

청화도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높은 무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금기(禁忌)를 건드려야 했다.

카니발은 죽은 사람의 심장을 섭취해 생전에 그가 가지고 있던 능력을 흡수하는 에너지 드레인 계통의 스킬.

리언트가 입수했던 에메랄드 타블렛에 적시된 기초 스킬이기도 했다.

검무신은 그것을 여태 손에 넣고도 단 한 번도 펼친 적이 없었다.

편법으로 얻은 힘은 결국 주인을 잡아먹기 마련이다. 더구나 무의 단련을 중시하던 그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가 없는 행위였기에 여태 무시를 해 왔었다.

게다가 마력 속에 갖가지 망령과 저주가 섞인다면, 자칫 주화입마를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검무신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천천히 회복하려 했다가는 몇 년을 꼬박 날릴지도 몰랐다. 그래서는 재건이나 복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현자의 돌을 구할 방법이 없는 이상, 궁그닐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검무신은 자신이 갖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을 벗어던졌다.

무인으로 가지고 있던 자긍심은 더 이상 없었다. 다행히 이곳에는 그에게 힘을 되찾아주고, 전성기 때보다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 줄 ‘재료’들이 아주 많았다.

친구와 수하들 전부. 죽어서도 자신을 지키겠다던 그들의 소망을 이뤄 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적들의 심장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원주인에게로 되돌아가게 해 줄 생각이었다.

오드득.

오득.

심장을 씹어 삼키는 검무신의 소리만이. 이름을 알 수 없는 평원의 적막을 흔들어 놓았다.

* * *

“……그래서. 떠나겠다고?”

여름여왕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궁무신을 보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니, 이제는 궁무신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장웨이. 아마 그런 이상한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구라는 별 볼 일 없는 세계의 출신이라던가. 헤븐윙의 출신 세계와 같다고 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거래는 전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닙니까?”

장웨이는 원래 청화도의 소속도, 레드 드래곤의 소속도 아니었다.

의뢰를 받으면 금액만큼 임무를 처리하는 용병이었다. 그것도 그쪽 세계에서는 제법 유명한 S급 용병. 한때, ‘은밀한 황혼’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었다.

다만, 그는 지구 출신이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전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심지어 평소 밖으로 내비치는 얼굴도 매번 달라서 진짜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아주 오래전에 레드 드래곤으로부터 받았던 의뢰는 하나.

청화도의 요직으로 올라가 레드 드래곤의 눈과 귀가 되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필요할 때에 힘을 보태라는 것까지 이어진 의뢰.

폐쇄적인 성향을 자랑하는 청화도를 뚫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장웨이는 청화도 내에서 큰 두각을 드러냈고, 궁무신이라는 요직까지 앉을 수 있었다.

여름여왕이 봤을 때, 장웨이는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중요한 말이었다.

어느 누구도 몇 년에 달하는 긴 시간을 허공으로 날리면서 세작으로 있기는 싫어할 테니까.

게다가 장웨이는 청화도의 다섯 주인 중 한 명이 되기까지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레드 드래곤과의 인연을 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웨이는 그런 우려를 보라는 듯이 불식시켰다. 그리고 임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면서 레드 드래곤의 최종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비록 여름여왕에게는 상처만 남은 승리였다 할지라도. 바할이 죽은 이때, 이런 수완가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여름여왕은 장웨이에게 81개의 눈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원한다면 그중에서도 높은 서열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과 함께.

하지만 장웨이는 그런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의뢰를 받는다면 따르겠으나, 진심으로 어느 누구의 우산 아래에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그리고 덧붙여, 청화도 때처럼 다른 세력에서 의뢰를 해 온다면 감당할 수 있겠냐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곁들여서.

그래서 여름여왕은 장웨이가 더 탐이 났다.

보물을 발견하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용종의 눈에, 장웨이는 그만큼 가치를 지닌 보물로 비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름여왕은 그런 마음을 단념해야만 했다.

지금은 욕심을 부릴 만한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손끝으로 배배 꼬고 있는 머리카락은 더더욱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드래곤 하트가 이제 기능이 정지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름여왕은 시시각각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두다가는 정말 드래곤 하트가 단순한 돌멩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드래곤 하트가 없는 용종은 그저 덩치 큰 도마뱀에 지나지 않는다. 용종으로서의 가치를 잃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사멸해 버린 동족들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여름여왕은 그런 미래가 두려웠다. 올포원과 전쟁을 치를 때에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두렵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드래곤 하트를 복구시켜 줄 거라고 생각했던 현자의 돌은 이제 자취를 완전히 감춰 버렸다. 현자의 돌뿐만 아니라, 돌을 완성하기 위해 힘들게 모은 재료들까지 전부 감쪽같이 증발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위험해진다.

여전히 검무신을 찾기 위해 수하들이 모든 층계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었지만. 여름여왕은 설사 녀석을 찾는다고 해도 현자의 돌은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갖고 간 게 분명했다. 흑막에서 그들을 부딪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만든 작자가.

그놈의 흔적을 어떻게든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다행히 장웨이는 끈기 있는 성격 덕분에 누군가를 추적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했었다.

“좋아. 마지막으로 묻지. 여전히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나의 가호를 받게 된다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아주 잘 알 텐데.”

“이미 저는 모시는 신이 있습니다.”

“확실히. 거절로 그만한 괜찮은 답변은 없겠지?”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한 가지를 더 추가로 의뢰하겠어. 기간은 무한정. 외뢰금은 원하는 만큼 넣어 주지. 대신에 최대한 빨리 의뢰를 완수해 줬으면 좋겠어. 누구를 찾기만 하면 되는 거야.”

“누구를 찾으십니까?”

장웨이의 질문에, 여름여왕은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면서 입술을 살짝 열었다.

* * *

“새로운 의뢰라.”

76층을 벗어나는 붉은색 포탈에 오르는 길에서. 장웨이는 엄지와 검지로 입가를 매만졌다.

“이번에는 얼마나 가려나.”

장웨이는 돈을 크게 바라지 않는다. 돈은 이미 벌 만큼 벌었고, 무기도 이예로부터 받은 사일동궁이 있어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갈증을 달랠 뭔가를 필요로 했다. 언제나 마음 한 편에 남아 그의 영혼을 괴롭게 긁어 대는 갈증.

이것이 해소되지 않는 한, 장웨이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부디 이번에도 오래갔으면 좋겠는데.”

빠른 그의 움직임에 따라. 옷깃에 넣어 뒀던 목걸이가 살짝 밖으로 나와 반짝거렸다.

어린 시절, 사격을 하고 난 뒤에 장난으로 전우들과 함께 만들었던 탄피 목걸이.

하지만 이제는 나날이 그의 숨통을 옥죄어 가는 갈증의 원인이, 크게 출렁거렸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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