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오행산 (3)
칸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연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형제보다 더 각별한 사이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찢어진 게 안타까웠지만, 자신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 간의 개인사였으니까.
『그래도 뭐, 제 앞가림은 잘하는 놈이니 어디서 잘 살겠지.』
확실히 폭시 테일이라고 불릴 만큼 영민한 아이였으니까. 연우는 언젠가 도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여기서 머물면 될 거야. 안에 기본적인 가재도구는 다 있으니까 적당히 쓰면 될 거고.』
칸이 안내한 곳은 산에서 갈라져 나온 지류 중턱에 위치한 어느 움막집이었다.
이미 먼저 머물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는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조촐하게 만들어진 뒷마당에는 장작더미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따로 수련을 할 수 있는 연무장도 있었다.
무엇보다 울창한 숲 속에 있어서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런 곳이라면 길을 잃은 플레이어들이 흘러 들어올 가능성도 아주 적었으니까.
『식량이나 식수가 없으면 알아서 구해야 하긴 하지만 필요하다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 묻고.』
칸은 그 외에도 연우가 크게 불편하지 않도록,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편의를 봐줬다.
다만,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몇 번씩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말 것.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연우처럼 개인 수행을 위해 온 것이니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언급했다.
만약 가벼운 대화라도 나누고 싶으면 미리 양해를 구하라는 말도 함께.
『다만, 이따금 심심하면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가리를 까기도 하니까. 너무 삭막하지는 않을 거야.』
연우도 개인 수련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럼 열심히 해라. 나도 여기 있으면서 꽤 많이 달라졌거든. 답답한 생활이긴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테니까. 너라면 나보다 더 많은 걸 가져갈 수 있겠지. 이따금 시간 나면 나랑 대련도 좀 해 주고.』
칸은 수고하라며 연우의 어깨를 두들겼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둘은 한참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떠드는 쪽은 칸이고, 연우는 듣기만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칸은 그동안 맹목적으로 수련에만 미쳐 있었다. 강해지겠다는 열망.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고자 하는 열의. 그 모든 것들에만 집중하면서 계속 검을 갈고 닦았다.
그 전까지 자기애가 강해서 잘난 척이 심했던 칸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경망스러운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그 속에는 진중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혈검이 탑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안 퍼진 것도 이해가 되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면서, 유명세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조용히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했을 뿐이었다.
칸도 연우가 어떤 일을 겪었는 지를 알았다. 자세한 내막까지는 말해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거대 세력 간의 전쟁에서 벌어진 일들을 듣고 아주 즐거워했다.
연우는 그런 대화가 즐거웠다. 정말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으니까. 아니, 친한 친구가 맞았다. 위험한 전장에서 서로의 등을 맞댄 사이가 친구 사이가 아니면 또 무엇이 친구일까.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칸은 미뤄 둔 자기 수련을 마저 해야겠다면서,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났다.
연우는 잠시간 움막 주변을 둘러봤다. 인트레니안에 식량과 식수를 챙겨 두긴 했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조달할 곳을 미리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이전의 주인이 주변 환경까지 고려해 장소를 고른 듯, 물을 길어 올 만한 개울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작은 텃밭도 발견할 수 있어서 식량 걱정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연우는 주변 확인이 전부 끝나자 산자락에 걸쳐서 넓게 뿌렸던 마력을 다시 거둬들였다.
‘수련을 하려면 마력은 일단 최대한 감춰야겠지.’
킨드레드와 검을 겨뤄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20층 시련의 테마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스스로에게 최대한 많은 제약을 걸면 걸수록, 불편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만큼 돌아오는 성취도 커진다.
그래서 다시 마력회로를 봉인해 둘 참이었다. 덕분에 초감각의 세밀함이 많이 줄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탐색하는 범위도 확 줄여 자기 자신에게로 한정시켰다.
그러자 다시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아 스스로를 어둠 속에 유폐시킨 느낌이었지만,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편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본격적인 수련에 맹진할 수 있었으니까.
연우는 가부좌를 틀었다. 몸을 움직여서 음검을 익힐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음검은 이해를 해서 ‘의(意)’를 먼저 깨달아야만 하는 무공이었다.
사실 더 이상 육체적인 수련으로 오를 수 있는 경지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연우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
명상.
[전투 의지]
사고 가속이 시작되었다. 초감각까지 걸어 잠그니 정말 어둠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느려졌는지 알 수도 없었다.
주변 환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음검의 구결에 잠겼다.
* * *
연우가 음검의 구결을 보면서 느낀 점은 웬만한 방식으로는 절대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신화나 전승으로만 보이는 구결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미는 도저히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외뿔부족이 지난 수천 년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었지만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던 구결.
그동안 연우가 봤던 외뿔부족 중 젊은 사람들은 대개 과격하고 호탕한 면모가 강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현학자나 철학자에 가까웠다. 가지고 있는 학식도 대단했었다.
그런 이들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하루아침에 연우가 극복하기란 요원한 일.
‘그렇다면 편법이라도 써야지.’
연우가 생각한 편법은 바로 용의 지식이었다.
이미 외뿔부족이 오랫동안 연구했다던 여러 이론은 에도라로부터 전해 들어서 기억해 둔 상태. 여기에 용의 지식을 덧대어 여러 각도에서 풀어 볼 생각이었다.
‘외뿔부족의 연구 총아와 용의 지식이 더해진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외뿔부족은 절대 시도할 수 없었던 방법.
아마 분석하는 와중에 연우가 얻게 될 부산물도 상당할 테지. 그것만 한데 모아도 팔극권에 버금가는 뛰어난 심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부산물보다 태극혜 반고검으로 간다는 음검을 습득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해석을 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연우는 외뿔부족의 연구를 토대로 용의 지식을 더하면서 음검을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바깥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고에 사고를 거듭하면서, 오로지 분석에만 집중했다. 시도 때마다 방식도 달랐다.
‘어떤 암호 방식으로 숨겨진 다른 구결이라도 있는 걸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겉으로 드러난 구결은 진짜 구결이 아니고 진짜는 교묘한 방식으로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
그래서 글자의 순서를 뒤집어서 보기도 하고, 장(章)의 순서를 다양하게 바꿔 보기도 했다. 나중에 가서는 한 글자 한 글자마다 파자(破字)를 해서 새롭게 의미를 구성해 보려고도 노력했다.
이런 여러 방법이 통하지 않자, 그다음에는 장을 잘게 쪼개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계속 불발로 그쳤고, 결국 남은 방법은 해석을 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해석은 되어도 ‘의’는 도출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혹시 철학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나, 외뿔부족 역사와 관련된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더 깊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시도를 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때마다 결과가 실패로 돌아올수록.
연우는 마치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것처럼, 그 모든 게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 * *
「주인? 이봐, 주인! 정신 차려, 인마!」
대체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던 걸까. 연우는 자신을 강하게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닫혔던 초감각이 살짝 열리면서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 샤논이 감지되었다.
녀석의 사념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뒤에 한령도 잔뜩 굳은 사념을 풍겨 댔다.
「정신이 들어? 어?」
샤논의 목소리는 아주 절박했다. 연우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지?’
명상에 잠긴 채, 사고 가속으로 음검에만 몰두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 걸까. 외부는 일절 신경도 쓰지 않았더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다만, 허기가 지고 심한 갈증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하는 게 전부였다.
「얼마나 있었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주인, 너 조금만 더 있었으면 뒈졌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그래! 명상에 집중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떻게 한 달씩이나 그러고 있을 수가 있어? 미친 거 아냐?」
‘한 달?’
연우는 처음으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긴 시간이었으니까. 시간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싶었다.
하긴. 한 달씩이나 되니 웬만해서는 꿈쩍도 않을 용체로도 허기와 갈증을 느끼겠지.
연우는 재빨리 인트레니안을 열어 식수를 꺼내 부족한 수분을 채우고, 육포로 허기를 달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헤노바와 비스터에게 연락도 못 했는데.’
헤노바와 약속했던 시간은 열흘 가량. 말도 없이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 그의 성격상 연우가 위험에 빠지지 않았나 노심초사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비스터도 마찬가지. 통신용 아티팩트를 확인해 보니 이미 몇 번씩이나 통신을 걸어 온 흔적이 있었다.
연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브라함의 행방이라도 찾아낸 걸까.
「지금 그게 중요하냐? 으휴.」
연우는 쓰게 웃었다. 하긴 비스터야 바로 연락을 넣으면 되는 거고, 헤노바도 에도라에게 따로 이야기를 잘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었다. 외뿔부족과도 연락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내친김에 서둘러 끝내자는 생각에 연우는 아티팩트를 매만졌다.
비스터에게 연락을 넣으니 아티팩트 너머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카, 카인 님?』
『도중에 일이 생겨서. 브라함의 행방은 찾았나?』
『예. 그, 금방 연락 오실 거라고 생각해서 계, 계속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디지?』
『23층이었스, 습니다.』
『23층?』
혹시 50층 이후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가까웠다.
‘23층이면 악마의 숲인가? 확실히 그런 곳이라면 있을 만하긴 해.’
23층은 악마를 잉태한다는 나무, 악마수(惡魔樹)가 숲을 이룰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스테이지였다. 악마들의 고향, 마계와 가장 흡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층계에서는 보기 힘든 생태계를 갖고 있기로도 유명했다.
연단술과 연금술의 대가인 브라함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가질 만했다.
『그, 그렇습니다. 그곳에 머문 지도 꽤, 꽤 오래된 듯 보였습니다.』
『그럼 계속 파악해 둬. 만약 다른 층계로 이동한 듯한 흔적이 있으면 즉각 알려 주도록 하고.』
『아, 알겠습니다!』
비스터는 연우의 용건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통신을 두절시켰다.
그만큼 연우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뜻이었겠지.
연우는 굳이 서둘러서 브라함을 찾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조금 안도하면서, 이번에는 에도라에게 연락을 넣었다.
에도라는 연락이 안 되던 연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오자 크게 놀라면서 어디 다친 데가 없는지 물었다. 연우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헤노바에게 사정을 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이곳에 몇 차례나 다녀가셨었다고요. 칫.』
생각했던 대로 연우가 걱정이 되어 그새 외뿔부족을 찾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에도라는 한동안 헤노바가 자신들의 마을에서 머물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연우는 곧 찾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모든 연락을 끝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씻지 않아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한 달.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사고 가속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을 때는 현실의 몇십 배는 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생체 시계로 족히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음검에다 투자를 한 셈이었다.
「급한 불은 끈 것 같으니 자세한 거나 이야기 나눠 보자고. 얻은 건?」
샤논이 진지한 어투로 물었다. 뒤에서 한령도 연우를 빤히 쳐다봤다. 음검에 대한 건 둘에게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외뿔부족의 비원. 무술을 단련한 수행자로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연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었어.’
「뭐? 그렇게나 집중했었는데도?」
샤논이 크게 놀랐다. 한령도 같은 사념을 풍겼다.
‘이것저것 꽤 많은 시도를 해 봤었는데. 실마리조차 얻을 수 없었어.’
「말도 안 되는…….」
샤논은 연우가 가진 무기를 알고 있었다. 외뿔부족의 연구 결과와 용의 지식. 거기다 각성을 통해 이룬 뛰어난 사고 능력까지.
그 모든 것들을 한데 집중시켰는데도 불구하고 풀 수 없었다고? 샤논이 가진 상식으로는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한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거, 혹시 사기는 아니…….」
‘아니. 사기는 아니야. 진짜인 건 확실해.’
연우도 샤논과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여러 시도를 거듭해 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을 때. 어쩌면 음검은 그냥 단순한 신화가 아닐까 하고. 불신이 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우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건 진짜였다.
이미 짐작했던 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음검을 해석하면서 떨어진 부산물들이 아주 많았고, 그 과정에서 연우는 무공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었다. 새롭게 심득을 정리해 두기도 했다.
다만, 정작 음검에 대한 실마리는 얻지 못했다.
풀 수 있는 방법을 아무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을 뿐. 한 번 열리기 시작한다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아주 많은 것들을 쏟아 낼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 실마리를, 열쇠를 찾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하긴. 외뿔부족의 늙다리들이 집단 치매라도 걸린 게 아닌 이상에야,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늘어졌을 리가 없겠지.」
샤논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도 음검의 실체를 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 처음 무공에 입문했을 때에도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았었는데.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여태 말이 없던 한령이 말했다.
「아무리 안갯속을 헤매고 다녀도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밟아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어렵다고 해도, 음검이란 것도 결국 검술입니다. 그렇다면 순서상 먼저 검에 통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초를 탄탄하게 쌓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샤논도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령의 말도 일리는 있어. 이론으로만 박식해지는 것보다, 실제 몸으로 움직여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우선 검술부터, 달인 급이 될 때까지 수련을 쌓는 것이지.」
흔히 무술가들은 무술에 통달한 고수를 크게 3등급으로 나누곤 했다.
기예를 극한까지 단련해서 완성을 이룬 달인(達人).
완성한 정도를 넘어서, 기예를 새로운 단계로 탈바꿈시킨다는 명인(名人).
그리고 다시 그마저도 뛰어넘어 이치를 통달했다는 진인(眞人).
연우가 팔극권을 꽤 숙련도 있게 다룰 만큼 발전했다지만, 아직까지 무공을 통달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성취를 이룬 건 아니었다.
‘달인 급부터 되어야 한다라.’
무술에 있어서는 샤논과 한령이 그보다 훨씬 몇 수는 위였다. 그렇다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었다.
‘달인 급이라면, 보통 어느 정도면 되지?’
「오러(Aura)를 만들 정도시면 됩니다.」
오러.
마력을 고밀도로 농축시키고, 그 속에 의념을 불어넣어 칼날의 형태로 만드는 힘.
확실히 그 정도면 달인 급이라고 지칭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 연우에게는 오러를 만들 수 있는 명확한 기준선이 있었다.
팔극권의 8대 비기.
여태껏 미뤄 뒀던 팔극권의 오의부터 완성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