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오행산 (6)
『으아악! 정말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빅토리아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면서 악다구니를 질러 댔다. 그녀의 눈가에는 갖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짜증. 분노. 의문. 노파심. 초조함.
히스테리가 자꾸 치솟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연우의 사고 패턴 연구는 아직 제대로 발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스무 일째였다. 연우와 약속했던 시간은 한 달. 별다른 소득도 없이 반절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너 정신 방어 같은 걸 거는 건 아니지?』
그래서 빅토리아는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연우를 노려봤지만.
『그런 게 있었다면 빅토리아가 진작 알아챘겠죠. 혹시 모르니 걸치고 있는 복장을 모두 해제하라고 했던 것도. 디스펠 마법진 위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복잡한 실험을 반복했던 것도. 전부 빅토리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잖습니까?』
『…….』
빅토리아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별다른 느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초조함이 들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한 머릿속이 풀리지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연우가 했던 말은 속속들이 옳았다. 그가 계약 사항을 불성실하게 수행했다면 모를까, 연우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도리어 매번 복잡하고 무리한 사항들을 요구한 건 그녀였다.
그래서 빅토리아는 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 갖가지 방법을 다 썼다. 온갖 시약을 다 먹였고, 마법진이며 아티팩트를 계속 사용해 연우의 정신을 분석해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결과는 에러(Error). 분석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무술가의 정신 체계가 복잡한 건가 싶었다. 흔히 무술을 수련하는 자들은 정신력도 같이 깊어지기 때문에 접촉을 하기가 많이 까다로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동의하에 정신 무장을 해제하고, 서서히 자아를 조사해야 했다.
연우에게도 똑같은 방법을 썼다. 아니, 더 복잡한 방법을 썼다. 갖가지 신경계와 뉴런의 움직임도 파악할 생각이었으니까. 아예 몸을 마취시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니, 분명히 파악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아주 좁다는 게 문제였다.
‘이렇게 크고 넓은 정신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니. 들어 본 적도 없어. 의식 세계 자체가 보통 사람들과 달라. 깊어도 너무 깊다고!’
빅토리아는 자신의 정신 체계도 아주 깊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많은 학식을 쌓았고, 연구를 거듭했으니.
하지만 그런 자신조차도 연우의 정신 체계에 비하면 바다 앞에 놓인 호수에 불과했다. 그만큼 방대하고, 끝을 모를 만큼 깊었다.
보통 인간의 육체로 저런 정신을 유지하려면 금세 미쳐서 붕괴 되고 말 텐데…… 연우는 그때마다 무슨 문제가 있냐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반문했다.
‘이 아이, 혹시 초월종이나 지고종은 아닐까? 그런 게 아니라면 도무지 말이 되질 않잖아!’
물론, 빅토리아는 자신의 추론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헛소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뛰어난 존재였다면 애초 이런 짓을 허락지도 않았겠지. 오만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놈들은 자신들이 하찮다고 여기는 이들이 그들의 몸에 손을 대는 걸 아주 혐오했다.
결국 빅토리아는 별다른 성과도 없이 스무일 내내 헛삽만 펐고, 대가로 소중한 룬 어만 계속 빼앗기는 중이었다.
게다가 무술가 주제에 얼마나 학식이 깊은지, 수업을 듣는 내내 이따금 툭툭 내던지는 질문들은 너무 뾰족해서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였다. 진도도 너무 빨라서 룬 어와 룬 마법의 기초 체계는 거의 뺏기다시피 했다.
빅토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남은 시간은 열흘. 그 안에 어떻게든 수단을 강구해야만 했다.
* * *
「흐흐. 사기꾼, 오늘도 한탕 잘 하고 왔냐?」
‘한탕은 무슨. 거래대로 한 것뿐이지.’
「그 거래란 게 순전히 사기니까 그러지. 크으. 우리 주인, 겉보기엔 참 융통성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이런 데는 머리가 잘 돌아간단 말이지?」
연우는 움막으로 돌아오자마자 샤논이 불쑥 던지는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대꾸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도 애초 말도 안 되는 거래 내용이란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빅토리아와의 계약은 마나에 대한 언약으로 맺어졌고,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마력이 전부 폐쇄되거나 심하면 격이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을 품고 있었다. 연우로서는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빅토리아가 가르쳐 준 룬 마법에 대한 지식은 그동안 연우의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던 용의 지식들을 한껏 깨워 줬다.
마치 잠깐 잊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듯. 선명하게 지식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보다 더 한발 나아간 응용 체계까지 정리해 두고 있는 중이었다.
‘기인’이라는 특성과 ‘마력의 축복을 받은’이라는 칭호가 주는 혜택도 아주 컸다.
하지만 연우는 룬 마법을 따로 익히지는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 기초 지식만 쌓아 둘 뿐, 당장은 팔극검의 비기를 완성하고 음검을 해석하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었다.
룬 마법을 알아야 할 사람과 마법을 사용할 용처는 따로 있었다.
‘부’
스르르-
「부르. 셨습니까?」
부가 턱 관절을 딱딱 부딪치면서 고개를 숙였다.
연우는 녀석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 오늘 정리해 둔 룬 마법의 지식들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부(리치)에게 룬 마법에 대한 지식을 사념으로 전달합니다. 룬 마법의 지식이 스킬로 치환되어 적용됩니다.]
[룬 마법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2.1%]
[‘룬 마법’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4.8%]
……
그동안 연우는 이런 식으로 정리한 마법 개념들을 부에게 전달했다. 용의 지식이 더해진 마법 체계는 당연히 부에게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아예 새로운 스킬 항목까지 생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아마 실전에 돌입해도 절대 약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었다. 다른 스킬들도 룬 마법의 영향을 받아 더 강해진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블링크를 조합할 수 있겠지?’
부는 한참 동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덩이 사이로 비치는 푸른색 불꽃이 화려하게 타올랐다.
연우가 전달한 룬 마법을 전부 습득했다는 뜻. 깊이도 한층 깊어진 것 같았다.
연우는 지체 없이 상의를 벗어 등을 부에게 내보였다.
순간, 부의 눈동자가 격랑을 쳤다.
연우의 등을 따라 낙인처럼 새카맣게 남은 여러 룬 문자들이 보였다. 그동안 부가 룬 마법을 익힐 때마다 연우에게 남겼던 것들이었다.
연우는 룬 마법을 익히지 않은 대신에, 이런 식으로 부를 시켜서 필요한 마법 조합식을 따로 만들어 인체에 새겼다.
빅토리아가 봤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그녀가 만든 룬 아티팩트의 방식을 모방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해 둔다면 따로 문자를 쓰거나 영창을 할 필요 없이, 단순히 등에 새긴 문자 쪽으로 마력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발동하는 게 가능했다.
주로 육탄전을 벌이는 연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인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하나.
빅토리아가 주로 쓰는 마법 금속을, 연우는 자신의 몸으로 대체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었지만, 용의 인자를 잔뜩 머금은 연우의 육체 쪽의 효율이 월등하게 높았다. 마력 전도율부터가 달랐다.
사실 연우도 처음에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헤노바에게 배운 야금술을 바탕으로 아티팩트를 만들까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초보인 그가 만드는 이상, 몇 글자 새겨 넣기도 힘들었다. 효율도 꽝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에 생각이 미치고 어떻게 할지 방법을 강구한 순간,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빅토리아의 아티팩트는 효율이 좋지 않은 만큼 내구도도 좋지 않고, 일회성이 전부였다.
하지만 연우는 영구적이었다. 내구도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연우가 깊은 고민 끝에 찾아낸 ‘새로운 방법’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사용이 가능했다.
빅토리아가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던 무기가,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곳에서 떡하니 만들어진 셈이었다. 빅토리아가 멍청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연우가 아니면 못 해낼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주인. 님.」
‘왜?’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블링크는. 여태. 했던 마법들과. 깊이가. 다릅니다.」
부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아주 잠깐 머뭇거렸다. 연우의 안전을 고려하는 그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부가 새긴 마법 조합식은 총 세 개.
마력 강화. 헤이스트. 스트랭스.
아주 기초적인 마법들이었지만, 그마저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웬만한 고통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연우도 힘들어할 정도였다.
그런데 블링크는 그 이상일 게 분명했다. 아주 작은 거리라고 해도 공간을 왜곡하는 마법이었고, 여기에 들어가는 조합식은 아주 방대했다. 앞선 세 가지 마법을 전부 합쳐도 부족할 정도였다.
자칫 룬을 새기는 중에 연우가 기절이라도 한다면 모든 게 엉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연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냥 해.’
「알겠. 습니다. 최대한. 빨리……!」
‘느려도 확실하게.’
「……명심. 하겠습니다.」
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저 고집은.」
「우리도 어서 시작하지.」
샤논과 한령은 좌우로 와서 연우의 양팔과 다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고통으로 연우가 몸부림을 쳐서 문자가 어긋날 수 있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시작. 하겠습니다.」
부는 왼손으로 검은 구슬을 허공에다 띄우고, 오른손을 연우의 등에다 갖다 댔다. 그 순간, 검은 빛무리가 튀면서 느릿하게 연우의 등에다 룬 문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치이익-
살갖이 타들어 갔다. 검은 빛은 아주 느릿하게 움직였다. 룬 문자는 한 획이라도 어긋나면 마법이 불발된다.
연우와 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 글자가 끝나고 다음 글자로 넘어갔을 때, 완성된 글자가 이번엔 푸른 불꽃을 띠면서 살갗 안쪽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피부 아래층과 근육을 녹이고, 혈관까지 통과하면서 뼈에 단단히 새겨졌다.
‘큭!’
연우의 허리가 빳빳하게 일어났다. 샤논과 한령은 전력을 다해 연우를 단단히 붙잡았다. 살을 강제로 찢어서 뼛속 깊숙한 곳에다가 글자를 새기는 작업은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연우가 새롭게 생각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룬 문자는 한 번 발동하면 존재 가치를 잃고 사라진다. 어떻게 하면 그 가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용종의 뼈는 세상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마력 전도율이 뛰어나다. 단단하기 때문에 내구도가 다할 염려도 없고, 주변으로 마력회로가 있어 마력도 풍부하다.
그렇다면 마력회로의 순환로를 일부 뼈 쪽으로 돌려서 룬 문자를 지탱하게 한다면.
존재 가치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마력을 유통시킨다면, 영구적으로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헤이스트’라는 마법으로 실험을 해 봤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그때마다 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맛봐야만 했지만, 연우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래도 반사적으로 몸이 크게 덜덜 떨릴 때면, 그림자에서 괴이들이 뻗어 나와 연우를 단단히 붙잡았다. 팽팽한 힘 싸움이 한참 동안 진행되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끝났. 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는 천천히 손을 거뒀다. 검은 구슬의 빛이 바래져 있었다. 그만큼 부도 상당한 심력을 소비했다는 뜻이었다.
샤논과 한령도 속박을 풀었다. 연우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형형하게 빛나는 중이었다. 뼈를 따라 흐르던 마력이 룬 문자에 접촉하면서 고스란히 회로에 녹여 내는 중이었다.
찰칵-
찰칵-
이런 유도 과정도 연우가 직접 전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다. 힘이 부쳤지만, 시차 괴리로 단련된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완성되었을 때.
화아악!
녹아내렸던 등 쪽의 살갗이 다시 아물었다. 그리고 그 위로 검은 글자의 흔적만 잘게 남았다. 멀리서 보면 화상으로 다친 것처럼 보였다.
연우는 가부좌를 틀었다. 룬 문자의 정착은 성공했지만, 피로가 너무 몸을 무겁게 했다. 체력부터 되돌려야 할 것 같았다.
* * *
‘마법 무장(魔法武裝).’
짧은 시동어와 함께, 연우의 육체가 푸른빛무리에 잠겼다가 가라앉았다. 동시에 마력회로가 돌아가면서 불의 날개가 길게 뻗쳐 나왔다.
팟-
연우는 마력 순환을 최소치로 줄이면서, 되도록 강화된 육체적 능력으로만 움직였다.
탄탄해진 근육과 훨씬 빨라진 민첩성.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너무 빨라진 속도 때문에 스스로가 주체를 못할 정도였다. 여기에 순보까지 섞이자, 이제는 육감으로도 잡히지 않을 만큼 빨랐다.
연우는 이참에 아예 인트레니안에서 비그리드를 뽑았다. 우르드의 신력을 한껏 머금으면서 90%까지 정화가 완료된 비그리드는 어느새 길이가 웬만한 장검만큼 길어진 상태였다. 새하얀 검신을 따라 새겨진 푸른 글씨가 찬란한 광휘를 드러냈다.
거기에다 최소치로 줄였던 마력 회로도 한껏 개방했다. 강화된 마력이 비그리드 안쪽으로 힘차게 들어가면서 칼날 위로 붉은색 오러를 크게 드러냈다.
처음 만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는 선홍색.
쩌어엉-
맑은 검명과 함께 블링크를 연속으로 펼쳤다. 시야가 몇 번씩 흔들리다가, 어느새 절벽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거기서 연우는 힘차게 비그리드를 옆으로 휘둘렀다.
고행의 산에 들어온 지 딱 6개월. 그동안 스스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오러 외에 별다른 스킬이나 옵션은 쓰지 않았지만. 비그리드가 훑고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을 갈라 버렸다.
콰르르릉!
맞은편에 위치한 절벽 위로, 벼락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아주 날카롭고 짙은 칼자국이 길쭉하게 남았다.
산자락 일부가 무너지면서 아래 쪽에 있던 숲이 초토화되었다. 짙은 먼지구름이 하늘 위로 자욱하게 치솟았다.
『깜짝이야!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야이 미친놈아! 여기 너 혼자 전세 냈냐!』
『……조용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흠. 오러로만 해낸 건가?』
머릿속으로 다른 사두들이 시끄럽다면서 경고를 날렸지만, 그 속에는 하나같이 놀라워하는 기색이 잔뜩 어려 있었다.
별다른 스킬 없이 오러만으로 해낸 일이란 것을 알았으니까. 만약 다른 스킬이 섞였거나 마력을 최대로 출력시켰다면, 아니면 다른 감각이 모두 깨어 있었다면 이것과는 또 비교도 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을 터였다.
반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른 성취에, 다들 하나같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스스로를 더 높게 파악하는 중이었다. 용의 권능은 아예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것까지 전면 개방한다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는 안 되겠지.’
연우는 판트나 에도라가 들었다면 기도 안 찬다는 표정을 지을 생각을 하면서 비그리드를 도로 인트레니안에다 넣었다.
‘이만하면 됐어.’
사실 지금까지 있었던 것만 해도 계획보다 훨씬 시간이 길어진 상태였다. 비록 음검은 아직 단초도 못 잡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새로운 발전을 여럿 이뤄 낼 수 있었다.
이젠 나갈 차례였다.
‘킨드레드가 노리던 게 뭔지 끝까지 알아낼 수 없었던 게 걸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밤만 되면 훌쩍 사라지는 킨드레드의 뒤를 조용히 밟아 볼까도 싶었지만, 그랬다가 걸리면 정말 큰일이 나기 때문에 모른 척 무시했다.
거기에 관련된 정보라도 있다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도 않았다. 10년 넘게 찾을 수 없었던 물건이라면 없을 가능성도 컸고.
그래서 연우는 킨드레드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렸다. 마군과도 본격적인 전쟁을 치를 때가 되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도리어 지금은 당장 미뤄 둔 일들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신수도 이제 부화 직전이라고 했고.’
그렇게 연우가 돌아서려는데.
『가려고?』
그런 연우의 생각을 짐작한 걸까. 칸의 목소리가 울렸다.
연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봐.』
칸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다가, 연우가 있는 절벽 쪽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타닥-
발로 절벽을 몇 번 걷어찬 것에 불과한데도 아주 쉽게 올라와 착지한다. 연우는 자신이 발전한 것에 못지않게 칸도 크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런데 칸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뭔가 말하고 싶어 하지만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투.
연우는 그게 도일과 관련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동안 칸과 연우는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큼이나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잘 대면하지 못했다. 원체 연우가 살갑지 못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칸이 연우를 ‘피한다’는 느낌도 있었다.
연우는 어쩌면 그것이 도일과 관련된 게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칸은 도일과 의견이 맞지 않아 갈라섰다고 했지만, 연우가 봤을 때 두 사람은 그렇게 쉽게 떨어질 만큼 쉬운 우정이 아니었다.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자신이 개입할 일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건데.
이렇게 찾아왔다면 거기에 관련 된 이야기를 꺼내려는 게 분명했다. 오늘 연우가 떠나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사실 도……!』
그래서 칸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다들 조용. 큰일이 났어.』
갑자기 칸의 목소리를 덮을 만큼 엄청 커다란 어기전성이 다섯 번째 산자락을 뒤덮었다.
당혹감이 숨겨지지 않은 목소리. 빅토리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충격적인 소식을 던졌다.
『방금 전에 킨드레드가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