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미후왕의 궁전 (1)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연우와 칸의 머리가 빅토리아가 있을 산 중턱으로 홱 돌아갔다.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산에 머무는 다른 두 사두들도 마찬가지로 그쪽을 보고 있었다. 연우가 머무는 반년 동안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못했을 만큼 폐쇄적으로 있는 그들도 놀랄 만큼, 빅토리아가 던진 말은 충격적이었다.
경악에 찬 사념이 산자락을 뒤덮었다. 나무가 요란하게 흔들리면서 부딪쳤다.
『자세한 건 여기서 말해 줄 테니까. 우선 킨드레드의 집으로 다들 와. 오고 싶지 않아도……. 되도록이면.』
빅토리아의 목소리는 거기서 끝났다.
칸은 입을 꾹 다물었다. 큰마음을 먹고 연우에게 말하려 한 것인데, 이제는 타이밍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연우도 칸의 말을 들을 정신이 아니었다. 그만큼 머릿속이 혼잡 스러웠다.
‘죽었다고? 마군의 주교가? 왜?’
* * *
『하아…….』
빅토리아는 의자에 상체를 기댄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을 꺼낸 만큼 충격이 큰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킨드레드가 누군가. 비록 알 수 없는 이유로 10년 넘게 20층에 틀어박히면서 소문이 많이 쇠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역귀라고 하면 다들 벌벌 떨 정도였다.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사람을 찢어 죽이고, 피로 칠갑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자. 그와 대적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벌벌 떨었다.
거기다 빅토리아는 킨드레드의 숨겨진 정체도 알고 있었다. 마군의 주교.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고, 강하기도 아주 강했다.
그래서 빅토리아도 처음에 이곳에서 킨드레드를 만났을 때 두려움에 잠겨야만 했다. 혹시라도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킨드레드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킨드레드는 예의를 알았다. 성정이 사나운 편이긴 했지만, 절대 타인에게 자신의 주관을 강요하지 않았고,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일절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빅토리아가 진행하던 연구가 막혀 끙끙 앓을 때면 옆에서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챙겨 주고, 이웃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편했다.
그저 사람 사이에 있을 적정한 선만 지킨다면, 든든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일견 그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은 ‘가까운 지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킨드레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갑자기 죽기 전에 이런 부탁도 한 거겠지.
-내 행방을 바로 알 수 있는 마법, 있지?
-전 그런 거 붙이지 않았……!
-네가 했다는 게 아냐. 할 수 있냐고 묻는 거지. 아무튼. 할 수 있지?
-예.
-그럼 뭐 하나만 부탁하자.
여태껏 5년 동안 이웃으로 지내면서 킨드레드가 그녀에게 ‘부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빅토리아는 크게 놀라야만 했다.
부탁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마법을 걸고, 만약 신호가 끊어진다면 시체를 수습해 줄 것.
빅토리아는 킨드레드가 ‘죽음’을 입에 올린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킨드레드는 자세한 건 묻지 말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자신이 죽고 나면 확실하게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갖고 있는 퀘스트가 바로 나에게로 넘어오게끔 설정을 해 뒀다고 했었지.’
킨드레드는 자신이 갖고 있는 퀘스트가 티어가 아주 높은 것이니 수행해도 좋고, 무시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었다. 자신의 시체를 수습해 주는 대가라면서.
어쩌면 킨드레드는 자신이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20층에서 죽음이라니. 그것도 하이 랭커가. 대체…….’
물론, 20층에서 희생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모든 감각이 닫힌 채로 산을 건넌다는 건 그만큼 위험천만한 행동이니까. 간혹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기습을 노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킨드레드는 달랐다. 76층을 극복했던 사람이 이곳에서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다. 대체 이 퀘스트에 담긴 내용이 무엇일까. 어떤 것이 숨어 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온갖 복잡한 생각이 빅토리아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킨드레드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찾고자 했던 것이 있었고, 그것을 찾았지만 손에 넣으려는 와중에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위험한 곳에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킨드레드의 사체를 수습하지 못할 거란 것.
결국 빅토리아는 생각을 바꿔서 다른 사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곧 킨드레드의 집 주변이 어수선해지는 걸 느꼈다.
빅토리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여기가 킨드레드의 집이었나 보군.’
연우는 조촐하게 가꿔진 주변 조경을 보고 살짝 놀랐다. 자그마한 오주막집 주변에는 조촐하게 마당이 가꿔져 있었다.
나무나 바위 등이 잘 놓여 초감각으로 슬쩍 훑기만 했는데도 속이 트일 정도였다.
마교의 주교에게 이런 취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스트레스를 이런 것으로 풀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칸도 연우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다 곧 오두막집으로 다른 두 기척이 빠르게 날아와 가볍게 착지했다. 이질적인 기척이었다. 여태껏 반년 동안 연우가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단발머리를 하고서 표독스러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풍기는 힘도 킨드레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렬했다. 연우가 처음에 킨드레드와 함께 포착했던 하이 랭커 급 인사였다.
다른 한 명은 중년인이었다. 다만, 얄팍한 인상에 창백한 피부와 뾰족한 송곳니를 자랑해 전체적으로 싸늘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산 사람이라기보다는 죽은 사람에 가까울 정도였다.
뱀파이어. 언데드 중에서도 높은 지능과 이성을 갖고 있어, 플레이어로서 활동이 가능하다는 종족이었다.
‘레베카와 솔 루나.’
보이쉬한 인상을 지닌 레베카는 케르눈노스라는 사냥의 신을 모시는 사도였다.
또한, 솔 루나는 ‘귀검’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검사. 귀(鬼)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처럼 뱀파이어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그 검술 실력은 기괴망측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웬만한 일에는 외부로 일절 외출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킨드레드의 죽음은 그들을 밖으로 꺼낼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너군. 나의 잠을 방해한 것이.』
솔 루나는 연우를 슬쩍 보더니 인상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퉁명스러운 말투에는 명백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연우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 했지만, 때마침 오두막집의 문이 열리면서 빅토리아가 나왔다.
『들어와.』
레베카와 칸이 훌쩍 안으로 들 어갔다. 솔 루나도 연우에게 한 번 더 적의를 보이고 나서 뒤따라 들어갔다. 연우는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내부는 외부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재로 키우는 화초나 나무로 가득 차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마군을 뜻하는 표식 같은 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적당한 곳에 앉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연우와 사두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중앙에 난 탁상을 따라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우와 칸은 나란히 앉아 빅토리아를 지켜봤다.
모두의 의념이 빅토리아에게로 쏠리는 가운데.
레베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귀검이나 칸은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은연중에 레베카가 이들을 이끌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연우는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킨드레드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놈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나도 몰라.』
레베카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지금 무슨 장난을…….』
『장난 아냐. 제일 당혹스러운 건 나니까.』
빅토리아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자신이 전날 밤 킨드레드로부터 받았던 부탁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얘기를 들을수록 레베카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그 말은 킨드레드가 자신의 죽음을 어느 정도 짐작했고, 너는 지금 그 유언을 들어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이 말이야?』
『맞아. 그리고 이건 킨드레드가 죽으면서 내게로 넘겨진 퀘스트야. 공유할 테니까 확인해 봐.』
빅토리아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다른 네 사람 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빅토리아’가 히든 퀘스트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확인한 뒤에 거절을 해도 피해가 가지 않는 퀘스트입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연우는 속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킨드레드가 죽으면서 남긴 퀘스트. 뭔가 찝찝했다.
그렇다고 퀘스트 내용 자체를 확인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승낙을 했다.
그러자 새로운 메시지가 열렸다.
[히든 퀘스트(미후왕의 궁전)이 공개됩니다.]
[히든 퀘스트 / 미후왕의 궁전]
내용: 20층 스테이지, ‘고행의 산’에는 오래전부터 ‘오행산’이라는 다른 별명이 붙어 있었다. 오행산은 과거 신화적인 존재 미후왕이 천계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다가, 석가여래에 의해 봉인된 장소였다.
이후, 오행산에는 미후왕의 봉인이 풀린 뒤에도 계속 그 여파가 강하게 남아 고행의 명승지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수행자들은 미후왕이 직접 스스로의 힘으로 봉인을 풀고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는 중이다.
미후왕이 남긴 흔적을 찾아 회수하도록 하자. 그럼 그의 유산을 계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상:
1. 칭호 ‘미후왕의 후예’
2. 여의봉의 단서
3. 72선술 + ???
『이건, 설마?』
레베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건 연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이런 미친. 이런 게 진짜 있는 거였어?」
「흠.」
검은 팔찌 속에서 연우의 눈을 빌어 퀘스트를 지켜보고 있던 샤논과 한령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
‘미후왕? 손오공과 관련된 퀘스트라고?’
연우는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신이나 악마가 가지는 힘은 원래 아주 사소한 데에서 비롯한다.
위명(威名).
그 존재가 가지는 가치, 즉, 존재가 쌓은 업을 바탕으로 조성된 신화나 전설이 어떠하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미후왕이라는 존재는 여러 신적 존재들에게 있어 이레귤러 같은 존재였다.
연우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손오공’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존재.
돌원숭이라는 보잘것없는 미물로 태어나 여러 기연과 깨달음을 얻어 신이 되고, 마음에 안 든다며 천계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 다가 다시 봉인되어 속죄라는 명 목으로 악마들과 싸웠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정한 신적 존재로 거듭난 자였다.
어느 신화에서도 이만한 업적을 가졌던 자는 크게 없기 때문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가득한 탑 내에서 미후왕의 명성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20층이 미후왕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얼핏 돈 적이 있긴 했지만…… 으으음. 그게 정말이었나? 가짜라고 하기엔 퀘스트가 걸리고. 와아. 미칠 노릇이구만.」
연우는 샤논의 혼잣말을 듣고 반문했다.
‘자세히 말해 봐.’
「응? 뭘?」
‘20층이 미후왕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
「아, 그거? 사실 별거 아냐. 그냥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20층의 별명이 오행산이니까, 혹시 미후왕이 봉인되었다던 오행산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소문이 돌았었거든. 퀘스트에 적혀 있는 내용 그대로야. 그래서 꽤 많은 놈들이 덤볐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도 찾지 못했었거든. 그런데 진짜일 줄은 몰랐네?」
샤논은 허탈하게 웃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탑의 시스템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게다가 여의봉이니 72선술이니 하는 것들도 그럴싸한데. 미쳤네, 이거. 소문 퍼져 나가면 백방 뒤집어져. 아니다. 다들 이제 이거 봤으니 눈이 뒤집혀서 딴생각 못하려나?」
일기장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소문을 듣고도 별것 아니라고 치부를 했던 걸까.
여의봉은 미후왕이 용왕들로부터 빼앗아 부렸다던 그의 신물이고, 72선술은 미후왕을 신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만들어 준 스킬이었다.
‘선술이라.’
선술은 무공이나 마법, 주술 따위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리고 탑 내에 알려진 정보도 거의 없었다.
알려진 것도 ‘선인들이 부리는 힘’이 고작이었다.
선인(仙人)은 흔히 지구에서 말하던 신선과 비슷한 존재였다. 인간의 몸으로 격을 뛰어넘어 신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초월자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이론상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초월종과 지고종도 그들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다만, 우리들 중에 실제로 본 자는 없었다. 만약 있다면 하이 랭커가 거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선인이라는 존재는 미궁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술만큼은 진짜였다.
‘올포원이 사용한다는 두 시그니처 스킬, 축지와 천리안도 선술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으니까.’
그런 선술이 72종이나 있다고 한다. 그것도 미후왕이 썼다고 하는 선술. 하나하나가 파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샤논의 말마따나 여기에 있는 자들이 탐낼 만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연우는 벌써부터 그런 기질을 읽을 수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사두들은 말이 없었다.
고요한 정적만 흐를 뿐.
모두의 신경은 오로지 빅토리아가 공유한 퀘스트 창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칸의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번들거리는 중이었다. 언제나 힘을 추구하던 녀석으로서는 당연히 혹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연우는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마군의 함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