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59화 (159/862)

9화. 미후왕의 궁전 (3)

[미후왕의 사념이 침입자들을 잔뜩 경계합니다. 진입한 파티에 저주를 시도합니다.]

[‘저주: 공포’가 시도되었습니다.]

[불발되었습니다.]

[‘저주: 혼란’이 시도되었습니다.]

[불발되었습니다.]

[‘저주: 중독’이 시도되었습니다.]

……

던전에 입장했을 때부터 계속 이어지는 메시지.

일행들은 하나같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티는 중이라지만, 미후왕의 사념이 주는 압박감은 너무 무거웠다.

저주 시도도 횟수에 제한이 없어,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빅토리아는 허공에다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가볍게 빛무리가 터지면서 일행을 압박하던 음울한 기운을 조금씩 몰아내기 시작했다.

『미후왕이 봉인된 기간이 수백 년도 넘는다니까. 그동안 뿜어 댔던 사념은 강렬할 수밖에 없을 거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강한 존재가 뿜어내는 사념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지를 가지며, 주변을 자신의 색으로 오염시키려고 한다.

하물며 한때 최고신인 옥황상제도 욕보일 만큼 대단했던 존재가 미후왕이었다. 그런 자가 수백 년에 걸쳐 쏟아 낸 사념은 당연히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운은 더 큰 불운을 부르는 법.

미후왕의 사념은 침입자인 연우 일행을 먹잇감으로 여기고, 어떻게든 자신의 색으로 감염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의식 세계로 가는 통로인 의념이 활짝 열린 만큼, 그곳을 통해 침입을 여러 차례 시도하는 중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 어기전성을 깨달을 만큼 뛰어난 정신력을 지니지 않았다면, 벌써 감염되어 자신이 미후왕이라고 착각하며 미쳐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빅토리아가 마법을 전개해서 보호막을 형성해 사념의 침입을 일단 막아 내긴 했다.

하지만 연우가 봤을 때는 임시 방편일 뿐이었다.

게다가 비단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길은? 여기가 맞아?』

『맞는 것 같아. 일단은.』

길잡이를 맡은 레베카는 몇 번씩이나 빅토리아에게 물어보면서 길을 거듭 확인했다.

혹시 뭔가 튀어나오기라도 할까 봐. 이런 곳에는 사념의 영향을 받은 몬스터가 있기 마련이니 걸음도 자꾸만 더뎌졌다.

외부에서 던전 내부를 탐색해 봐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던 것처럼. 안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의념을 던져 봐도 번번이 미후왕의 사념에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도리어 의념의 끄트머리를 잡아 역습을 시도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일행은 처음 다섯 번째 산에 들어섰을 때처럼, 모든 감각이 닫힌 채로 움직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가까운 주변은 알 수 있으니 상황은 조금 더 낫다지만, 그래도 일행이 받는 압박감은 절대 작지 않았다.

우우-

때마침 던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귀곡성이 울렸다. 단순한 바람 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마치 사념이 울어 대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졌다. 청각이 닫혔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결국 레베카는 이를 악물었다. 몇 번씩이나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들어가도 되는 걸까? 킨드레드가 마지막으로 보냈다는 생체 신호가 가리키는 곳은 아직도 한참은 더 깊숙하게 들어가야만 한다.

입구에서부터 벌써 이렇게 막막한데, 안쪽은 얼마나 더 험악한 걸까.

처음에는 의심을 했었지만, 킨드레드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쩌면 그처럼 이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가 모시는 신, 케르눈노스는 이성적으로 물러날 때와 나설 때를 철저히 구분 지으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레베카의 판단에, 지금은 물러날 때였다.

하지만 도저히 발이 입구 쪽으로 떼어지질 않았다.

미후왕의 유산. 한낱 돌원숭이를 옥황상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만들었다는 보물들이 저 안 쪽에 있었다. 여의봉과 72선술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킨드레드는 혼자였지만, 나는 달라. 여차하면…… 이들을 버리거나, 아니면 탈출용 스크롤을 쓰면 되겠지.’

게다가 케르눈노스가 그녀에게 내린 스킬, ‘신지(神智)’는 위기 시에 아주 탁월하다. 위험에 처한다 싶으면 얼마든지 뒤로 내뺄 자신이 있었다.

아니, 내뺄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지금 그들의 모습은 마치 불인 걸 알면서도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 * *

연우는 뒤에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일행들의 면면을 살폈다.

계속되는 미후왕 사념의 공격으로부터, 레베카는 스킬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저항했고, 빅토리아는 계속 룬을 소모하면서 결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연우가 봤을 때, 두 사람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저 둘은 절대 오래가지 못해.’

상세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딱 풍기는 분위기가 레베카의 스킬은 상당한 마력과 심력을 소모하는 중이었다. 빅토리아도 룬을 소모하는 속도가 빨라 금세 바닥을 보일 것 같았다.

저대로 둔다면 둘 다 던전의 중앙에 다다를 때 즈음에 마력과 룬이 바닥나 크게 곤혹을 치를 게 분명했다.

반면에 칸은 사정이 조금 나았다.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의념을 넓게 퍼뜨리지 않고, 주변에다 철옹성처럼 탄탄하게 구축해서 사념의 침입을 막는 중이었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실력이 달린다는 칸이 오히려 잘 방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니.

연우는 조금 헛웃음이 나왔다. 레베카와 빅토리아, 둘은 어쩌면 오랫동안 수행을 하면서 기본기에 대해서는 싹 잊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강한 신의 힘과 편리한 룬 마법. 이 두 가지만 깊이 연구했어도, 위험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을 테니까.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 녀석,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연우는 칸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딱딱한 표정에서는 아무 생각도 읽을 수가 없었다. 슬쩍 말을 걸어 봐도 아무 답변이 없었다. 마치 뭔가에 강하게 집중을 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 연우는 칸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때가 되면 이야기해 주겠지. 아직은 들을 시기가 아닌 것 같았다.

대신에 초감각의 영역을 조금씩 넓히면서, 일행이 아닌 외곽 지역을 비췄다.

다른 일행들이 미후왕의 사념에 저항을 하느라 전전긍긍하는 동안, 그는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었다.

[미후왕의 사념이 감염을 위해 저주를 시도합니다.]

[‘저주: 정신 오염’이 시도되었습니다.]

[‘저주: 부정 감염’이 시도되었습니다.]

[‘저주: 자살 충동’이 시도되었습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정신 오염’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부정 감염’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자살 충동’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

[‘냉혈’ 특성으로 정신 계통의 저주와 공격으로부터 뛰어난 면역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견고한 정신 방벽이 성립되었습니다. 미후왕의 사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미후왕의 사념이 적잖게 당황합니다.]

특성, 냉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이성을 유지케 하는 힘.

연우가 플레이어로 각성했을 때 얻게 되었던 이 특성은, 그동안 여러모로 연우에게 많은 도움을 가져다주었다.

갖가지 위급 상황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니, 그럴 때마다 뛰어난 내성과 면역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시차 괴리의 모태였던 정신 집중도 여기서 비롯된 거였고, 멀리 보면 물리 내성도 냉혈 덕분에 얻게 된 스킬이었다.

그리고 연우가 기량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한동안 그 힘이 드러날 일이 없다가, 이번에 다시 제대로 작용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연우는 뜻하지 않게 특성을 수련할 수 있어 즐거웠다. 처음에는 다른 일행들과 마찬가지로 한 치의 앞도 분간할 수가 없어서 갑갑했지만, 아주 조금씩 사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침착하게 행동할 수가 있었다.

그때부터 연우는 초감각으로 읽을 수 있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당장 의념과 육감이 탐색할 수 있는 범위는 고작 5미터 내외. 이것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었다.

연우는 시차 괴리를 발동, 아주 꼼꼼하게 미후왕의 사념을 살폈다.

미후왕의 사념은 어떻게 보면 해일 같았다. 안쪽에서부터 강풍이 불어오면 격랑을 치는 해일. 그러다 단단한 방파제 같은 것이 있으면 옆으로 비켜서 퍼지는 형태였다.

연우는 바로 이런 특징에 주목했다.

‘당장 사념을 억누르거나 없앨 수는 없어. 그렇다면 아주 조금씩 갈라나가면서 영역을 넓혀 나가야만 해.’

연우는 넓게 퍼뜨렸던 자신의 의념을 단단히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 부분을 가시처럼 단단하게 세워서 미후왕의 사념을 강하게 찔렀다.

처음에는 바위처럼 단단해서 의념이 파고들 틈이 전혀 없었지만, 여러 차례 시도를 하면서 빈틈을 찾아 단숨에 깊숙하게 파고들어 갈 수가 있었다.

미후왕의 사념은 의념을 타고 거슬러 올라오려 했지만, 여기에도 냉혈 특성이 적용되면서 쉽게 사념을 튕겨 낼 수 있었다. 연우는 빽빽하게 밀어 넣은 다음 단번에 범위를 확장시켰다.

화악-

[의념을 미세하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터득했습니다. 외부 침입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하고, 저주를 물리치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초감각’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12.8%]

순간, 연우는 깜깜했던 방에 전등이 들어오는 것처럼, 머릿속이 확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의념이 미후왕의 사념을 갈기갈기 가르고 지나가 동굴 천장과 벽에 다다르고, 이를 타고 사방으로 뻗쳐 나가면서 던전의 대략적인 모양과 정보들이 속속들이 머릿속에 들어온 탓이었다. 초감각이 화려하게 꽃을 틔웠다.

그리고 연우가 계속 걸음을 옮길수록 초감각의 영역도 점차 넓어지면서, 아주 조금씩 미후왕의 사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어?』

『으음?』

『뭐지?』

그리고 사념의 압박에서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다른 세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다 그들의 시선이 연우 쪽으로 쏠렸다. 사념을 물리친 근원이 연우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의 표정이 경악에 잠겼다. 특히 레베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빛에 불신이 가득 풍겼다. 하이 랭커인 자신도 힘들기 짝이 없는 상황을, 일개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가 해낸 셈이었으니.

『이런 곳에 탁월한 스킬이 있을 뿐입니다. 이 이상은 저도 힘듭니다.』

세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연우의 변명을 들으면서도 따지지 않고 속도에 열을 올렸다. 의문을 가지기보다는 빨리 던전을 탐색하는 게 중요했다.

연우 덕분에 비교적 여유로워진 레베카와 빅토리아도 필요한 스킬을 발동시키면서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사이, 연우는 그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초감각의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던전의 구조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던전은 복잡한 미로 형태야.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출구를 찾기가 힘들어. 이대로는 돌아간다고 해도…… 입구도 이제는 안 보이겠는데.’

던전은 마치 개미굴처럼 땅속 아주 깊숙하게 이어지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태였다. 길을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았다.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트랩도 설치되어 있고, 사념에서 잉태된 유령 계통의 몬스터도 있는 것 같았다.

연우는 컬렉션을 개방해서 괴이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유령 계통은 괴이들에게 맛난 영양분이 되니 간식을 즐기는 참에 트랩을 미리 해제해 두라는 뜻에서였다.

어떤 위험이 나올지 몰랐지만, 자신의 의념이 닿는 범위 안이라면 괴이들에게도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괜한 것에 방해되고 싶지 않았다.

츠츠츠-

[괴이 ‘찬’이 리틀 데몬98을 처치했습니다. 고유 스킬 ‘포식’을 사용해서 영혼을 삼켰습니다.]

[괴이 ‘카’가 레이스13을 처치했습니다. 고유 스킬 ‘흡착’을 사용해서 영혼을 흡수했습니다.]

[고스트71이 처치되었습니다.]

……

[트랩을 빠른 속도로 해제합니다. 미로의 45%를 해석했습니다. 던전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 나갑니다.]

끼아악!

저 안쪽에서부터 귀곡성이 메아리가 되어 잔뜩 울려왔지만, 일행들은 여전히 미후왕의 사념이 내뿜는 소리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들을 대신해 골칫거리들이 빠르게 제거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미후왕의 궁전을 빠르게 파악하던 중, 연우는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느 지점에서부터 벽과 천장을 따라 나 있는 이상한 자국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절대 알아챌 수 없는 흔적들. 오랜 세월 동안 풍화로 퇴색되어 평범한 죽순과 석회암으로 보였지만, 초감각으로 예민한 감각을 지닌 연우였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곳곳에 아주 깊고 길게 남은 자국들. 그리고 그 속에 단단히 배어 있는 사념.

이 사념은 연우 일행을 계속 괴롭히던 우울한 사념과는 많이 달랐다. 강직하고 호쾌한 성질을 많이 띠고 있었다.

다만, 파편화되어 곳곳으로 흩어져 있어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아주 오래된 칼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조금 뒤에 만들어진 창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어지럽혀진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

‘이게 뭐지?’

연우는 또 다른 미후왕의 사념을 발견하게 되자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후왕이 쌍둥이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여러 사념이 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흔적들이 주는 의미는 뭘까?

연우는 의문이 들었지만, 연우의 눈을 빌어 벽을 살펴보고 있던 샤논과 한령은 달랐다.

「와. 이거, 진짜……! 와!」

「……믿을 수 없어. 정말이지. 놀라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둘의 반응이 시시각각 전해지자, 연우가 속으로 물었다.

‘뭔지 알 것 같아?’

샤논이 펄쩍 뛰는 소리를 냈다.

「주인은 달인 급에 올랐다면서 아직도 모르겠어? 검만 쥐고, 눈은 아직도 초보로 둘래? 제대로 살펴봐.」

타박 아닌 타박.

연우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샤논의 말이 틀린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초감각에 집중했다.

파편화되어 있는 자국과 의념들이 비쳤다. 겹겹이 쌓여 형태를 분간하기 힘든 것도 있었고, 아주 길쭉하게 이어져 끝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연우는 대체 이게 뭔가 싶어 골똘히 살펴보다가, 갑자기 확 하고 뭔가가 머릿속에 강렬하게 꽂혔다.

[강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초감각’이 ‘용마안’과 연결되어 어지러운 자국들을 추격합니다. 결을 읽어 내기 시작합니다.]

‘……!’

여태껏 다르게 분리되어 있던 초감각과 용마안이 처음으로 연결되었다. 연우는 갑자기 의념으로도 결이 보이게 되자, 흠칫 놀랐지만 곧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용마안으로도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초감각이 더해지면서 새롭게 보여서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덕분에 동굴을 가득 메운 흔적들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무공? 아니, 수련인가?’

겹겹이 쌓인 흔적들을 시간상으로 나누고, 가까이 있는 것들을 차례로 연결시키니 어떤 흐름이 보였다.

처음에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깊이도 제각각이었던 흔적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정교해지고 말끔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쭉 나열 되어 있었다.

한 명의 고수가, 수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더 큰 고수로 거듭나는 과정들이 낱낱이 새겨진 기록.

그리고 그 기록들을 통해, 연우는 이곳에 있었던 수많은 광경들을 엿볼 수가 있었다.

마치 여기에 앉아 미후왕의 변화를 목격한 것처럼.

-미후왕은 이곳에 봉인된 뒤로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석가여래를 저주했다. 광기에 잔뜩 젖어 마구잡이로 벽을 부숴 댔지만, 봉인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미친 상태로 백여 년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미쳐 있으면 누가 손해인가. 바로 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든 더 강해져서 이 빌어먹을 봉인을 풀어야 한다. 그때부터 미후왕은 오행산을 부술 힘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심득을 정리했다. 알고 있던 것들을 합쳐 나가기 시작했다. 중구 난방으로 흩어진 것들을 한곳으로 모으고, 더 높이 쌓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너무 난해한 작업이었다. 미후왕이 잡다하게 익힌 것들은 하나하나가 세상을 오시할 만한 것들이었으니까.

미후왕에게 허락된 건 시간밖에 없었고, 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히 정리했다. 그리고 뭔가를 깨달을 때마다 벽에다 시험해 보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갔다.

그동안 세상 무서운 줄 몰랐던 천둥벌거숭이가 침착함을 배웠다.

그는 해내야 할 목표가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을 숙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제천대성’이 가진 장점이자, 세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오백 년에 가까운 시간에 다다를 때쯤, 완성할 수 있었다. 자신의 봉인지를 부술 수 있는 힘을.

연우는 그 긴 시간을 같이 함께 한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만약 시차 괴리로 사고가속에 익숙해지지 않았더라면, 다른 의미로 미쳤을지도 몰랐다.

「그래. 이거 수련의 흔적이야.」

그리고 샤논의 목소리에 의식을 차렸다. 연우는 정신을 수습하면서 물었다.

‘그럼…… 이게 72선술이란 건가?’

「뭐? 72선술?」

샤논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를 내더니 빽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아. 이건 그딴 거랑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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