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미후왕의 궁전 (6)
‘늦었어!’
연우는 전력을 다해 몸을 던졌지만, 본능적으로 한발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킨드레드의 사체가 있는 곳에서부터 자신이 있는 곳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순보를 밟았지만, 거대 석상이 창을 내려치는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콰앙!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먼지구름이 후폭풍을 타고 전해졌다. 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크라슈나의 단검을 옆으로 크게 젖혀 바람을 일으켰다.
헝클어진 의념들 사이로. 무언가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크게 튕겨 나는 게 보였다. 빅토리아가 아니었다. 레베카였다.
비교적 가까이 있던 레베카가 빅토리아를 안아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이 대신 창날과 부딪친 것이다.
하지만 창날은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한 것 같았다. 두 개의 각검 중 하나가 부러져 위로 튀었고, 창날은 거침없이 레베카의 몸을 꿰뚫었으니까.
워낙에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스킬을 제대로 발동시킬 시간이 부족했던 데다가, 첫 번째 시험 때 너무 많은 힘을 빼 놓은 상태라 쉽사리 튕겨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테이지가 주는 감각 통제가 주는 여파도 너무나 컸다. 경지가 높을수록 더 많은 압박감을 받게 된다는 층계, 20층. 스테이지의 제어 때문에 레베카는 자신의 힘을 별달리 써 보지도 못했다.
『레베카!』
빅토리아가 자신을 대신해서 희생된 레베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사이 칸이 이를 악물고 그녀를 구출해 빠르게 거대 석상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연우는 칸을 지나치면서 마력을 한껏 돌렸다. 크라슈나의 단검을 수납하고, 대신에 마장대검을 뽑아 앞으로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길게 뽑혀 나오면서 거대 석상의 창날과 부딪쳤다.
쾅!
『흡!』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켜고 말았다.
전신을 뒤흔드는 엄청난 충격파.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고, 양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 몸도 뒤로 한참이나 주르륵 떠밀리고 말았다.
‘강해!’
애당초 거대 석상이 원숭이 상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정면에서 부딪치니 위기감이 달랐다.
거대 석상이 다시 팔을 크게 휘저으면서 창을 아래로 내려치는 게 느껴졌다.
빠르다. 그리고 무겁다. 이번에 정면에서 부딪치면 죽는다. 방금 전에 공격을 막은 건 운이 좋았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차 괴리]
사고 가속이 빨라졌다. 한없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 연우는 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빅토리아는 칸이 무사히 구출했다. 레베카에게서는 얕은 숨소리만 들릴 뿐, 그마저도 곧 끊어질 것 같았다. 위험했다.
게다가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거대 석상 외에, 다른 11개의 석상들도 조금씩 움직일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12개의 석상이 모두 움직인다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야 해. 어떻게든.’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할 방법은 72선술을 익히는 것. 하지만 주어진 5분 동안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선술이 싸구려인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짧은 시간을 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따로 시간을 끌 방법이 있던가.
그러다 연우는 한 가지 생각에 미쳤다. 미후왕의 후계가 되려면 자격을 증명하는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존경. 혹은 왕에 대한 두려움.
때마침 사고 가속이 끝났다. 무지막지한 창날이 연우의 머리로 날아들기 직전.
『전부 엎드려!』
연우는 크게 어기전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바짝 바닥에 엎드렸다.
이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공한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죽는다. 하지만 도박을 던지지 않아도 죽는 건 똑같았으니 이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연우의 신호에 따라 칸과 빅토리아도 엉겁결에 머리를 바닥에다 붙이는 게 느껴졌다.
아주 짧은 순간. 연우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거친 긴장감을 맛봐야만 했다.
그리고 신변에 아무 이상도 없을 때 확신했다. 도박이 성공했다는 것을.
연우를 공격하던 거대 석상도, 이제 자리를 벗어나려던 거대 석상들도 행동을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됐…… 나?』
칸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다시 거대 석상이 움직일 기미를 보였고, 그는 다시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왕이 계신 곳이니 예를 갖춰라, 뭐 그런 건가? 미친.』
칸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숨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레베카…… 흑흑!』
그리고 빅토리아는 자신을 대신해 희생한 레베카의 이름을 몇 번씩이나 불렀다. 레베카의 숨이 얕아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치료 마법을 걸고 싶었지만, 마력이 바닥나서 도무지 운용되질 않았다. 그러다 레베카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 빅토리아가 울부짖었다.
연우와 칸은 착잡함을 느꼈다. 칸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레베카와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연우도 마음 한쪽이 시큰했다.
일행은 다시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압박감에 이를 악물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카인. 뭔가 알아낸 거 있어?』
침묵을 깨고 입을 가장 먼저 연 건, 칸이었다.
『조금은.』
『공유해 줄 수 있을까?』
연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는 72선술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도일과도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캐묻고 싶었지만, 녀석의 태도를 보니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저대로 죽으라고 해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따지는 건 이 일이 끝난 뒤에 따져도 될 테니까.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었다.
아니다.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것. 미후왕의 유산, 내가 가져야겠어.’
자격 시험이 이번이 끝이란 법은 없다.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살아남기 위해서 전전긍긍해야 할 거란 사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킨드레드와 마군이 뭘 원하는지도 알았다. 그렇다면 녀석들에게 보란 듯이 미후왕의 유산을 도중에 가로채야만 성이 풀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유산이 72선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미후왕은 천계와 하계를 쉴 새 없이 오고 가면서 수많은 보물을 모았다고 알려져 있다. 어쩌면 그런 보물들까지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특히 여의봉은 연우에게 아주 탐이 나는 물건이었다. 단순히 사용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신진철로 만든 그 신물이 있다면, 검은 팔찌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우는 침묵이 내려앉는 동안 어떻게 해야 퀘스트를 독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 방해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퀘스트는 자신이 가진 기량을 전부 풀어내도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위험했다.
그렇다면 목격자를 두고 싶지 않았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체력이 다한 칸과 룬이 소진된 빅토리아가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단은 저들부터 탈출시켜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초감각과 용마안으로 계속 홀을 샅샅이 훑어본 끝에, 철문 옆에 아주 작게 난 쪽문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들이 통과한 정문은 원래 왕만이 다닐 수 있는 길. 그 옆에 신하들이 다니는 문은 따로 나 있었다.
연우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천천히 어기전성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던전은 미후왕의 후계자를 가리는 게 목적인 것 같다.』
『후계?』
칸의 반문에, 연우는 자신이 파악한 것들을 대략적으로 풀었다. 왕의 후계. 허물이 뜻하는 것. 그리고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까지.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야.』
칸은 내용을 듣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의 추측이 정답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빅토리아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두 사람도 고민을 한다면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자꾸 급격하게 변하는 위기 상황들이 냉정을 되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연우는 침착하게 퀘스트 내용을 확실하게 파악했다. 그런 정신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의견부터 말하자면, 우리로선 자격 증명이 힘들어.』
계속 이어지는 말.
이번에도 칸과 빅토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이 보기에도 이 상황에서 72선술을 익힌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 일이었으니까.
바닥에 바짝 엎드린 상태라 해도, 의념을 사용해 석비의 내용을 외울 수는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칸과 빅토리아는 뛰어난 암기력으로 석비의 내용을 전부 외워 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
선술이라는 분야는 그들에게 너무 생소하다. 그런 것을 익히고, 실전에 써먹기 위해서는 그만한 연구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애당초 이곳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곳이었을 거야.』
『다른 사람들?』
『난 미후왕과 관련된 장소가 이곳만 있다고 생각지 않아. 아마 다른 곳들도 있겠지.』
『아.』
빅토리아는 연우의 말뜻을 알아채고 가볍게 탄성을 터뜨렸다. 그제야 그녀의 머릿속에서도 앞뒤로 아귀가 맞춰졌다. 칸은 침묵을 지켰다.
보통 중요한 퀘스트는 연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즉, 원래 미후왕과 관련된 퀘스트가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을 계속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다다를 곳이 바로 이 던전이라는 셈이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원래대로라면 순차적으로 진행해서 선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습득하고 이미 익혀 두기까지 했을 과정들을 전부 생략하고, 그냥 곧바로 마지막 장소에 투입되었단 뜻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확실해진 사실이 하나 있었다. 빅토리아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럼…… 킨드레드는?』
『처음부터 함정이었던 겁니다. 자신이 도저히 해결할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우리들로 실험을 해 보고 싶었겠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제길. 빌어먹을 영감탱이!』
빅토리아는 악다구니를 질렀다. 킨드레드의 가짜 시체를 봤을 때부터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이용만 당했단 사실을 알게 되니 울화가 터졌다. 결국 레베카도 이 때문에 죽고 만 셈이니까.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분명히 자신이 킨드레드에게 새긴 마법은 절대 다른 방법으로 속일 수가 없는 것인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걸까?
하지만 의문은 잠시.
당장 빠져나가기 요원할 것 같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우선 여기부터 빠져나갑시다. 킨드레드를 잡아 죽이든 살리든,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뭐?』
『방법이 있어?』
칸과 빅토리아가 놀란 목소리가 되었다.
『정문 옆에, 쪽문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로 나가면 될 듯합니다.』
칸과 빅토리아는 재빨리 연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의념을 쏘아 보냈고, 곧 쪽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칸의 굳은 인상은 도무지 펴지질 않았다.
『하지만 석상만 12개야. 녀석 들을 전부 피해서 가기는 어렵다고.』
『괜찮아. 미끼가 있으니까.』
『무슨……!』
『시간은 어떻게든 내가 번다. 너와 빅토리아는 신호가 떨어지면 쪽문이 있는 곳으로 뛰기만 해.』
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연우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튜토리얼 때에도 이런 경우에 연우는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해결책을 보였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칸은 갈등했다. 진작 도일에 관한 것을 연우에게 털어 놓고 도움을 구할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칸의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이미 연우는 신호를 던지고 있었다.
『셋 하면 뛰어. 하나, 둘…….』
칸은 생각을 돌렸다. 일단은 이곳에서 빠져나간 뒤에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원하던 대로 우선 석비의 내용은 모두 암기했다. 연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던전 밖에서 해도 늦지 않았다.
『셋!』
칸과 빅토리아는 쪽문이 있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둘 모두 없는 마력을 쥐어짜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빅토리아는 블링크를 전개했다.
12개나 되는 거대 석상들의 눈동자가 저절로 그쪽으로 움직였다.
바로 그때, 연우가 움직였다.
‘샤논.’
「으흐흐. 기다리고 있었다고.」
연우는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손을 불쑥 밀어 넣었다. 손끝에 뭔가가 걸렸다. 그는 내용물을 확인도 하지 않고 허공으로 높게 던졌다.
『으아아! 놔라! 이것들! 놓으래도!』
솔 루나가 허공으로 높이 튀어 올랐다. 이미 샤논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던 녀석은 희끄무레한 사람의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당연히 석상들의 시선은 소란스러운 솔 루나 쪽으로 쏠렸다. 녀석이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양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이미 여러 개의 창은 녀석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끼아악!
이번에는 처음처럼 운 좋은 생존을 바랄 수 없었다. 거대 석상의 창날은 원숭이 상들의 것보다 더 집요하고 날카로웠다.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형체가 금세 허물 어졌다.
『살고 싶……!』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뱉기 직전. 그림자 속에서 샤논이 나타나 숨통을 끊어 버리고, 영혼을 갈취해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 사라졌다.
더불어 연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 무장.’
뼛속에 단단히 새겼던 룬 문자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강화된 마력이 체내를 누비면서 마력회로와 360개의 코어를 일제히 회전시켰다. 기존에 각인시켰던 4개의 마법 외에 추가로 새긴 2개의 마법까지, 총 6개의 마법이 발동되면서 체내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장대검을 앞으로 힘차게 찔렀다. 마침 솔 루나에게서 연우 쪽으로 타겟을 바꾼 창날이 방향을 꺾으면서 날아들었다.
마장대검과 창날이 거세게 충돌했다.
콰아앙!
이번에는 몸이 튕겨 나지 않았다. 밀려난 것도 고작 몇 미터. 거대 석상의 창날은 마장대검에 단단히 가로막혀 바들바들 떨렸다.
‘됐다.’
연우는 여태껏 이론적으로만 머릿속에 구상했던 마법 무장이 실제로 효과가 크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빛냈다.
원래대로라면 팔이 부러졌을 충격을 어떻게 막아 내기까지 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도 몸이 찌르르 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통한다면 됐다.
연우는 그 생각과 함께 양팔에 힘을 주면서 거대 석상의 창날을 조금씩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장대검과 창. 두 개 모두 서로 밀려나지 않으려 바들바들 떨렸다. 스트랭스 마법이 중첩된 연우의 완력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잠시 대치하던 연우는 블링크를 발동,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쾅! 거대 석상의 창날이 연우가 있던 자리로 허무하게 틀어박히고, 대신에 연우는 거대 석상의 뒤편에서 불쑥 나타났다.
블링크는 단거리의 공간을 접어 빠른 이동을 가능케 한다. 그만큼 많은 마력을 소모하지만, 4대 신수의 내단을 수용한 연우에게 마력 걱정은 크게 없었다.
화아악!
허공 위에서, 연우는 불의 날개를 한껏 펼쳤다. 그리고 몸을 크게 돌리면서 성화를 잔뜩 응축시킨 마장대검으로 녀석의 목덜미를 내려쳤다.
콰쾅-
거대 석상의 뒷덜미에서 거친 폭발이 일어났다. 목 부위가 움푹 파이면서 크게 휘청거렸지만, 녀석은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다시 반격을 시도했다.
쐐애액-
그사이. 칸과 빅토리아가 무사히 쪽문을 열고 공동을 완전히 벗어난 게 느껴졌다.
‘됐다.’
연우는 이제 더 이상 힘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더 블링크를 발동하면서 공격 범위에서 한껏 떨어졌다.
연우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쪽문 바로 앞. 칸과 빅토리아가 어서 넘어오라며 손짓을 했지만.
『먼저 나가 있어.』
연우는 그 말만 하고 쪽문을 닫았다. 철컥. 잠금장치가 있었던지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아주 고맙게도.
쾅쾅쾅. 문 너머에서 칸과 빅토리아가 왜 그러냐며 따지는 소리가 났지만, 연우는 무시하고 고개를 석상들이 있는 곳으로 돌렸다.
12개의 석상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지축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들을 보면서.
연우가 입을 열었다.
‘영역 선포.’
체내를 따라 용의 피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용의 인자가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