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64화 (164/862)

14화. 미후왕의 궁전 (8)

[첫 번째 선술, ‘절’을 성공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미후왕의 허물, ‘72선술’을 성공적으로 습득하였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와 보상이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3,000만큼 획득했습니다.]

……

[스킬 ‘72선술’이 생성되었습니다.]

[72선술]

등급: ???

숙련도: 1.2%

설명: 미후왕 손오공이 어린 시절 스승인 수보리조사로부터 배웠던 스킬. 손오공은 이것을 바탕으로 요괴들의 왕, ‘동주칠마왕’의 마지막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72종의 기예로 이뤄져 있다.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 전부 익히기가 아주 까다롭다. 이것을 통달하고 나면 ‘선인’ 혹은 ‘대요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 풍운(風雲)

구름과 바람은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다. 이런 요소를 다룰 수 있는 힘은 공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필요로 한다. 힘이 닿는 특정 공간에서의 법칙을 부릴 수 있게 한다.

* 조화(造化)

법칙과 시전자 사이를 연결해 준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스킬과 스킬의 자연스러운 연계는 능률과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현재 습득한 선술

-절(切): 일정 공간 범위에 걸쳐 단면을 설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끊어 내는 기술. 막대한 정신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며, 실패 시 3초 이상 ‘혼란’ 상태에 잠기게 된다. 빠르고 날렵한 달인 급 이상의 검술을 필요로 한다. 검술의 경지가 높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

‘됐다!’

연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제천류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해석을 시도를 했다지만, 그래도 72선술을 분석하는 작업은 절대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72선술은 손오공을 미후왕으로 만들어 줬던 힘이다. 그런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면 괜히 ‘미후왕의 허물’이라고 불리지 않겠지.

하지만 연우는 거대 석상들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가지 흐름을 잡을 수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첫 번째 선술을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연우가 봤을 때, 선술이라는 것은 생각했던 것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마법이나 주술, 정령술 따위와 비슷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보다 더 고차원에 놓인 기예였다.

선술은 법칙을 다루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공간’을 다루고 있었다. 특정된 공간에 시전자의 의념을 투영시켜, 그 속에 있는 법칙을 입맛대로 다루는 것이다.

‘공간을 다루는 힘이라니.’

연우가 첫 번째로 깨달은 선술, ‘절’이 그랬다.

자르겠다는 의지.

끊겠다는 의지가 투영되었고, 마력이 거기에 맞춰 공간을 설정했다. 그리고 연우가 가지고 있던 모든 능력과 스킬이 자연스레 하나로 합쳐지면서 의념의 형태로 구현화, 이렇게 극단적인 결과를 선보였다.

물론, 처음으로 펼친 선술이니만큼 필요 이상으로 막대한 양의 마력이 소모되어 탈진감과 피로감이 육체를 무겁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신적 고양감도 함께 찾아왔다.

쾌감.

뭔가를 이뤄 냈다는 성취감이었다.

처음 입문하는 것이 어려울 뿐. 이제 방법이 생겼으니 두 번째부터는 습득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72선술을 모두 익히고 난다면 미후왕의 유산에도 도전해 볼 수 있겠지.

“하아!”

연우는 바싹 마른 입을 열어 한숨을 길게 토해 냈다. 그새 용의 피가 크게 회전하면서 피로감을 확 쫓아내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메말랐던 마력회로에도 조금씩 마력이 차올랐다.

용의 권능은 이런 점이 아주 좋았다. 아주 짧은 사이에 컨디션을 되돌려 주었으니까.

물론, 모든 피로를 쫓아 준 건 아니었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했다.

연우는 절을 풀어냈을 때의 감각을 다시 떠올리면서 남은 거대 석상들도 마저 베어 가고자 했다.

거대 석상들에게는 학습 능력이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지체하면 절에 대응할 만한 방법을 만들어낼 게 분명했다.

그래서 다시 움직이려는데.

『왕의 영면을 방해한 것은 괘씸하나…… 자격을 증명하였구나. 이제 우리의 일은 끝났다.』

거대 석상들은 하나 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파스스-

행동을 멈추더니, 몸체를 따라 균열이 퍼지면서 조각조각 분해 되기 시작했다.

낙석은 바닥에 충돌하기도 전에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12개의 거대 석상들이 있던 자리에는 고운 모래만이 남았다.

연우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거대 석상들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험은 자격을 증명하는 것.

한 가지라도 72선술을 선보였으니, 이미 자격은 보여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제 할 일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사라진 것 같았다.

[두 번째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세 번째 시험을 치를 준비를 하세요.]

[0:01:00]

[0:00:59.99]

[0:00:59.98]

……

‘고작 1분?’

터무니없이 짧은 대기 시간. 연우는 눈살을 찡그렸다. 이래서는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 순간.

그그긍-

홀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대신에 이번에 흔들리는 건 계단 위에 놓인 화려한 왕좌였다.

왕좌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뒤쪽에 있던 벽도 같이 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개된 장소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0:00:00_01]

[0:00:00_00]

[세 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연우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레 권역이 회수되면서 다섯 번째 산의 속박이 다시 몸을 무겁게 눌렀다. 하지만 초감각만은 다른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빛나고 있었다.

초감각을 확장시켜 안쪽으로 투영시켜 봤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어둠 속으로 모든 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무저갱을 마주한 것 같았다. 처음 던전에 입장했을 때와는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그때는 오싹함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불만 꺼진 느낌이었다.

결국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화아악-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섰을 때. 어둠을 물리쳐야 할 거라고 생각 했던 연우는 새롭게 놓인 광경을 보고 살짝 놀라고 말았다.

그곳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넓게 펼쳐진 들판. 살랑대는 꽃과 풀. 잔잔하게 부는 바람. 그 속에 섞인 달콤한 과일향.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울창한 숲과 산.

흔히 말하는 낙원이 있다면 이럴 것 같다. 대체 이런 곳에서 무슨 시험을 치르라는 걸까.

연우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껏 목숨에 위협이 가해지는 순간들을 통과했고, 이번에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도무지 어떤 시험을 치르게 될지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었다.

여기서 어디로 이동해야 하나 싶어 인상을 찌푸릴 무렵.

갑자기 하늘을 따라 풍기는 어떤 이질적인 기운에 연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구름 너머. 거대한 용이 드넓은 창공을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푸른색 비늘과 붉은색 눈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나타난 용은 흔히 탑에서 볼 수 있는 드래곤과는 종(種)이 다른 것 같았다. 마치 동양식 용처럼 몸이 아주 길고, 사슴 같은 뿔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한쪽 손에는 흔히 여의주라 불리는 구슬을 든 채, 구름과 비를 몰고 다니고 있었다.

신성함과 영험함을 잔뜩 풍기는 존재. 연우가 여태껏 봤던 신수들, 피닉스나 허무룡 같은 존재들보다 훨씬 격이 높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우르드와 맞먹을지도.’

연우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우르드를 만났을 때에도 엄청난 격의 차이에 압도가 되었었는데. 저 용은 그보다 더한 것 같았다. 용신이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신이 오롯이 제 힘을 강림하기 위해서는 성역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성역이 설치되기 위한 조건은 아주 까다로울 텐데. 20층에 그런 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오행산은 미후왕의 영역이니 미후왕과 관련된 신인 걸까?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연우는 혹시 현자의 돌 속에 잠들어 있을 자신의 신수들이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여전히 녀석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여러 고민을 하며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용은 구름을 뚫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연우 앞에 섰다.

멀리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실제로 바로 코앞까지 도착하니 존재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특히 하늘에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지는 몸체는 끝을 짐작하기도 힘들 만큼 너무 길고 컸다.

용신은 연우보다도 훨씬 큰 붉은색 동공에 그를 담으면서 물었다.

『그대가 새로운 파편인가?』

‘파편?’

연우는 뜻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살짝 눈살을 좁혔다.

『아니지. 여기서는 후계라고 해야 옳으려나. 여하튼. 그대가 새로운 후계인가?』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위에 올라라.』

어디로 가려는 걸까. 연우는 세 번째 시험을 치르는 장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가볍게 도약해 용신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용신은 머리를 반대로 꺾으면서 다시 몸을 크게 흔들었다. 마치 공간이 접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우는 어느새 구름 사이를 통과하고 있었다.

『일단 그대에게 주어진 속박부터 풀어 주지.』

용신이 쥐고 있던 여의주가 빛을 발했다. 그러자 연우는 다시 감각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볍게 때리는 바람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상쾌하다.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분명히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따갑거나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속 시원한 바람이 속을 뻥 뚫어 주는 것 같았다.

거기다 아래로 보이는 풍경도 너무 아름다웠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메마른 감성을 지닌 연우였지만, 지금만큼은 탄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후.』

용신은 그런 연우의 반응이 재미난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연우가 한참 동안 아래 쪽 풍경에 정신이 팔린 동안. 용신은 어느새 들판의 끝에 놓여 있던 산자락에 도착했다.

산은 소귀나무와 갖가지 과일나무로 덮여 있었다. 특히 들판을 따라 간간이 느껴지던 과일향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었는지, 달콤한 향이 강렬했다. 그렇다고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정상에.

한 남자가 유쾌하게 웃으면서 바위에 앉아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백발. 보석처럼 반짝이는 황금색 눈. 익살맞은 표정.

용신에 비하면 존재감이 약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법칙들이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특히 그에게서 풍기는 의념은 잔잔했지만 강렬했다. 무엇보다 연우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던전을 이동하는 내내 엿봤던 수련의 흔적들. 그 속에 남아 있던 강렬한 사념이 저 남자에게서도 풍겨 나오고 있었다.

미후왕.

한낱 미물에서 시작해 옥황상제 와도 나란히 앉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신화적인 존재가, 바로 그곳에 앉아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 우리 성아, 간만에 무게 좀 잡는데?”

『……파편은 이곳에 두고 가겠다.』

용신은 대꾸하기도 귀찮은지 연우를 정상에다 내려놓고, 조용히 하늘 위로 사라졌다.

미후왕은 그런 용신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놀리는 맛이 좀 있었는데. 요즘은 사춘기라 그런가. 대꾸도 않는단 말이지. 흐흐.”

연우는 그렇게 웃어 대는 미후왕을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애당초 미후왕의 궁전에 있는 것들을 전부 독식할 생각으로 뛰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미후왕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왜? 아이돌 스타를 만나니까 가슴이 막 두근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냐?”

“무슨……?”

“흐흐. 아니라고 할 필요 없다. 네 마음 다 이해하니까. 내가 오죽 잘나야 말이지. 여기 오는 놈들 다 그러더라고. 호흡 곤란에 심장 마비에. 으휴.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던지. 그래도 넌 그나마 좀 낫다, 야. 마음에 드는데?”

“…….”

연우는 자아도취에 흠뻑 빠진 미후왕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했던 이미지와 좀 많이 다른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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