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73화 (173/862)

23화. 세트(Set) (7)

『중2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스킬, 그 자체를 보라고! 그리고 공허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틀을 묶을 만한 개념적 단어가 필요하고…….』

연우가 툭 던진 말에 네메시스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구구절절 변명을 늘여 놨다.

‘설명충 버릇도 있나.’

연우는 더 크게 소리치는 네메시스의 짜증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눈앞에 떠오른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꿈꾸는 미몽(迷夢)]

등급: AA+

숙련도: 0.0%

설명: 꿈은 환상 세계와 실제 세계가 뒤섞인 세계다. 일정 영역에 걸쳐 일정 시간 동안 그런 꿈을 구체화시켜, 적들을 그 속에 가둔다.

꿈 속에 갇혀 있는 동안 그들은 길몽인지 악몽인지 모를 곳을 돌아다니며 수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 황홀한 환몽

일정 영역에 걸쳐 인위적으로 공허를 내려 적들을 그 속에 가둔다. 공허 속에 갇힌 적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착각에 빠져 ‘혼란’ 상태와 ‘공포’ 상태에 잠기게 되며, 두 수치가 일정 기준선을 넘을 경우, ‘공황’ 상태에 잠겨 적아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적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에 비례해, 아군에 사기 진작과 체력 회복에 버프 효과를 준다.

* 두려운 악몽

꿈속 세계는 실제 세계의 법칙을 모두 뒤틀어 마법 및 주술적 효과를 크게 저하시킨다. 최대 20% 확률로 마법 및 주술적 계통의 스킬이 불발되며, 전개된 스킬에도 상당한 페널티가 적용된다.

단, 법칙을 고정시키는 ‘권능’ 급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공허를 내려 꿈 속 세계를 소환하는 것이므로, 막대한 양의 마력이 소비된다. 마력의 감속도와 영역의 범위, 시간제 한은 숙련도에 비례해 달라진다.

**스킬을 전개하는 동안, 네메시스(마룡)는 일절 무장이 해제된다. 만약 공허 속에 숨어 있는 본체를 찾아 카운터를 치게 될 시, 스킬이 자동적으로 파훼된다.

스킬을 확인한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환몽만 하더라도 수많은 마법사와 주술사들에게 악몽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보다 훨씬 효과가 더 좋은 스킬로 탄생한 것이다.

마법 및 주술 계통의 스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여전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된 ‘황홀한 환몽’이라는 옵션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영역 설정과도 잘 어울리겠어.’

용종의 권능, ‘영역 선포’와 함께 전개한다면 그 속에 갇힌 적으로서는 손발이 칭칭 감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거기다 혼란과 공포 효과를 계속 투여해서 정신적 공격도 가중시킨다면, 효력은 더 크게 빛을 발하겠지.

연우에게는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공허를 불러서 꿈을 혼재시킨다고 했어. 그렇다는 건, 이보다 더 상위 스킬을 열었을 때에는 심상 세계의 구현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이 랭커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만이 터득할 수 있다는 ‘권능’은 법칙에 직접 간섭해서 그것을 제 입맛대로 뒤튼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잡아 뒀던 이미지를 현실화시켜 막대한 힘을 행사한다.

연우는 ‘꿈’이라는 매개체를 쓴다는 점에서 훗날 자신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8단계의 용체 각성 중 6단계에만 다다라도 권능의 행사가 충분히 가능했지만.

‘그래도 효율을 그만큼 증대한다면 효과도 더 커질 테니까.’

연우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이었지만, 머릿속에 정리해 둘 필요가 있는 영감이었다.

연우는 곧바로 다음 스킬을 확인했다.

[포악한 용오름]

등급: A

숙련도: 0.0%

설명: 바람이 되어 ‘강풍’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강풍 효과에 노출된 적의 이동 속도는 10%가량 줄어든다. 또한, 막대한 크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그 속에 갇힌 적들의 체력과 이동 속도를 주기적으로 깎아 낸다.

숙련도가 5%씩 늘어날 때마다 소환할 수 있는 용오름의 숫자도 1개씩 늘어나 최대 15개를 만들 수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

연우로서는 너무 반가운 스킬이었다.

‘이것이라면 부가 망자 군단과 괴이 군단을 다루는 데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겠는데.’

그동안 영역을 선포하더라도, 연우는 주로 돌격대장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언데드 군단을 지휘한 것은 부였다.

그래서 부는 피의 안개와 사령 소환, 그리고 사체 흡착을 번갈아 전개하느라 상당히 힘들어했었다. 비효율적인 면도 많았다.

하지만 포악한 용오름이 더해진다면 신경 쓸 부분이 적어진다. 최소한 권역을 휘젓고 다니는 건 네메시스가 도맡아 할 테니, 부는 괴이 군단과 언데드 군단을 통솔하는 데 집중하면 되었다. 필요할 때마다 마법을 부려도 될 테고.

그런 흡족한 마음이 전해진 건지, 어둠이 물로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 네메시스가 나타났다.

녀석은 가슴을 한껏 앞으로 내밀면서 크게 거드름을 피워 댔다.

『이제야 이 몸의 위대함을 알겠나, 주인?』

“어. 중2병스러운 시동어를 외울 만해.”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

연우는 다시 항변하는 네메시스를 무시하고, 니케를 돌아봤다.

“니케, 네 것도 보여 주겠어?”

『응응! 보면 어어엄청 놀랄 걸?』

니케는 있는 힘껏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자신 있게 소리쳤다.

연우가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은 총 5개. 그중 눈에 띄는 고유 스킬은 2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성화.

전체적으로 연우의 것과 비슷했다. 사실 연우도 피닉스로부터 받은 것이니 틀은 같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다양한 변칙적인 효과가 있다는 점이었다.

‘불꽃 우박’과 ‘불의 바다’.

옵션으로 나타나 있는 두 가지는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부터 불길을 수없이 쏟아 내는 것이고, 땅에는 거친 불길을 일으켜 일대를 모조리 태우는 힘이었다.

다만, 두 가지 모두 효과는 좋은 반면에, 포악한 용오름에 맞먹을 정도로 마력을 잡아먹어서, 사용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았다.

아군도 같이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분명 위력이 좋은 스킬이었지만 연우의 눈에 띄는 건 바로 이것이었다.

[화령(火靈)]

등급: D~S+

숙련도: 0.0%

설명: 피닉스는 불에서 태어나며 불에서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불길은 피닉스가 머물 수 있는 거처이며 영역이다. 덕분에 불 속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여러 번의 ‘빙의’와 ‘재생’이 가능하다.

* 불의 재생(再生)

HP가 20% 아래로 하락할 시, 하루에 한 번, 불 속에 스며들어 몸을 한껏 치료할 수 있다. 재생을 시도하는 동안에는 다른 모든 스킬 효과가 중단된다.

* 불의 빙의(憑依)

불 속에 녹아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다. 화력이 거세면 거셀수록,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제어 권한의 한계도 비례해서 커진다.

단, 적이 공격할 용도로 만든 불길에 한해서는 모든 제어가 불가능하며, 대신에 위력을 줄이거나 방향을 트는 등의 간섭 정도만 가능하다.

겉보기에는 역시 성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나하나씩 세세하게 뜯어보면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애초 이것은 연우를 위해 만들어진 스킬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불 속에 마음대로 녹아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제 뜻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 이 특징을 이용해 만약 니케가 연우의 성화에 녹아들면 어떻게 될까?

‘화력이 더 거세지겠지. 훨씬.’

연우는 이미 불을 다루는 데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손발을 다루는 것처럼 익숙하기까지 했다.

천익기공을 발동시키면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 불의 날개였고, 오러를 뽑으면 검에 휘감기는 게 성화였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 니케가 깃들게 된다면.

현재 연우가 출력할 수 있는 화력의 한계를 한껏 뛰어넘게 될 것이다. 불의 날개, 오러, 성화. 전부 지금과는 차원이 달라지겠지.

니케와 손발이 잘 맞지 않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미 녀석과 자신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눈빛만으로도 생각을 나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니케.”

『응응!』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니케는 연우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를 깨닫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는 곧장 수십 갈래의 불꽃으로 나뉘면서 연우에게로 깃들었다. 동시에 연우는 마력회로를 한껏 돌렸다.

화아악-

이제는 웬만한 열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이건만. 그런 연우조차도 놀랄 정도로 후끈한 열기가 체내에서 감돌더니 외부로 팽창되었다.

불길은 붉은색을 지나 푸른색으로, 그리고 푸른색에서 노란색으로 점차 물들었다.

파문처럼 퍼져 나간 불꽃은 주변에 있던 나무와 잡목을 모두 태웠다. 아니, 태우는 게 아니라 메말라 비틀어져 버리다가 바사삭 잘게 부서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수분도 싹 증발하면서 땅은 금세 가물어 균열이 일어나고, 대기는 들끓으면서 아지랑이가 결계 안쪽 공간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쿠쿠쿠-

그리고 팽창한 공기는 결계를 잔뜩 밀어냈으니. 그 속에 섞인 열기가 결계를 금방이라도 부술 것처럼 크게 흔들어 놨다.

단순히 힘을 방출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력.

거기다 원래 세 쌍이었던 불의 날개도 네 쌍으로 늘어났다. 너무 많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넘쳐 나는 화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연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선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을 유지하기 위해 화력을 낮춘 다음, 불의 날개를 한껏 퍼덕이면서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쐐애액-

그동안 불의 날개를 이용한 비행 능력을 자주 써먹긴 했었지만, 그래도 비행 속도와 방향 급선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한계도 사라진 것 같았다.

연우는 대기의 흐름에 맞춰 날개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조금씩 조절해 보면서 천천히 비행 능력을 터득하다가,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쯤에는 한껏 속도를 더했다.

얼마나 빠른지,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연우의 귓가에도 울릴 정도였다.

‘여기에 속보, 헤이스트, 블링크까지 더해진다면……!’

연우는 한꺼번에 모든 스킬과 마법을 동시에 발동시켰다. 저만치 멀리 잡은 목표점이 눈 깜짝할 새에 바로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콰아앙!

단검을 살짝만 흔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거친 폭발이 일어나면서 결계를 비롯해 인근 구역에 있던 숲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콰콰콰-

* * *

‘등급이 왜 이렇게 측정되었는지 이제야 알겠어.’

연우는 초토화된 숲을 보고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왔다.

여전히 숲은 크고 작은 폭발을 번갈아 일으키고 있었다. 1차적으로 밀고 나간 자리 위로, 땅거죽이 뒤집히고 일어난 분진과 들끓는 대기가 뒤섞이고, 여기에 남아 있던 불씨가 더해지면서 2차, 3차 연쇄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숲은 이미 형체도 거의 잃은 상태였고, 아지랑이와 탄내가 진동하는 자리에는 불바다만 남아 버렸다.

더 큰 피해로 이어지기 전에 니케와 함께 재빨리 불길을 거둬들이긴 했지만, 현장까지 복구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큰 소란을 벌였으니 확인을 위해서라도 곧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연우는 왜 화령의 등급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하고 위력적인 공격이 가능했으니.

문제는 이마저도 연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힘이 아니란 점이었다.

만약 여기에 오러가 실렸다면?

불벼락도 같이 전개했다면?

여기에 더해 용혈 각성도 같이 깨웠다면?

「깨웠다면? 그게 뭐긴 뭐야.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지.」

「그만한 파괴력이라면 죽기 전의 저라고 해도, 충분히 위협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무기 점검을 끝낸 샤논과 한령이 저마다 한마디씩 감상평을 던졌다. 녀석들은 한없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연우가 한령에게 물었다.

“만약 전성기 때의 너와 만난다면?”

「그래도 여전히 위협적일 겁니다. 오러와 니케가 더해진 성화, 그리고 불벼락을 극한대로 압축시킨 폭발…… 아무리 당시의 저라 해도 정면에서 부딪친다면 최소한 팔다리 하나쯤은 내놓아야 할 테니까요.」

도무신이 인정할 정도의 위력. 거기까지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부딪친다고 해서 두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

「절대 폭발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할 겁니다. 아니면 시간을 주지 않겠지요.」

“역시.”

연우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령의 말마따나 그런 기술을 전개할 틈을 내주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게다가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의 폭발만 봐도 그렇습니다. 폭발력은 훌륭합니다만, 시전자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없는 것만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도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위험했다. 자신 뿐만 아니라, 괴이 군단과 언데드 집단까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다면, 그때는 자폭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폭발이 아니라 압축에다 중점을 두면 어떨까?’

그래서 연우는 관점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불길과 오러를 검에다 집중시킬 수 있다면. 물론, 검이 그만한 압박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뛰어 난 내구도를 지니고 있어야겠지만, 비그리드라면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위력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아니, 위력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극한에 다다른 열기와 폭발적인 오러. 이 두 가지가 뒤섞인 검을 제대로 받아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제로 이미 연우는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봤다.

선술, 절.

공간을 단절시킬 정도로 강했던 힘. 그때의 감각을 다시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거기에 다른 것들도 더 많이 담아 보고 싶었다.

‘아직도 연습해 볼 게 더 많이 남아 있구나.’

연우는 조금씩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뒀던 개념들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는 절대 써먹지 않을 생각이었다.

연우가 필요한 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마음껏 다룰 수 있는 힘이었지, 무식하기만 한 폭발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확인할 건, 정령뿐인가?’

연우는 어비스 터틀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봤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이제 정령술을 터득할 수 있다던 메시지.

이제는 ‘임시’라는 단어가 사라진 스킬을 확인했다.

[푸른 정령의 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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