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세트(Set) (8)
[푸른 정령의 가호]
등급: ???
숙련도: 18.2%
설명: 어비스 터틀은 자신과의 계약을 충실하게 수행해 준 계약자에게 고맙다는 답례로, 자신이 거닐고 있던 권속 중 하나를 선물했다.
푸른 정령은 깊은 심연에서 탄생한 존재로, 이렇다 할 자아는 갖추지 못했지만 주인을 보좌하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신수들의 가호와 여러 스킬들의 속성이 혼선을 빚지 않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자아’를 부여해서 여러 스킬과 속성을 익히게 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키울 수 있다.
정령의 성장 방향과 성격은 주인의 영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다.
**이 스킬은 ‘고유’입니다. 어비스 터틀에게 인정을 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으며, 숙련도에 따른 성장이 가능합니다.
**아직 ‘자아’를 갖지 못했습니다. 자아를 생성해야만 빠른 성장이 가능하니, 우선 자아를 설정해 주십시오.
**‘정령술’에 대한 이해도가 깊을수록 정령의 성장 속도도 빨라지게 됩니다.
사실 그동안 연우는 어비스 터틀로부터 푸른 정령을 선물 받긴 했지만, 체내에만 두고 있을 뿐 따로 소환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고 추가 보상을 받으면서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딱 보니 푸른 정령은 연우가 알고 있는 정령과는 여러모로 개념이 다른 것 같았다.
정령은 자연 속 물질에서 태어나는 존재라, 보통 시전자의 속성력에 따라 능력 유무가 크게 갈리는 편이라 다루기가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다만, 가지고 있는 힘에 따라 하급부터 최상급, 그리고 ‘왕’의 단계까지 계급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한 번 방향이 잡히면 성장시키는 맛이 쏠쏠했다.
대개 유명한 정령은 불의 하급 정령 카사,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를 꼽을 수가 있었다.
녀석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약하지만 자아를 갖고 있었고, 속성에 강하게 얽매이다 보니 성장 방향도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카사는 샐러맨더로, 샐러맨더는 샐리스트가 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푸른 정령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애초 자아가 없었고, 속성도 ‘무(無)’였다.
아예 백지에서 시작한 셈이니, 여기에 어떤 속성을 부여할지, 어떤 방식으로 성장시킬지는 오롯이 연우의 몫이었다.
어쩌면 일반 정령보다 훨씬 뛰어난 잠재력을 지니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는 경우에는 엉망이 될 가능성도 컸다.
‘잘 되었다고 해야 할지, 어렵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연우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푸른색 물체를 보면서 쓰게 웃었다.
겉보기에는 민들레 홀씨처럼 보이는데.
이런 걸 어떻게 성장시켜야 할지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그래도 그동안 4대 신수의 가호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역할을 제대로 했으니. 확실히 잠재 능력은 절대 적은 게 아니었다.
‘정령술을 깊게 공부할수록 더 잘 키울 수 있다지만. 그래도 룬 마법처럼 크게 시간을 들일 여유 시간이 없어.’
당장 72선술과 제천류, 그리고 음검만 파고드는 데에도 상당히 바쁘다. 언젠가 마법과 정령술도 깊게 공부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선순위에서 검술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방법밖엔 없나.’
연우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인격 부여.’
푸른 정령에 완성된 인격을 심어 자연스레 혼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어떨까. 물론, 이때 부여할 인격은 뛰어난 객체여야만 했다.
다행히 연우는 푸른 정령에 심을 만한 인격이 아주 많았다.
컬렉션에 든 망령만 해도 천 마리가 넘어가고, 그중에서 높은 격을 가진 녀석도 더러 있었다.
‘햅번과 솔 루나만 해도 뛰어나고.’
하지만 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햅번은 우르드의 사도였다.
지고종이라는 영혼은 아까웠지만, 우르드에 대한 충성도가 너무 높았다. 그런 사람을 옆에 두고 있어 봤자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솔 루나도 마찬가지.
뱀파이어란 종족 특성에, 검귀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녀 괜찮은 후보군이긴 했지만.
‘너무 야비해.’
가까이 두고 싶은 대상은 아니었다.
결국 남은 사람은 한 명.
‘레베카가 딱 좋긴 한데.’
케르눈노스의 사도이자 뛰어난 판단력과 똑바른 정신을 가진 그녀라면. 충분히 가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자존심이 강한 만큼, 과연 그녀가 섣불리 남의 밑에 들어가려 할까 싶다는 점이었다.
영혼이 연우에게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영혼이 없는 건 문제가 안 돼. 대체할 방법이 있으니까. 하지만 케르눈노스라는 신의 적의를 사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
레베카를 가질 수 있을지는 일단 부딪쳐 봐야 안다.
하지만 케르눈노스의 적의를 사는 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였다.
연우는 과연 ‘확신’할 수도 없는 일을 두고 신과 대립할 만큼 이번 일이 가치가 있을까 깊이 고민을 해 봤지만.
‘어차피 우르드와는 척을 졌고, 네메시스 신과 니케 신 쪽과는 묘한 공생 관계가 되어 버렸어. 이미 신들과 어떻게든 엮일 수밖에 없다면…… 일단 한 번 해 보자.’
연우는 생각을 정리하고 부를 소환했다.
부는 연우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이미 녀석은 연우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연우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말리지 않았다. 부에게 신은 연우뿐이었다.
“시작하자.”
「예.」
연우는 인트레니안을 열어 미후왕의 궁전에서 수습해 왔던 레베카의 시신을 꺼냈다.
부가 검은 구슬을 높이 들면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레베카의 시체를 따라 서서히 검은 빛이 떠올랐다.
츠츠츠-
[케르눈노스가 당신이 하려는 일을 깨닫고 크게 분노합니다.]
[악마들이 당신을 보며 기꺼워합니다. 악마 중 누군가가 당신에 대해 뭔가를 선언합니다.]
[악마들의 선호도가 올랐습니다. 용감한 당신에게 찬사가 이어집니다.]
[악 속성이 15만큼 상승했습니다.]
[악 속성이 20만큼 상승했습니다.]
[‘중립’이었던 성향이 악 성향 쪽으로 70%가 넘어 ‘악’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향에 따라 다양한 여러 이익과 페널티가 따를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
레베카의 시체가 빠른 속도로 수복되었다. 터져 나갔던 살 조각과 뼛조각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근육과 혈관이 다시 이어졌다.
창백했던 얼굴에는 붉은 안색까지 돌아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잠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연우는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무거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눅눅하면서도 음험한 공기. 살의도 섞여 있었다. 케르눈노스의 의지가 전달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래 봤자신과 악마는 98층을 통과하지 못한다.
어차피 원한을 사게 된 것, 끝까지 가 볼 생각이었다. 그를 달래기 위한 공양이나 행사는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연우는 컬렉션에 있던 망령들을 대거 갈아 흑기로 전환, 레베카의 사체에다 불어 넣었다.
흑기가 투여될수록. 레베카의 사체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쳤다. 마치 금방이라도 일어나려는 사람처럼.
「일어. 나라.」
그리고 부의 명령에 따라 사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사체에 어려 있던 ‘다른 것’이 일어났다.
흑기에 단단히 응고된 레베카의 환영이었다.
「여긴…… 어디지?」
레베카의 환영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조금씩 이지가 돌아왔는지 좀 더 또렷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탑 외 지역입니다, 레베카.”
「카인……? 네가 왜? 아니, 그보다 탑 외 지역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레베카의 환영은 많은 것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녀의 시간은 여전히 미후왕의 궁전에서 거대 석상들과 싸우고 있을 때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눈을 뜨니 장소와 환경이 싹 바뀌었다. 수 년 동안 그녀를 속박하던 다섯 번째 산의 제어도 사라지고 없었다.
혼란스럽지 않다면 이상했다. 게다가 죽음에서 갓 깨어난 후유증도 그녀의 냉정한 이지와 판단력을 흐려 놓았다.
「칸과 빅토리아는 어디로 갔지? 미후왕은? 그리고……!」
그러다 레베카 환영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그리고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연우를 노려봤다.
「너. 내게 무슨 짓을 했구나.」
토막 났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그녀의 패시브 스킬이었던 신지도 돌아오면서 정신이 맑아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자신은 죽었다. 시간이 이만큼 지났으니 영혼도 자동적으로 케르눈노스의 품으로 돌아갔을 텐데. 어째서 자신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 풍기는 죽음의 기운에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녀의 안색이 다시 창백하게 변했다.
연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게 맞을 겁니다.”
「미쳤어! 어떻게 내 백(魄)을 깨울 생각을……!」
사람의 영혼은 크게 두 개로 분류할 수 있었다.
혼과 백.
이중 혼은 진짜 영혼으로서 죽게 되면 저승으로 흘러 들어가며 윤회전생을 하게 되어 있었다.
반면에 백은 달랐다.
백은 죽은 육체에 남은 사념으로, 정신적 작용이 남긴 흔적이었다. 연우가 미후왕의 궁전에서 만났던 미후왕의 사념이 바로 여기에 해당했다.
흔히 육체가 썩으면서 백도 같이 흩어지기 마련이지만. 연우는 아예 레베카의 시체를 거둬 백을 묶어 두고, 그것에다 의지를 불어 넣어 일어나게 한 것이다.
[사령 소환]
등급: BBB+
숙련도: 21.5%
설명: 시체와 영혼을 매개체로 삼아 저승에 있는 소환수를 꺼내 부릴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언데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부의 고유 스킬, 사령 소환.
원래대로라면 소환수를 부리거나 언데드 제조에 특화되어 있었지만.
연우는 스킬의 방향을 크게 틀었다. 천 마리에 가까운 망령을 제물로 삼아 사념체(思念體)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추출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은 시체에서 백(사념)을 추출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죽음을 사역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어둠의 힘을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넓어지게 됩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이뤄 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3,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출한 백(사념)을 종속시켜 권속으로 만드세요. 더 많은 추가 보상이 이뤄질 것입니다.]
연우는 망막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눈가를 따라 탐욕이 번들거렸다.
‘그래도 확실히 사도는 다르긴 달라. 보통 깨어난 백은 자아를 분간 못하고 날뛰기 마련인데. 레베카는 이성이 또렷해.’
아마 일반 생명체와는 가진 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날…… 어떻게 할 생각이지?」
“당신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레베카는 살의 짙은 눈으로 연우를 노려봤다. 신으로 가는 길을 걷는 자에게 있어, 영혼도 아닌 일개 사념체로 깨어나게 한 것은 욕보이는 짓밖에 되지 않는다.
비록 영혼은 신의 곁으로 돌아갔다지만, 한낱 껍데기밖에 되지 않는 몸으로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연우는 도리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전 계약을 맺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죽은 것보다야 산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분명 못다 이룬 미련도 한두 가지 남아 있을 테고요. 이루도록 도와주죠. 대신에 그 대가로 당신은 제 일을 도와주면 되는 겁니다.”
「이건 살아도 산 게 아닌……!」
“하지만 감정과 이성, 기억은 전부 남아 있지 않나요? 사고도 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니면 환생이라고 해 둡시다. 그래도 될 것 같으니까요.”
「…….」
레베카는 이를 악물었다. 구구절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영혼보다 훨씬 격이 떨어지는 사념체라고 해도, ‘레베카’라는 자아가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남은 미련을 풀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이 유독 귀에 거슬렸다.
미련이라.
미련. 살면서 그런 게 없을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 그런 미련을 버리고 자신에 귀의해서 수도승으로 살았고, 여러 해의 암자 생활을 거쳐 사도까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해지게 된 뒤에도 미련은 여전히 족쇄처럼 달라붙어 발목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어린 시절, 먼발치에서 봤던 어떤 짐승. 그것은 성스럽다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지만, 반대로 ‘두렵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존재였다. 마을을 짓밟았고, 가족들을 잡아먹었던 녀석이었으니까.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생김새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레베카는 어떻게든 녀석을 만나고자는 생각 하나로 여태까지 버텼다.
여자의 몸으로는 안 된다며 모두가 혀를 찰 때, 혼자서 오로지 눈대중으로만 검술을 익히고, 궁술을 배웠다. 그리고 경험으로 사냥 기술을 차츰차츰 익혀 나가 마침내 사도까지 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녀석이 내뿜던 힘은 아직도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트라우마 때문에 기억이 과장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레베카는 더 큰 힘을 원했다. 그래서 이 던전으로 왔고, 드디어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 몸이 될 줄은. 아직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레베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쳤다.
수도승의 신분으로서 이런 선택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신을 욕보이는 짓이고, 스스로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짓이니까.
하지만 연우의 말마따나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은 수도승이라고 해도 쉽게 떨쳐 낼 수 없는 가장 순수한 욕망이었다.
결국 레베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다 할 답을 내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다시 의식을 거두겠습니다.”
연우는 레베카를 강제로 종속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냥 사귀나 괴이었다면 모를까, 단순한 정보 집합체에 불과한 사념체를 억누르다가는 틀이 망가질 수 있었다.
신의 분노를 사기만 하고 별다른 소득은 없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사념체를 추출하는 법을 알았으니, 앞으로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을 골라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사념이 짙게 남아 있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체에 한정 되겠지만.
결국 레베카는 연우의 마지막 선언에 인상을 와락 찌푸리면서 씹어 삼키듯이 으르렁거렸다.
「넌 개새끼야.」
연우는 태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얻고 싶은 건 반드시 얻어야 하는 주의라서요.”
「좋아. 널 따르겠어.」
연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신에 조건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내 행동과 의사에 자율권을 줄 것.」
“이미 느끼고 계시지 않습니까?”
연우의 뒤편으로 그림자가 쭉 늘어나면서 샤논과 한령이 나타났다.
「흐흐. 확실히 우리 주인이 좀 막무가내에 개새끼이긴 하지.」
「주군. 레베카를 들이는 건 괜찮습니다만, 그래도 주종 간의 예는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우는 뒤에 두 사람을 힐끔 보며 레베카에게 물었다.
“이 둘의 의사에 자율권이 없어 보입니까?”
「이빨 늑대, 도무신…….」
「오. 붉은 신목이 날 알고 있어? 그건 좀 영광인데.」
샤논이 경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미 랭커이긴 해도, 그는 뛰어난 검술 실력 때문에 랭커들 사이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편이었다.
레베카는 이미 저 둘이 연우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고 깊게 침음을 흘렸다.
도무신까지 있다는 건, 자신이 의탁을 해도 명예가 손상될 정도는 아니란 뜻이었다. 별것 아닐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예민한 문제였다.
「좋아. 무슨 말인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 정도가 아니야.」
“그럼요?”
「이들은 그래도 계속 그림자 속에 있잖아? 하지만 난 그 정도를 넘어 아예 밖에서 자율적으로 돌아다니고 싶다는 거야.」
연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물론, 너와의 연결 고리 때문에 멀리 떨어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고 싶어.」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몰랐다. 자유롭게 다니는 것.
「그러니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 줘.」
“저는 신이 아닙니다만.”
「그런 진짜 육체까지 바라는 건 아니야. 호문클루스. 그 정도라도 좋아.」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문클루스는 연금술의 총아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인공 생명체. 섣불리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정도로 깊게 지식을 쌓긴 해야 해. 현자의 돌도, 회중시계도, 최소한 그 정도의 지식은 필요할 테니까.’
더구나 레베카도 자신의 요구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까지라는 조건은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대신에 그 전까지 정령으로 지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정령?」
연우는 오른손을 활짝 펴서 푸른 정령을 꺼냈다.
“신수 어비스 터틀이 부리던 권속입니다. 보다시피 따로 자아도 없으니 그대로 융합만 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연우는 이번에는 왼손을 펼쳤다. 새하얀 백색 망령과 어두운 흑색 망령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 두 가지도 같이 드리겠습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신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레베카의 눈이 커졌다. 햅번의 영혼과 솔 루나의 영혼.
지고종 하이 엘프와 진혈(眞面)에 가깝다는 솔 루나. 두 개의 영혼을 흡수한다면, 잃어버린 격도 빠르게 되찾을 수 있겠지.
뒤에서 샤논이 아깝다는 듯이 투덜거렸지만, 한령은 그의 옆구리를 세게 치면서 조용하라고 일갈했다.
사실 두 사람은 이미 헤노바의 ‘수작’과 ‘걸작’을 손에 넣은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해하고 있었다.
「……좋아. 하겠어.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레베카가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가 싱긋 웃으면서 푸른 정령을 그녀의 앞으로 움직였다.
“그냥 삼키십시오.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레베카는 조금 못미더워하는 표정이 되었지만, 어차피 죽은 몸으로 또 죽어 봤자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생각에 푸른 정령을 잡아 입에 털어 넣었다.
화아아-
레베카의 사념체가 확 흐려지면서 푸른 물결이 되었다. 그 순간, 부가 설치했던 마법진이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