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75화 (175/862)

25화. 세트(Set) (9)

사실 레베카와 푸른 정령을 결합시키는 건 크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사념체에 있는 레베카라는 정보를 푸른 정령에다 이식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자아 부여’라는 특성은 그만큼 손쉬웠다.

그리고.

[푸른 정령에 백(사념)을 덧씌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아가 형성 되어 하급 푸른 정령으로 거듭납니다.]

[하급 푸른 정령이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앞으로 그녀는 정령에 속박되어 당신의 칼이자 방패가 될 것입니다.]

[하급 푸른 정령의 이름을 지정하시겠습니까?]

“레베카.”

[하급 푸른 정령의 이름이 ‘레베카’로 지정되었습니다.]

[충성도가 15만큼 올랐습니다.]

[지배력이 5만큼 올랐습니다.]

[레베카(하급 푸른 정령)의 사념체가 가진 높은 ‘격’을 현재 만들어진 육체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능력치가 새롭게 재조정됩니다.]

……

푸른색의 투명한 무늬로 다시 태어난 레베카는 자신의 새로운 육체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훑어보기 바빴다.

그러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격도 떨어지려는 것을 깨닫고, 빠른 수복을 위해 햅번과 솔 루나의 영혼으로 손을 뻗었다.

푸른 영혼을 삼켰을 때처럼, 이번에도 두 망령을 입에다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레베카(하급 푸른 정령)가 햅번 (우르드의 사도)의 영혼을 탐닉했습니다.]

[능력치가 재조정됩니다.]

[‘레베카’가 하급에서 중급으로 진화하였습니다.]

……

[레베카(중급 푸른 정령)가 솔 루나(뱀파이어)의 영혼을 흡수했습니다.]

[격이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재조정됩니다.]

[등급이 중급에서 상급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옅었던 레베카의 존재감은 계속 뚜렷해지면서 어느새 데스 나이트에 못지않게 강렬해졌다.

흐트러질 수 있던 사념체의 정보도 전부 수용되어, 투명했던 육체도 어느 정도 색을 띄기 시작 했다.

[추출한 백(사념)을 종속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죽음을 사역하는 방법에 더 큰 한 발자국을 내디뎠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으로 스킬 ‘심연의 정령술’이 생성되었습니다.]

[심연의 정령술]

등급: A-

숙련도: 2.1%

설명: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속성 정령술 중에 가장 희귀한 성질을 자랑하는 정령술이다. 터득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정령에 실리는 힘도 높아진다.

연우는 스킬과 연결 고리를 통해 레베카가 품고 있던 갖가지 생각들을 일부 전해 받을 수 있었다.

그 속에는 레베카의 오랜 미련도 담겨 있었다. 레베카를 다시 살게 한 미련. 계약대로 이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신이 도와줘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우르드가 크게 분노합니다.]

[케르눈노스가 허탈한 얼굴에 가만히 당신을 지켜봅니다.]

[우르드가 케르눈노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합니다. 케르눈노스는 그것을 거절합니다.]

[케르눈노스가 고요한 시선으로 당신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이번 사안에 대해 아무 의사도 표시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악마들이 누군가의 안건 발의에 따라 당신에 대한 어떤 논의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업적 때문인가?’

신과 악마들은 98층이라는 틀에 갇혀 절대 아래층에 간섭을 하지 못한다.

어떤 의사를 표시하고 싶다면 시스템을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는 편이었고, 어떤 행동을 하고 싶다면 자신들의 영향력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성역을 빌리는 편이었다. 아니면, 사도의 힘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사도를 사용한다고 해도 의사 개입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령, 우르드가 연우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어도, 그와 관련된 과거사를 함부로 흘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플레이어의 ‘업적’에 방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연우는 검은 팔찌를 중심으로 죽음을 사역하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둘씩 업적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었고, 이것은 강렬한 시스템의 보호로 이뤄졌다.

아마도 케르눈노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별다른 제지를 못한 것 같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가벼운 저주 정도는 내릴 수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없다. 또한, 반발도 생각보다 적었다.

‘아무리 사념체라도 자신의 사도이긴 사도이니까.’

사도는 단순한 신의 전령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신의 뜻을 집행하는 대행자이고, 신의 피와 영혼을 물려받는 아바타(Avatar, 화신)였다.

당연히 사도에 대한 관심도 지대할 수밖에 없으니. 앞으로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레베카는 달라진 자신의 몸이 영 적응이 되질 않는지, 반투명한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바빴다. 그러다 조금씩 팔다리를 점검하면서 달라진 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연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또 다른 메시지를 응시했다.

얼마 전부터 계속 눈에 밟히던 ‘어떤 악마’의 지속적인 관심. 어떤 안건을 발의한다는데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레베카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구체화였다.

정령보다는 육체를 갖고 싶었던 그녀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문제는 아직까지 심연의 정령술의 숙련도가 너무 낮아 한계가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되도록 빨리 스킬 숙련도를 올려 줬으면 좋겠어.』

“걱정 마. 계속 이렇게 소환을 해 두는 것만으로도 숙련도는 조금씩 오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틈틈이 정령술도 공부할 테니.”

권속으로 뒀기 때문에, 연우는 더 이상 그녀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환이어서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레베카는 별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겉보기 예의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주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뜻하지 않았던 보상이 있었다면, 레베카의 몸 한 쪽에서 신력의 씨앗이 생겨났다는 점이었다. 케르눈노스가 거둬 가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현생 때의 힘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케르눈노스가 아직 뜻을 거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다시 힘을 빌려줄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난 뒤.

연우는 다시 헤노바를 돕기 시작했다.

헤노바는 갑자기 연우를 따라온 레베카를 보고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곧 정령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냥 무시해 버렸다. 연우에 대해서 이래저래 따지기 시작하면 골치만 아파진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베카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도 했다.

사냥을 다니다 보면 주로 솔로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급 자족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야금술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고, 소량이라도 신력을 품고 있으니 주물에 축복을 내리는 정도는 가능했다.

거기다 연우는 헤노바를 도우면서 수시로 성화를 피웠다. 헤노바도 허락한 일이었다.

고열과 고온, 그리고 연우의 정념이 고스란히 묻어날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땅, 땅, 따아앙-

그렇게 보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아티팩트 ‘헤노바의 마장갑주(魔裝甲冑)’가 완성되었습니다.]

[아티팩트 ‘헤노바의 마장장화(魔裝長軌)’가 완성되었습니다.]

[아티팩트 ‘헤노바의 마장수갑(魔裝手甲)’이 완성되었습니다.]

……

[마장 세트가 탄생하였습니다.]

[드워프 헤노바를 도와 ‘걸작’을 완성하는 데 큰 조력을 해 주었습니다. 여러 갑옷 속에는 당신의 피와 땀, 눈물, 그리고 정념이 가득 어리게 되었습니다.]

[마장 세트와의 감응도가 +20만큼 깊어지게 됩니다.]

[야금술에 대한 깊은 학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잠겨 있던 용의 지식 중 일부가 해제됩니다.]

[‘용마안’의 스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65.2%]

[더 많은 지식을 쌓아 당신만의 야금술 체계를 정립하도록 하요.]

연우는 하얀 귀신의 얼굴을 임시로 착용한 채, 새롭게 탄생한 마장 세트를 바라봤다. 그중에는 기존에 있던 것을 고친 것도 있었고, 새롭게 만든 것도 있었다.

그래서 빨리 확인하고 싶어 손을 뻗으려는데.

“어허. 어딜 벌써?”

헤노바가 재빨리 곰방대를 내리쳐 연우의 손을 제지했다.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뭘 왜 그래? 아직 뜸도 덜 들였는데 날름 밥을 먹으려 그러지.”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직 덜 끝났다니요?”

헤노바는 곰방대를 입에 물면서 익살맞게 씩 웃었다.

“잠시만 기다려 봐.”

“……?”

연우는 헤노바가 뭘 하려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 멀뚱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때, 헤노바가 품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유리병을 꺼냈다. 붉은 루비 색으로 반짝이는 이상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연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눈꺼풀이 살짝 파르르 떨렸다.

“후후. 뭔지 알아보는 것 같구나. 그래도 썩은 동태 눈깔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하긴 너도 사람이라면 나를 그렇게 괴롭히며 야금술을 익혔는데, 그 정도 눈은 있어야지.”

“정말 ‘헬의 눈물’이 맞습니까?”

“맞다. 아주 오래전에 구한 놈이지. 여태 어디다 쓸까 고민했었는데. 어차피 쓸 데도 없고. 이번에 특별히 네 녀석 물건들에 써 주마. 네놈이 줬던 포인트들, 이걸 구매하는 데 썼다고 생각해라.”

“…….”

헬의 눈물은 용종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사멸했던 종족, 거인족의 공주였던 ‘헬’의 마지막 남은 유산이었다.

헬은 지옥의 어머니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권능을 지녔던 자. 그래서 숱한 악마들로부터 적의를 샀고, 신들로부터도 경계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 그녀가 흘린 눈물은 지옥의 유황불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특별했다.

여러 재료들 중에서, 신의 물질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등급을 차지하는 물건이었다.

“네놈의 속성을 보니 어둠 관련 계통이나 불 쪽이 가장 뛰어난 것 같아서 꺼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헤노바는 ‘네놈도 사람이라면 이제 날 존경하는 투는 가져야겠지’라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설명을 쭉 늘어놨다.

하지만 헤노바를 보는 내내 연우의 눈꺼풀은 여전히 경련이 멈추질 않았다.

헬의 눈물이 아주 좋은 재료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당장 연우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저게 왜 아직도…….’

헬의 눈물.

그건 원래 동생이 헤노바에게 선물했던 물건이었다.

탑에 왔을 때 가장 놀랐던 사실 중에 한 가지는, 이들에게 생일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점이었다.

자신들이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관습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도 여러 날 중에 하나에 불과할 뿐. 서로 생일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문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게 조금 안타까웠다.

그래도 1년 중에 한 번밖에 없는 날인데. 역시 탑의 세계는 너무 삭막하기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게 싫었다. 그래서 나 혼자라도 어떻게든 멤버들의 생일은 지켜 주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헤노바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뭘 해 주면 좋아하려나?

흐흐. 우리 엄마는 죽어라 말 안 듣는 형보다는 내가 훨씬 더 좋은 선물이라고 하시긴 했는데.

동생은 헤노바의 생일 선물로 뭘 챙겨 주면 좋을까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어렵게 구한 헬의 눈물을 주기로 결심했다.

헤노바가 대장장이이니, 이왕에 선물할 것이라면 좋은 재료가 좋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헤노바는 뭘 쓸데없는 걸 다 챙기려 하냐는 눈빛으로 동생을 타박했지만, 뒤로 돌아설 때에는 묘한 표정을 짓던 것을 동생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동생도 당연히 헤노바가 헬의 눈물을 쓴 줄로만 알고 잊었었는데.

그게 아직도 남아 있었다고?

게다가 유리병을 보니 뚜껑을 연 흔적도 아예 없었다.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고 고이 챙겨 두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헤노바는 연우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뚜껑을 가볍게 열었다.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여태 헬의 눈물을 봉인하고 있던 마법이 해제되면서 내용물이 붉은 연기가 되어 유리병 밖으로 흘러나왔다.

붉은 연기는 마장 세트 위를 뱅글뱅글 맴돌다가,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여러 아티팩트 안 쪽으로 깊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화아악-

붉은빛무리가 터지더니 마장철면과 마장대검을 제외한 다른 갑옷 부위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검은색 흉갑만 덩그러니 남았다.

잘 있던 아티팩트들이 갑자기 다 사라지고 하나만 남은 것 같았지만.

“흐흐. 한 번 확인해 봐라.”

헤노바는 곰방대를 피워 대면서 우쭐대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턱짓으로 흉갑을 가리켰다.

연우는 최대한 떨리는 눈빛을 들키지 않으려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흉갑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축하합니다! 헤노바를 도와 ‘명작’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뛰어난 작품은 예술을 사랑하는 여러 신으로부터 탄성을 부르고, 여러 악마들로부터 질투를 사기 마련입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와 추가 보상이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1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야금술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깊어져 ‘심미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심미안이 ‘용마안’에 결합되어 ‘용마안’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69.8%]

연우는 흉갑을 확인했다.

[헤노바의 마장(魔障)]

분류: ???

등급: S~??? (명작)

설명: 헤노바가 전력을 다해 탄생시킨 마장 세트가 하나로 합쳐진 형태. 마장 세트는 원래 한 사람의 특정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뛰어난 보조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나, ‘헬의 눈물’까지 머금게 되면서 뛰어난 잠재력까지 가지게 되었다.

착용 시, 사용자의 인식에 따라 자유로운 형태 변환이 가능하다. 자동 수복 기능이 있어 웬만한 손상에도 자동 복구가 가능하며, 무게도 가볍도록 되어 있어 기동성에 큰 도움이 되어 준다.

* 헬의 눈물

지옥의 어머니였던 헬의 정화가 담겼다. 어둠과 악 속성, 그리고 불 속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속성력의 변화는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진다.

* 용마안 (보조)

위대한 용종이 남긴 눈의 시야를 확 트이게 만든다. 세상으로의 접촉을 원활하도록 만든다.

* 초감각 (보조)

감각의 영역을……

……

**이 아티팩트는 ‘유니크’입니다. 탑에서도 오로지 단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주인에게 완전히 귀속됩니다. 타인으로의 거래나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명작’의 영향으로 인해 영성이 생성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사용도와 숙련도에 따라 각종 스킬과 속성에 미치는 영향이 비례해 달라집니다. 추가되는 스킬이 있을 시, 거기에 호응해 새로운 옵션을 창출합니다. 불과 어둠을 쬘수록 영성의 힘도 강해집니다.

**‘명작’의 영향으로 착용 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여러 신과 악마들의 찬탄과 질투를 부릅니다.

“……!”

흉갑을 쥐고 있는 연우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맞춤 장비는 원래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보조 효과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렇게 스킬 하나하나에 일일이 영향을 미치는 건, 연우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거기다 불과 어둠 속성에 특화된 것도 연우를 위해 특별 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런 게 가능하려면, 그만큼 플레이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예측을 필요로 한다. 절대 하루 이틀 만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연우가 자신의 정보 창을 내줬다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분석해서 거기에 맞는 효과를 만들어 내려면 그만큼 관심과 신경, 그리고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입어 봐.”

연우는 흉갑을 착용했다. 단단하지만 마치 고무줄 같은 느낌. 쭉 늘어나다 몸에 착실하게 달라붙었다.

순간, 갑옷과 자신 사이에 뭔가가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연우는 설명 창에 있던 내용대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를 떠올렸다. 아무리 경갑옷이라도 갑옷은 움직이는 데 조금 불편하기 마련이다. 맵시가 있는 검은 천 옷을 생각하자, 거기에 따라 흉갑이 생각에 맞춰 똑같이 변했다.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마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옵션 효과가 발동되면서 열기가 돌아 몸이 저절로 따뜻해졌다.

“어떠냐?”

헤노바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물었다.

여기에.

“……편합니다.”

연우는 그렇게 대답했다.

마치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처럼.

차마 담지 못한 그 말이 입가에서 계속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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