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82화 (182/862)

7화. 그림자 도장 (7)

하지만 그런 기쁜 마음과 다르게, 연우의 사고는 빠르게 현재 상황을 쫓기 시작했다.

검 끝에서 폭발한 화마(火魔)가 상공을 가득 뒤덮었다. 대기가 떠밀려 나면서 세상이 붉은빛으로 물들고, 고열과 후폭풍을 만들어 내면서 빛의 파도를 덮쳤다.

빛의 파도는 화마를 찢어 놓기 위해 안쪽 깊숙하게 들어와 이리저리 구멍을 냈다.

그럴수록 불줄기가 사방으로 뻗쳐 나가고, 샛노란 불똥이 크고 작은 연쇄 폭발을 잇달아 만들어 내면서 인스턴트 던전을 뒤덮었다.

대기가 고열로 일렁였다. 연우를 덮고 있던 용의 비늘까지 녹여 화상을 입힐 정도로 뜨거운 온도. 폭발은 저 아래에 지면까지 닿아 남아 있던 흔적들을 모두 밀어 버릴 정도였다.

연우는 그런 폭발 속에서 부서진 불줄기와 벼락의 궤적을 파악하고, 그 사이사이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흔들리는 난류가 비행을 어렵게 만드는 데다가, 아주 작은 불똥이라도 피부에 닿으면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환영은 연거푸 블링크를 발동시키면서 연우가 있는 곳까지 다가와 빛의 파도를 터뜨려 댔다.

벼락은 다시 그런 폭발 사이사이로 잔뜩 퍼져 나가면서, 어느덧 인스턴트 던전을 이루던 공간 구석구석에다 강한 흔적을 남기기까지 했다.

‘아예 다 죽자는 건가?’

연우는 쇄를 잇달아 풀어내면서 빛의 파도를 막긴 했지만, 폭발은 방향만 바꿨을 뿐 오히려 더 큰 열풍과 화기를 동반하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동생의 환영과 검을 맞대는 게 즐겁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환영이 가진 생각이 뭔지를 유추할 수가 없어 힘들었다.

분명 자폭기를 터뜨리려는 것은 아닐 텐데.

하지만 당장의 상황 속에서, 폭발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닥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밖에는.

그래서 연우는 이 들끓는 지옥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최대로 발현되기 시작한 사고 가속과 병렬 연산은 수많은 가정과 예측을 내놓고, 검토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려지는 결론은 단 하나. 불가.

아무리 재주 좋게 피한다고 하더라도 중상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기회를 절대 놓칠 환영이 아니었다.

결국 폭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인스턴트 던전에서 빠져나오거나, 던전이 부서지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스테이지가 신도 악마도 아닌 한낱 플레이어들에게 부서질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권역.’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하게 설정해서, 그 내부에서만이라도 최대한 폭발을 빗겨 나가게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니케.’

『응! 기다렸어!』

그래서 연우는 여전히 현자의 돌 안에서 부름을 기다리던 니케를 수용해서 화령을 이루고, 불 속성에 대한 지배력을 한껏 끌어 올렸다.

그리고 마침 자신에게로 날아오던 불길을 잡아, 그대로 공간을 잡아 비틀 듯이 크게 돌렸다. 의념을 사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응용했다.

불길이 그대로 따라와 연우를 빗겨 나갔다.

막대한 양의 화기가 체내로 흡수되어 화령 속에 녹았다. 그리고 녹이지 못한 나머지는 밖으로 조금씩 방출시키면서 뒤이어 오는 화기를 조절하고자 했다.

덕분에 팔이 이대로 녹아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글지글 끓었다. 웬만한 열에는 끄떡도 않는다는 용골이 흐물흐물해지고, 피부와 근육이 그대로 증발했다.

고열은 마력회로로 스며들어 코어까지 망가뜨리려 했다. 마력회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마력이 끓어 금세 증발할 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대로 영혼이 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연우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용의 인자가 자극을 받아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경고! 버티기 힘든 환경에 노출 되었습니다. 장소를 이탈할 것을 권고합니다.]

[특정 영역에 걸쳐 불과 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합니다.]

[지배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배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

[잠시간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용의 인자가 작용합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화상에 대한 강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고열에 대한 뛰어난 내성이 생겼습니다.]

[화 속성에 대한 지배력이 5만큼 상승합니다.]

[화 속성에 대한 지배력이 17만큼 상승합니다.]

……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빛 속성에 대한 지배력이 21만큼 상승합니다.]

[빛 속성에 대한 지배력이 16만큼 상승합니다.]

……

[강인한 의지를 이용해 화 속성과 빛 속성 대한 강인한 지배력을 갖췄습니다. 특정 영역에 대한 법칙이 강화됩니다.]

[용의 인자 속에 불 속성과 빛 속성의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인자가 불과 빛의 속성을 띠기 시작합니다.]

[불과 빛에 대한 섭리를 깨우쳤습니다. 더 깊은 이해도를 통해 지배력을 더 향상시키세요.]

[‘화령’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상승했습니다.]

[‘영역화(領域化)’에 대한 개념을 깨우쳤습니다. 용의 지식에 대한 권한이 확장됩니다. 새로운 권능에 대한 정보가 제공됩니다.]

[드래고닉 프레셔에 대한 개념을 깨우쳤습니다.]

[스킬 ‘성화’가 미치는 영향력이 더 견고해집니다.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25.9%]

연우가 선택한 것은 특정 속성에 대한 강화였다. 아니, 강화를 넘은 지배였다.

이미 니케를 통해 불 속성에 대한 지배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던 연우는 이것을 더 키우는 도박을 선택했다.

당장 인스턴트 던전을 뒤덮는 폭발과 열기를 한꺼번에 다스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권역 내에서는 지배를 통해 피해를 빗겨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던진 도박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폭발이 너무 강한 나머지 완전한 지배는 불가능했지만, 최소한 권역에서만큼은 위력을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었다. 그리고 불 속성에 더해 빛 속성까지 대폭 상승했고, 성화의 스킬 숙련도도 괄목할 만한 성취를 볼 수 있었다.

용의 인자. 오만했던 용종의 정보가 새겨진 만큼, 효과도 대단했다.

특히, 권역에 대한 지배력도 덩달아 상승하면서, 2단계 권능도 일부 열렸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위기 속에서 던진 도박으로 인한 성장. 이것만 본다면 충분한 성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쾅!

그렇게 몇 번이고 휘몰아치는 열 폭풍 아래로, 연우가 그대로 튕겨 났다.

“미칠…… 노릇이군.”

연우는 가까스로 자세를 잡으면서 지면에 착지했다.

이미 분지는 아주 깊숙하게 내려앉은 크레이터만 남아 여전히 뜨거운 아지랑이를 줄줄 뿜어 댔고, 분지를 두르던 산들은 모두 화마에 휩쓸려 새카만 잔해로 뒤덮여 있었다.

연우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지배를 시도했던 오른팔은 흉측하게 녹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고, 다른 부위의 용의 비늘이며 피부와 근육도 곳곳에 화상으로 엉망이 된 상태였다. 특히 열기를 삼키면서 내부 장기가 잔뜩 화상을 입어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얕은 날숨을 내쉴 때마다 검은 연기가 났다.

용의 피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겨우 숨을 붙여 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전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힘이라니. 특히 이번 공격은 연우가 병렬 연산으로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해서,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헤노바한테 또 크게 한 소리 듣겠는데.’

불현듯 50층까지 아껴 쓰라면서 등을 다독여 주던 헤노바가 떠올라 너무 미안했다. 착용한지 불과 하루 만에 이딴 꼴로 만들어 버렸으니.

다행히 자체적으로 내장된 수복 기능이 작동해서 부서진 부분을 자체 수리하고, 내구도를 올리긴 했지만 제 기능을 되찾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결국 절반의 성공이란 게 이 때문이었다.

이런 중상을 입은 상태로는, 이제 더 싸우려야 싸우기도 힘들었다. 왼팔로 비그리드를 들고 있는 것도 버거울 정도였다.

자신도 이런 꼴이니, 환영도 당연히 중상을 입어야만 했지만.

쏴아아-

그때, 연우 앞으로, 환영이 어느덧 수복을 완료한 하늘 날개를 활짝 편 채로 천천히 내려왔다.

연우보다는 비교적 숨소리가 골랐다. 다만, 녀석은 좀 전과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상반신과 목 언저리까지 돋았던 용의 비늘은 목을 넘어 오른쪽 눈 밑까지 확장되어 있었고, 하늘 날개 아래로 얇은 피막 같은 게 작게 나 있었다. 용의 날개가 분명했다.

용체를 이은 자들은 권능의 권한이 높아질수록, 생김새도 점차 용종에 가까워진다.

용의 비늘을 넘어 날개까지 꺼냈다는 뜻은 단 하나.

3단계 권능인 ‘원소 접촉(Elemental Contact)’을 깨우쳤다는 뜻이었다.

“……저 빌어먹을 재능충 새끼가.”

연우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누구는 폭발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자 살자 노력해서 겨우 지배력을 올리고도 이딴 꼴이 되었는데.

다른 누구는 그 위험에서 새로운 권능을 깨우쳐서 비교적 쉽게 폭발을 빗겨 버릴 줄이야.

저 말도 안 되는 재능이, 오히려 한계를 자극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버린 것 같았다.

원소 접촉은 권역 내에 돌아다니는 특정 원소를 끌어당겨 인위적으로 사용한다.

원소들을 모아 간단한 마법을 구성하거나, 일정 시간 동안 속성력을 올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었다.

아마도 저 녀석은 불과 빛의 원소를 끌어와 대부분의 피해를 흘려버리는 데 사용한 것 같았다.

물론, 녀석도 완전한 지배는 힘들어서 어느 정도의 부상은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연우보다는 훨씬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환영은 움직이기도 버거운 연우를 마저 잡겠다는 듯, 드래곤 슬레이어를 높이 들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자신을 죽이려 하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야!」

「주인님, 저희도 동참하는 것이…….」

위기감을 느낀 샤논과 한령이 머릿속으로 사념을 보내왔다. 자신들도 동참하겠다고.

검은 팔찌도 연우가 가진 능력 중 하나이지만, 여태껏 꺼내지 않았으니 이제 그러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말했지만.”

연우는 이번에도 딱 잘라 거절했다. 환룡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동생의 환영만큼은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넘고 싶었다. 그래야만 앞으로 길을 걸을 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 연우가 숨겨 둔 패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쪽팔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

화아아-

연우의 발목을 따라 푸르고 샛노란 성화가 피어올라 연우를 휘감았다. 그러자 불꽃이 그대로 스며들면서 망가졌던 팔을 원상 복구시키고, 새로운 비늘을 살갖 위로 토해 냈다.

그리고 용의 비늘은 점차 두꺼워지고 질겨지면서 위로 번지다가, 어느새 연우의 오른쪽 눈 밑까지 다다랐다.

촤륵, 촤르륵-

[2단계 권능이 개방됩니다.]

[권능: 드래고닉 프레셔]

[드래고닉 프레셔]

설명: 고룡 칼라투스는 계약자가 용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8단계에 걸쳐 권능을 세분화시켰다. 그중 두 번째 단계.

용의 의지는 한때 법칙을 다스리는 신과 악마마저 위협할 정도로 강렬했다. 이러한 의지를 외부로 투영시켜 선포된 영역에 걸쳐 더 견고한 지배력을 구축한다.

* 용살기

용종은 모든 종족에 앞서는 초월종이다. 그들의 오만함을 닮은 막대한 영압을 뿌려 영역에 놓인 자들 중 적에게는 위압감을, 그리고 아군에게는 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 용의 성벽

권능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질수록, 영역에 주어지는 부가 효과도 덩달아 상승한다. 나아가서는 초보적인 심상 세계의 구축까지 가능하다.

[용의 영역, ‘비나’가 강화되었습니다. 일정 영역에 걸쳐 권능과 속성 지배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정 시간에 걸쳐 모든 능력치가 일정 수치만큼 증가합니다.]

……

[‘영역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환영이 새로운 권능을 열었듯이, 연우도 영역화에 대한 개념을 얻 으면서 2단계의 권능을 연 것이다.

게다가 성화에 대한 숙련도도 함께 깊어지면서, 오히려 환영이 달성했던 2단계 권능보다 더 높은 경지를 개척할 수 있었으니.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비그리드를 휘두르면서 화마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환영을 잡아 볼 생각이었다.

녀석도 하늘 날개와 용의 날개를 활짝 펼쳐 단숨에 상공으로 날면서 빛의 파도를 터뜨렸다. 하늘에서부터 떨어진 수십 개의 뇌전이 화마를 찢기 위해 작렬했다.

콰콰콰-

* * *

일시적으로 진공 상태가 발생했다가, 외곽으로 떠밀려 났던 대기가 도로 안쪽으로 몰려오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자연 재해나 다름없는 폭풍 속에서는 쉴 새 없이 벼락이 치고, 불줄기가 튀었다.

난류가 이리저리 엉키면서 소멸했다가 다시 생성되기를 반복했다.

콰앙!

그때, 소용돌이 한쪽 옆구리가 터지면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환영은 여태껏 자신을 보호해 주던 하늘 날개와 용의 날개가 전부 부서진 채,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 위로 연우가 올라타 환영을 강하게 찍어 눌렀다. 비그리드가 오른쪽 어깨를 관통해 땅바닥에 깊숙하게 꽂혔다.

“하아. 하아.”

연우와 환영은 서로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얼굴이 붙었다. 똑같이 생긴 얼굴이, 서로를 보며 뜨거운 단내를 토해 냈다. 연우도, 환영도, 누구 하나 먼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거친 격전이었다.

하지만 결국 승기는 연우 쪽으로 기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진 재능이나 스킬의 위력은 동생의 환영 쪽이 뛰어났지만, 기술의 숙련도는 연우 쪽이 훨씬 우세했다.

특히 몸을 온전히 가누기 힘든 폭발 속에서 맹렬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건, 오히려 무공을 단련한 연우 쪽이 유리했다. 또한, 마력량도 4대 신수의 내단을 흡수한 연우가 우세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우는 거듭 지배력을 높이면서 선술 쇄를 이용한 폭발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것을 스킬로 정착시키기까지 했다.

[서른 번째 구획의 시련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이번 시련을 통해 다양한 영감과 성취를 이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뤘습니다. 추가 공적치와 보상이 주어집니다.]

[공적치를 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3,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유니크 스킬 ‘불의 파도’가 생성되었습니다.]

[스킬 ‘불벼락’이 ‘불의 파도’와 합쳐져 귀속되었습니다. ‘불의 파도’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3.2%]

불의 파도는 연우가 빛의 파도에서 강한 영감을 받아, 폭발을 계속 가다듬어 나가면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전히 시전 후의 자기 피해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어 아직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지만, 이것만 하더라도 이미 빛의 파도가 가진 위력을 뛰어넘고 있었다.

다양한 기술이 혼재된 덕분이었고, 그 차이로 연우는 겨우 승기를 따낼 수 있었다.

따지자면 막상막하, 백중세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장의 차이뿐.

하지만.

연우는 이것이 동생이 그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어디 가서 쪽팔리게 얻어맞고 다니지 말라며 준 선물.

화아아-

시련을 극복했다는 메시지가 사라지면서 인스턴트 던전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도 덩달아 동생의 환영도 노이즈가 낀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연우는 사라지려는 동생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눈에 담고자 했다.

이대로 가 버리면, 더 이상 이 모습을 볼 수 없을 테니까. 던전이 사라질 때까지만이라도 이렇게 가까이 있고 싶었다.

비록 가짜에 불과한 녀석이니 그런 자신의 마음 따위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때.

씨익-

여태껏 인형처럼 무표정한 모습만 고수하던 환영이. 아주 약간이지만 처음으로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

연우의 두 눈이 부릅떠진 순간, 동생의 환영이 미미하게 입술을 벙긋거렸다.

5년 전. 헤어지기 전에 봤던 모습으로.

‘재미있었어, 형.’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환영은 던전과 함께 잘게 부서지면서 사라졌다.

환영은 원주인의 기록과 업적을 바탕으로 생성된다. 그렇다면 원 주인의 기억 중 일부가 같이 옮겨졌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연우는 어쩐지 모르게 정말 오랜만에 동생과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이나 사진 속의 모습이 아닌, 이곳에 살아가는 동생과.

그렇게 다음 구획이 열릴 때까지.

연우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녀석이 남긴 말을 몇 번이고 되뇌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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