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85화 (185/862)

10화. 그림자 도장 (10)

“영역 선포.”

[용의 영역, ‘비나’가 선포되었습니다. 일정 영역에 걸쳐 권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단계 권능이 발현됩니다.]

[권능: 드래고닉 프레셔.]

[일정 시간에 걸쳐 모든 능력치가 특정 수치만큼 증가합니다.]

[일정 시간에 걸쳐 물리 방어력이 특정 수치만큼 상승합니다.]

[일정 시간에 걸쳐 속성 방어력이 특정 수치만큼 상승합니다.]

……

이제는 너무 익숙한 메시지를 밑으로 하고, 연우는 곧바로 블링크를 발동시켰다.

츠팟-

그렇게 연우가 등장한 곳은 환영의 바로 뒤쪽이었다. 연우는 곧 바로 오러가 뒤섞인 비그리드를 거칠게 휘둘렀고, 환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면서 손날을 앞으로 튕겨 올렸다.

쾅!

녀석의 손날은 비그리드가 찌르르 울릴 정도로 단단했다. 피륙도 살짝 찢어진 게 전부였다.

연우와 환영은 그 자리에서 몇 차례 합을 주고받았다.

연우는 비그리드를 매섭게 휘몰아치면서 환영의 목을 집요하게 노렸고, 환영은 침착하게 몸을 뒤로 조금씩 물리면서 공격을 거둬 냈다.

그런 과정에서 연우가 느낀 점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다.’

무왕의 환영이 예상했던 것보다 능력치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물론, 지금도 절대 약한 건 아니었다. 비그리드를 튕겨 내는 힘이나 움직이는 속도는 동생의 환영보다 위였으니까.

하지만 좀 전에 보였던 파공을 구사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따지자면, 2단계 권능을 발현한 자신과 비슷한 정도였다.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

‘혹시 데이터에는 큰 변화가 없는 건가?’

그러다 연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집요한 집념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명예의 전당에 기록된 데이터 수치는 변동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시스템의 제약이 따른 것이다.

아마 그게 맞을 것 같았다. 만약 환영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 계속 발전이 가능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환영은 못해도 진짜 무왕에 근접할 만큼 성장해야 했을 테니.

그렇게 판단을 하고 나니, 환영이 어떻게 팔극권의 비기를 쓸 수 있는지도 이해가 갔다.

‘능력치에는 별다른 변화를 못 주니, 기예를 갈고 닦는 쪽으로 간 걸까?’

연우는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볍게 혀를 찼다. 명예의 전당에 기록된 것도 벌써 수십 년은 되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 긴 시간 동안 팔극권만 단련한 셈이었다. 녀석의 팔극권이 비정상적인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발전 없는 상태에서 기예를 이만큼 발전시킨 환영의 집요함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건 집요함이라기보다는.’

콰콰콰-

그때, 환영이 주먹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주먹을 따라 공간이 일렁거렸다. 쇄연. 역시나 8대 비기였다.

‘그냥 자동적인 습관 같은…….’

연우는 그 생각과 함께 다시 블링크를 발동시켰다. 공간이 휘청일 만큼 강렬한 힘이 허망하게 빈자리를 관통하고, 연우는 다시 환영의 뒤편에서 나타나면서 하체를 거칠게 쓸어 나갔다.

환영은 다리를 높게 들어 그대로 지면을 내려찍었다. 그러자 뒤쪽 땅거죽이 높게 치솟으면서 비그리드를 가로막았다. 철토. 팔괘의 ‘곤’을 비튼 비기였다.

콰앙!

흙으로 만든 벽이 터지면서 잘게 부서졌다. 돌조각 사이사이로, 환영과 연우는 서로 다른 행동을 보여 주고 있었다.

환영은 손바닥을 활짝 펼치면서 뇌기를 잔뜩 응집시킨 ‘진’의 벽뢰를 터뜨리려 하고 있었고, 연우는 불의 파도를 준비 중이었다.

콰콰쾅!

뇌전과 화기가 충돌하면서 빛으로 이뤄진 기둥이 드높은 상공까지 솟구쳤다. 먼지구름과 검은 매연도 같이 높게 올라섰다가,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연쇄 폭발과 후폭풍을 잇달아 토해 냈다.

연우는 블링크와 헤이스트를 잇달아 전개하면서 최대한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이제 어느 정도 범위를 조절할 수 있는 데다가, 새롭게 권능도 각성하면서 발전한 마력 덕분에 두 마법의 효과도 대폭 상승한 상태였다.

연우는 인스턴트 던전의 가장 끝자락에서 폭발의 잔해 속을 응시했다.

결이 뒤죽박죽 섞인 곳을 따라, 초감각과 용마안이 저 속에 있을 환영을 쫓았다.

「주인!」

그때, 샤논이 머릿속으로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한령과 레베카의 의지도 같이 묻어났다. 자신들도 내보내 달란 뜻이었다. 방금 전 일격에 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묻어났다.

하지만.

‘기다려.’

연우는 그들의 기대를 묵살했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할 때였다.

‘온다.’

콰앙-

연우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먼지구름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곧 무왕의 환영이 나타나 무서운 속도로 이쪽으로 쇄도했다.

웃음기 가득했던 얼굴은 어느새 포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비교적 큰 피해 없이 폭발에서 벗어 난 자신과 다르게, 환영은 조금 다친 상태였다. 화상으로 그을린 피부 위로 연기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연우는 상처를 입은 맹수가 더 흉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녀석도 여태껏 반쯤 유희로 즐겼다면, 이제는 정말 전력으로 부딪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녀석은 보이는 것보다 피해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런 정신없는 폭발 속에서도 용케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낸 걸까. 아니면 역시나 팔극권으로 공격을 옆으로 흘린 걸까.

아무래도 후자 쪽인 것 같았다. 녀석을 훑어 내는 용마안과 초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흩어지는 결이며 기운의 잔재들이 읽혔다.

[시차 괴리]

녀석과 다시 충돌하기 직전, 연우는 생각했다.

이대로 계속 부딪쳐 봤자 결국에 승부는 나지 않는다. 아니, 계속 싸움을 이어 나가면 자신의 패배, 하지만 샤논 등의 도움을 빌리면 무승부까지 승률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연우는 그보다 더 큰 것을 바라고 있었다.

압도적인 승리.

어떻게든 환영을 찍어 누르고 싶었다. 단순히 화가 나서는 아니었다. 무왕이라는 존재를 꺾고 싶다는 열망이 컸고, 동생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도 남아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재차 충돌이 벌어지기 전에, 무왕을 꺾을 만한 전략을 짜야 했다.

아니면 그만큼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단초를 얻어 내거나.

가장 먼저, 자신과 무왕의 환영 간 차이점은 무엇일까.

분명 전반적인 스펙은 얼추 비슷했다. 다만, 팔극검을 비롯해 여러 기예에서 숙련도 차이가 너무 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수십 년 동안 이곳에 갇혀 수련을 하던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환영은 분명 여기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도 지금의 연우보다 팔극권에 깊게 통달했을 게 분명했다.

여태 환영이 풀어내던 8대 비기는 무왕에게 배웠던 것과 똑같았으니까. 이미 저때부터 어느 정도 뼈대는 갖춰진 상태였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나와, 검무신이나 녹턴과의 차이점은 그럼 또 뭐지?’

21구획과 24구획에서 만났던 무왕의 제자들을 떠올렸다. 녀석들은 이미 이때부터 자신들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여러 스킬을 잡다하게 익혀서 그렇다지만, 어쨌거나 거기에 한참 못 미쳤다.

자신만의 길. 이건 연우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화두였다. 오러를 만들어 달인 급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연우는 자신이 걸을 길에 대해서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분명 추구하고 싶은 것은 있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한 힘. 하지만 그런 두루뭉술한 것만으로 더 높은 경지를 바란다는 것은 아직 많이 요원한 일이었다. 무도가의 길은 그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연우는 무도가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크게 없다는 점이었다.

분명 무공을 익히는 건 재미있었다. 승부욕도 생겼고, 검술을 익히는 건 묘한 쾌감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검술에 푹 빠져 사는 수도승 같은 삶을 살려는 건 아니었다.

재미와 목표는 전혀 별개였고, 연우가 바라는 건 더 강해질 수 있는 힘과 거기에 다다르는 방법이지, 끝없는 자기 수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연우는 관점을 조금 비틀기로 했다.

당장 길을 닦을 수 없다면. 남이 닦아 놓은 길을 걸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그 위를 달려서 내 것으로 삼아 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게 훨씬 손쉬웠고, 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 연우에게는 아주 좋은 교보재가 셋이나 있었다. 그것도 지금의 자신에게 제대로 된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교보재들이.

가장 먼저, 연우는 검무신이 되고자 했다. 21구획에서 봤던 검무신의 결들은 이미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었다.

초감각의 미세한 감각을 이용해서, 그 결들을 고스란히 체현하고자 했다.

연우가 해석했던 검무신의 길은 강직(副直). 보다 단단하고, 보다 강한 의념이 똘똘 뭉친 힘이었다.

순간, 연우의 몸이 무겁게 착 가라앉는다 싶더니,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새로운 옵션, ‘동기화’를 깨달았습니다. ‘초감각’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28.1%]

화아악-

그 순간, 메시지가 하나 떠오르면서 느려졌던 시간이 되돌아왔다.

어느새 무왕의 환영이 연우 눈앞까지 다다라 있었다. 충돌하기 바로 직전, 환영은 왠지 모르게 연우를 둘러싼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다다당-

연우는 매섭게 비그리드를 휘둘렀다. 얼마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30여 개의 초식을 잇달아 풀어낼 정도였다. 그것을 막아 내는 환영의 손도 덩달아 바빠졌다.

환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여태껏 상대했던 연우의 검격과 느낌이 본질적으로 달랐다. 이전에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이글거렸다면, 지금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아주 단단했다.

오러도 그만큼 안쪽으로 수축되면서 단단한 경도를 자랑했다. 환영의 손날이 크게 찢어지면서 피가 위로 튀었다.

쐐애액!

비그리드가 미간을 노리고 찔러 왔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무시하고 옆으로 가볍게 비켜 냈겠지만, 지금은 그랬다가는 팔이 날아갈 것 같았다.

환영은 정면에서 맞부딪치기로 마음을 바꿨다. 손을 활짝 펼치면서 앞으로 세게 내질렀다. 콰르릉. 뇌벽이 터지면서 뇌기를 잔뜩 압축시킨 힘이 폭발해 연우를 덮쳤다.

하지만 단단해진 비그리드는 단번에 뇌벽을 찢고 환영의 가슴팍에 다다랐다. 사일. 여태껏 연우가 깨우치지 못했던 3가지 비기 중 하나였다. 일점(一點)에 힘을 집중시켜 모든 걸 관통시키는 비기.

쾅!

환영은 오른쪽 가슴팍이 크게 갈린 상태로 튕겨 났다. 살짝 커진 눈이 흔들렸다. 완숙한 검술. 분명히 여태 상대했던 연우와는 달랐다.

“……너, 뭐냐?”

환영은 숙적을 만난 맹수처럼 잔뜩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연우는 다음 차례로 넘어가고 있었다.

‘녹턴.’

이번엔 그를 둘러싼 기질이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형태로 확 변했다. 연우가 해석한 녹턴의 길은 환상. 여러 개의 허초를 이용한 환검으로 화려함 속에 날카로움을 숨겨 두는 힘이었다.

쾅, 쾅, 쾅-

연우는 그것을 그대로 체현하면서 새로운 비기, 궤월을 열었다. 비그리드가 화려하게 쏘아질 때마다 환영의 손도 덩달아 어지러워지다가, 사이사이로 날카로운 일격이 더해졌다.

환영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제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비기들을 잇달아 풀어내면서 연우를 거세게 압박했다.

하지만 연우는 침착하게 녹턴의 패턴을 구사하면서 환영의 공세를 빗겨 내고, 피하고, 거슬러 올라가 반격했다.

연우와 녹턴 사이에는 엄청난 이해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녹턴을 고스란히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연우는 사고 가속과 병렬 연산으로 끊임없이 녹턴의 패턴을 분석하면서 고스란히 따라 하고자 했다.

그리고 거기서 생긴 부산물은 연우의 검술을 단번에 완숙한 달인의 경지로까지 끌어 올렸다.

여기에 용의 권능과 마법 무장까지 더해지니, 당연히 판세는 연우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콰앙!

연우가 내려친 일격에 환영의 왼팔이 허공으로 튀었다. 이제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된 환영을 앞에 두고,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새로운 동기화를 불렀다.

‘무왕.’

이번에는 눈앞에 있는 자가 되었다. 너무 까마득한 차이가 있어서 진짜 무왕은 될 수 없다. 하지만 환영은 달랐다. 검무신과 녹턴을 거치면서 남은 팔극검의 비기들을 차례대로 깨우쳤고, 이제는 극성에 다다른 환영에까지 근접할 수 있었다.

환영은 이제 자신과 똑같은 기질을 풍기는 녀석을 경악에 찬 얼굴로 바라봤다. 분명 상대했던 건 한 놈이었는데. 세 명을 연달아 상대한 것 같았다. 스테이지에 묶인 환영은 자신인데, 시련을 차례로 겪은 건 자신인 것 같았다.

연우는 마지막 남은 비기, 관악을 풀었다. 매서운 돌풍으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모두 찢어 놓는 초식이었다.

연우가 해석한 무왕은 패도(覇道). 강한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흉포함이었다. 당연히 가장 잘 어울리는 초식이었다.

콰아앙-

결국 환영은 힘차게 내지른 주먹이 부서진 채로 뒤로 크게 튕겨 나야만 했다. 녀석이 부딪친 곳은 던전의 가장 끝자락, 분지를 이루는 산자락이었다.

“제, 길……!”

환영이 이를 갈면서 처음으로 분노를 토해 냈다. 연우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여기서 묶이고 만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다른 뭔가에 대한 분노도 같이 섞여 있었다.

여기서 당한다면 평생 올포원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대체 올포원에 대한 무왕의 집착은 얼마나 강한 걸까. 아니, 어쩌면 그런 집착이 수십 년간 남으면서 응어리가 된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연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무왕이 아니었다. 무왕의 데이터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제는 응어리진 집착만이 남은 찌꺼기에 불과했다. 연우가 아는 무왕은 절대 이렇지 않았다.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고고하다. 또한,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이렇게 구속에 얽매인 놈이 절대 아니었다. 녀석은…… 허물. 그래, 그렇게 표현하는 게 좋을 것이다.

마지막 검격을 가하기 직전,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기질을 바꿨다.

헤븐윙 차정우의 모습이 겹쳐졌다. 동생이 추구하던 길은 자유. 여태껏 단단히 구속되어 있던 팔극검이 자연스럽게 풀려나면서 아주 빠르게 환영의 심장에 틀어 박혔다.

퍼억-

거기서 연우는 자신이 추구할 길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신속(神速). 신의 눈마저도 속일 정도로 빠른 속도, 그리고 강렬한 힘을 풀어낼 수 있다면? 자신과도 잘 맞을 듯했다.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길이었다.

환영은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연우를 노려보다가 곧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서른두 번째 구획의 시련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이번 시련을 통해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뤘습니다. 추가 공적치와 보상이 주어집니다.]

……

「주인, 너?」

흐려지는 던전 속에서, 샤논이 의문 섞인 질문을 던졌다. 왜 무왕의 환영을 붙잡지 않느냐는 의문. 동생에 대한 연우의 집착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주 잠깐이나마 행복한 꿈을 꾼 기분이었다. 그래도 희망을 품을 수는 있었으니까.

동생의 환영을 어떻게 가져온다고 한들, 그게 어디 정말 진짜 동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모습만 똑같이 따라한 모조품일 뿐이었다. 무왕의 환영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오히려 동생을 욕 보이는 짓이었다.

꿈은 꿈으로 끝날 뿐. 절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그래. 녀석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어.’

연우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 남았던 미련도 털어 버렸지만, 씁쓸함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이젠 정말 동생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갖가지 기적이 이뤄지는 탑 속에서, 자신은 바랄 수 없었던 꿈을 꿨던 것인지도 몰랐다.

쏴아아-

그렇게 던전이 사라지고, 새로운 던전이 나타났다. 마지막 남은 구획. 올포원. 무왕마저 뛰어넘지 못한 벽을 넘고, 연우는 21층을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서른세 번째 구획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곧 1위 ‘비바스바트’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대기 시간 동안 전투를 준비하세요.]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연우가 다시 전의를 가다듬던 그때.

[1위 ‘비바스바트’의 환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삭제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서른세 번째 구획의 시련이 자동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

“뭐?”

연우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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