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186화 (186/862)

11화. 악마의 숲 (1)

올포원의 환영이 없다고?

무왕의 환영이 의사를 가진 것만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니, 무왕의 경우에는 집념이 데이터로 남아 그럴 수도 있었지만, 올포원의 경우는 그와는 또 달랐다.

시스템으로 규정되어 있는 스테이지의 한 구획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뜻이었으니까.

신과 악마도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해 98층에 묶여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포원의 환영은 정말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있을 자리 대신에 다음 층계로 향하는 푸른색 포탈만이 활짝 열려 연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연우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털었다. 어차피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만약 올포원이 없다면 이제 이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될 테니까.

[위대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등록을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아도 당신의 업적은 탑에 깊게 새겨져 원할 시에 언제든 등록 여부를 전환하실 수 있습니다.]

[21층 랭킹]

공동 1위. 비공개 & 비바스바트

3위. 나유

4위. 휼

5위. 차정우

……

비록 올포원의 환영을 만나지 못해 단독 1위를 이루지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21층에 처음으로 도전한 것치고 괜찮은 결과였다.

이 결과를 보고 나서, 무왕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연우는 여태껏 그랬듯이 보상을 받겠냐는 메시지에 ‘N’으로 대답하고 포탈에 올랐다. 보상은 계속 누적시켜서 한꺼번에 받는 게 훨씬 나았다.

그리고 바로 포탈을 발동시키려는데, 갑자기 통신용 반지가 찌르르 울렸다. 탑 외 지역의 나이트 워치로부터 온 소식이었다.

“무슨 일이지?”

『저, 아, 아무래도 빨리 서…… 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23층에 있던 브라함이 최근 며칠 동안 거처에서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연우는 살짝 눈을 크게 뜨면서 재빨리 포탈을 발동시켰다. 그동안 브라함이 한 자리에만 머물러서 조금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듯싶었다.

화아악-

포탈이 발동되었다. 빛무리가 번지면서 연우를 집어삼켰다.

* * *

21층 명예의 전당의 1위 기록이 바뀌었다는 소식은 금세 탑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번 사안은 여태껏 저층 구간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러 랭커들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기록. 무왕도 결국 바꾸는 것을 실패했던 기록이 무너진 셈이었으니까.

비록 공동 1위라는 해괴한 기록으로 남긴 했지만, 어쨌거나 올포원과 동등한 점수를 쌓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었다.

때문에 독식자라는 별칭은 금세 하이 랭커와 거대 클랜들 사이에서도 오르내리는 화젯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독식자는, 왜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

튜토리얼에서부터 여기까지, 독식자는 한 번도 이름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 분명 비공개로 처리 됐다지만, 그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갖가지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탑의 세계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직 별로 없었지만.

그런 작은 의문은 어딘가에서부터 아주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 * *

“그래서 뭔……!”

헤노바는 별 시답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방해꾼에게 한 소리를 퍼부으려다가, 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말을 멈췄다.

[21층 명예의 전당의 기록이 갱신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21층. 오늘 아침에 연우가 올라간 층계였다.

헤노바는 연우를 보내고 난 뒤, 내심 뭔가 걸리는 점이 있어 랭킹 기록이 바뀌면 바로 알 수 있게 알람을 맞춰 둔 상태였다.

다만, 한 개의 층계를 깨는 데 짧게는 며칠, 많게는 몇 년이 소요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알람이 뜨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재빨리 창을 띄웠다. 이미 방해꾼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은 뒤였다.

그래서 확인한 랭킹에선, 1위에 낯선 이름이 박혀 있었다.

“공동 1위?”

시스템 체계에서 공동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 그보다 타이 기록이라고 해도 여태 올포원의 기록과 나란히 한 사람이 있었던가? 없었다.

그래서 헤노바는 놀랄 수밖에 없었고, 곧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푸근한 미소를 흘릴 수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기록을 세운 걸 보니 힘들게 아티팩트를 맞춰 준 보람이 있다 싶었다.

최소한 장인인 자신의 얼굴을 더럽히지는 않았으니까. 아니, 애초 이게 당연한 거였지만.

“흠. 그래도 염치는 있는 놈이로구만.”

헤노바는 그렇게 웃으면서 망치를 내려놓고, 옆에 놓여 있던 곰방대를 들어 입에다 물었다.

끔뻑, 끔뻑, 연기를 빨아들이는 헤노바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에게도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이 있었다면. 21층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거기엔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비록 거짓된 그림자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따금 놀러가듯이 찾아가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 자신의 바람을 대신 들어 준 셈이었으니.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만든 무구를 들고 갔으니 자신이 직접 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떠올려 보고 싶었다.

과연 연우가, 자신이 만든 무구가 만났을 그 녀석의 얼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웃고 있었을까? 아니면 보통 환영들처럼 무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21층을 통과할 때쯤 그 녀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더라? 가장 밝을 때였으니 아마 웃고 있었을 것 같다. 보는 사람도 허탈할 정도로 바보 같은 웃음이었겠지. 그렇다면 복장은? 그때가 드래곤 슬레이어를 만들어 줄 때였나, 아니면 그 전이었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옛 추억도 하나둘씩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떠올리면 괴로울 것 같아 절대 생각지 않으려 했던 지난 일들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열면서 웃을 수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손님이 있지 않았었나? 그리고 외뿔부족에서도 사람이 온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헤노바는 한참 동안 추억에 잠기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문가 쪽을 내다봤다.

하지만 거기에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바람만 솔솔 들어오고 있을 뿐.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 * *

장웨이는 웃고 있는 헤노바의 모습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에 대해 따로 조사할 때에는 ‘아르티야가 망하고 나서는 대장장이로서의 실력도 녹슬었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는데.

하지만 단언컨대, 장웨이가 봤을 때 헤노바는 절대 실력이 녹슨 게 아니었다. 화로에 풀무질을 하고 망치를 두들기던 힘은 아직도 대단했다. 그런 헛소문이 돈 건, 의욕이 꺾인 모습을 보고 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헤노바가 의욕을 되찾은 것 같았다. 제자가 죽은 걸 알고 있을 텐데도.

아무리 인연을 끊었다지만, 그래도 제자가 죽은 상황에서 쉽게 지을 수 있는 웃음은 아니었다.

‘역시 뭔가 있어.’

그래서 장웨이는 헤노바를 제대로 건드려 볼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납치와 고문을 해서라도. 심지가 굳은 드워프라고 소문이 났다지만, 장웨이는 그런 사람의 입도 열 수 있는 방법을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서기 바로 직전에, 갑자기 문이 활짝 열렸다.

외뿔부족에서 심부름을 왔는지, 문을 열고 나타난 사내는 머리 한쪽에 긴 뿔을 갖고 있었다. 양손에는 이상한 철괴를 잔뜩 들고.

굳이 외뿔부족과 마주하면서까지 헤노바를 건드릴 없기 때문에 그는 도로 단검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면서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헤노바야 나중에 언제든 다시 노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외뿔부족원의 눈에는 무언가 보였던 모양이었다. 녀석은 묘한 눈빛을 보내더니, 장웨이의 뒤를 몰래 밟았다.

장웨이도 그것을 눈치채고 골목길을 몇 번씩 돌고 돌아, 탑 외 지역의 외곽까지 다다랐다.

“외뿔부족에서 나를 왜 따라오는지 모르겠군.”

장웨이는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골목길을 보면서 일부러 소리를 내어 말했다.

그리고 곧 모퉁이에서 조용히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전체적으로 호감이 가는 얼굴이지만, 싸늘하게 식은 눈빛이 냉정함을 더해 주는 사람이었다. 야누. 영매의 후계자 중 한 사람으로, 판트 남매를 모시던 자.

일족과 헤노바 사이에 거래하던 게 있어서 대장간을 찾던 중에 우연히 장웨이와 마주쳐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비록 에도라 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좀 ‘감’이 좋은 편이거든. 너, 위험한 냄새가 너무 많이 나. 누구냐, 너?”

야누는 장웨이가 알 수 없는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손을 가볍게 웅크렸다. 살기도 숨기지 않았다.

연우나 판트 남매 앞에서는 언제나 해맑은 미소만 보였던 그였지만. 사실 그는 일족의 전사들 중에서도 거칠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대장간에서 야누가 본 장웨이는 아주 위험한 냄새를 풀풀 날리는 놈이었다. 헤노바를 해하려는 게 분명했다. 무엇을 하려 했던 건지 캐물어야 했다.

장웨이는 가볍게 혀를 찼다. 외뿔부족은 여름여왕도 엮이고 싶지 않아 할 정도로 까다로운 놈들. 그래서 그도 엮이기 싫었는데.

좋게 말을 하려 해도, 저렇게 대놓고 살의를 드러내서야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애당초 그도 말재주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훨씬 편한 게 있는데 왜 굳이 입 아프게 떠벌려야 하는 걸까.

무엇보다.

장웨이가 외뿔부족을 꺼려 하는 건 단순히 ‘귀찮아서’ 일 뿐.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나중에 그들에게 보복당할 위험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음을 놓고 산 지 오래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장웨이는 말없이 어깨에 이고 있던 활을 풀어 손에 쥐었다.

‘임무 하나 처리하기 정말 고단하군.’

그나마 다행이라면, 헤노바에 이어서 캐물을 수 있는 입이 하나 더 늘었다는 점이랄까. 이런 잔챙이야 아르티야와 아무 연관이 없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확인해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다.

팟-

장웨이는 야누에게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사일동궁에 어느새 화살이 걸렸다.

* * *

“흐흐. 개 같네, 진짜…….”

울컥, 입 밖으로 피가 잔뜩 쏟아졌다. 야누는 어떻게든 땅을 짚으면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재차 오른쪽 가슴에 박히는 화살 때문에 다시 주저앉아야만 했다.

장웨이는 그런 야누를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애당초 싸움이 될 수 없는 전투였다. 하이 랭커와 세미 랭커. 둘의 대결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장웨이는 야누를 상대하면서 딱 두 차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맛봐야만 했다. 역시나 외뿔부족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풋내기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장웨이는 야누의 오른쪽 어깨에 박힌 하얀 화살을 꾹 누르면서 말했다.

끔찍한 고통이 따랐지만, 야누는 오히려 웃었다. 네 마음대로 될 것 같냐는 듯이.

“내가, 왜?”

“제대로 대답하면 살려 주지.”

“흐흐. 그딴 아량을 받을 것 같아?”

“그럴 것 같진 않군.”

“잘 봤어.”

장웨이는 혀를 가볍게 찼다.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없는 주제에.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주제에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다.

그는 이런 눈빛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고문을 가해도 절대 대답을 하지 않을 눈이다.

“어쩔 수 없군. 그다지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흐흐. 왜? 포기라도 하려고?”

“설마.”

장웨이는 피식 웃더니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물론 왼손으로 야누를 압박해 움직일 수 없게 만든 채로. 알 수 없는 말을 웅얼대기 시작했다.

〈소환 - 마물 구영〉

츠츠츠.

갑자기 주변을 따라 보라색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한데 엮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 머리가 아홉 달린 푸른 뱀이었다.

구영. 이예 신이 영웅이었을 시절에 잡았던 여러 괴물 중 하나였다. 그들은 죽고 나서 이예 신의 권속이 되었고, 이따금 장웨이의 소환 스킬에 따라 화신체를 지상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먹어라.”

캬아!

구영은 독니를 잔뜩 드러내면서 야누에게로 기어갔다. 야누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절대 구영과 장웨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떼지 않았다.

구영은 꾸역꾸역 야누의 입을 비집고 들어가 안에 있는 뇌를 파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웨이의 눈가로 단편적인 몇몇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구영은 자신이 먹어 치운 상대의 기억을 일부 흡수하는 능력이 있었다. 장웨이는 구영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 흡수된 장면들을 엿보면서 적을 뒤쫓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비록 음성이 섞이지 않은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아주 많았다. 그리고 야누의 여러 기억 속에서, 장웨이는 꽤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청화도와 동맹을 맺었던 외뿔부족이 갑자기 참전을 하지 않았던 이유. 무왕의 자식들이 레드 드래곤으로 넘어간 계기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독식자, 카인?’

언제나 독식자 카인의 모습이 있었다.

장웨이는 모든 기억을 읽고 난 뒤에도, 턱을 짚으며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냥 단순히 스카웃된 게 아니라 이런 이유가 있었단 말이지? 애초 청화도를 거꾸러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는 레드 드래곤과 싸우는 것에도 별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건가?”

장웨이는 카인의 모습에서 묘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녀석은 피닉스에 대한 원한이 생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청화도에 들어도, 레드 드래곤에 참여해도 별 상관없다는 투였다.

외뿔부족의 용병이라는 명목으로 참전하긴 했지만. 전쟁에 끼어 드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여전히 앞뒤가 맞지 않는 점들이 많지만. 그래도 관심을 둘 만한 것들이었다.

이 근방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알게 모르게 카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별것 없을 것 같다고 무시했던 자가. 사실은 꽤 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인이라, 카인.”

장웨이는 절대 익숙지 않을 이름을 몇 번씩이나 중얼거렸다. 카인.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가 돌았다.

적아 구분 없이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 했던 이유.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파아아-

때마침 모든 살점을 다 파먹은 구영이 천천히 사체 밖으로 나왔다. 야누의 사체는 생기를 전부 빼앗겨 미라처럼 메마른 형태더니, 곧 잘게 바스러져 사라졌다.

장웨이는 손을 뻗어 구영을 팔찌처럼 감은 뒤, 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억 속에 카인은 23층으로 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재미난 일이 벌어지면 좋을 텐데.”

장웨이의 한쪽 입술 끝이 살짝 비틀렸다. 그는 탑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기대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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